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27화 (127/210)

< -- 127 회: 대항해시대의 서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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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장계를 받은 황제 이진은 여러모로 생각을 했지만 브루나이 왕국을 완전 지배한다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 넓은 땅에 인구 희박한데다 말단관리들까지 파견하여 지배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들의 저항도 저항이지만 말과 글 모두 다르니 완전 지배는 쉽지 않은 일이라 판단하고 그들의 왕을 내세워 대리통치를 하면서 조선의 뜻을 반영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늙은 왕은 폐위시키고 이제 12살의 어린 손자를 내세워 대리 통치를 하기로 하고 이를 그대로 비답(批答)에 반영했다.

또 이번에 내린 비답에는 파견된 제 군사들의 정주(定住)가 끝나는 대로 새로운 점령지마다 군선 건조에 총력을 기울이라 지시했다. 물론 선박 건조 기술자 등의 후속조치는 이어지겠지만 열대의 풍부한 산림을 이용하여 해상제국의 꿈을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당연히 그 전에 파견된 군사들이 완전 정착하여 살 수 있는 제 조건 즉 군량미를 지원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전마를 지원하여 기동력을 높이며, 가족들을 이주시키는 등, 모든 조건을 먼저 갖추어 주도록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황제 이진의 지시대로 모든 것을 이행한 이순신은 다시 정문부의 군사 2만을 데리고 호주로 출발해야 했다.

군데군데 떠있는 여러 섬에 기항하며 이순신이 이끄는 대 전단이 20여 일만에 도착한 곳은 호주의 최북단 이었다. 즉 파푸아뉴기니와 서로 마주보이는 육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곳으로부터 쭉 동쪽 해안을 타고 내려가며 원주민을 정복해 완전 조선제국의 영토로 편입을 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이 섬에는 원주민인 애버리진을 비롯해 약 100만 명의 원주민들이 300여 개의 부족국가를 형성하고, 적어도 250개의 언어 및 700여 개의 방언을 쓰며 살고 있었다.

각자 고유한 토템을 갖고 있는 각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 궁극적으로는 대 조선제국에 이 땅을 편입시키려 하는 것이다. 아무튼 군량미와 함께 2만의 정문부 사단을 육상에 상륙시킨 이순신 전단은, 동쪽 해안을 따라 한반도의 35배에 이르는 이 섬을 한 바퀴 돌기위해 일주에 나섰다.

이순신 전단이 이 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파악을 위해 일주를 하고 있는 동안, 정문부 사단은 약 1만의 이 땅의 원주민과 조우하였다. 이 땅을 살피러 온 것이라면 무슨 핑계를 대고라도 싸움을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 땅을 정복하러 온 바에야, 이들과 마찰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문부는 곧 전단을 열었다.

여자고 남자고 위는 다 벌거벗었고, 단지 밑이나 나뭇잎 등으로 가린 차림에 얼굴은 온통 붉고 하얀 칠을 해 상대를 겁주려하나, 같은 종족이면 모를까 애초부터 이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이야기였다.

조선과 한족 병사들로 이루어진 이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을 때, 이들은 기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돌도끼와 조악한 화살 그대도 부족의 우두머리쯤 되는지 청동제 창을 든 자들까지 일제히 몰려오나, 이들에게는 눈 하나 깜빡할 일이 아니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퍼엉 펑 펑 펑.........!

쾅, 쾅, 콰쾅........!

콰르르 쾅, 쾅........!

선두 열에 선 화기영의 병사들이 일제히 온갖 총통류를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신기전, 여기에 비격진천뢰까지 폭사시키니, 백주대낮에 천둥과 벼락불에 놀란 치들이, 독수리의 공습에 놀란 갈 까마귀 흩어지듯, 일제히 귀를 감싸 쥐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이어 조총마저 난사하니 이들은 숲에 숨긴 것도 부족해 더욱 깊숙이 몸을 은신하려 발버둥 칠뿐이었다.

이들이 이 대륙에 산 이래 그동안 한 번도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이 상륙한 적이 없었던 탓에 이도 놀랄 일인데다, 그들의 무장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무기들뿐이니, 이들이 놀라고 당황해 허둥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 땅을 저 무뢰한들에게 내줄 수 없다고 부족장이 앞장서서 창대를 휘두르며 전진을 명하나, 고개만 나무 뒤에서 빼꼼 내밀어 전방을 살필 뿐, 전혀 미동조차 않는 부족민들이었다.

부족장 혼자 목이 쉬어갈 때 그래도 용사라고 몇몇 젊은이들이 숲속에서 튀어나와 일제히 돌진하나, 그들이 조총에 맞아 거꾸러지는 것은 숨 한 번 쉴 시간도 걸리지 않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렇게 되니 용전을 외치던 부족장마저 다리가 후들거려 맨땅에 주저앉고 일순 사위는 정적만 내려앉았다.

“항복하는 자는 모두 살려줄 것이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떠들던 정문부가 끝내는 허탈한 웃음을 매달고 입을 닫았다. 저들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말을 통역할 역관은 더 더군다나 없었다.

“의사소통이 제일 문제로구나........!”

난관에 부딪친 정문부가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부하들을 시켜 주저앉아 있는 부족장을 잡아오도록 했다.

부족장이 허망한 몸짓으로 저항하다 끝내 생금되려는 순간, 이를 응원하는 독 묻은 화살 몇 발이 날아왔으나, 그 마저 아군의 나무 방패에 막히고 이들은 부족장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숲속으로 더욱 몸을 숨겼다.

그로부터 사흘이 흘렀다. 그동안 정문부 군은 천막을 치고 급수원을 찾는 등 정주할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잡혀온 부족장에게는 식사 한 끼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제대로 순치시키기 위함이었다.

사흘을 굶긴 오늘 그에게 밥을 주니, 숟가락과 젓가락은 전혀 사용도 않고 맨손으로 입에 밥을 퍼 넣기 시작하는데, 반은 흘리고 반은 입으로 들어갔다. 반찬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곧 그가 세 그릇의 밥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꺼억 꺽 거릴 때, ‘항복을 하면 이렇게 모두 살려준다.’고 말하나, 통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정문부는 집중적으로 말과 언문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 땅에 최초의 조선말과 언문을 배우게 되는 수혜자가 된 그는, 제대로 그날 분량을 익히지 못하면 밥을 굶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이렇게 부족마다 이제 몇 사람씩 말과 글을 가르쳐가며 정문부 군은 이 땅의 외연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름이 자나자 벌써 다섯 부족의 인간들이 이들에게 잡혀와 말과 글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지만 부족민들에게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원시 그 상태로 방만하게 놔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자 정문부는 비로소 처음 잡혀온 부족장에게 항복의 의미를 알려주고 배불리 먹여준다는 말의 의미도 전달했다.

그리고 순순히 항복을 하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공포도 가르쳐주었다. 그 효과는 그 부족의 삼분의 일만 조선 군 편에 가담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벌써 그를 경원시 해 새 부족장의 지시에 따라 투쟁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정문부는 곧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단행했다. 곧 그 부족에 대한 일체 소탕령을 내려 반항하는 자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잔인하게 아이, 늙은이, 젊은이 가릴 것 없이 처참하게 전부 살해했다.

그 효과는 지대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조선군의 비호아래 들기를 자청하는 부족민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문부는 곧 그들에게 채집과 사냥 어로 생활로 이어가던 이들에게 농경과 목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문부는 곧 이들에게 원시농경이 아닌 진짜 농업을 가르친 것이다. 한곳에 정착해 씨 뿌려 곡식을 거두고 가축을 기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어로 또한 영위해 생계를 돕도록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사냥도 해, 이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때로 말 잘 듣는 부족은 약간이나마 군량미도 포상으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젊은 전사 일부를 받아 들여 조선군의 일부로 삼았다. 이제 그들에게는 조악한 무기가 아닌 철제 창과 방패 그리고 어떤 자들에게는 활과 화살이 들려졌다. 그리고 그들을 앞세운 남하를 계속했다. 동쪽 해안을 따라 계속해서 원주민을 정복해가며 남하를 거듭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세월이 흘러 이순신 전단은 이들에게 군량미와 가족은 물론 전마 1만 필마저 공급해주었다. 비로소 조선인 최초의 정착마을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개 영(營)이 머무를 수 있는 정착촌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곧 그곳이 호주 현지의 쿡 타운(COOK TOWN)으로 훗날 이 땅의 개척자 이름을 따서 ‘정문부 마을’로 불리는 곳이었다.

기동력까지 얻게 된 정문부 사단의 진격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년 후 정문부 사단은 기어코 호주의 동남단 현 시드니까지 내려왔다. 벌써 이쯤 되자 절반이 넘는 7개 영(營)이 떨어져 나가고 화기영까지 이제 4개 영만 남았다.

그렇지만 원주민 전사들은 지속적으로 불어 5만 대군이 되었다. 보아하니 지리적 여건이 감영으로 삼기에 가장 좋았다. 정문부는 이곳에 호주도의 감영을 세우기로 하고, 전의 정착촌에 머물러 있는 관찰사 김우옹까지 모셔오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도 이곳에 상주할 채비를 갖추어나갔다. 또한 일부 군사는 계속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더 흘러 6개월이 흐르자, 몰려드는 부족들과 함께 이 땅에 더 넓은 농경지와 함께 목초지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시드니 서쪽에 급사면을 맞대고 솟아있는 동부 고지의 일부를 이루는 산들이, 이 땅의 전면적인 개발을 저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정문부는 이 산 뒤를 개척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얼마 뒤에 이 산들을 넘어가는 길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산지 서쪽으로 농사와 목축에 적합한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도 소수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만 살기에는 턱 없이 넓은 땅이었다.

이곳도 곧 개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동안 다른 군대는 남으로, 남으로 더 내려가 이제 멜버른까지 개척이 되었다. 그곳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 생겼다. 그렇게 2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 땅의 개발에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시드니와 멜버른 쪽에서 동시에 금광이 발견된 것이다. 즉 개척을 계속해나간 결과 시드니북서쪽 약 240km 떨어진 매콰리강(江) 상류에서 금광이 발견 된 것이다. 또 멜버른 북서쪽 약 100km 지점에서도 역시 금광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현제명으로 배서스트(Bathurst)와 밸러랫(Ballarat) 이라는 곳이었다. 그러자 정문부는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정기 왕복선에 이를 알려주고 이들의 기항지마다 대단위 금광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을 내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금을 찾아 동남아에서 떼 지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는 돈 냄새 잘 맡는 중국 본토인은 물론 일부의 양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황제 이진의 명으로 황호주의(黃濠主義)를 표방하는 이 땅에 백인은 아예 어리댈 수도 없었다.

필요한 광산기술자라든가 여하튼 기술이 있는 자는 억류되어 이들의 노예가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 들은 오는 족족 잡혀 바다에 수장되었다. 오랜 기간 호주가 백인들만 받아들여, 백인의 나라를 꿈꾼데 대한 이진의 보복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현 필리핀 루손 섬의 마닐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루손 섬 총독 돈 로드리고의 보고를 접한 에스파냐 국왕은 아니래도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한 것을 복수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동방의 대국과 또 하나의 다툼을 벌인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고, 조선제국의 조건을 다 들어주는 대신 양국 간에 외교 관계의 수립을 원했다.

이에 황제 이진이 동의하니 유럽 국가 중에서는 에스파냐가 처음으로 대 조선제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이진의 제안에 의해 두 나라에는 처음으로 상주 외교관이 거주하게 되니, 먼 먼 이국 에스파냐에는 명 외교관 신충일이 조선 최초의 외교관이 되어 파견되었다.

또 한양에는 루손 총독 돈 로드리고가 파견되어 상주하게 되었고, 양군은 사이좋게 조선상단 위주의 대 선단을 보호하며 마닐라, 조선, 아카풀코로 이어지는 교역노선을 보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은 비단, 도자기, 자개류, 면포, 유기그릇, 문방구류 등을 주로 이들 나라에 수출되게 되었고, 또 이들에게서는 초석과 구리, 유황 등 조선이 부족한 물자가 수입되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은으로 이를 받았다. 따라서 조선으로 이들의 은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마닐라에서는 조선군 3만에 의해 해안의 요새가 새롭게 축조된 것은 물론 이들의 대규모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또 만(灣) 안에서는 대규모 군선의 건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내륙 개척으로 인한 원주민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명나라 본토의 이주자들까지 한 몫 거들고 있었다. 이들은 납치한 것이 아니라 은밀히 모집한 것이다. 그 대가는 큰 물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을 이들에게 지불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 때문에 물가오름세를 걱정한 이진이 이들에게 은을 풀기로 한 것이다.

이를 조선에서 건조하면 더욱 좋지만 그동안 조선에서는 많은 전함을 건조한 바, 많은 목재가 소비되어, 그보다는 이곳의 풍부한 열대림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비용으로 건조할 수 있기 때문에 택한 조치였다.

이런 조치는 비단 마닐라뿐만 아니라 보르네오 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에 조선은 더욱 해양강국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진은 이렇게 대형 전함만 건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내에서 각종 포는 물론 화약 등 군비 확충에도 열을 올려 이들의 무장을 뒷받침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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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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