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8 회: 몽골과 요서 정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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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황제 이진이 더욱 해양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대형 전함 건조는 물론 군비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즈음 북방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즉 몽골에서는 삼 낭자의 남편이었던 차력극(撦力克)이 갑작스레 병사한 것이다.
이에 삼 낭자는 두 손자 중 복실토(卜失兎)를 다음 대 순의왕(順義王)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복실토는 이들이 지금 살고 있는 내몽고 일대가 아니라, 멀리 청해에 거주하고 있어, 잠시 다른 손자 소낭태길(素囊台吉)에게 순의왕 인장과 함께 병부를 맡겼다.
그리고 이 삼 낭자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원 역사보다는 오륙 년이 빠른 죽음으로, 그의 죽음에 많은 의문이 있었으나 그녀의 사인(死因)은 은폐되었다. 그리고 소낭태길과 복실토 간에, 몽골의 진정한 칸 자리를 놓고 권력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곧 멀리 청해에 있는 복실토가 돌아오기 전에 소낭태길(素囊台吉)은 전권을 쥐기 위해, 한 방편을 취하니 곧 조선으로의 청병(請兵)이었다. 명을 여러 번 쳐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티베트 일부까지 영유하고 있는 복실토에 비해, 힘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소낭태길의 청병이었던 것이다.
때는 1607년으로 정미(丁未)년이었다. 이진의 나이 어언 34세가 된 즈음이었다. 아무튼 이에 이진은 곧 중신회의를 열어 소낭태길을 충순왕(忠順王)으로 봉하고 대대적인 군 병력 파견을 결의하였다.
충순왕은 곧 죽은 삼낭자가 명에서 받은 충순부인(忠順夫人)을 연상시키는 칭호로, 병권과 공시(貢市) 즉 마 시장 무역을 장악했던 그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채택한 왕명이었던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명은 조선의 침략을 받아 천진과 영하 성을 할양하고, 야인들로부터 완전 손을 뗀 이래로, 이들과의 마 시장 무역도 폐쇄해 소낭태길로서는, 불만이 상당히 누적된 상태였다.
따라서 명보다는 한창 국운이 융성하고 있는 조선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진은 이외에도 북방의 구유크(貴由)에게도 칙서를 닦아 ‘충의왕(忠義王)’이라는 칭호를 하사하는 한편 일부의 군마를 내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해서여진의 엽혁부 칭기야누(淸佳努)와 합달부의 양기누(揚吉努)에게도 각각 왕위를 하사하고 병력을 내도록 종용하였다. 여기에 금왕(金王)이 된 누루하치에게도 병력 파병을 요청하니 부득불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또한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또 이진은 북방의 3개 군단 12만 명을 더 동원했다. 즉 군단장 신립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각각 1만 명을 지휘하는 12개 여단(旅團)을 동원한 것이다. 이들 12만 명 모두가 기병화 되어, 더 작게 편제를 쪼갤 필요성을 느껴 채택된 게 1만 명 정원의 여단 단위였다.
아무튼 각 여단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았다.
전 화기영장 이천(李薦)
전 기마영장 이빈(李薲)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
주셔리부의 부족장 추쿵거(楚孔格)
야류장 부족장 나하추(納哈出)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
휘발부 족장 홀가적(忽哥赤)
왜의 항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항왜적장 김충선(金忠善)
전 요동총병(遼東摠兵) 송응창(宋應唱)
전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
전 요동도사(遼東都事) 엄일괴(嚴一魁)
여기서 한 가지 특이 사항은 조선군 1만으로 편재된 이천의 화기영장 아니 이제 화기여단으로 개편된 이천 휘하의 제1 여단은, 모두 중화기로 편재되어 신립 휘하에 직속으로 배속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북방에도 완연한 봄이 온 4월 초.
황제 이진의 명에 의해 내몽고의 호화호특(呼和浩特)에는 제 군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먼저 충의왕(忠義王)에 책봉된 구유크의 1만 군사가 제일 먼저 도착을 했고, 이어 충렬왕(忠烈王)에 책봉된 엽혁부의 칭기야누(淸佳努)의 1만 군사, 충정왕(忠貞王)에 책봉된 합달부의 양기누(揚吉努)의 1만 군사, 그 다음으로 금왕(金王)에 책봉된 누루하치의 2만 군사, 끝으로 신립이 거느리는 12개 여단 12만 명, 총 17만의 대군이 집결하니, 드넓은 대초원이 전마의 울음소리로 떠나갈 듯 했고, 이들이 내갈긴 말똥만 모아도 웬만한 부족의 몇 십 년 치 땔감이 될 만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각각 예비전마 또한 1필씩 더 배정이 되었으니, 아마 그 보다도 더 오래 땔지도 몰랐다.
아무튼 여기에 또 충순왕(忠順王)으로 책봉된 소낭태길(素囊台吉)의 5만 군사가 더해지니, 청해(靑海)의 복실토(卜失兎)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보고받은 명의 천자 주익균이 벌벌 떨었다. 총 22만의 기병 전력이니, 당장 이 군세를 유럽으로 옮기면 유럽 점령도 가능한 군세였다. 유럽이야 아직 용병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인데, 그깟 용병에 이들을 비하랴.
아무튼 이의 보고를 받고 모처럼 주익균이 더욱 비만해지고 구부러진 몸으로 정사에 임하고 있는 가운데, 아군은 하염없이 청해의 복실토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즉각 결단을 내린 신립에 의해 이 대군세가 청해(靑海)로 출진하기에 이르렀다.
아니래도 탐마를 띄워 이들을 염탐하고 있던 복실토는 소낭태길의 전력에 말 등에서 오줌을 지리고 다시 회군한 시점이었다.
22만 대군이 지나가는 연변의 부족에게는 재앙이 따로 없었다. 이들이 내달리는 땅울림이 얼마나 큰지 임신한 가축은 모두 낙태를 했고, 부족민조차도 한동안 이명(耳鳴) 증세에 시달려야 했으니, 하물며 가축이랴.
놀란 가축들이 하혈을 하고 기가 허한 것들은 집단 폐사하기도 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22만 대군은 무작정 내달렸다. 징기스칸의 대장정 때처럼 목이 마르면 말의 목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빨았고, 배가 고프면 군량미로 보급된, 더욱 발전된 전투식량인 보리건빵을 우적우적 씹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측은 즉석에서 예비전마를 잡아 해결을 하며 이들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서로 서쪽으로 내달렸다. 그러길 5일 이들이 저 멀리 기련산을 휘돌아 나가려하는 즈음, 일단의 영접사자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량(大梁)에서였다.
곧 행군이 멈추어지고 임시 장막이 쳐졌다.
충순왕을 제치고 제 군의 최고통수권자가 된 신립이 중군 막사에서 이들을 맞았다.
“무슨 일이냐?”
사자 이십인 중 단 둘만 안내된 자리에서, 중년의 전사 하나가 가지고 온 자루를 신립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 안에 복실토의 목이 들어 있나이다.”
“무슨 소리냐?”
“그는 우리의 재앙덩어리입니다. 우리의 항복을 받아주소서. 장군!”
“허허........! 이것 너무 김빠지는 일 아니냐?”
기껏 이 머나먼 곳까지 허위허위 달려왔더니, 웬 놈이 지도자를 암살해 목을 받치니 일순 허탈감이 몰려온 신립이었다.
“너는 누구냐? 그리고 이 목은 어떻게 얻게 된 것이냐?”
“소인은 저력토(著力兎)라 하오며 부족장의 하나였습니다만, 칸의 승계문제로 우리 부족이 전부 박살나게 생긴 지금, 그를 그냥 칸으로 받들 수는 없었사옵니다.”
“허허.........! 문제가 되는 인물을 죽여 부족의 재앙을 막아보겠다?”
“의롭지 못한 일이지만 부족이 멸족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사옵니다. 장군님!”
“현명한 선택이다 만은 의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구나!”
“면목 없사옵니다. 장군님!”
“잠시 물러가 있거라. 상의 좀 해야겠다.”
저력토를 물리친 신립은 곧 각 왕들을 불러들였다.
이에 따라 충순, 충의, 충렬, 충정, 금왕이 몰려들어왔다.
“어찌 하면 좋겠소?”
모든 사정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구하니, 모두 허탈한 표정 속에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우리가 결정하기 보다는 황제 폐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소.”
금왕 누루하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신립이 말했다.
“본 장 또한 동감이오. 바로 파발을 띄우겠소. 이의 없지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신립은 앉은 자리에서 급히 장계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제 왕들이 물러가고, 신립은 벌써 비록 총총히 별이 빛나는 밤이건만, 속도가 가장 빠른 전마 열두 필을 엄선해, 세 명의 전령을 한양으로 급파했다.
일주 일 후.
이를 받아본 이진 역시 어이없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비답을 안 내릴 수도 없었다.
<전마 5천 필을 받치는 조건으로 이들의 항복을 허락한다. 단 거부 시에는 이들 부족을 멸절시켜라. 순응하면 그에게 충장왕(忠壯王)의 시호를 내릴 것이니라. 하고 충순은 하투(河套)를 점령하여 유사시의 교두보로 삼을 것이며, 나머지 군은 합세하여 차제에 만리장성의 전 요서(遼西)를 수복하라!>
칼을 뽑은 김에 무라도 베어야겠다는 이진의 명에 따라 피해를 본 것은 엉뚱하게도 명나라였다. 하투라 불리는 현 어얼둬쓰(鄂爾多斯) 역시 마귀가 수복한 명나라 영토였기 때문이었다.
鄂爾多斯(악이다사)라 표현되는 북쪽으로, 흐르는 황하(黃河) 강이 음산(陰山)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만곡(彎曲)하는 부분과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로, 사막, 초원, 염호(鹽湖)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르도스란 이름으로도 불리던 곳으로, 15세기 중엽 이후 이곳이 내몽골 여러 부(部)의 하나인 오르도스부족의 목축지를 이룬 데서 연유한 것으로서, 현재 어얼둬쓰(鄂爾多斯)라고 표기하나, 본래 중국에서는 BC 3세기 이래 하남(河南), 후에는 하투(河套), 투중(套中) 등으로 불렀으며, 몽골 유목민과의 교섭 또는 공방(攻防)의 요지로 삼아 왔던 곳이다.
몽골부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영토였던 이곳을 제일 먼저 침략하여 교두보로 삼거나 침략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차선책으로 침략한 것이 산서의 대동(大同)이었다. 그런 요충이기에 대군이 동원된 이 시점에 양동 책으로 이곳을 점령해 두라는 이진의 지시였다.
그 외에도 이진은 혹시 모를 명나라와의 전면전에 대비해 수군을 포함한 전군에 비상령을 하달해 여차하면 즉시 명나라 본토로 쳐들어갈 태세를 갖추었다.
아무튼 대 조선제국 황제 이진의 명이 곧 신립의 중군 군막에 도착하니, 신립은 저력토를 불려 들여 그의 의사를 물었다.
“대 조선제국 황제 폐하의 명인즉 전마 5천 필을 바치면 그대들의 항복을 용인한다. 또한 그대를 충장왕(忠壯王)에 봉해, 그대의 지위를 뒷받침해주겠다. 아니면 전 부족을 멸족시키라는 엄명이 계셨다. 어떻게 하겠느냐? 택일하라!”
신립의 준엄한 말에 저력토가 벌벌 떨며 말했다.
“재산이야 다시 일구면 되는 것, 부족 자체가 사라지는 것에 어찌 비할 수 있겠사옵니까?”
“하하하.........! 현명한 선택이다. 곧 한 달간의 기한을 줄 테니 전마 5천 필을 받치도록 해라.”
“기한이 너무 짧사옵니다. 장군님! 싫어서가 아니라 부족 전체에 징발하는 시간도 있사옵고, 또 최소 요동까지는 저희들이 갖다 바쳐야 할 것인즉, 두 달 간만 말미를 주시옵소서. 장군님!”
“좋다! 허락한다. 여기 폐하께서 내린 칙서와 충장왕의 어보(御寶)가 있으니, 가져가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동쪽으로 세 번을 절하는 저력토였다.
이로써 조선의 힘이 서로는 청해(靑海)에서 일부 티베트까지 미치게 되었으니, 대 조선의 강역이 어디까지 미칠지 신립으로써도 궁금한바 컸다. 그러나 일단은 폐하의 명을 받드는 것이 급선무.
신립은 곧 회군을 명하고 제일 먼저 말을 달려 나갔다. 이에 놀란 제 부하들이 다투어 채찍질을 가하니 곧 북방이 몸살을 앓는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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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즐겁고 유쾌한 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