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3 회: 외교 첩보전 -- >
1
이 후 이진은 광해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국제정세 전반에 대해 세심히 일러주었다. 사람을 부리거나 무슨 일을 계획하더라도 기본을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취한 조처였다.
이어 이진은 광해에게 첫째 임무를 부여하니 세작을 이용하여, 왜장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가 작성한 서신을 비밀리에 그의 가계(家系)에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광해의 씩씩한 대답을 듣는 것으로, 자신의 의도한 바를 모두 이룬 이진은 그를 내보냈다.
* * *
이진이 부른 세 사람 즉 신충일, 이순신, 만상의 대방 강극렬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배를 부려 도착한 이순신이었다.
회의가 파하고 물러간 자리.
“승전을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하하하.........!”
햇볕에 그을리다 못해 까무잡잡한 이순신의 하례를 받고 이진은 대소를 터트리며 용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군왕답지 않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이진이 아직도 부복해 있는 이순신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이것이 다 공의 공적 아닌가?”
“천만의 말씀이옵니다. 전하! 주상전하의 신기묘산과 주도면밀한 준비가 아니었다면, 이 거친 무부가 어찌 꿈이나 꿀 수 있는 공이오리까? 다만 소직은 전하의 명에 충실을 기했을 뿐, 아무런 공도 없는 줄 아뢰옵나이다. 전하!”
“하하하........! 고위직에서 버텨내려면 말발도 세야 하오. 준비는 충분한 것 같은데?”
이진의 농담에 순수한 이순신은 얼굴만 벌개져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 그 모습이 더 믿음직스럽고 기꺼워진 이진이, 다시 한 번 파안대소를 터트리더니 그 웃음 끝에 물었다.
“고충은 없소?”
“항왜들의 말썽이 유난합니다. 몇 명을 시범적으로 처벌했지만 아직도 많은 수가 길들여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래요?”
이진의 번뜩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대개의 경우 악독한 계책이 나올 때의, 이진 특유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한 번 더 곱씹는 듯 침음하던 이진이 돌연 엄숙한 신색을 지으며 소리쳤다.
“상방검(尙方劍)을 가져오너라!”
“네, 전하!”
대전내관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이진이 말했다.
“이제 공의 직함이 팔도수군통제사요. 명실공히 제해권을 공에게 다 넘긴 바, 남해만이 아니라, 위로는 압록강부터 서해, 동해는 물론 무릉도까지 전 바다를 지켜내야 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특히 압록강을 현재는 야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 같소. 앞으로 무역 통로로써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니, 이곳도 신경을 써야할 것이고, 무릉도는 이제 별 문제가 없지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지난번 토벌을 한 이래로 아직은 이렇다 할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그곳도 왜구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써야할 것이고, 그로부터 동쪽의 작은 섬 즉 독도도 수시로 순시하여, 조선 백성의 어장으로 관리해야 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이들의 대화에서 무릉도(울릉도)가 석년에 왜구들의 침입을 받은 바, 그곳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던 조선백성이 많은 피해를 입자, 이진은 무릉도 경차관을 파견하여 실태조사를 명한 바 있었다.
그러나 조사차 파견 나갔던 경차관이 왜구에게 살해되는 참극을 당하자, 이진은 아예 이순신에게 명해 무릉도의 왜구를 전격적으로 소탕한 바가 있었다. 지금 그 일이 문답 중에 나온 것이다.
아무튼 이진은 내관이 건네는 상방보검을 받자 아예 주안상마저 내오라 명하고는, 다시 한 번 엄숙한 신색이 되어 말했다.
“과인은 공을 믿거니와, 이 상방보검을 하사하는 바, 경이 거느리는 수군에 한해서는, 평소에도 생사여탈권을 줄 것인즉, 명에 따르지 않는 자는 즉참에 처해도 좋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흑흑흑.......!”
임금의 사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 줄 모르는 이순신이었다. 상방보검이라는 것이 전시나 돼야 대장군 또는 대원수에게 임금이 하사했던 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검이었다.
이는 부하나 군졸 등이 명을 거역할 때, 굳이 임금에게 보고하지 않고 하사받은 자 마음대로, 그들의 생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니는 칼이기에, 이는 즉 군왕의 더 없는 신임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이순신이 어찌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잠시 그대로 두고 보던 이진이 곧 주안상이 들어오자, 한사코 사양하는 이순신을 둘러앉혀, 군왕과 신하가 한 자리에서 대작을 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여기에 손수 술을 쳐 이순신에게 건넨 이진이 지밀상궁이 따른 술을 들며 말했다.
“자, 한 잔 들고 과인이 당부할 이야기가 많으니 잘 들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급히 술잔을 상 위에 놓고 다시 한 번 부복했다 일어난 이순신이, 고개 돌려 술잔을 비우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그런 그에게 안주마저 권한 이진이 자신도 구절판 하나를 집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물었다.
“왜적으로부터 나포한 왜의 전함 250여 척이 아직 그대로 있지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흡족한 표정을 지은 이진이 다시 입을 떼었다.
“잘 들으시오. 반드시 왜의 재침이 있을 것이오. 원숭이가 분해서라도 그냥은 안 넘어갈 터, 틀림없이 재침이 있을 것인즉,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공의 첫째 임무요.”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두 번째는 사해를 두루 지켜 바다를 편케 하는 것이오. 이것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교역을 하는 우리 상선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오.”
“네, 전하!”
“세 번째는 우리의 지향할 바로 장래의 수군은 내해에 그냥 머무는 것이 아니라, 원양 해군이 되어야 하오. 즉 모든 원거리 항해를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왜에 대한 보복전이나 혹여 명국이 육상으로 우리를 치러온다면, 우리는 해상으로 거꾸로 북경을 포격하여 자금성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대양해군을 이르는 말이니, 명심하여 준비하시오.”
“신명을 바쳐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이진이 자금성을 포격한다는 말에 낯색이 변한 이순신이었지만, 끝내는 군왕의 명을 쫓는 이순신의 답변이었다. 이순신마저도 명국이라 하면 절대 범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해 내심 서운한 이진이었다.
“넷째 말썽을 피는 항왜들은 붙들고 속 썩이지 말고, 전부 중앙으로 올려 보내시오. 다 요긴하게 쓸데가 있으니까. 여기서 하나 명심할 것은 그 대상자를 사전에 선정하여 놓았다가 축차적으로 올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자, 과인의 할 말은 다 했고, 공이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성상의 갚을 길 없는 은혜를 입은 소직, 신명을 바쳐 조선의 수군을, 인근의 으뜸으로 만들어 놓겠나이다. 전하!”
“옳거니! 내 말이 그 말이오. 일단 왜의 재침을 막는 것이 급선무지만, 그 후로는 원양 해군을 지향해야 된다는 말이지.”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예산은 지금과 같이 꾸준히 내릴 테니,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고 지금부터라도 내해 방어가 되었다 싶으면, 원양 해군 준비를 철저히 하시오.”
“신명을 받쳐 이행하겠사옵니다. 전하!”
이렇게 이순신의 수없는 다짐을 받자, 마냥 흡족한 이진이 계속하여 이순신에게 술을 권하니, 말 술 앞에 이순신도 이날은 대취하였다.
* * *
다음 날.
이진은 어전에서 신충일(申忠一)을 맞고 있었다.
조회가 파한 한가한 어전에는 특별히 광해는 물론, 모사 사인방도 이진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즉 송익필, 송한필 형제는 물론 최담령, 도사 지함두가 그들이었다.
부복하여 절을 끝낸 신충일을 보고 이진이 물었다.
“고산현감으로 재직 중이었다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고산 현(高山 縣)이라면 지금의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 비봉, 화산, 운주, 경천, 동상면 일대에 1914년까지 있었던 옛 고을 이름이었다.
“그대 같은 인재를 한낱 현감으로 썩히고 있다니 전부 사람 보는 눈들이 없음이야!”
탄식으로 신충일을 한껏 띄운 이진이 계속해서 그와 상대를 했다.
“여진 말을 좀 아는가?”
“여진뿐만 아니라 몽고, 명, 왜어 등도 조금씩은 다 할 줄 아옵니다. 전하!”
“하하하.......! 조금씩 한다는 것은 겸양이겠고. 헌데 그런 사람이 어찌 역관을 하지 않았는고?”
이진의 무심코 물은 말에 오히려 의아한 눈으로 잠시 이진을 바라보던 그가, 황급히 자신의 목을 한 번 쓰다듬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역관이라야 중인들이 하는 벼슬. 명국의 사절단에나 어쩌다 끼면, 돈냥이야 만지겠지만 양반으로서는 할 짓이 아닌가 합니다. 전하!”
‘이건 물건인데.........?’
하는 짓을 보니 이진의 앞에서도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말대꾸를 꼬박꼬박하는데, 배짱이 보통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그러니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도 과감하게 사위를 둘러보고 정탐을 했을 것이며, 원 역사에서 왜란 때는 금산 전투에서 슬며시 자리를 피해 파직되기도 한 인물이었다.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어려운 행동들이었다.
“과인이 특별히 네게 명할 것이 있다.”
“말씀만 하시옵소서. 전하!”
“건주위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만주 말이옵니까? 전하!”
“그렇다. 혜산 너머 장백여진을 시작으로 하여, 누루하치가 칸(汗)으로 있는 건주여진, 그리고 몽고, 여기에 야인들 중에서도 해서의 강성한 두 부락 즉 합달과 엽혁부, 그리고 귀로에는 동해여진을 들렸다 오는 여정이다.”
“무척 긴 여행이겠군요.”
“하하하........! 과인이 오늘 그대를 만나보니 마치 국초의 신숙주를 얻은 듯하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식견 천박하여 비할 바 못되오나,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하옵니다. 전하!”
천재 신숙주 또한 5개 국어에 능통한 명 외교관이었다.
“옳거니! 하하하........! 여봐라! 여기 주안상을 대령하도록 하라!”
“네이, 전하!”
“이야기가 길어질 것인 즉 과인의 말을 똑바로 듣고 그대로 행할 지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처음 장백여진을 방문하는 목적은 그곳의 큰 세 부족을 차례로 설득하여, 기존 국초에 행했던 그들의 귀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다시 진행하려 함이다. 물론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아국에 귀화하는 자나 부족은 그에 상응하는 벼슬과 살 토지 또한 교역의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느냐?”
“네, 전하!”
이때 한 옆에서 조용히 득고 있던 송익필이 말참견을 하였다.
“그렇게 되면, 전하! 궁극적으로 명국과 분란의 소지가 생기지 않겠사옵니까?”
“그들만 기미(覊縻)정책을 시행하라는 구절이 어디 대전회통에라도 나온다는 말이더냐? 아국도 이제 그들의 굴레와 고삐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야인들을 아우를 때야. 여기 있는 모두부터 과인의 말을 명심하고 실행하렸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어느 때보다도 눈에서 불을 뿜으며 뿜어대는 이진의 열변에 놀란 제 신하들이, 급급히 부복해 그의 화를 가라앉혔다.
“이는 장백 여진뿐만 아니라 건주 여진을 제외한 모든 야인에게 공통으로 적용할 과인의 정책이니라. 명심하고 그대로 시행할 지어다.”
“명심 봉행하겠나이다. 전하!”
“다음으로 건주여진에 가서는 과인의 국서를 전할 것이며, 모든 여정 내내 그들의 내부를 정탐하는 것을 잊지 말 것. 알겠나?”
“네, 전하!”
“또 몽고에 가면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을 것인즉 차례로 들리되, 그들이 같은 몽고족이지만, 우리로서는 상반된 정책을 취할 것인즉 특별히 명심하도록.”
“네, 전하!”
“하나를 우리의 동맹으로 끌어들여 우리와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한다면, 하나는 적의 수중으로 넘어가지 않게만 하는 회유정책에 그칠 것이니라.”
“네, 전하!”
“또 해서 여진의 합달과 엽혁부는 같은 해서여진에 속하지만, 서로 갈등이 있다. 해서 그들이 중국 상인들에게 공동으로 열던 개원시마저도 열지 못해, 이 이권을 현재 누루하치가 독점하고 있는 상태인즉, 이들에게 무기는 물론 여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들고 교역에 임하여, 단합도 시키고 아국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일세. 알아듣겠나?”
“명심 봉행하겠사옵니다. 전하!”
“여타 동해여진은 처음에 언급한 대로 귀화정책과 교역을 통하여 아국의 편으로 끌어들일 것.”
“네, 전하!”
“역정을 내셔도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전하!”
송익필의 말에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이를 승인하는 이진이었다.
“언급된 대부분의 정책들이 명국과 건주여진에 반하는 정책 같사옵니다. 큰 화가 미치지 않을 런지........?”
“물론 그렇다. 그래서 과인은 그들의 눈을 우리에게 못 돌리도록 내부에서 안 되면 외부에서라도 흔들 작정이다. 지금 그 계를 엮는 과정이고, 일부는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해도 과인이 아니다. 그 계를 한 번 들어보겠느냐?”
“네, 전하!”
정말 궁금한지 앉은 자들 모두가 눈을 빛내며 상체가 이진 앞으로 숙여졌다.
------------------------------------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후의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