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5 회: 개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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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함포전만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왜적을 일방적으로 두드려 모두 수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를 못했다. 신립을 필두로 육군 수뇌들의 항의에 수군만 지원해 줄 수가 없어 한정된 자원을 쪼개다 보니 분명 수군 지원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순신이 안행진을 명했을 때는 벌써 화약무기의 한계를 노정하고 있을 때였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조선 수군의 압도적 일방적 우세였다. 벌써 적의 전함 1/3과 병력 1/3을 바다에 수장시켰지만, 본격적인 전투는 화약무기가 다 떨어져가는 이제부터였다.
우지끈 뚝딱!
일방적으로 화력을 퍼붓던 거북선이 화약이 떨어지자, 적의 주력전투함인 세키부네(關船)에 돌격하여 휘저은 결과로 나는 소리였다. 말이야 거창하게 휘저었다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냥 옆을 스친 결과 나는 소리였다. 적의 노는 물론 선체의 일부가 부러지는 소리였던 것이다.
세키부네(關船)는 작은 중형의 주력 전투함으로,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앞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선수재가 특징이고, 보통 노는 30~60개 정도로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하나씩 젓는 그다지 큰 배는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선들은 대개 조선 군선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해전에서 참패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기간 중에 세키부네의 규모가 커져서 조선 조정에서 걱정하는 기록이 실록에 있기도 하다. 아무튼 세키부네는 바다의 관문(關門)인 해협을 지키는 배라는 뜻으로, 지방 영주 또는 해적들이 어선이나 상선에게서 통과세를 받거나 노략질하던 속도가 빠른 배에서 유래되었다.
두꺼운 나무기둥 및 적송 판재로 측면이 단단히 방호되는 판옥선과 달리, 일본의 군선은 측면이 반드시 목재로 방호되는 것은 아니어서 신쇼인 모형처럼 대나무 한 겹으로 측면을 가리거나 심지어 그런 것도 없이 천막으로 둘러쳐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판옥선이 메인 갑판 위에 추가로 설치된 단단한 상자 안에 격군과 전투원(사부(射夫)를 제외한 포수)들을 몰아넣어 보호하는 방식인 반면, 세키부네의 상부 구조물은 주로 적선에 건너가 백병전을 펼치기 위한 목적으로 발전했다.
이에 반해 판옥선이나 거북선(판옥선을 기본 구조로 개조한 것임)은 갑판을 2개가지고 있는 형태로, 외판이 두께 4치나 되는 두꺼운 적송 판으로 되어 있고, 갑판은 매우 넓은 편이어서 포를 유리한 데에 배치, 적중률을 높일 수 있고(고각변동에 유리) 병사들이 싸우기에도 유리했다.
또한 이층 구조의 판옥선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병사들이 높은 자리에서 적을 내려다보며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또 적이 접근해서 배 안에 뛰어들기 어렵게 되어 있었고, 활로 적을 사살하고 불화살을 쏘아 적선을 태워버리든가, 포탄을 사용하여 격침해버리는 식이기 때문에, 판옥선의 갑판이 넓고 높은 것은 명중률을 높이는데 유리했다.
아무튼 거북선의 한 노에 3~5명이 매달리는 대형 노에 한번 스치자 한두 명이 젓는 관선의 노는 우지끈 뚝딱 부러지기 일쑤였고, 측면 갑판 할 것 없이 약한 일본제 삼나무 판재라 부딪치기만 해도 관선은 쉽게 부서지고 터져나갔다.
노가 죄다 부러져 기동력을 상실한 배에 아군이 들며 날며 화살과 조총을 퍼붓자, 저들은 어떻게 하든 아군의 배로 기어들어와 저들의 장기인 백병전을 펼치려하나, 갑판 자체가 2층으로 높게 설치된 판옥선은 물론 거북선에는 아예 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떼로 몰려들자 일부는 아군의 판옥선으로 건너오는 자도 있는 게 현실이었다. 점점 이제 백병전으로 상황이 바뀌어가자 이순신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점점 양군의 교전이 치열해지며 대장선에도 왜놈 일부가 기어올라 설치기 시작할 때였다.
“장군님, 저기........!”
갑자기 다가온 이영남이 한 마디 부르더니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만 했다.
“교체한다!”
“네, 장군님!”
신이 난 이영남이 다시 한 번 달려갔다.
혹시 모를 경우의 수에 대비한 수기가 또 한 번 달라졌다. 여전히 대형 붉은 기는 나부끼고 있었지만, 그 밑으로 청색기 하나가 더 내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좌충우돌하던 전방의 거북선과 판옥선들이 측면 이동을 하고 그 앞으로 또 다른 대형이 나타났다
조선 수군 최후의 패인 경기 수사 원균과 황해수사 김억추가 지휘하는 경기, 황해수영의 수군들이었다. 기러기가 떼 지어 날 때는 선두를 유지하는 그룹이 서로 교대를 하며 북으로 북으로 날아, 저희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치와 같게 된 것이다.
아무리 날짐승이라지만 선두에 선 기러기들이 훨씬 더 많은 풍압에 직면할 것은 뻔한 노릇, 이렇게 피로를 느낄 때는 후미 열이 선두로 나서서 교체를 해줘가며, 날짐승도 제 고향에 안착하는 것이다.
얼결에 지금 원균이 안행진의 속성까지 제대로 이용하여 피로한 아군을 좌우로 물리게 하고 새 전선을 구축하니 조선군은 아연 활기가 돌고, 왜적들은 똥 십은 얼굴이 되어 씨부렸다.
“아놔, 저 시키들은 뭣미?”
“보면 몰라! 조선 수군 놈들이지.”
“이 시키가 지금 누굴 포경으로 알아, 어이가 없으니 하는 소리지.”
“됐으니까 떠들 동안에 한 방이라도 더 쏴!”
“아놔, 너 지금 전시라고 막가자는 거지?”
“언제 뒤질도 모르는데........ 꼽냐?”
“너 이리와 이 시키!”
쾅!
“뭣미?”
그러나 고참인지 상관인지는 후임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날아온 편전에 그의 눈은 벌써 흰자위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놔, 씨발놈~ 죄 받았고만. 컥!”
이번에는 고참인지 상관인지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어느새 조총의 납탄 한 알이 떠들던 자의 아가미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을 침략한 죄였다.
원래 원균과 김억추는 지금 등장할 게재가 아니었다. 전라 수영에서 4월13일 까지는 경상 우수영에 도착해, 혹시 전라도 쪽으로 이탈하는 적선들이 있으면 막으라는 밀명을 받은 이들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최근의 북변 사태 때 원래는 해임된 원균이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경기 수영에 발령할 장재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진은 눈물을 머금고 후방인 경기 수영에 원균을 보임하고 누누이 당부를 했다.
‘공명심에 일을 그르치지 말라!’
그러나 오늘 이진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수시로 탐망선을 띄워 근거리까지 접근해 있던 원균이 기어코 큰 공을 한 번 세우고자, 김억추를 꼬셔(?) 달려드니 일은 제대로 되었다.
쾅! 쾅! 쾅!
쿵쾅, 쿵쾅! 쾅! 쾅!
“방포하라!”
“방포하라!”
이미 공명심의 포로가 된 원균이 이순신과는 달리 벌써 목이 쉬어감에 따라, 새로운 전함들이 속속 일제 함포 사격을 퍼붓고, 목을 쉬기는 마찬가지인 고니시 유키나가도 까마귀 우는 소리를 내었다.
“돌격하라!”
“무조건 돌파해 육지로 상륙하라!”
저는 함포 사격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그것도 대형 전함인 아타케부네(安宅船) 삼층 높다란 누각에서 악을 쓰고 있었다.
왜군 또한 그의 명이 아니더라도 제 살기 위해서라도, 아니 독 안에 든 쥐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앞길을 틔워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이에 원균과 김억추 부대의 새로운 화력이 가세해 연이어 포격을 퍼붓고, 한발 비켜섰던 이순신의 경상좌우수영의 군대가 또한 새 힘을 얻어 함께 측면 공격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후미에서도 이억기가 거느린 양익의 전라좌우수영 군사들 또한 함께 달려드니, 얼키고 설키고 전투는 그야말로 한층 더 치열해졌다. 이들 또한 화약무기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제는 배와 배가 부딪치는 맨몸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찌 됐든 아군의 우세 속에 부산 앞바다는 불타는 전선들로 대낮을 방불케 하고, 그간 쏟아진 피와 반사된 불빛에 바다는 더욱 검붉은 빛을 띠어갔다. 그러면서도 조류에 일방적으로 선체를 맡긴 배처럼, 대세는 점점 육지 쪽으로 아군이나 저들이나 흘러가고 있었다. 부산진과 다대포 진이 있는 쪽이었다.
* * *
한편 중앙군 3개 사단은 이 시각 넓게 산개되어 있었다. 원래 부산진은 한 발만 내딛으면 바닷물이 발목에 찰랑거릴 정도로 해안에 근접해 축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성 규모도 5~600명 수용 규모로 옹색해 넓히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전투의 양상을 보니 적이 진으로만 쳐들어올 게재가 아니었다. 저들이 승리를 한다면 무리를 지어 성채를 부수고 지나려 했겠지만, 지금은 각개전투의 양상인지라 올라오는 족족 사살하는 게 아군에 유리할 듯 보였다.
이제 제장들이 모여 상의하길 부산진에서 다대포진까지 넓게 산개하여 올라오는 족족 살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너무 얇았다. 저들이 어찌 하나 둘만 기어들겠는가? 무리로 덤비면 돌파당할 우려가 현저했다. 이에 1사단장인 이일이 급히 동래성으로 파발을 띄우기에 이르렀다.
동래성은 동래성대로 인구가 밀집된 동래에 축성된 성으로, 지금 이곳은 인간으로 꽉 들이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간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동네 거주민들을 전부 끌어들인 데다 지방군 6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으니, 송곳 하나 꽂을 땅 하나 없다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여기에 적의 상륙을 눈으로 보고 뒤늦게 성안으로 들기를 원하는 인민들 또한 악다구니를 쓰니, 포화상태를 넘어 콩나물시루가 아니 또 하나의 전장 판이었다. 이때 중앙군 사단장 연명의 전황 설명과 함께 구원 요청에 김시민과 김천일이 머리를 맞대었다.
결국 김시민이 남아 인민 엉? 지금 인민이라는 단어를 갑자기 자주 쓰는데, 원래 이 당시에는 민족이니 국민이니 하는 소리도 없고, 오로지 있다면 백성과 인민이라는 말 뿐이었다. 그런 것을 동무라는 말과 함께 북쪽 아새끼들이 다 버려놔, 함부로 쓰기도 어려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김천일의 3개 사단이 빠져나와 3개 중앙군 후미를 든든하게 받치는데, 동래성에는 그 빈자리를 인민들이 채워 넣었다.
탕, 탕, 탕!
피융, 피융, 피융!“
벌써부터 육상으로 기어오르는 왜병들을 향해 개인 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중앙군에게 포 등의 화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으로 소수의 적을 향해 중화기를 남발할 필요도 아직은 없었고, 까딱하다가는 아군을 잡을 수도 있으므로 천지현황의 총통들이 대기 휴업 중이었다.
아무튼 중앙군은 조선의 주력군이자 최정예였다. 오늘날의 직업군인과 같은 존재이니, 이진이 섣불리 훈련시키고 녹봉을 지급할 리가 없었다. 비록 월 5말의 녹봉이었지만, 녹이나 타먹다가 전쟁일어나면 군모 벗고 도망가야지 하는 놈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추방되었다.
훈련도감의 기틀을 다진 이가 신립이다. 평소에도 500철기를 정예로 키워 니탕개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평소 훈련의 중요성을 모르고, 태만이 가르칠 리도 없으려니와, 그런 썩어빠진 정신으로 가혹할 정도의 훈련에 버텨내지를 못하고 다 쫓겨났던 것이다.
아무튼 점점 육전으로도 불이 옮겨 붙는 가운데, 해전은 가일층 더 치열해지고 있었다. 조선 수군의 우세 속에 전함들은 점점 육지 쪽으로 접근해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왜군이 육상으로 상륙하려 들자, 아군은 이들을 저지하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윽고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벌써 시각은 삼경으로 치닫고 있는 시간. 아군의 판옥선이 모래톱에 걸리는 것을 시작으로 저들의 함선들도 모래톱에 박혀 옴짝달싹 하지 못 하게 되었다.
비록 조선 수군이 육지 쪽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었지만 판옥선은 핑저선이라 밀물이 들어오면 바로 뜰 수 있는 배이고, 저들은 침저선이라 보다 수면이 높았지만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배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왜병들이 제 살길 찾아 바다로 뛰어내려 무조건 육상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산다는 식으로 육지 쪽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군의 7만 대군이 집결해 있으니, 가는 족족 조선의 육군에게 사살되었다.
이 모양을 본 왜병들이 이제 단체로 항거를 하며 육지 쪽으로 밀려갔다. 이 모양을 본 이순신 또한 추격중지 명령을 내리고 전장 정리에 들어갔다. 솔직히 백병전에서는 왜놈들에게 밀리기 때문에 더 이상 부하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때쯤에는 벌써 왜병 20만 중 10만 이상이 바다에 수장되거나 불귀의 객이 되었던지라 실제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왜병은 채 반이 안 되었다. 그것도 아직도 반 이상이 바다에 떠 있으니, 나머지 반만 잘 처리하면 육군이 잘 막아내리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아직도 전투에 여념이 없는 아군 전함들을 유심히 살피며 다음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바로 퇴로 봉쇄작전이었다. 이는 적을 한 놈도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필살의 각오이기도 했고, 아군이 먼 바다로 빠지면서 육군의 포가 이들을 때려주길 바라는 또 하나의 작전 구상이기도 했다.
이 작전명이 곧 하달되니 흑기를 매단 이순신의 대장선을 중심으로 아군의 전함들이 하나 둘 전열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먼 바다 쪽으로 항해를 하는 이순신의 전함들이었다.
* * *
아니나 다를까 이순신의 의도를 읽은 육상에서 맹폭이 다시 시작되어 아직도 바다에 떠서 갈팡질팡하는 왜의 전함들을 부수어 대기 시작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이순신은 다시 한 번 학이 날개를 펴는 형상을 취하게 하여, 적을 조선의 내해(內海)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옭죄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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