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2 회: 잠행(潛行) -- >
6
식사가 끝났다.
그러자 바로 차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것이 커피였다.
고산도 즉 대만에서 재배한 커피와 해남도에서 재배한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이 함께 들어와, 조선의 궁중 식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전생부터 커피를 즐겼던 이진 때문에 이제 함께 커피를 즐기게 된 제 비들이 구수하다는 듯 맛있게 마시는데 반해, 허 황후는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는지 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맛인지 원.........!”
“그러면 다른 차를 들지 그러오?”
“아니옵니다. 황상!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마찬가지옵니다. 황상!”
“허허.........!”
겉으로는 헛웃음을 짓고 있지만 내심 ‘충주 촌년!’이라고 욕을 하고 있는 이진이었다. 다른 비들은 모두 한양 출신이라 그래도 잘 적응하는지 몰라도, 유독 커피에 잘 적응을 못하는 허 황후였다.
어쨌거나 커피를 다 마신 이진이 제 궁인들을 물리치고, 다섯 후비를 보고 말했다.
“짐의 말대로 행한 사람은 자진 신고하기 요.”
이진의 말에 야릇하게 눈을 빛내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나 쉽게 손드는 여인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신립의 딸 신 귀비가 자진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어머머........!”
황후 허 씨가 새된 비명을 터트리거나 말거나 신 귀비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는데 반해, 민망하다는 듯이 구사맹의 딸 구 귀비의 고개만 더욱 깊숙이 자신의 가슴 쪽으로 묻었다.
“다른 사람은 더 없는 거요?”
이진의 물음에 서로를 둘러보나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제 여인들이었다.
“이러면 재미가 덜 하지. 오늘은 아무도 돌아갈 수 없음이야.”
이진의 표정이 사내답지 않게 뾰루퉁해 말하자 이의를 재기하는 여인이 있었다. 곧 신 귀비였다.
“황상! 그것은 반칙이옵니다. 저 혼자 승은을 입을 기회가 없어지는 것 아니옵니까?”
“그렇긴 한데......... 성생활에도 활력소랄까, 뭔가 새로운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렇다고 짐이 매일 술의 연못과 고기의 숲에 사는(酒池肉林) 사람도 아니니, 때로 일탈도 있어야, 그나마 궁인들을 덜 들이지 않겠소? 다들 어떻게 생각하오?”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황상! 황제치고는 가까이 하는 궁인들이 적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맞장구를 치는 이 허균의 누이인 허 귀비였다. 생이 시들한 듯, 달관한 듯 아니 권태롭기까지 보였던 허 귀비이지만, 황자를 낳고는 나름 삶에 재미를 붙인 듯한 요즈음의 모습이었다.
“하하하........! 허 귀비의 말을 모두 들었지?”
“황상! 본 황후는 체면 좀 세워주면 안 되시나요?”
허 황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말했다.
“아무래도 황후는 격이 좀 다르니 달리 생각해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짐과 함께 오늘밤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오.”
이진의 말에 남몰래 샐쭉한 표정을 짓는 신 귀비였다.
“그럼, 황상! 편안한 밤 보내세요!”
허락을 득한 허 황후가 누가 말리기라도 할까봐 그러는지, 이진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자마자, 허겁지겁 강녕전을 빠져나갔다.
“게 아무도 없느냐?”
“네이~, 황상!”
“주안상이 왜 이리 늦는지 알아보도록 해라.”
“저기 오고 있사옵니다. 곧 등대할 것이옵니다. 황상!”
“알았다.”
새끼 내관의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침전 문이 열리며, 계속해서 상들이 들어왔다. 제법 풍성하게 안주를 장만했는지 두 개의 교자상이 놓였다. 이제 하도 관행이 되어 한 상에 어울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제 귀비들이었다.
모든 진열이 끝나고 궁인들이 나가자 이진은 스스로 잔을 쳐 제 귀비들에게 한잔씩 돌리며 말했다.
“술이라도 좀 취해야 부끄러움을 잊을 터. 주저 말고 한잔씩 들도록 하오. 안 마시는 사람은 제일 먼저 벌칙으로 벗게 될 줄 아오.”
이진의 말에 따라 너도 나도 잔을 집어가는 제 귀비들이었다. 이진 또한 막내 조 귀비가 따른 술을 서슴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술이라는 것이 좀 배가 고픈 듯해야 맛있는데 말이야........”
“그렇사옵니다. 황상!”
뭔 술맛을 안다고 허 귀비가 참견을 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해서 가벼운 미소를 지은 이진이 가볍게 입을 벌리고 있자, 구 귀비가 재빨리 안주 한 첨을 이진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술이 대여섯 순배 돌자 발그레 달아올라, 보기 좋은 얼굴의 제 귀비들이었다. 그러나 유독 허 귀비만은 창백한 안색 그대로였다. 술이 센 것인지 아니면 원래 태생이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봄밤은 제법 길다.
강제로 옷을 벗기는 것은 재미가 덜한 일.
그래서 이진은 게임을 하기로 했다.
매일 정사로 지쳐가는 요즈음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각 비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달기마냥 주지육림에 포락의 형벌을 즐기는 것도 아닌 다음에라야.
이진이 게임을 설명했다.
“일에서부터 숫자를 세되 한 사람이 3이상의 숫자는 셀 수 없소. 그렇게 해서 30이라는 숫자를 센 사람이 옷가지 하나씩을 벗는 놀이를 해봅시다. 자 시작. 일........”
이를 받아 우측에 앉아 있던 허 귀비가 ‘2, 3, 4’를 연달아 세었다. 다음 구 귀비가 ‘4, 5’ 다음 신 귀비가 ‘5, 6, 7’, 끝으로 조 귀비가 ‘8, 9, 10’을 연달아 세었다. 다시 이진이 ‘11, 12’ 이런 식으로 세어나가다 보니, 신 귀비 차례가 되었는데, 숫자는 이제 26까지 세어져 있었다.
야릇한 웃음을 머금은 신 귀비가 슬쩍 조 귀비를 곁눈질하더니 ‘27, 28, 29’를 연달아 세었다. 이에 할 수 없이 30을 외치게 된 조 귀비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윗저고리 하나를 벗었다.
이렇게 게임이 계속 되었는데 세여인들 모두가 조 귀비를 집중 공략해 이제는 고운 비단으로 만든 가슴 가리개와 고의만 남게 되었다. 다른 여인들도 중간 중간에 하나씩은 벌칙을 받아 한두 가지는 벗고 있는 상태였다.
비단 가슴 가리개는 이진이 제 여인들에게 현대의 브레지어를 연상해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아무튼 게임은 이어졌고, 모든 여인들의 집중 공략 속에 이번에도 조 귀비가 또 걸렸다. 이제 비단 젖가슴 가리개와 고의 한 장만 남은 상태인 조 귀비가 잠시 입술을 깨물며 주저하더니, 돌연 가슴가리개가 아닌 고의를 벗어버렸다.
“어머머........!”
“어머머........!”
제 귀비들이 놀라 뒤로 물러서는 가운데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비부를 가리는 조 귀비였다. 이진은 알고 있었다. 조 귀비는 가슴이 그녀의 콤플렉스라는 것을. 그래서 다른 여인과 달리 마냥 놀라거나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진이 말했다.
“조 귀비만 집중 공격하다니........ 너무 심하다. 조 귀비는 고의를 입어라. 대신 짐이 하나를 벗으마!”
“황상! 지금 조 귀비만 총애하는 것이 맞죠?”
신 귀비의 항변에 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맞다. 그렇지만 너무 심하지 않느냐? 조 귀비만 집중 공격하다니.”
“평소 황상의 총애를 너무 입은데 대한 보복이죠.”
신 귀비가 입을 삐죽빼죽하며 말했다.
“너희들이 남자라면 너희들도 그랬을 것이다. 너희들과는 신체 구조가 약간 달라. 그러니 그런 줄 알고. 음........! 가장 활달한 신 귀비가 조 귀비 차림으로 짐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겠는가?”
“정녕 황상이 원하신다면 못 할 것도 없죠.”
“하하하........! 역시 신 귀비답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네, 황상!”
이렇게 해서 이제 거의 전라가 된 여인이 두 명으로 늘었다.
가늘어진 눈으로 두 여인을 훑던 이진이 허, 구 귀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두 귀비도 몸매 자랑 좀 해볼 테 오?”
“아, 아니옵니다. 황상!”
허 귀비가 얼른 뒤로 물러나 앉는데 반해, 구 귀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만 저었다.
“좋다. 우리 셋이 우선 운우지락을 나눌 테니, 두 귀비도 회가 동하면 함께 덤벼도 좋다. 어떠냐?”
“네, 황상!”
허 귀비가 웃으며 바로 승낙하는 반면에 구 귀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고개만 저었다.
“저, 저런.........!”
구 귀비를 보고 가볍게 혀를 차던 이진이 곧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자, 시작해볼까?”
“황상, 저.........!”
이진의 말에 정작 공연을 펼쳐야할 조 귀비가 주저하며 말했다.
“몸이 굳어 어렵겠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처음에는 다 그렇겠지. 그러나 짐이 애무를 하면 좀 풀릴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짐의 말에만 따르도록 해라.”
“네, 황상!”
곧장 대답은 하나 무언가 꺼려지는지 여전히 표정이 펴지지 않는 조 귀비였다. 그렇기는 신 귀비도 마찬가지였다. 활달하나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운우지정을 나눈다는 것이 영 께름칙한지 표정이 밝지는 못했다.
“하하하.........!”
두 여인의 표정을 본 이진이 대소를 터트리더니 말했다.
“모든 것이 처음에만 어려운 법이다. 이것도 해보다보면 나름 다른 맛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주저 말고 모든 것을 짐에게 맡겨라.”
“네, 황상!”
신 귀비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하는 반면 여전히 조 귀비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조 귀비 곁으로 다가간 이진이 지그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덥석 안아들었다.
35~6kg 정도 나갈까, 다른 여인에 비하면 새털 같이 가벼운 조 귀비를 안은 이진이 금침 위로 향하며 속삭였다.
“너무 걱정마라.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네, 황상!”
이진의 다정한 말에 비로소 약간 표정이 펴지는 조 귀비였다.
그런 조 귀비를 향해 싱긋 웃은 이진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조 귀비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졌다. 여전히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녀가 새삼 사랑스러워 이제는 그녀의 목에다 가볍게 키스를 하는 이진이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밖에는 다투어 외롭다고 소쩍새 우는 밤이건만, 궐내는 춘풍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 앙다물었던 입술이 황상의 설육을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조 귀비는 이진의 목을 꼭 끌어안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입에서는 연신 단내가 나고 코에는 자신도 모르는 비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가볍게 떼어놓은 이진이 이제는 구 귀비에게 자신의 하물을 애무하도록 했다. 이에 멈칫하던 신 귀비가, 돌연 무슨 까닭인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변해 이진의 하체 쪽으로 꿇어앉았다.
그리고 조 귀비는 어느새 누운 이진의 머리맡에 앉아 하체를 맡기고, 거의 감은 눈으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 * *
밤은 밤대로 즐겁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여인들의 정사로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 이진은 오늘도 여일하게 정무에 임하고 있었다. 조회가 끝난 시간. 커피 두 잔을 놓고 광해와 이진이 편전에 마주앉아 있었다.
“그래, 루손 섬의 상황이 어떠하더냐?”
“마닐라만 에스파냐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데, 그곳도 에스파냐인은 물론 중국의 화교 또 원주민, 여기에 타 민족이 얽혀 한 도시를 이루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들의 해군력은 우리의 일부 수군전력만 출진해도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점령할 것으로 사료되어진다는 보고입니다. 황상!”
“그런 두리뭉실한 보고가 어디 있나? 그들의 병력이 얼마? 군선이 몇 척? 대포가 몇 문? 이런 식으로 보고를 해야 짐이 판단하지, 저들이 무슨 아군 전력을 자세히 안다고........”
“네, 그 추측은 그들이 아니라 신이 했사온즉........ 적 병력 5천에 전함이 백 여척, 그리고 상선이 200여 척 정도, 대포는 자세하게 나와 있질 않사옵니다. 황상!”
“흐흠.........!”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돌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짐이 보기에도 일부 아군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곳을 점령해 아국 영토로 삼는 한편, 여전히 해상 교통의 요처로 삼아 더욱 교역에 힘쓰는 거야.”
“그렇게 되면 혹시 저들의 무역선이 이제는 영영 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함께 번영을 누리자고 해야지. 그들에게 어떠한 재산상의 손실도 끼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고, 오히려 가금씩 지금도 그들이 왜구들에게 노략질을 당하는 모양인데, 우리의 수군력으로 보호를 해준다고 하면 저들도 아마 좋아할 거야.”
“저들도 일부 해군력이 상선을 보호하고 다닌다고 하옵니다만........?”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니까, 왜구에게 당하겠지. 우리는 제 선단을 모아 대규모 무역을 행하는 것은 물론, 해군력 또 큰 규모로 증파해 그깟 왜구들에게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될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황상!”
“짐이 곧 출전 준비를 시킬 것이니까, 보다 세밀한 정보를 파악하도록 해.”
“네, 황상!”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비로소 광해는 커피 잔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차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진의 잔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형제는 커피를 맛있게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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