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74화 (74/210)

< -- 74 회: 외교 첩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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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개국 이래 가장 골칫거리는 북로남왜(北虜南倭)다. 얼마전만해도 툭하면 자행되어 명의 황제부터 관리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젓던 이 일이 근래는 조금 주춤한 상태다. 이 일이 재현되는 것이다.”

“하옵시면 우리가 그 일을 지금 기획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전하!”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는 포로가 된 왜적 4만 5천이 있는데, 이들을 부리려니 여간 속을 썩이지 않는 모양이다. 해서 과인은 이순신 장군에게 명하길 그런 놈들은 모두 중앙으로 올려 보내도록 했다. 더 이상 그런 놈들 붙들고 속 끓이지 말고, 그런 놈들은 모두 그들이 우리에게 공짜로 보태준 왜선 250척 중 몇 척 떼어내, 명국 남부 해안가에 버리는 것이다.”

“하하하........! 그들이 곧 왜구가 되는 것이군요.”

“그렇다. 석년에 한 무리의 해적이 절강성의 상우현(上虞縣)에 상륙하였다. 이들은 상륙하자마자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살인과 약탈을 감행하였다. 이 해적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항주에서 절강 서쪽을 지나 안휘성 남쪽을 유린한 다음 남경에 육박하였다.”

이진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 후 이들은 또 다시 표양, 무석, 소주 등지에 상륙하여 절강, 안휘, 강소의 3개성을 유린하면서 80여일에 걸쳐 4천 명 이상을 살상한 다음에야 이 일단의 왜구들을 전멸 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들을 진압하고 나서 보니, 이들의 총 숫자가 100여명 밖에 안 되는 소수집단이라는 점에, 명 조정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이들의 잔악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의 극치를 이루었다 한다.”

“이 해적들은 젖먹이 어린아이들을 장대 끝에 매달고 펄펄 끓는 물을 끼얹는 등의 만행에, 어린아이들이 울부짖자 이를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질렀다 한다. 또 임신한 부인들을 잡으면 태아가 남자인가, 여아인가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걸고, 기어코 즉석에서 산부의 배를 갈라 확인하여, 이긴 자가 술을 실컷 먹는 등 차마 눈 뜨고는 지켜 볼 수 없는 만행을, 숫하게 저질렀다한다. 해서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임신부의 시체와 아이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다.”

“너무 잔인하군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의 만행보다도 이들의 수자가 고작 100여 명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축차적으로 말썽피우는 자들을 보내면 모르긴 몰라도 황제도 없는 명 조정은 아마 똥오줌 못 가릴 것이다.”

“황제가 없다니요, 전하?”

최담령의 물음에 씨익 웃은 이진이 말했다.

“최고급 정보에 의하면 명의 황제 만력제는 지금 3년째 태정 중이란다.”

“허허........!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 정도의 만행이 아니다. 사람보다는 주로 재물을 약탈하여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그들을 해안에 상륙 시킨 지휘자는 날짜와 장소를 정해 다시 그들을 데리러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 죽는 놈은 할 수 없고, 산 놈만 재물과 함께 데려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희가 데리고 살 여자들은 하나씩 죄다 꿰차고 돌아오려 하겠지.”

“그러나 살아 돌아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한두 번 당할지 몰라도 명 조정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대적인 군사들을 동원하여 토벌에 나설 것이다. 우리가 노리는 것으로, 이와 같은 명의 재정 낭비다. 명의 예산을 보면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북방에 주둔중인 명군의 물품비로, 전 예산의 절반이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주자는 것이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북로의 화 또한 조장하려 한다. 신충일의 이번 방문 목적이 그러하다 하겠다. 과인이 이 얘기를 들려주기 전에 먼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 잘 듣기 바란다.”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의 이야기는 이러 했다.

명 세종 주후총 때였다. 목종 융경 연간에 막남 몽골 서부에 총명하고 예쁜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역사상 유명한 인물인 셋째아씨(三娘子)이다. 긴중이라고 불리는 셋째아씨는 몽골서부의 윌라드칠라코드부조 두령의 딸인데, 그가 출중하고 예뻤으므로 막남 몽골의 알탄칸이 그를 빼앗아다가 아내로 삼았다. 몽골역사서에 그를 게트하툰이라고 불리는데, 게트란 몽골어로 3이란 뜻이고 하툰이란 아씨라는 뜻이었다.

이 셋째아씨가 권력 있는 아씨가 되는 이야기는 남편 알탄 칸과 명나라 조정의 마 시장 무역 회복 과정에서였다. 몽골은 예로부터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농업, 수공업 등이 낙후되어 한인과 물품을 교환해야 했는데, 정기적으로 명나라 조정이나 중원 백성들과 생활용품을 교환할 수 있었는데 이를 마시장이라 했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마 시장을 몽골 각 부락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융경 4년에 알탄 칸의 손자 바한나기가 명나라에 귀순하는 일이 생겼다. 이는 워낙 알탄 칸이 긴중의 어여쁜 용모를 보고 반한 나머지, 자신의 손자며느리로 책정된 여인을 강탈 한 것이다. 이 여인이 긴중이라는 셋째 아씨였던 것이다.

즉 바한나기의 처를 강탈한 것이다. 더 웃기는 일은 그 여인이 자신의 외손녀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튼 자신의 마누라를 빼앗긴데 분노한 손자 바한나기는 그대로 명나라로 달아나 귀순을 하고 말았다. 이때서야 아차한 알단 칸이, 명나라에서 자기 손자를 죽일까봐, 부랴부랴 협상을 개시했다.

즉 알단 칸은 명나라에 자신의 손자를 귀국시키는 것과 함께, 마 시장을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명 조정에서는 몽고로 달아난 조전 등 9명의 한족 병사들을 요구하는 협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조건을 보면 명 조정이 확연하게 저 자세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알단 칸이라는 인물이 석년에 북경 성 외곽까지 포위한 일이 있었다. 소위 저들의 말로 ‘경술(庚戌)의 변’이라 지칭하는 간담이 서늘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태원 지방에 침입하여 명나라 백성 20만 명을 살상하고, 가축 200만 마리를 약탈해간 전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러니 이런 저 자세로 협상에 임해, 명나라 조정이 마 시장을 개방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 명국과 몽골의 마 시장은 현재까지 개방되고 있고, 문제의 셋째 아씨는 알단 칸이 죽자, 황태기, 첼리케, 순의왕까지 3대를 걸쳐, 자식에서 자식으로 왕을 갈아 타가며 왕후로 지내고 있었다.

이 여인이야 말로 현 몽고의 실세로 마시장이 교란되지 못하도록, 마 시장 무역을 수호하고 있으며, 한족과 몽골족 두 민족의 우호적인 교류를 유지케 하고 있었다. 명으로부터 충순부인(忠順夫人)이라는 책호까지 받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몽고에는 이에 반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차하르부족(察哈爾部族) 이라고. 약 1만 호로 이루어진 부족이었다. 이들은 원래 명의 장가구(張家口) 북동 지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부족인데, 위의 세력에 쫓겨 지금은 흥안령(興安嶺) 동쪽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족이었다.

이 부족이야 말로 지금 몽골과 여진의 경계 지점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족으로, 양쪽 모두와 척을 지고 있는 부족이기도 했다. 이진은 이들을 적극 후원하여 양 세력을 견제하는 것은 물론, 치고 빠지는 전술로 북로의 화를 다시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마친 이진은 눈을 번뜩이며 신충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과인의 이야기를 잘 들었소?”

“네, 전하!”

“이 차하르 부족과 연맹을 맺되, 당장 움직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그들 간에 신뢰도 쌓여야 하고, 우리가 그들에게 무구며 의복, 식량 등 지원해 줄 것은 지원해주고, 반대급부로 그들의 말을 들여오는 등 점차 교류를 확대하여 신뢰를 쌓으려 하오. 해서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는 대로 상황을 봐가며 그들을 이용하자는 것이오. 그러니 과인의 취지를 잘 알아듣고 이에 맞게 그들과 일단은 결맹을 맺도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리고.........”

뜸을 들이며 좌중의 인물들을 휘둘러보던 이진의 시선이 돌연 최담령에게 멎었다.

“최 부군사가 왜의 일은 맡아주오.”

“네, 제가요?”

이진의 지목에 깜짝 놀라는 최담령이었다.

“과인은 그대의 담력과 지모를 잘 알고 있소. 하니 말썽꾸러기 항왜들을 부려 당장이라도, 이들을 왜의 전함으로 이끌고 가, 명국 남부에 떨구어 놓고 오오. 물론 이 과정에 이들을 통제할 우리의 군사도 내 줄 것이고, 군사의 대장으로는, 금군 중의 의연을 데리고 가시오. 그 역시 반골기질이 강한 사람이니 잘 해낼 것이오.”

이진이 말하는 의연은 승려의 신분으로  정여립과 함께 모반을 꾸미던 자로, 지금 겸사복의 무관으로 있는 자였다.

“혹시라도 그 항왜들이 명군에 잡혀 토설이라도 하는 날이면 큰 사달이 나지 않겠사옵니까? 전하!”

최담령의 물음에 이진이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왜의 전함에 실제 왜구이니 무슨 사달이 난단 말이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아국은 무조건 발뺌하고 볼 일이지요.”

“그래도 너무 위험부담이 크지 않겠사옵니까? 전하!”

“과인은 그렇게 보고 있질 않소. 지금 명국에는 남왜를 제압한 척계광 장군도 4년 전에 죽고 없고, 황제는 정무를 내팽개친 데다, 조정은 간신배들로 북적이니, 아마 감당이 되지 않으면, 결국 해금(解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오. 왜구가 설치는 것은 바다를 막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오. 무역선을 허용하면 장사의 이(利)를 위해 왜의 영주들부터 왜구를 단속하니, 왜구가 활동을 못 하게 되오. 우리 또한 교역의 이나 누리면 되는 것이오. 이렇게 다목적 포석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니. 과인의 명대로 행하오. 왜 자신이 없소?”

“아, 아니옵니다. 전하의 명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사옵니다. 전하!”

“과인은 최 부군사만 믿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최담령이 부복하여 명을 받들자 이진은 광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혼은 만주어와 몽골어에 능통한 자 네 명을 선발하여, 여기 있는 신충일과 함께 사신단을 꾸리도록 하라.”

“명 받자옵니다. 전하!”

“자, 지금부터는 누루하치에게 전할 국서의 초안을 잡을 테니, 송 군사는 붓을 드시오. 과인이 구술하리다.”

“네, 전하!”

이렇게 이진은 북방의 외교와 첩보전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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