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89화 (89/210)

< -- 89 회: 십년대계(十年大計) 부국강병(富國强兵) -- >

6

“험, 험........!”

헛기침으로 시선을 모은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또 명국에서는 이것으로 복숭아 색, 밝은 노랑, 밝은 백색의 빛을 낸다니 우리 조선의 도자기 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장인어른!”

“허허..........! 이 돌이 그렇게 쓰임이 많다니 보배입니다. 보배!”

“그렇습니다. 허나 난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진의 말에 무언으로 이진의 대답을 원하는 장인 허명이었다.

“철을 녹일 수 있는 열로는 어림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돌의 성분을 녹여내려면 강한 열을 낼 수 있는 연료를 찾아야 하는데, ‘석탄(石炭)’이라고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고개를 흔드는 허명이었다.

“갈탄은 요?”

마찬가지로 고개를 흔드는 허명이었다. 설명하기가 막연한 이진이 잠시 궁리를 하다 말했다.

“우리나라 고문헌에 보면 불이 오랫동안 탔다는 기록이 종종 나옵니다. 아마 그곳이 과인의 생각으로는 석탄매장지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석탄이라는 것은 검은 가루로 개서 말려놓으면 아주 불에 잘 탑니다. 화력도 강하고요. 장인어른께서는 모를지 몰라도 양이 기술자들은 설명을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허명의 표정을 한 번 살핀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조선에는 강원도 삼척, 경상도 문경, 저 함경도 북쪽 아오지 등에 많이 매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이 석탄 이라는 놈도 함께 개발하여 이 돌을 녹이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사옵니다. 전하!”

“왕수(王水라는 것은 아십니까?”

“그것도........”

여전히 고개만 열심히 흔들어 대는 허명이었다.

“금, 은을 녹이는 물질로 혹여 금은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알지 모르겠습니다. 이 왕수에는 이 돌이 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석탄으로 이 금속을 녹일 수 없다면 왕수로 시험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전하!”

“모처럼 전(殿)에 드셨는데 중전도 만나보시고 쉬었다 가시죠?”

“중차대한 임무를 받은 사람으로서 어찌 사사로운 정에 연연할 수 있겠사옵니까? 신 바로 나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전하!”

“허허........! 그것 참! 막내처남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이제 구황작물의 보급이 모두 끝나 무극의 금광개발에 전념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무극 금광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품위가 높고 계속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 생산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비격진천뢰에 보면 목곡이라 해서 시간을 조절해 화약을 폭파시키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를 광산개발에도 원용하는 방법을 한 번 찾아보시죠. 즉 화약을 이용해 돌을 파괴시키되, 목곡을 이용해 대피시간을 벌라는 말이죠.”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장인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이었다.

이진의 이야기가 얼핏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수준이지만, 누가 아는가? 혹시 황소 뒷걸음에 쥐 잡을지. 전혀 상상도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아무렇게나 던진 한 마디가 발전의 큰 촉매가 될 수 있는 법. 그것을 기대하면 던진 이진의 말이었다.

* * *

다음 날.

한 통의 장계로 인해 아침 승정원 회의부터가 시끄러워졌다.

원균이 보낸 장계로, 고니시 유키나가를 따라 온 종군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가, 대마도에서 이상한 종교를 퍼트리다가, 원균의 부하들에게 적발되어 압송조치 했다는 보고 때문이었다.

장계의 내용에 의하면 세스페데스는 고니시 유키나가를 따라 대마도까지 왔으나, 어쩐 일인지 전함에는 승선하지 않고 대마도에 남아 있다가, 조선군이 대마도를 점령하자 숨어 지내며 포교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번 어느 왜인의 이상한 종교를 퍼트린다는 신고로 붙잡혀, 압송조치 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를 접한 이진은 이마를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와 서양문명의 상관관계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인인 이진은 특정한 종교가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 종교라고 배척하지도 숭배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땅의 군주로서 기독교는 시기상조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의 일부 학문은 조선의 지식 사회에 소개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즉 조선의 천주교 전래사로 볼 때 유교 지식인들과 이들 사이에 큰 마찰을 피할 수 없음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피하고 싶으나, 그들의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 역법, 천문학 등의 지식은 조선에서 수용하고 싶었다.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심정 속에서 이진이 아무 말이 없자, 저희들끼리 떠들던 자들도 조용히 입을 닫고 이진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진이 그런 승지들을 보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가 압송되어 오기 전까지는 비밀에 붙이고 안건으로 상정하지 마오. 일단 과인이 그를 먼저 만나보고 난 후에 가부간의 결정을 지을 테니까 말이오.”

“혹여 위험하지 않겠사옵니까? 전하!”

홍가신(洪可臣)의 말에 이진이 대답했다.

“그들이라고 삼두육비의 괴물도 아니고 무엇이 위험하다는 말이오?”

이진의 말에 아무 입을 닫고 마는 우부승지 홍가신이었다.

이 홍가신이라는 사람은 허봉이 죽고 나서 승지에 임명된 사람으로, 이순신과는 사돈관계였다. 즉 이순신의 장녀가 홍가신의 아들에게 시집을 와 현재 살고 있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

그가 서울로 압송되어 왔다. 의금부에서부터 난리기 났지만 이진은 바로 어영대장 김체건을 보내 바로 사정전으로 압송해왔다. 의금부 진무(鎭撫) 이하 의금부 관원들이 줄지어 서고, 육 승지만 입회시킨 가운데 이진 스스로 국문을 열었다.

그가 일본말 밖에 몰라 왜어 역관을 들여 통역을 해야 했다. 물론 스페인이니 스페인어는 조선인 역관인 중에 아는 사람이 없어 곤란해서 들인 왜어 역관이었다.

“대마도에 남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진의 물음에 당당히 어깨를 편 세스페데스 신부가 말했다.

“저의 임무가 종군기를 작성하는 것이었으나 아우구스티노(고니시 유키나가)가 다음 선편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바람에 대마도에 남았으나, 그것이 계속 대마도에 머무를 사유가 될 지는 본 신부도 몰랐습니다.”

“왜인들에게 포교를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저의 사명이 포교에 있는 즉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좋다. 아국의 입장을 설명하겠다. 아직 조선은 당신들의 종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포교를 허용할 수도 없고, 그대가 아국에 머무는 것도 허용할 수가 없다. 왜로 추방을 할 테니 그리 알라.”

“포교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섭섭하지만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는 감사드립니다. 그 보답으로 저의 작은 선물이나마 조선의 왕께 드리고 가고 싶사옵니다.”

그가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을 보고 이진이 호통 쳐 물었다.

“이 자의 물건이 어디 있느냐?”

“저와 함께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통역을 통해 듣자마자 의금부 진무가 그의 소지품 일체를 담은 궤짝 2개를 대령했다.

“오라를 풀어주어라!”

이진의 명에 나장 두 명이 신속히 달려들어 바로 포승을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그가 궤짝을 뒤져 몇 개의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천리경, 자명종, 지구의를 전해드리고 가겠습니다.”

“고맙소!”

비로소 반공대로 그의 선물에 사의를 표하는 이진이었다. 그리고 이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잠시 지체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선물을 받는 길에 몇 가지 더 얻고 싶소만?”

“말씀만 하시옵소서. 전하!”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어법을 흉내 낸 것인지, 통역이 그렇게 통역한 것인지는 몰라도 익숙하게 들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이진이 주저않고 말했다.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 역법, 천체관측 학문이나 기구, 홍이포의 제작비법 등이 담긴 책이 있으면 얻고 싶소.”

“저는 그런 것을 전공하지 않아 잘 모르오나, 명국 광동에 머무는 마테오리치 신부라면 일가견이 있는 즉 소개해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고맙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며칠 아국에 체류하면서 아국의 풍물도 구경하고 돌아가도록 하오.”

“감사합니다. 전하!”

그의 인사를 미소로 받은 이진이 곧 의금부 진무와 통역에게 명해 며칠간 편의를 봐주도록 했다. 단 군사기밀 등 보안이 요구되는 곳은 그의 조름이 있더라도 절대 안내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곧 그가 물러가자 이진은 군기시 도제조 한효순을 불러 자명종과 천리경을 주며, 이를 대량 제작할 수 있는 길을 열도록 했다. 그리고 지구의는 자신의 주 집무실인 사정전에 놓았다.

* * *

그로부터 2개월이 흐른 삼 월 중순.

삼라만상이 깨어나 흐드러진 봄꿈을 꾸는 조선의 법궁 경복궁 근정전 기단 밑에는 만조백관을 위시한 500여 명의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이진이 이조판서 김우옹에게 명해 각도로부터 추천되어온 인재들이었다. 주로 장인으로 천인이 대부분인 이들이 오늘 이진의 특별 명에 의해 여간해서는, 열리지 않는 공간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일산을 받쳐 쓰고 점잖게 앉아 있던 이진이 가볍게 명했다.

“시작하오!”

이진의 명에 잠시 장중한 주악이 울리더니 이조판서 김우옹이 이진이 하달한 교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략........ 만약 청렴한 선비라야 등용할 수 있다면 춘추시대의 제나라 환공이 어떻게 패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세상에는 주나라를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킨 강태공처럼 삼베옷 입고 맑은 꿈을 품고서 위수의 강가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또 한나라 유방을 도왔던 진평(陳平)처럼 형수와 간통하고 뇌물을 받았지만, 추천해준 위무지(魏無知)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없겠는가? 여러분들이 나를 도와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오직 재능만 보고 추천하여 내가 그런 사람을 쓸 수 있도록 하라. 태종 대왕의 뜻을 받들어 오늘 널리 구한 인재들을 요소, 요소에 긴히 쓰고, 앞으로도 계속 과인은 비록 도덕적인 흠결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 재주 빼어나면 우대할 것인 즉, 힘써 일하고 그 반대급부를 구하라! 후략.......”

이어 도승지가 이진이 내린 현판을 높이 치켜들었다.

‘유재시거(唯才是擧)’라는 당호가 쓰인 현판이었다.

즉 이진이 교서에 언급한 ‘오직 재주만 보고 인재를 추천하라!’는 뜻의 당호(堂號)였다.

이렇게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인식을 전 조정대신들부터 인식하게끔 한바탕 쇼를 벌인 이진이 곧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조선에도 드디어 국책연구기관이 생겼다. 한마디로 과학자내지 발명가 집단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진은 이들을 위해서 후원의 휴식 공간 일부를 제공해 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연구에 전념토록 했고, 또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송익필을 그 거수(擧首)에 임명하여, 이진의 뜻이 즉각 즉각 반영되도록 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이 한 점 굴절됨 없이 자신에게 전달되도록 조처했다.

그런 그들에게 내려준 첫 임무가 맡긴지 2개월이 지나도 아직 제작 비법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천리경과 자명종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에게는 또 하나 전해진 것이 있으니, 명국의 마테오리치 신부로부터 전해진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롯한 서양식 계산법, 역학, 측량술, 천문학 등이 그것이었다.

이는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었던 바, 언문으로도 번역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가르칠 사람이 없으니 자신들이 깨우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천재가 있어 깨우칠 것을 기대하며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제공한 책이었다.

이렇게 조선에서도 실사구시의 학풍과 함께 장인들이 우대를 받는 풍토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북방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바야흐로 해서 여진이 기동을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누루하치는 저들의 요구조건을 거부했고, 명분을 다친 자들이 선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고를 받았으나, 강 건너 불구경 입장인 이진은 모처럼 짬을 내어 후원 뜰을 거닐었다. 그 옆에는 이진의 청에 의해 불려나온 올해 16세 된 누루하치의 장녀 고륜동과공주(固倫東果公主)가 다소곳이 따르고 있었다.

“아비가 곧 전쟁에 휘말릴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느냐?”

“이미 조선의 귀신이 되기로 한 몸이니, 소첩과는 상관없는 일이옵니다. 전하!”

“네 뜻이 장하다만 아비가 잘 되는 것이 좋겠지?”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도화 빛 얼굴이 봄 햇살 속에 더욱 만개한 듯 보였다. 아직 여진 부족장 인질들은 물론 이 공주마저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바라보기만 했던 이진에게는 그 모습이 크게 욕념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진은 이를 억제하고 먼 산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과인과 아비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마는 그 누가 있어 앞날을 예측할 것인가?”

탄식처럼 말한 이진이 천천히 봄빛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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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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