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1 회: 잠행(潛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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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뜰을 거닐던 이진이 다시 용상에 앉자 바로 자세를 가다듬는 제 대신들이었다. 그런 대신들을 훑어보던 이진의 시선이 형판 유영경에게 향하며 말했다.
“짐이 그간 누누이 얘기했건만 아직도 전근대적인 판결이라니......... 이것이 도대체 언제 시정이 될 것이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강제 자복을 강요하고, 이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 자의 주리를 당장 틀어라!’는 식의 고문으로 일관하는 악습에서 벗어날 때가 아닌가 하오. 보다 과학적인 수사, 여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언제까지 횡행해야 하오? 정 이 악습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짐으로써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소. 즉 지방 수령들에게 사법권을 박탈하여 별도의 재판기관을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지요. 정녕 제 지방관들은 이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오?”
이진의 질책에 고개를 떨어뜨렸던 형판 유영경이 간신히 고개 들어 답변을 했다.
“황상의 지엄한 명으로 점차 나아지고는 있사오나 아직도 그런 폐단이 있는 것도 사실이옵니다. 더욱 발분하여 시정토록 노력하겠사옵니다. 황상!”
유영경(柳永慶)의 호는 춘호(春湖)이다. 1572년 춘당대문과(春塘大文科)에 급제하여 정언 등 여러 청환직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사간으로서 초유어사(招諭御史)가 되어 많은 토병(土兵)을 모집하고 호조참의에 올랐다.
선조가 죽기 전에 영창대군을 부탁한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 이이첨(李爾瞻), 정인홍의 탄핵을 받고 경흥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유생의 명단인 청금록(靑衿錄)에서 이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그런 미지근한 답변으로는 안 되겠소. 인민들이 배고픔에서 해방되는 작금이오. 그렇게 되면 뭔 일이 일어나겠소. 보다 비판적이 된단 말이지요. 그동안 굶주림으로 잊고 있던 것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것이니, 이는 삼정승 이하 모든 관리들의 발분을 요구하는 것이오. 해서 짐이 보건데 지방 수령들에게 맡겨놔서는 이일은 백년하청이오. 따라서 짐은 지방에 별도의 심의기구를 설립하는 방안이 좋겠소. 여기에는 전문적으로 수사기법을 배운 수사요원들은 물론 자복과 강제 고문만으로 재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 법조문을 가지고 죄를 논하는 판사들을 두려하오. 이를 양성하는 것도 형조 책임, 관리하는 것도 형조책임으로 하겠소. 그래도 억울한 자는 형조에 직접 재심을 요청하는 2심제도, 그래도 불복하는 자는 삼정승 입회하의 삼심제도를 도입하여, 이 땅에 억울한 백성이 하나도 없도록 하겠소. 또 중요하다 판단되는 판결에는 짐도 직접 임하여 판결에 관여하도록 하겠소. 이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니, 즉각 그 실행 안을 만들어 시행하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제 대신들이 일제히 부복해 명을 받들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이진의 시선이 향한 곳은 공조판서 이원익에게로 였다.
이원익이야 말로 더 군말이 필요 없는 도승지부터 실무를 익혀온 관리로, 실무에 아주 능한 관리였다. 그런 면을 높이 사 금번 공판으로 직급을 올린 것이다.
“짐이 보건데 직급 상으로는 가장 끝에 위치하지만 가장 중요한 실무부서가 공조가 아닌가 보오. 해서 말 이오만 오늘 아침에도 짐이 승정원회의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앙법 보급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도로를 넓히는데도 가일층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오. 여기에 더하여 각종 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 대 조선제국이 한층 고루 잘 살고, 군비마저 충실한 강국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오. 명심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입술을 깨무는 이원익의 표정에는 다짐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다시 한 번 제 대신들을 둘러 본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에 모인 신료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굶주림에 벗어난 백성들의 요구가 다방면으로 불출할 것이라는 점이오. 그러니 백성들을 하늘 같이 알고, 그들의 복리후생을 하나라도 더 챙길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먼저 제도를 정비하고, 또 이를 시행해야 할 것이오. 각자 이를 명심하고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서얼철폐와 노비제도의 개선을 건의합니다. 황상!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 대 조선제국이라 자부하는 아국만이 그들을 철저한 세습신분제로 묶어 놓아야 합니까. 명이나 왜, 야인 할 것 없이 이런 철저한 신분의 예속을 강요하는 나라는 아국 밖에 없사옵니다. 즉 그들은 계약제인 것입니다. 계약이 불리하면 종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 제도인즉,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이런 제도는 제일 먼저 없어져야 할 폐단이 아닌가 하옵니다. 또 어머니의 배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자니 서얼이니 하며 그들의 능력을 사장시키는 것은 나라 전체로 보아도 큰 인력 낭비요. 재앙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황상!”
“허허........! 아침에 짐이 다음에 거론하자고 일렀거늘........!”
이진의 탄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균의 말을 비판하는 인물이 있었다. 대제학 신흠(申欽)이 그였다.
“안 될 말이옵니다. 대 조선제국이 철저한 신분제도에 기초하고 있는바, 이를 무너트리면 나라 전체의 근간이 흔들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상!”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허균 외에는 모두 부복하여 재고를 요청하는 제 대신들이었다. 그래도 조선에서는 실무에 능하고 합리적인 사람만 모아놓았다고 자부했는데, 이 모양이니 더욱 어이가 없는 이진이었다. 이런 제 대신들을 둘러보는 이진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 곧 단호함으로 빛나는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며 굳은 입매를 떼었다.
“금일부로 서얼제도를 전적으로 철폐한다. 제일 먼저 경국대전의 법조문부터 이를 허하는 쪽으로 개정하고, 또한 조보를 통해 이를 널리 알리도록 하라. 그러나 당분간 노비제도는 이런 식으로 꾸려갈 것이다. 왜냐?”
제 대신들을 형형한 눈으로 뚫어질 듯이 바라보던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개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급진개혁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예이다. 만약 짐이 노비제도 철폐까지 명한다면 이는 전 지식인층의 이탈을 가져와 이것도 저것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제 신분상의 불이익으로 방관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아니래도 영토가 넓어진 작금 더 많은 뛰어난 인재들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뜻있는 자들은 종래마냥 뒷짐 지고 장죽을 물고 다닐 것이 아니라, 모두 과거에 응시하는 등 국사에 동참하길 바란다. 이 또한 짐이 단호하게 명하는 것이니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일로 그간 우리가 허비한 세월이 엄마며 낭비한 국력이 얼마인가? 하니 더 이상 재론치 말라. 이는 짐의 확고한 뜻이니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제대로 고개 조아리는 자는 허균과 하찮은 출신 이이첨뿐이었다. 모두 입이 댓발 나왔으나, 이진이 원체 단호하게 나오니 대충 고개만 조아리고 서로의 표정을 살필 뿐이었다.
여기서 잠시 대제학 신흠을 짧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문명을 떨쳤고, 원 역사에서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선조의 신망을 받았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정주(程朱)학자로 이름이 높아,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이런 제 대신들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던 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만약 짐의 뜻에 반해 상소를 올리거나 연명 상소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 모두 저 혹한의 연해도 북쪽이나, 북해도의 북쪽 사할린으로 모두 방귀전리(放歸田里) 시킬 것인즉 그런지 아오. 그곳에는 마침 인구가 모자라 아우성이니, 이번 기회에 그곳의 인구를 늘리는 것도 괜찮은 방안이겠지요.”
황상의 각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제 대신들의 얼굴이 해쓱해지는데 반해, 허균만이 득의양양한 얼굴로 제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진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대소를 터트리니 제 대신들의 분노가 그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이날 저녁.
모든 정무를 마친 이진이 강녕전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벌써 황후 허 씨를 비롯해 네 귀비들이 모여 있었다.
“일찍들도 왔군.”
이진의 말에 대꾸하는 여인이 있으니 신립의 딸 신 귀비였다.
“일일이 여삼추이옵고, 너무나 보고 싶었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입에 침은 바른 것이오?”
“네, 황상! 진즉에 묻혔나이다. 황상!”
“하하하........! 신 귀비는 그 활달함이 장점이오.”
“망극하옵니다. 황상!”
“됐고. 수라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고?”
“곧 올리겠나이다. 황상!”
제조상궁 정옥빈이 부러운 눈으로 대답하였다. 벌써 그녀의 연배 지극한지라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어가고 있었다.
곧 12첩 반상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기미상궁과 함께 직접 시험하는 부제조상궁 개똥이였다. 누구보다도 음식의 위험성을 잘 아는 그녀인지라 시험이 얼마나 깐깐한지, 국이 어느 정도 식어서야 수라를 들 수 있게 된 이진과 그 후비들이었다.
아무튼 들어온 음식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진이었다. 오늘은 일찍이 후비들까지의 만찬으로 일러놓아서인지 음식이 아주 풍성했다.
먼저 기본음식으로 흰밥에 별도로 약간의 팥밥이 올라왔고, 여기에 미역국과 곰국 또 김치 종류로 섞박지, 깍두기, 동치미, 장으로는 초간장, 초고추장, 겨자즙이 올라왔는데 이는 고추가 이제는 조선에 보편화 되었다는 뜻이었다. 또 조치로는 젓국조치와 고추장조치, 찜으로는 갈비찜이 올라왔고, 소고기 전골도 있었다.
반찬도 풍성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근래 보기 드물게 가지 수가 다채로웠다. 숙채로 숙주나물, 도라지나물, 삼색나물 생채로 무생채, 구이로는 너비아니구이와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또 조림으로는 조기조림과 사태 장조림, 전으로는 민어전과 뮈쌈, 적으로는 송이산적과 사슬적, 자반으로는 북어무침과 장똑또기, 대구포, 어란, 장포육, 젓갈류로는 새우젓, 회로는 육회와 민어회, 편육, 장과로는 삼합장과, 별찬으로는 어채와 수란 등이 올라와 있었다.
“자, 듭시다. 그러나저러나 너무 요란뻑적지근한 것 아니야.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하겠다.”
“황상의 건강이 최고고 먼저이옵니다. 온 백성이 황상을 생각해서 올린 찬이오니, 많이 나드시옵소서.”
“허허........! 이제 황후도 많이 늘었는데?”
“여기 반짝이는 눈들을 보시옵소서. 당장 여기 모여 있는 사람부터가 전적으로 황상에게 의지하고, 모두 황상만 따라 도는 일향화(日向花:해바라기) 아니옵나이까?
이진의 말을 받아치는 이, 문재가 있는 허국 즉 허 귀비였다.
“허허.........! 그렇게 말하니 배가 불러도 더 먹어야 되겠소.”
“이르실 말씀이옵니까? 황상! 모두 황상의 손길만 기다리는 온 백성과 황후마마를 비롯한 비빈들인 것을 요.”
구사맹의 딸 구 귀비의 말을 받아 가볍게 웃으며 받아넘기는 이진이었다.
“후후후.........! 점점 범위가 넓어지니 짐은 매일 과식이라도 해야겠군.”
“어찌 되었든 많이만 드시옵소서! 황상!”
마지막 조비연 즉 조 귀비까지 한마디 하니 이제 모두 한 마디씩은 이진과 응대한 꼴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이진이 음흉한 웃음을 입에 물고 말했다.
“짐은 지금의 이 수라보다도 과연 상을 물리고 났을 때의 후비들의 속안이 더 궁금하오. 과연 몇 명이나 고의마저 벗고 왔을지?”
“아이고머니나, 망측하게 스리 수라시간에도 그런 말씀을 입에 담사옵니까? 황상!”
황후의 수저를 놓은 가벼운 질책에 이진이 아랑곳없이 답변했다.
“황후부터 볼까요?”
“어머머!”
기어코 수저를 놓은 것이 아니라 아예 황후 허 씨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이진이었다.
“농담이니 자리에 앉아 어서 마저 식사나 하오.”
“네, 황상!”
황후 허 씨 또한 가볍게 웃어넘기며 도로 깨작깨작 그나마 식사에 응하고 있었다.
“후후후........!”
그러나 시종 황제 이진의 웃음은 식사 내내 끊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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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보내주신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늘 편안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