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9 회: 몽골과 요서 정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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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은 충순왕(忠順王) 소낭태길(素囊台吉)의 군사 5만은 하투(河套) 부근에 남겨두고, 나머지 17만 인마를 몰아 요서 쪽으로 내달았다.
하투야 점령해도 좋고 못해도 그만이었다. 그것은 저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황제 이진의 의도대로, 조선군 쪽에서 보면 단지 전단을 두 군데 열어, 명의 군사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으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신립은 17만 기병을 바람같이 휘몰아 노합하(老哈河)에 이르자, 제 군을 멈추고 장막을 개설해 제장들을 불러들였다. 비록 북쪽이지만 요서에 들어선 이쯤에서 앞으로의 작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말 없이 결코 크다 할 수 없는 장막 안을 가득 채운 제장들을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죽 훑어보는 신립이었다.
좌로부터 충의왕(忠義王)에 책봉된 구유크, 그 다음이 충렬왕(忠烈王)에 책봉된 엽혁부의 칭기야누(淸佳努), 그 다음이 충정왕(忠貞王)에 책봉된 합달부의 양기누(揚吉努), 그 다음으로 금왕(金王)에 책봉된 누루하치의 면면들이 보이고, 뒤로는 12 여단장들이 배석해 있었다.
“여러분들도 들어 알고 있겠지만 황제 폐하께서는 군을 출동시킨 김에 아예 만리장성 이동을 수중에 넣으라 하시었소. 이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고자 하니 좋은 안이 있는 분은 기탄없이 발언해 주시길 바라오.”
신립의 말에 금왕 누루하치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군을 움직이기 전에 적의 동향부터 알아야 대책이 가능할 것인즉 알고 계신 것이 있으면 차제에 들려주셨으면 하오.”
“옳으신 말씀이오. 최근까지 받은 정보를 종합해 말씀드리겠소.”
여기까지 말하고 갈색 수염을 한 번 쓰다듬은 신립이 생각을 가다듬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으로 빙 돌아 출병했지만 저들도 세작이 있는바, 우리의 움직임에 크게 당황한 저치들은 현재 북경 외곽에 주둔하고 있던 이여송의 군대를 산해관까지 진주시켜 우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소. 또한 요서의 전 군대에는 비상령을 하달하여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귀를 열어 놓고 시시각각 우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해서 말씀 드리오 만 속전속결을 원칙으로 하되, 전군을 한군데 모아 한 성, 한 성을 집중 타격할 것인지 아니면, 각각 성을 할당하여 각개 격파를 했으면 좋을지에 대한 의견 개진을 바라오.”
“흐흠........!”
잠시 침음하며 수염을 쓸던 누루하치가 입을 떼었다.
“제가 아는 정보로는 저들의 주요 거점인 광녕, 심양, 금주, 각각 1만의 군사가 상주해 있고, 영원성에 4만, 그 밖에 개원, 철령에 5천 군사, 그 밖의 작은 성에 2~3천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헌데 우리의 전력이 최소한 1만 군사 이상이오. 그러니 성 하나씩을 맡아 각개 격파하되, 가장 군사 수가 많은 조선군이 여차 즉하면, 산해관을 넘을 이여송의 군대를 견제해 주었으면 좋겠소.”
“흐흠.......!”
신립은 누루하치의 말에 침음성을 길게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일리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속셈에 너무 훤히 보여 과연 그대로 작전을 수행할 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번 전투에서도 조선은 저들이 공격해서 빼앗은 성은 그 권리를 인정해주어 그 성을 저들의 영토로 내주었다. 그러니 이에 재미가 들린 누루하치가 이번 기회에도 한 성이라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무튼 신립이 깊은 생각에 잠겨 계속 말이 없자 누루하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과인의 생각으로는 우리에게 광녕성과 심양성을 넘겨주시오. 그 이유를 말씀 드리겠소.”
이렇게 말하고 헛기침으로 목청까지 틔운 누루하치의 말이 이어졌다.
“광녕 총병으로 있는 장승음(張承蔭)에 대해 과인이 맺힌 것이 좀 많소이다. 그는 일체 만주인들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기로 한 조선과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가 시하(柴河), 범하(范河), 삼차얼(三岔兒) 등지에 새로 땅을 개간해, 얼마의 전지에서 수확물을 얻으려한 바, 이를 병사를 동원하여 강제로 우리 부족을 내쫓은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바가 있소. 차제에 그 한을 풀려함이 첫째고, 둘째 심양성 공략을 맡겨달라는 것은 심양성(審陽城)의 총병 이영방(李永芳)에 대해 과인이 많은 공을 들였소이다. 즉 여차즉시 우리에게 귀순하면 많은 혜택을 주기로 한바, 현재 얼마간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요. 해서 잘만 하면 큰 힘들이지 않고 함락시킬 수 있는 바, 신 장군의 양해를 바라는 바이오.”
“허허......... 그것 참.........!”
신립이 채 결단하지 못하고 헛웃음만 짓고 있는데 이번에는 칭기야누가 청을 했다.
“과인은 개원성(開原城)을 치고 싶소이다. 저들이 우리의 큰 교역 시장인 그곳을, 명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자꾸 훼방을 놓는 바람에 맺힌 것이 많소이다.”
“하면 우리에게는 철령(鐵嶺)을 맡겨주시오. 우리 부족의 활동영역에 들어와 있어, 손톱 밑의 가지처럼 성가신 것을, 이번 기회에 아예 뽑아 버리고 싶소이다.”
칭기야누에 이어 양기누까지 청을 하니 신립으로서는 더 꾸물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 좋은데 귀 왕들께서 한 점의 영토라도 치지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산해관의 이여송 군이나 막아야 한단 말이오? 하면 본 장으로서는 폐하를 뵐 면목이 없질 않소?”
신립의 말에 즉각 반박하는 누루하치였다.
“어찌 그런 생각만 하시오. 우리 세 왕이 빠져도 충의왕의 군대까지 13만 대병 아니오. 여기에 요동에 주둔하고 있는 4만 군사가 있질 않소? 권율 군단 말이오. 이 군사는 요동으로부터 밀고 나오고, 장군께서는 산해관에서 나오는 적을 일면 경계하고, 일면 요서에 주둔하고 있는 명군의 퇴로를 끊는다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하오. 하고 기회를 보아 새로 축조한 영원성을 공격한다든지, 아니면 금주성을 공격한다면 저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 과인의 생각으로는 신 장군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쉽게, 장성 밖의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장군의 의견은 어떻소?”
확실히 누루하치는 예사인물이 아니었다. 모든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고 있으면서, 자신의 욕심은 욕심대로 차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누루하치를 뚫어지게 한 번 바라본 신립이 입을 열었다.
“금왕의 작전 계획대로 하되, 가급적 빨리 계획된 성을 탈환하고, 탈환하는 대로 본대에 합류해 명군을 상대해 주셨으면 좋겠소.”
“그야 이를 말이오. 당연히 그래야지요.”
누루하치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호쾌하게 나오자 두 왕도 기쁜 낯으로 말했다.
“명에 따릅지요.”
명색은 왕이나 조선의 1개 여단 병력 밖에 출진시키지 않은 칭기야누와 양기누는 왕이랍시고 무게 잡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기왕이면 듣기 좋으라고 ‘명에 따른다.’는 말로 신립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모든 작전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대로 움직이되, 단 우리 요동 조선군이 움직일 짬을 주었다가, 일제히 공격하는 것으로 하죠. 본 장이 곧 전령을 띄우리라.”
"그렇게 합시다. 하되........ 위장을 위해 각자 자신들의 부족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하고, 조선군은 알아서 기만행위를 하는 것으로 합시다.”
“좋소!”
신립이 동의하는 것으로 모든 작전회의가 끝나고 세 왕이 돌아가고 군영 내에는 12여단장과 충의왕 구유크만 남았다.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고맙소이다. 전하!”
“허허허..........!그래도 과인이 조선의 부마일진데 이 기회에 생색 좀 내야하지 않겠소? 허허허......!”
“본 장이 알기로, 폐하께서는 전하를 내심 많이 예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이런 면모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허허허.........! 별 말씀을.........!”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다보니 어린 소년은 어느덧 가고, 벌써부터 애늙은이 웃음을 짓고 있는 충의왕 구유크였다.
* * *
그로부터 하루가 사흘이 지난 자금성 내.
내정(內庭)의 건청궁(建淸宮).
비록 자신의 침소인 건청궁이지만 모처럼 정무에 임한 주익균은 태감 유용(劉用)이 읽어준 장계를 듣고 매의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비록 상체는 더욱 불고, 하체는 불안정해 구부러진 허리로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지만, 정신만은 쇠락하지 않았는지, 눈을 번뜩이며 당부의 말을 하고 있었다.
“해서와 건주의 야만인들이 본거지로 귀환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나,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조선군의 동향에서 절대로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지금 난동을 부리고 있는 순의왕(順義王) 아니 이제 순의왕이라고 할 것도 없지. 그 망나니 자식마냥 하투로 합세를 하지 않더라도, 대동으로 치고 들어오면 곤란한 일. 즉시 파발을 띄워 더욱 엄중한 경계를 명하고, 이여송에게는 하시, 어느 곳으로라도 출진 채비를 게을리 말도록 하라. 하고 요서의 각 성에도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저들이 완전히 원대 복귀할 때까지는 하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 됨이야. 그러고 천진 방향이나 산동의 수군은 이상 없다더냐?”
“네, 폐하! 전혀 올라오는 장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의 수군은 출병하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폐하!”
“그나마 다행이군! 흐흠.........! 어쩌다가 이 대 명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자신의 하는 짓은 스스로 탓하지 않고, 무엇을 탓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주익균이었다. 정세는 예리하게 꿰뚫어 보면서도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지금도 전국적으로 광세사를 보내 재산 모으기에 탐닉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위인이었다.
* * *
산해관에서 이틀거리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신립 진중의 중군 군막으로 한 인물이 찾아들고 있었다.
와르카부의 부족장이자 3여단장인 낭패아한(浪孛兒罕)이 그였다. 신립 부대의 초창기 시절부터 오랜 세월 그와 함께 해온 이유로 누구보다도 신립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그였다.
“장군님!”
“무슨 일이냐?”
“낭패아한입니다.”
“들어와. 간일은?”
“따라붙는 간자들을 몰살 시켰습니다. 장군님!”
“수고했소. 술이라도 한 잔 할 텐가?”
“병영에서는 절대 술을 안마십니다. 장군님!”
“허허........! 그거, 좋은 자세군. 잠이 안 와서 말이야.”
“모든 책임을 두 어깨에 지시니 잠이 안 오실만도 하죠.”
“알아주니 고맙군. 이럴 때는 가볍게 한 잔 하고 자면 잠이 잘 온단 말씀이지.”
들으라는 듯 시금털털한 마유주를 가죽 부대 채 들어, 조금 삼킨 신립이 곧 안주로 자신의 손가락을 빨았다. 짭조롬 하니 소금기가 있어 안주가 되는 모양이었다.
“어째 권 군단장으로부터 전령이 안 오지?”
“오늘 밤이나 내일내로는 뭔 기별이 있질 않겠사옵니까?”
“내 마음이 너무 조급한 것인가? 최고사령관으로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야......”
“누구라도 답신이 안 오면 초조해지기 마련이죠. 곧 때가 되어가니 오겠죠, 뭐.”
“그래, 한 번 신나게 두들겨 보고 싶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신립이 아예 장막을 걷고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말(馬)로 둥글게 원진을 세운 군영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장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립의 시선이 문득 밤하늘로 향했다. 점점 깊어가는 봄밤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낮게 빛나고 있었다.
“저 별들도 근심이 있을까?”
“부처님 말씀에 겨자씨만한 근심이라도 없는 집을 찾으라 하니, 전혀 찾질 못했다 했습니다. 장군님! 이와 같이 저 별들도 나름의 근심을 안고, 하소연하고 싶어 반짝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허허.........! 자네 보기보다 머릿속에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이군.”
“요즘은 문득 문득 사는 것에 회의가 들어 불경을 강해달라고 하고 있사옵니다.”
“나름 좋은 일이야. 우리 조선은 불교를 크게 탄압하지만 아녀자들은 열심히 믿고 있고, 일부 사대부들조차도 이에 빠진 사람이 많아. 그렇지만 나는 거친 무부이다 보니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오로지 머릿속에는 오직 승리, 승리에 대한 열망만 있을 뿐이야.”
“사는 방식이 다 각자 다르니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름 자신의 직분에 충실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오랜 세월 본 장과 함께 생활을 같이 해서인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하고 있군.”
“허허........! 그러게 나 말입니다.”
“자네도 이만 돌아가시게. 나도 이제 눈을 붙여야겠어.”
이때 이쪽으로 급히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냐?”
“권율 장군으로부터 보낸 전령이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할까요?”
“그래. 어서 들여라.”
“네, 장군님!”
총총히 물러간 군사 하나가 한 명의 젊은 병사 하나를 데리고 장막 안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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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좋은 날 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