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97화 (97/210)

< -- 97 회: 선제공격 -- >

7

한편 우량하(兀良哈)의 추장 아비차(阿比車) 또한 예사 인물이 아니어서, 이 또한 조선군의 동정을 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이 수일 내에 자신들의 부락을 급습해 올 줄 알았다.

이에 흩어져 있던 부족민들을 은밀히 끌어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오늘 저녁나절부터 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초저녁부터 적의 정찰을 차단할 목적으로 곳곳에 대규모의 화톳불을 피웠다.

그러나 삼경이 되자 자연스럽게 화톳불이 사그러들었다. 불씨만 남은 화톳불을 배경으로 아비차는 가축과 파오는 그대로 둔 채, 부족민들을 목릉하 강가로 빼돌렸다. 이때 전사들은 모두 말을 타고 무장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적의 내습을 숨죽여 기다렸다.

드디어 적이 최대한 소리죽여 자신들의 근거지로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이어 방포소리를 군호로 곳곳에 불을 지르며 적들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희심의 미소를 지은 그가 누런 이빨을 내보이며 명령했다.

“공격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와아..........!

이랴!

두두두두두.........!

무리지은 1천5천 기마대가 새벽녘 목릉하 벌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신립은 최대한 은밀히 움직여 적의 파오와 가축의 무리가 보이자, 먼저 새로 편제된 아군 기병 1천 명에게 명했다.

“불을 질러 시계를 확보하고 들이쳐라!”

“네, 장군!”

기마병을 통솔하는 영장(營長) 이천(李薦)이 명을 받고 신속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펑!

슈슈슈슉!

한 소리 천자총통의 굉음과 함께 화차에 실린 신기전이 발사되어 적의 파오에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군 궁수들의 불화살도 일시에 적의 파오를 향해 발사되었다.

그러나 모든 파오가 비어있었고 가축들만 놀라 울부짖었다.

“속았다. 곧 적의 기습이 있을 것이다. 적의 가축을 풀어 적의 기동을 저지하라!”

“네, 장군!”

예하 영장들이 신립의 명을 받고 가축을 메어놓은 우리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가축을 가두어 두었던 우리가 헐려 양떼가 내몰리고, 고삐 풀린 말과 낙타 등이 천지를 모르고 우리를 뛰쳐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이때 천지를 진동하는 말발굽 소리가 목릉하 변으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화기영(火器營) 앞으로!”

“화기영 앞으로!”

“다음 궁수!”

“다음 포수!”

“다음 거마창병!

“다음 살수!”

“기마병 철수하여 양 측면으로 신속히 전개!”

연이어 신립의 명이 떨어졌다.

이에 화기 영장 이빈(李薲)의 복창 소리와 함께 제일 먼저 조선의 포들이 자리를 잡고, 이어 편전으로 무장한 궁수, 다음으로 조총수들이 한 열을 이루어 궁수들의 뒤로 자리를 잡았다. 이어 거마창(拒馬槍) 부대, 제일 후미에는 도검을 든 자들이 신속히 위치했다. 그리고 철수 명령을 받은 기마병들이 신속히 움직여 양측 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적 추장 아비차(阿比車)가 지휘하는 1,500기마대가 500보 앞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 앞에는 날뛰는 가축들로 난장판이 되어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신립이 명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요란한 전고 소리와 함께 천지총통이 적진을 향해 발사되는 것을 시작으로, 천지현황의 각종 포는 물론 호준포, 불랑기포, 대완구, 중완구 등이 일제히 전방을 향해 불꽃을 피워 올렸다. 여기에 십여 대의 화차에 실린 신기전이 하늘 높이 그 불꽃을 피워 올렸다.

히히힝!

히히힝!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다.

적의 전투마들이 아군의 일제 발사된 포의 굉음에 놀라 앞발을 번쩍 치켜들고, 어느 말은 놀라 대열을 이탈해 무조건 천지사방 방향도 모른 채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어느 기수는 낙마를 하여 말에 질질 끌려가고, 어느 놈은 간신히 말을 제어했으나 무기를 놓쳐버렸다. 그렇지 않은 자들도 대부분 달리던 탄력을 상실해, 야인 저들이 말하는 명의 군대 즉 말 탄 보병이 되어버렸다.

이를 본 신립이 명했다.

“조총병 앞으로! 일제사격!”

포들이 한 번 발사되고 나서 장전되는 시간을 이용하여, 다음 열에 위치했던 조총병들이 일제히 달려 나와, 기마병이 아닌 보군이 된 적들을 향해 조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궁수 앞으로!”

“앞으로!”

조총병들이 장전을 하는 동안 이제는 천보 사거리를 자랑하는 아군 편전 부대가 일제히 시위를 놓으니, 적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살상되어 낙마하는 자, 놀란 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일부는 저희들끼리 깔아뭉개고 부딪치는 말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그러는 동안 포들이 재장전을 마치고 다시 한 번 일제히 발포를 했다.

펑 펑 펑!

쾅, 쾅, 쾅, 콰광!!

“기병 돌격 앞으로!”

“돌격 앞으로!”

히히힝.........!

각종 포탄은 물론 비격진천뢰마저 적의 진중 한가운데서 폭발해, 말이고 사람이고 하늘로 비산시키는 가운데, 각종 포들의 화력 앞에 맞아 죽는 것은 물론이고, 또 한 번 처음으로 포격전에 노출된 말들이 놀라 길길이 날뛰었다.

그런 속을 포 소리에 익숙해진 아군 전마들이 양측 면에서 일제히 뛰쳐나가 적을 좌충우돌 충살해나가기 시작했다. 아군 중에도 몇 놈은 대열을 이탈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조선군의 진영은 신속히 바뀌기 시작했다.

한 번 더 기병 돌격이전에 일제 발사를 마친 조총병은 물론 화기병, 궁수들이 신속히 후미로 후퇴를 하고, 전방에는 거마창을 꼬나든 거마 창병들이 일제히 창을 땅속에 깊이 박고 열을 지어 섰다.

또 그 앞에는 수많은 철질려를 깔아 전마들의 말굽을 노렸다. 그러나 그들의 노고는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았다. 벌써 대부분의 전열이 무너진 적들을 향해 아군 기마대가 돌진하자, 이제 적들은 진공은커녕 아군 기마대를 대항하기에도 급급했다.

이때 이미 적의 삼분의 일이 죽거나 다치는 외에도, 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전투력을 상실한 채였기 때문에, 아군 기마대의 활약은 더욱 눈부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적진 속.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항복하시는 게 그나마 부족민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암반!”

항복을 권하는 한 어젼(ejen:村長)의 침통한 음성에 추장 아비차는 화를 벌컥 내었다.

“나 또한 옛 선조들의 경진(庚辰) 치욕을 재현하라고?”

“그러면 어쩌겠습니까? 이대로 시간이 지나 몰살을 당하겠습니까? 아니면 후대라도 보존을 하겠습니까? 하고 암반님도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알긴 알겠는데......... 너무 분해서.........!”

“한 때의 분함을 참지 못하면 우리 부족은 여기서 멸족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암반님의 결심 여하에 따라 전 부족의 생사가 달렸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백기를 내걸어라!”

“네, 암반님!”

곧 건의한 어젼의 명령 하에 곳곳에 백기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신립이 명했다.

“전투 중지!”

“전투 중지!”

북소리를 군호로 아군 기마대가 일제히 썰물 빠지듯 아군 진영으로 철수를 했다. 그러자 추장 아비차를 비롯한 적 수뇌부들이 천천히 말을 몰아 아군 진영으로 향했다.

“길을 터줘라!”

“네, 장군님!”

신립의 명에 혹시 몰라 거마창진의 가운데만 열어 암반 아비차 일행의 통행을 허가하는 조선군이었다. 상부의 세밀한 지시가 없어도 일부의 거마창만 제거하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그만큼 이들은 거듭된 훈련으로 정예화 된 것이다.

신립 앞에 하마한 아비차가 비굴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은 취하더라도 부족민들의 목숨은 살려줬으면 좋겠소.”

“좋소! 전 부족민뿐만 아니라 추장 이하 모두 살려주겠소. 단 이제 우리의 통제에 따라야 된다는 조건이오.”

“전장에서 패한 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뜻에 따르리다.”

“좋소! 무장을 해제하고 신속히 가축들을 돌보시오. 우리도 한 팔 거들겠소.”

“고맙소!”

이렇게 해서 양진영의 전투는 멎고 합동으로 달아난 가축들을 불러들이기에, 한동안 여념이 없었다.

항복하는 과정에서 아비차의 입에서 뱉어진 경진치욕(庚辰恥辱)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사실 이들 조상들의 일부가 세조 때 단행된 경진북정(庚辰北征)의 대상이 되었었다. 이곳 목릉하에서 선조의 일부가 조선의 국경인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남하했던 바, 이에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토벌을 단행하게 되니, 이것이 곧 경진북정이었다.

그 결과 무리의 일부는 소탕을 당하거나 조선에 귀의했고, 일부는 쫓겨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다수의 이들 무리는 아예 건주여진에 귀의하여 건주위(建州衛)에 편입되고 말았다. 따라서 그때 쫓긴 자들이 그들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벌써 구월 중순.

북방에는 이미 서리가 내리고 첫눈도 이제 머지않았다. 아니 곧 얼음이 얼리라. 이를 잘 알고 있는 신립은 오늘도 축성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기존 예하 장졸에 지난번 항복한 우량하(兀良哈)의 5천 부족, 여기에 합류한 권율의 3사단 병사까지 총 동원되어, ‘벌시온((伐時溫)’ 이라 명명된 이곳에, 3만 명이 일시에 거주할 수 있는 거성(巨城)을 축조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성곽의 높이 반 장에 이르러 목표 높이의 절반은 이루었다. 그러나 곧 추위가 몰려올 터, 신립과 권율은 다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신 병사들과 야인들을 닦달하여 이들은 보름 만에 한 길 즉 사람 키보다는 한 자 넘게 성을 쌓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미 북방에는 첫눈은 물론 오늘 아침에는 얼음마저 얼었다. 주로 목릉하 강변에서 돌을 주워 다 성곽을 쌓았는데, 이렇게 되면 돌도 간단히 줍는 게 아니라 캐내야 하고, 더군다나 추위와 싸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도 한 달 간 더 강행을 하자 8자(2.4m) 높이까지는 성곽을 축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군량미 조달이었다. 지금까지는 조선 수군에 의해 해삼진까지 운송이 되어 오면, 그곳부터는 미리 점점이 깔아놓은 아군 병력과 이곳 치중대에 의해 이곳까지 운반이 되어왔다.

그러나 앞으로 폭설로 길이 끊기면 두 달 비축분 밖에 없는 이들로서는 큰 고통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내년 사월까지 기나긴 겨울을 어찌 날지 벌써부터 암담해지는 신립과 권율이었다.

이에 신립과 권율이 연명 상소하여 주청하길, ‘더 큰 눈이 내리기 전에, 전 수군력을 동원하더라도, 내년 사월까지 날 수 있는 군량미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 이를 받아본 이진이 이에 응해 명을 내리니, 대 군량미 운송작전이 시작되었다.

아뿔사!

그런데 이것이 야인 부족의 탐심을 자극해 야인 부족과의 전쟁으로 발전할 줄이야.........!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용의주도한 이진의 계산 하에 있는 일.

이렇게 북방의 깊은 겨울은 야인과의 대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

============================ 작품 후기 ============================

크나큰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늘 행운이 함께 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