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8 회: 선제공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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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진은 신립과 권율의 장계를 받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병사들이 대식가임을 고려해 인 당 한 달에 백미 기준 3말을 먹을 먹는다고 보았을 때, 기나긴 겨울동안 인 당 2가마 즉 1석(石)을 먹는다고 보고, 총 2만 석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수군은 물론 세곡선까지 동원하면 한 번에 수송 가능한 물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삼진에서 벌시온((伐時溫)까지의 육로 운송이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한두 달치로 분량이 적은 데다 운송 거리도 가까웠으나, 이제는 직선거리로도 400km 즉 일천리를 운송해야 된다는 소리인데, 이를 운송할 운송수단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 소속 아니 조선 백성 예하 우마차를 전부 동원해도 부족하고, 그 길마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으니 난제는 난제였다. 할 수 없이 이진은 야인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즉 그들의 말이며 나귀, 낙타, 소 등 등짐으로 져 나를 수 있는 모든 가축을 삯을 주고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난 이진의 머리에 문득 ‘탐심(貪心)’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니래도 보고를 받자니 요즈음 동해여진과의 사이가 좋지 못한 듯한 데다, 만약 중간에 이들이 변심이라도 하는 날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를 방비할 수단까지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진은 아직 훈련 중이라 도해(渡海)하지 않은 1사단 이일의 군대는 물론, 조선에 귀의해 벼슬을 받고 있는 장백여진의 두 부족 즉 야류장 부족과 너연 부족의 협조까지 얻기로 했다.
즉 이들까지 무장은 물론 운송 가능한 모든 가축을 동원해달라고 친히 경차관을 파견해 친서를 전달케 한 것이다. 친서의 내용은 삯까지 논하며 시종 온유했지만 경고마저 담겨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즉 만약에 조선을 배반하면 전 조선군대를 동원하여 두 부족을 깡그리 멸절시킨다는 무시무시한 문면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친서가 동해의 세 부족에게까지도 전달되었으나, 이 세 부족에게 만은 그런 구절이 빠져있었다.
만약 그들이 변심을 한다면 ‘군량미 탈취’라는 대의명분 하에 이들을 차제에 점령할 계획까지 세우고, 이진은 철저한 운송대책을 강구했던 것이다. 또 만약 이들이 그런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제2의 도발 책동을 전개하도록 비답 문에 담은 이진이었다.
이번 군량 운송을 계기로 아예 동해여진을 수중에 넣기로 작정한 이진이었다. 아무튼 이런 계획에 따라 ‘동계 대 군량운송작전(冬季 大 軍糧運送作戰)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이들을 운송하기 위해 벌시온 성에 최소한의 상주 인원만 남은 1만5천의 조선군은 물론, 전 우량하 부족을 아우른 3천 기마 및 가축 떼가 동원되었다.
또 장백여진의 야류장과 너연 부족이 각각 1만씩 도합 2만의 군사 및 가축 떼가 동원되었다. 여기에 조선중앙군 1사단 1만 명, 군량 운송 수군 3만. 여기에 해삼진은 물론 군데군데
깔아놓은 2사단 군병까지 동원되니, 총 병력 8만 여가 넘는 대군이 되었다.
그러나 이일이 거느리는 중앙군 1사단 및 수군은 하역에만 참여하고 곧 돌아서는 모양을 취하게 하니, 실제 병력은 4만 여 정도가 운송작전에 참여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여기에 동해여진의 세 부족 또한 이진의 친서에 의해 각 기마대는 물론 가축 떼까지 동원하니 어마어마한 대 군량운송작전이 각 하역장소에 조선수군과 세곡선이 속속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참고로 동해여진은 각각 후르하부, 워지부, 아르카부 등 세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바, 이들 또한 고르고 고른 전사 각각 1만 명 도합 3만 명이, 수많은 가축 떼를 데리고 이 작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드디어 조선 수군은 물론 세곡선 포함 1,500여 척이 두만 강 하류는 물론 해삼진 또 우연히 발견된 갈탄(褐炭)이 많이 생산되어, 갈탄진(褐炭鎭)이라 명명된 현 러시아 령 아르티옴 만 세 곳에 일제히 상륙하자 곧 하역작업이 시작되었다.
두만강 하류는 장백여진의 두 부족이 달려들어 조운선의 사공들과 함께 하역을 하고, 갈탄진은 멀리서 달려온 중앙군 2,3사단이 수군은 물론 1사단과 함께 하역을 하고, 해삼진은 동해여진 세 부족이 수군과 함께 하역을 일제히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십여 일이 걸려 차례로 모두 하역이 끝나자 모두 북으로 북으로 떼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는 벌써 11월 초, 북방은 벌써 한겨울이었다. 곳곳에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은 빙판길을 이루었다. 아직 대규모 폭설이 내지리 않은 것이 그나마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이동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가장 먼저 신립과 권율이 지휘하는 중앙군 2, 3사단이 우량하 부족과 함께 제일 먼저 길을 나섰고, 그 뒤를 동해 여진 세 부족, 그 뒤를 두만강에서 출발한 장백 여진, 그리고 제일 끝으로 돌아서가는 척하던 중앙군 1사단 1만 명과, 일부 전함에 남아 있는 수군을 제외한, 이 순신이 지휘하는 수군 2만5천 명, 도합 3만5천 명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렇게 기나긴 행렬의 선두인 중앙군 2, 3사단이 흥개호 동쪽 지금의 러시아 령 스파크스 달니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눈발이 비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곳이 작전지점으로 더 이상의 진군할 생각이 없는 신립과 권율은 예하 부대원들의 멈춰 세웠다.
그리고 신립과 권율은 각각 예하부대 원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전진하다가는 아무래도 꼼짝없이 눈 속에 갇혀죽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나 되어야 올라가겠다. 그러니 얼어 죽지 않으려면 신속히 통나무집이라도 지어라. 알겠는가?”
“네, 장군님!”
생사가 달린 일이었다.
일제히 초(哨:112명 정원) 단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제 병력들이었다.
일부는 나무를 절단할 수 있는 톱이며 연장들을 들고 나무를 베러 산으로 향하고 일부는 진흙을 구하러 갔다. 일부는 진흙과 함께 갤 갈대 잎이나 마른 풀등을 구하러 갔다. 보우하사 다행히 그동안 큰 눈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이들이 5일 동안 움직여 엉성하나마나 대규모 통나무집을 완성해갈 즈음, 동백여진의 세 부족이 차례로 들이닥쳤다. 이들의 꼴을 보고 즉각 세 부족장과 회동한 후르하부의 패륵 파아손(把兒遜)이 바로 신립을 방문해 항의를 했다.
“이게 무슨 짓들이요? 왜 여기서 멈추는 것이요?”
느긋한 웃음을 머금은 신립이 답변했다.
“더 전진하다가는 꼼짝없이 눈 속에 갇혀 동사하고 말 것이오. 그러니 조선 국왕께서 협조 요청한 파오나 좀 대여해 주시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오. 지금 조선군이 증강되었다고 한 판 붙자는 거요. 뭐요?”
“절대 우리에게는 그런 뜻이 없소. 여기서 머물렀다가 봄이 되면 곧 북으로 돌아갈 것이오.”
“흥! 마음대로 한 번 해보시오. 절대 우리는 용납할 수 없으니까. 단 3일의 기한을 주겠소. 만약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으면 그때는 전쟁이요, 전쟁!”
“허허........!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오. 겨울이나 나고 떠날 테니 그런지 아오.”
“흥! 멋대로 하시오. 3일 후에는 이 벌판이 피로 젖을 테니까. 그리 아오.”
그렇게 잘라 말한 파아손이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들이 돌아가자마자 신립은 재빨리 후속 부대에게 전령을 띄웠다.
그리고 권율이 함께 한 자리에서 우량하의 추장 아비차를 불러들여 단단히 오금을 박았다.
“만약 우리 부대원들과 함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대들의 남은 식구들이 모두 들판의 까마귀밥이 될 테니, 저들의 무슨 유혹이 있더라도 절대 두 마음을 먹지 마오.”
“알겠소. 장군!”
볼이 부어 대답은 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통나무집을 나오자마자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쉬는 우량하의 암반 아비차였다.
* * *
그로부터 3일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때는 벌써 장백의 두 부족마저 신립의 부대에 합류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중앙1사단 및 조선수군도 턱밑까지 육박해 있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 부족장들이 파아손의 파오에서 회동을 하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 아니겠소?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는 거요, 뭐요? 아예 두러누으니 우리에게는 명분도 있고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오. 두 패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말해보오.”
이 말을 받아 신립이 개척한 땅과 가장 인접해 있는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이 말했다.
“그동안 정말 눈에 가시였소. 한 번 두들겨주자고 차마 입을 떼지 못했는데,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오. 그동안 우리 부족도 너무 많이 참았소.”
그러나 이들과 달이 신중한 의견을 개진하는 워지부의 부족장 아구다(阿究爹)였다.
“저들의 군사 벌써 장백 부족까지 근 사 만에 가까우니 우리보다 세가 강하지 않소?”
“그깟 조선군이야 한번 입김만 세게 불어도 날아갈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고, 요는 장백 놈들인데 한 번 설득을 해보는 것으로 합시다.”
파아손의 말을 받아 아구다가 즉각 받아 물었다.
“그래도 응하지 않으면?”
“일찍부터 함께 하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왜 그러오? 갑자기 겁이라도 나는 게요?”
파아손으로부터 겁쟁이로 놀림을 받은 아구다가 발끈했다.
“겁날게 뭐 있소? 선봉은 우리 차지요.”
“하하하........! 그럽시다. 안 그래도 이 식량만 가지면 우리 부족이 그냥 1년은 손 하나 까닥 안하고 놀고먹어도 될 게요.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너무 근심 마오. 한 번 달려봅시다.”
이제는 달랠 줄도 알고 제법 노회하게 나오는 파아손이었다.
모두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이들의 음모는 무르익었다. 이날 밤 파아손은 두 부족장을 데리고 은밀히 장백여진의 부족장 군막을 찾아들어 회동을 하였다. 역시 이들도 마음은 있으나 까다롭게 굴었다.
즉 자신들이 운반하는 군량은 자신들의 차지이고, 조선군이 운반하는 군량을 양 부족이 똑같이 반분하기로 타협을 보는 것으로 모든 협상이 마무리 되었다.
그 시간.
조선군 진영도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후위의 조선군과 긴밀히 연락을 하는 것은 물론 장백여진의 두 부족장과도 이들이 떠난 뒤에 은밀히 상의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신립은 파아손을 찾아갔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오? 오늘 떠나기로 한 것이지요?”
“이틀의 말미만 더 주시오. 그동안 설상장비라도 챙겨야겠소. 이곳에 머물 예정으로 아무 준비를 안 했단 말이오. 그리고 가다 얼어 죽게 생겼으니 파오 좀 빌려주시오.”
“허허, 그것참..........! 좋소! 우리의 파오 백 동을 빌려줄 테니 명년 봄에 반납하는 것으로 하고, 더 이상은 지체 마오. 돌아와 겨울 나야할 우리 입장도 생각해줘야 할 것 아니오?”
“좋소. 그렇게 하리다.”
이렇게 해서 양측 타협안이 최종 조율되었다. 그러나 매미를 노리는 버마제비 또 이를 노리는 까치, 또 그 까치를 노리는 포수! 과연 누가 최후에 웃는 승자가 될 런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몰랐다.
여기서 버마제비는 사마귀를 일컫는 말이다. 곤충의 제왕인 사마귀는 눈이 튀어나오고 초점이 없고 허공을 보는 듯한 사시 눈으로, 실제는 눈이 밝은데 겉으로 보아서 눈이 어두운 바보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까치에게는 당적 할 수 없는 노릇, 이와 같이 버마제비가 되어 날 뛰는 동해 세 족을 어떻게 제어할 지 두고 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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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젠장, 버마제비만 치면 미얀마 제비로 자꾸 바뀌니 자꾸 수정하기도 우습네요!^^
크나큰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늘 유쾌한 날들 되시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 하기를 축원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