소설리스트

광자임해-160화 (160/210)

< -- 160 회: 정귀비와 복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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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를 들라 해라!”

“네, 황상!”

대전 내관이 대답과 함께 곧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40대에 벌써 굽은 등이 직업의 무서움을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매일 복부 위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고 있다 보니 생긴 직업병의 일종이었다.

곧 자신의 침소인 조양궁으로 든 이진은 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며 광해를 기다렸다. 그러길 채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 광해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이진 앞에 부복했다.

“부르셨사옵니까? 황상!”“음.........!”

가볍게 대답한 이진이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여송과 왜의 동향을 이야기 해봐.”

“네, 황상!”

“이여송은 이제 와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려 하나 반발이 심하고, 감숙 진공(進攻) 또한 해이한 기강으로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금은 단지 사천과 섬서의 안정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 왜는........”

여기서 한숨 돌린 광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번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등 국교 정상화에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 않사옵니다. 이는 우리의 사절단이 황상의 지시대로 수길의 아들 히데요리에게 불사조성에 응하지 말라고 한 것이, 저들의 정보망에 탐지되어 내정간섭 운운하며, 더 이상은 화해의 몸짓을 보내지 않고 있사옵니다.”

광해의 말을 받아 이진이 말했다.

“잘 됐군. 저들을 언젠가는 대 조선에 편입해야할 대상. 정상화 된 후 쳐들어간다는 것도 명분에서 밀리는 일인데, 설령 저들이 마음이 변해 원한다할 지라도 이제는 우리가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응하지 않아야 돼.”

“알겠사옵니다. 황상!”

“우리의 내부가 안정되는 대로 손을 봐 줄 참이니까.”

“네, 황상!”

부언하는 이진의 꽉 다문 입술에서 그들에게 보복을 하고자 하는 강한 결의가 느껴져 광해마저도 괜히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일별한 이진이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다시 엄숙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전족을 반대하는 상소가 산을 이루는데, 태형 100대로 다스리고는 있으나, 이게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더 엄한 처벌을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겠는데 이게 쉽지가 않단 말씀이지. 정보부서에서 느끼는 실제 저들의 반발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

“이대로 지속되면 사회 문제를 넘어 반란을 꾀하는 무리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사옵니다. 황상!”

“흐흠........! 생각보다 심각하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또한 은밀히 명왕조의 복권 운동을 꾀하는 무리들도 있는 것으로 탐지되고 있사옵니다.”“그럼 바로 잡아들여야지.”

“좀 더 세를 키우면 그때 일망타진할 셈으로 계속 쫓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복왕을 살려주신 것은, 궁극에는 그를 중심으로 복권 운동이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므로.........”

‘실책’이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얼버무리는 광해지만, 이를 못 알아들을 리 없는 이진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일구이언은 할 수 없음이야.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겠군. 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족을 반대하거나 반란을 기도하는 자들은 모두 국외추방 시켜야겠다.”

“국외 추방이라 하심은........?”

“호주, 보르네오 섬, 루손 등 인구가 희박한 곳이 얼마나 많으냐? 모두 그곳으로 보내 우리가 새로 점령한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지. 그래도 부족하다면 아예 북미대륙마저 점령하여 대규모..........”

여기까지 말을 하던 이진이 돌연 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종내는 신대륙마저 먹어 너무 많은 중국 내의 인구를 분산시켜야겠어.”

이 한 마디에 머지않아 중국의 인구가 대폭적으로 줄어드는 계기가 될 줄은 지금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이진의 머리속에 쿨리[苦力(고력)]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중국과 인도의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로, 특히 짐꾼, 광부, 인력거꾼 등을 가리켜서 외국인이 부르던 호칭이었다. 인간노동력으로서 매매되는 점에서는 노예와 같았다.

1862년 미국에서 노예가 해방되자 그를 대신한 노예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들이었다. 청 왕조의 금령(禁令)에도 불구하고 외국상인이나 중국인 매판(買辦)의 손을 거쳐 홍콩, 마카오를 중심으로, 서인도, 남아프리카, 아메리카, 호주 등에 대량으로 보내졌다.

또 이진의 머리에 연이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쿨리에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인도인도 포함 된다는 사실에 인도에 대해도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지금쯤 인도는 어떻게 되어 있지?

생각을 해보았으나 인도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떠오르는 것이 없는 이진이 혹시나 해서 광해에게 물어보았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것 있나?”

“무굴제국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동쪽 지대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해 영국 상인들이 일부 상륙해 그들의 저렴한 상품을 착취 수준으로 사들여, 양이의 여러 나라에 팖으로써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황상!”

“야, 이거 세계적인 정보 수집능력인데?”

이진의 칭찬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은 광해가 대답했다.

“상인들의 정보만 착실히 모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사옵니다. 황상!”

“아무튼 대단해. 이제 짐이 지난번에 말한 대로 우리의 정보 수준도 세계로 넓혀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손금 보듯 알고 있어야 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사옵니다. 황상!”

“그래, 그래! 짐이 정보부에 더 많은 지원을 할 테니, 꼭 그렇게 되도록 해!”

“망극하옵니다. 황상!”

고개를 조아리는 광해를 내보내고 이진은 여러 생각을 했다.

인구 분산, 신대륙, 인도, 더 나아가 동남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쳤다.

* * *

다음 날 조회 시간.

제 대신들이 모인 가운데 이진은 어제 마음먹은 중국인들의 인구 분산책을 염두에 두고 발언을 시작했다.

“요즘 한인 유자(孺子)들이 전족에 대한 반발로 집단 상소를 올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는 태형 100대라는 벌이 너무 경해 그런 모양이오. 해서 짐은 당장 명일부터라도 이들에 대해서는 유배를 보내려 하오. 우리의 영토 중 아직 인구가 희박한 저 루손, 보르네오, 호주 등으로 말이오. 그러니 법무부에서는 이를 기안하여 바로 공포하고 포도청에서는 즉각 실행에 들어가도록 하오. 또한 해군에도 이를 통보하여 선편을 확보하도록 하오. 아시겠소?”

“네, 황상!”

관련 각료들이 봉명하는데 한 명이 반론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남이공이었다.

“그렇게 되면 일반 백성들까지 가세한 난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황상!”

“옛 명 치하의 백성 반을 다 수용해도 될 만큼 그 땅이 넓은 걸로 알아요. 부족하면 신대륙까지 점령하여 그들을 수용할 땅을 확보할 테니, 그들의 난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혹시 우리의 군사력이 그들을 다 잡아들이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아닐 테고. 하하하........!”

이진의 강경발언에 모두 입을 다물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는 못하는 제 대신들이었다. 이후에도 조속한 안정화 대책과 시급한 현안들이 한동안 논의 되었지만, 오늘의 주 의제는 이진이 제기한 문제였다.

이날 오후.

이진은 다 각도로 검토를 하다가 파발을 띄웠다.

곧 누루하치와 충렬, 충정왕을 궁으로 들어오라 명한 것이다.

* * *

그로부터 10일이 지났다.

한 발 한 발 겨울의 중심을 향해 나가는 날씨 속에서 오늘은 처음으로 얼음이 언 날이었다.

여진족 왕 세 사람이 모두 도착했다는 통보를 받은 이진은 그들을 곧 보화전(保和殿)으로 불러들였다.

보화전은 외 삼전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전각으로 이진이 주로 많지 않은 외인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쓰고 있는 전각이었다. 그들 삼인이 부복해 인사를 올리자 정중하게 인사를 받은 이진이 잠시 굳은 안색으로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진의 표정에 세 왕들은 더욱 굳어져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볼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뜸을 들이던 이진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우리 조선을 위해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짐이 금왕에게는 일전에 한 번 언질을 준 바가 있소만, 이제 그 문제를 거론 하려 하오. 즉 짐이 지명하는 나라를 정복하되, 그곳에서 왕조를 열어도 좋소. 단 대 조선제국에 대한 조공은 반드시 행해야 하오. 그렇지 않았다가는 후후후......... 짐의 말이 뭔 뜻인지는 그대들이 더 잘 알 것이오. 이에 대해 이의 있소?”

이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던 누루하치가 얼른 부복해 아뢰었다.

“황상의 뜻대로 하겠나이다.”

자신들 보다 세력이 강한 누루하치도 얼른 복명하는데, 자신들은 따져 볼 것도 없다는 듯 두 왕도 부복해 이진의 뜻을 받들었다.

“폐하, 명만 내리십시오!”

“좋소! 금왕은 인도를 점령하시오. 그곳의 왕조인 무굴제국이 제법 강성한 모양이니 일단은 배편으로 동쪽, 세력이 약한 곳에 전 군사를 내려줄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오.”

“네, 황상!”

“충렬왕은 월남(越南), 충정왕은 섬라 땅을 점령하시오. 두 곳의 왕조는 알아본바 그렇게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하니 바로 그들의 수도를 타격해 점령하는 것이 그들을 지배하는데 빠른 길이 될 것이오.”

현대전의 종심 타격 전략까지 설명하며 그들에게 현 베트남과 태국을 점령하도록 강요하는 이진이었다. 두 왕이 무슨 이야기인지 생각하느라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이 늦어지자, 이진이 노한 눈으로 물었다.

“아시겠소?”

“네, 황상!”

얼른 부복해 답변은 하나 확실히 개념 파악을 했는지는 의심스러운 두 왕 즉 칭기야누와 양기누의 태도였다.

“저희 직속 병사만 이끌고 가는 것입니까?”

“그렇소. 정 어려우면 그때는 한 번 짐을 찾아와도 좋소. 가급적 차근차근 정벌하는 게 좋겠지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누루하치가 고개 숙여 비빌 언덕이 생겼다는 데 대해서 급히 감사를 표했다.

“월남에 대해 들어온 정보로는 왕국 내에 두 세력이 있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아무리 그레도 그렇지. 저희들이 명에서 독립한지 얼마 되었다고, 조공을 까맣게 잊고........... 건방지게 시리.”

괘씸하다는 듯 종내는 혀까지 차는 이진이었다.

월남은 영락 연간에 정복을 당해 200년 동안 지배를 받다가 얼마 전에 독립을 한 이후로 조공이 끊겼다는 것을, 이진은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섬라도 마찬가지요. 예전에는 명과 우리에게도 조공을 바치더니 지금은 아주 태만해졌소. 금번에 아주 단단히 손을 봐주어야 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태국을 정벌하러 떠나는 합달부의 칸 충정왕 양기누가 급히 고개 숙여 이진의 명을 받들었다.

“지금은 동절기이고 또한 옛 명의 땅도 온전하다고 볼 수 없으니, 명 년 봄에나 선박이 준비되는 대로 출항하는 것으로 할 테니, 그런지 알고. 그간 각별히 군사들을 조련해 주오. 아니래도 강병이겠지만.”

“알겠사옵니다. 황상!”

“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할 이야기 있는 사람은 하시오.”

서로를 마주보다 엽혁부의 충렬왕 칭기야누가 물었다.

“저희들이 그곳에 왕조를 열게 해준다 하심은, 다시는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 은 아니온지요?”

이 문제를 누루하치에게는 이야기한바 있지만 이들과는 이런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감으로 때려잡고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소!”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라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은지 간결하게 끊는 이진이었다. 이진의 대답에 두 사람의 안색이 급격히 흐려졌으나 이진은 모른 채했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한동안 지속되자 은근히 화가 난 이진이 말했다.

“아니면 우리에 대항해서 한 번 일전을 벌여도 좋고.”

“아, 아니옵니다. 황상! 황상의 명에 따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까, 잠시 궁리를 하다 보니..........”

양기누가 안색이 변해 급급히 변명을 하는데, 칭기야누 역시 목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죽여주십시오. 소신들이 잘못 했사옵니다. 폐하!”

“그만 하오. 짐도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으니. 짐이 왜 이런 명을 내리는지는 세 분 모두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부언은 안 하겠소. 자, 이제 그 문제는 이쯤 해두고 모처럼 들리셨으니 술이나 한 잔씩 하고 헤어지도록 합시다.”

“네, 황상!”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진은 곧 곤명호 변의 배운전으로 가 이들과 함께 잠시 주연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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