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30화 (130/210)

< -- 130 회: 몽골과 요서 정벌 -- >

3

“권 군단장이 보낸 전령이더냐?”

“네, 장군님!”

“수고가 많았다.”

“여기 서신이 있사옵니다. 장군님!”

“알았다.”

신립이 권율이 보낸 서신을 읽어보니 금일부터 3일 후에 금주성(錦州城)을 공략하겠다는 말과 함께 지원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내용을 읽어본 신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필(筆)을 놀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답신을 받은 전령이 깊은 밤임에도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음 날 아침.

신립은 제 여단을 이끌고 산해관 쪽으로 내달렸다.

이틀이 지나 홍이포(紅夷砲)가 미치지 않는 십리 밖에 군영을 세운 신립은 제장들을 중군 막사로 불러들였다. 작전 지시를 하달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각 여단장들이 하나 둘 중군 천막으로 모여들자 면면을 잠시 돌아본 신립이 고함을 질렀다.

“제 장들은 명을 받들라!”

“네, 장군님!”

12여단장들이 일제히 군례로 복명하는데, 충의왕 구유크만이 딴에는 왕의 지체라고 멀뚱멀뚱 신립을 바라보았다.

“주셔리부 부족장 추쿵거(楚孔格)!”

“네, 장군님!”

“구로다 나가마사!”

“네, 장군님!”

“10여단장 송응창!”

“네, 장군님!”

“그대들은 즉시 출발하여 금주성의 권율 군단을 후원한다. 출발!”

“출발!”

복창한 세 명이 급히 실내를 빠져나갔다.

“다음은.........”

여전히 사전에 적어 놓은 명단을 읽어 내려가는 신립이었다. 이에 따라 다음으로 호명된 여단장은 네 명이었다.

즉 전 기마영장 이빈(李薲), 야류장 부족장 나하추(納哈出), 항왜적장 김충선(金忠善), 전 요동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 등이 그들이었다.

“당신들 네 명은 즉각 기동하여 영원성을 공격한다.”

“네, 장군님!”

일제히 이들 또한 군례와 함께 사라지자 비로소 조금 표정을 푼 신립이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은 당신들은 본 장(將)과 함께 혹시 이여송이 산해관을 뛰쳐나오면 요격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소?”

“네, 장군님!”

이에 따라 남은 면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전 화기영장 이천(李薦)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

휘발부 족장 홀가적(忽哥赤)

전 요동도사(遼東都事) 엄일괴(嚴一魁)

충의왕 구유크의 1만 군사.

그러니까 도합 7만 군사가 떠나고, 나머지 6만 군사가 산해관에 처박혀 있는 이여송의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남은 것이다.

* * *

“저, 저것들은 다 뭐냐? 없어졌더니 어디서 또 나타났어?”

산해관 성채 높은 문루에서 벌판에 집결한 십여만의 조선 기병을 손가락질하며 내뱉은 이여송은 혀가 꼬여 발음이 온전치 못했다.

“대동 쪽으로 움직이던 군사가 다시 되돌아 온 것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

바로 밑의 동생 이여백의 대답을 신경질적으로 받는 이여송이었다. 그의 신경질은 계속 이어졌다.

“세작을 어떤 식으로 운영하길래, 하루아침에 깜깜이가 되었어?”

“아마 저들이 뒤 쫓는 아군 세작을 눈치 채고 다 살해한 모양입니다.”

“하여튼 뭐든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

“장군님, 지금 그걸 논할 때가 아니잖습니까?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셋째 동생 여정(如楨)이 그래도 군영이라고, ‘장군님’이라 부르며 하는 말에도 여전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여송이었다.

“지키면 되지, 뭘 어째?”

“저걸 보십시오. 장군님! 저들이 하나 둘 요동 쪽으로 떠나갑니다. 아무래도 여기서 가까운 영원과 금주성을 공격할 모양입니다. 장군님!”

둘째 여백의 말에 구름 먼지를 피우며 일제히 달려 나가는 기병들을 바라보는 이여송의 눈에는 잠시 의혹이 일었다, 무엇을 깨달은 듯 뭐 씹은 얼굴이 되었다.

“하면 좀 전에 떠난 놈들은 아군의 성보(城堡)를 공략하러 떠난 거고, 저, 저 놈들은 우리가 여기서 뛰쳐나가 저들의 뒤를 급습할까봐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것 아니냐? 시방?”

“뿐만 아니죠. 저들의 상태로 보면 우리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홍이포를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아는지, 원거리에서 우리의 움직임만 예의 주시하고 있군요. 차라리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나으련만, 골치 아프게 생겼습니다. 형님!

마음이 답답해지다 보니 얼결에 형님 소리가 나오는 셋째 여정이었다.

“허허........! 그것 참.........!”

답답한 마음에 헛웃음 치는 이여송이지만 참으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헛웃음도 잠시. 답답한 마음에 괜히 아까운 천리경만 동댕이치며 분풀이 하는 이여송이었다. 그러나 10만을 지휘하는 장수로서 이래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하는 이여송이었다.

이 상황이 군감(軍監)으로 파견 나와 있는 환관 놈에 의해 그대로 보고되면, 이 또한 목이 달아날 일이었다. 분명 전령이 끊겨 알 수 없지만 저들의 하는 짓으로 보아, 요서의 성보에서는 피아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질 터. 지원을 안 해주었다고 당할 것이고, 지원?

생각을 이어가던 이여송이 ‘지원’이라는 단어에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지금 아군이 비록 10만 대군이라 하나, 저들말로 걸어 다니는 기병이라 일컬어지는 ‘마보군(馬步軍)’이 2만에, 문자 그대로 보군(步軍)이 8만, 대략 저들의 쪽수를 헤아려보니 못 잡아도 5만. 비록 숫자에서는 2:1로 앞선다 해도, 붙으면 백전백패는 따 놓은 당상.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이여송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형님........!”

시시각각 변하는 이여송의 표정을 살피던 둘째 여백이 흔드는 바람에 표정 관리차원에서라도 곧 헛기침을 하며 아닌 척했지만, 이여송으로서는 뛰도 나도 못하는 상황에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긴장하고 있음이었다.

“험, 험.........! 내 잠시 소피 좀 보고 올 테니, 공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생각해보도록 해라.”

말이 끝나자마자 한 쪽 구석으로 가 바지춤을 까 내리는 이여송이었다.

“공격은 무슨 공격, 설령 장성 동쪽을 모두 잃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곳만 사수하면 돼! 최소한 북경은 안전하잖아.”

여정의 말에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른 여백이 말했다.

“저 간사스러운 엄당(閹黨:환관) 놈이나 보고 말해. 분명 우리가 지원을 안 해주어서 요서를 잃었다고 할 것 아니야?”

“그렇다고 나가 싸우다가 병력이라도 잃는 날에는 우리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쓱 삭......!”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해 보이는 여정이었다.

“이러도 못하고 저러도 못하고 참으로 골치 아프군.”

“구워삶을까요? 형님!”

“그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야? 지금 상황은 제 놈 목도 걱정할 처지인 것 같은데.........”

“그럼, 어쩌라고요? 그러나저러나 우리 형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었습니까? 죽으나 사나, 나가서 한판 붙죠.”

“쉿, 형님 온다! 에고 나는 모르겠다. 형님 하고 잘 상의해봐라.”

뒤로 한 발 빠지는 이여백이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형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나가 싸웁시다. 언제부터 우리 가문이 적이 두려워 싸움을 피했습니까? 이가(李家)의 전통에 먹칠을 하는 일입니다. 형님!”

여정의 분개한 표정을 슬쩍 바라보던 이여송이 한 옆에 빠져있는 여백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저는 장군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장군님!”

“이럴 때만 장군이냐?”

한마디 톡 쏜 이여송이 전면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때였다. 한 옆에서 모른 척 이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환관 조영(曹永)이 이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떻게 되었소? 출진하는 것이죠?”

“그렇소!”

얼결에 대답한 이여송이 이내 떫은 땡감 씹은 표정에서 급히 온화한 표정으로 수습하며 말했다.

“황상께 최선을 다했다고 잘 보고나 해주시오.”

“우리는 한 몸이오. 여기서의 일이 잘못되면 나라고 잘 될 일이 없소. 하니 나가 기필코 승리를 쟁취하기 바라오.”

“하모, 하모! 믿으시오. 우리 이 가의 저력을..........!”

갑자기 어디서 힘이 나는지 자신의 가슴까지 쳐가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여송이었다.

“잠시 비켜주시겠소?”

“그러지요.”

환관 조영이 자리를 비켜주자 이들 형제는 곧 작전회의에 돌입했다.

그 시간.

신립의 진영. 처음의 진영에서 사 마장을 전진한 상태에서 신립의 진영은 포진되어 있었다. 즉 홍이포의 사거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최대한 전진 배치한 진형이었다. 아무튼 신립은 돌연 주변에서 몇 개의 풀잎을 주워 이를 날리며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지금이 사월이지만 날씨는 변화무쌍 한 것. 언제 미친바람이 불지 모르는지라, 가급적 바람을 등지고 싸우기 위해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신립이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북서풍이었다.

이에 신립은 전군의 방향을 틀도록 지시했다. 즉 서북쪽으로 등지고 서서 요동 쪽을 비우고 선 것이다. 그쪽으로 적들이 가도 좋다는 자신감의 발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제장들은 신립의 깊은 속내까지는 몰랐다. 다만 그의 명에 따를 뿐이었다.

신립이 재배치를 끝낸 그 순간이었다.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던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글씨 밑의 육중한 성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명군의 기병이 줄지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방포 준비!”

“방포 준비!”

“준비된 사수로부터 방포!”

“방포!”

우르릉 쾅, 쾅!

펑, 펑, 펑.........!쾅, 쾅, 콰쾅........!

슉, 슉, 슈슉..........!

기묘한 소리들과 함께 화기여단의 화력이 일제히 튀어나오는 적의 인마(人馬)를 향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곧 성문 앞이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적은 끊임없이 밀고 나왔다. 이렇게 밀치고 엎어지고 재껴지면서도 성 안에서는 끊임없이 군사들이 밀려나왔다.

기병이 끝나자 이번에는 보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성문 1마장 앞은 시체로 동산을 이루고 있었지만, 적은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밀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 인물이 외쳤다.

“선봉은 나를 따르라!”

와아아.........!

충의왕 구유크였다. 그가가 말채찍을 높이 들어 부족 전사들을 이끌고 쏜 살 같이 적진을 향해 돌입했다. 이어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가 질세라 부족 전사들을 이끌고 뛰쳐나가고, 휘발 부족장 홀가적(忽哥赤) 역시 공을 다투어 뛰쳐나갔다.

따라서 본영에는 이천(李薦)의 화기여단을 옹호하기 위한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 여단과, 전 요동도사(遼東都事) 엄일괴(嚴一魁) 여단 등 3개 여단만이 남아, 수시로 적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곧 양군사가 뒤엉키자 화기여단은 앞으로 2마장을 더 전진해 적의 성문 앞을 향해 맹폭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적의 가세를 막으려는 작전이었다. 이를 따라 두 개 여단도 이들을 엄호하며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르릉 쾅, 쾅!

펑, 펑, 펑.........!쾅, 쾅, 콰쾅........!

슉, 슉, 슈슉..........!

계속되는 포격에 성 문 앞이 시체로 산을 이루어 더 이상 사람이 빠져나올 틈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피는 흘러 강을 이루고 있었다. 실로 참혹한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거나 대략 추정컨대 벌써 적 6만이 성문을 빠져나온 듯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신립이 명했다.

“여단장 이천은 계속 성문을 주시하고 있다가 적이 나오면 무조건 포격으로 때려잡아라!”

“네, 장군님!”

“두 여단장은 나를 따라 적을 주살하러 갑시다!”

“네, 장군님!”

“출진!”

“출진!”

곧 전고 소리 드높게 울리 퍼지며 온갖 수기가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돌격!”

“돌격!”

두두두두..........!

두두두두..........!

아니래도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는 적의 기마 보군을 향해 또 2만 기병이 가세를 하니, 적은 횡으로 종으로 쪼개져 그야말로 자신이 어디 서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대항하라! 대항해! 조선 놈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전군을 지휘하는 이여백, 이여정 형제였다. 총 지휘관 이여송은 미처 성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찌 됐든 이들 형제의 지휘에도 불구하고 명군은 점차 패색이 짙어졌다. 아니 이미 승부는 나 있었다. 성을 나온 군사 6만 중 벌써 절반 가까이가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죽고 다치지 않으면 일찌감치 항복한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만큼 이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래도 이가 형제는 악을 써가며 독전을 거듭했고, 이에 반해 아군은 마치 이들 진형을 두부모 가르듯이 종으로 횡으로 찢어놓으며 한데 뭉치는 것을 방해했다. 모여 있어도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가 힘든 판에 그나마 사분오열되니, 적정은 이제 패전을 넘어, 얼마나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이 되었다.

이렇게 한바탕 살풀이가 진행되는 동안 갑자기 바람이 심상치 않아졌다. 바람의 강도가 세어지는 것 같더니 곧 돌풍으로 변했다. 곧 먼지구름 자욱이 일고 작은 자갈들이 하늘을 날아 피아가리지 않고 때리기 시작했다.

뒤엉켜 싸우다보니 이는 아군에도 불리한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하하하........! 이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컥.........!”

대소를 터트리며 무어라 떠들던 이여백이 어디서 날아온 편전에 목구멍을 관통당해 그대로 벌렁 말위에서 뒤로 넘어갔다.

히히힝.........!

뿐만 아니었다.

뒤이어 날아온 화살이 이여백이 타고 있는 전마에서 와서 마저 박히니, 놀란 전마가 이여백을 질질 끌고 내닫기 시작했다. 참혹한 죽음이었다.

먼지바람은 계속 불고 그 가운데에서도 조선군은 악착같이 명군을 충살해나갔다. 그러나 신립이 판단하기에 더 이상의 전투는 곤란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제 피아구분이 안되어 아군끼리 살상을 하게 생겼다.

“전투중지!”

“전투중지!”

“본대로 귀환하라!”

“귀환하라!”

“항복 병은 살려주어라!”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신립의 말을 복창하는 아군의 사기 양양한 가운데, 전투는 일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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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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