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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64화 (64/210)

< -- 64 회: 개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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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은 오늘에 대비하여 예비하여 둔 것이 있었다. 면갑이 그것이었다.

면포를 30겹 누빈 것으로 화살은 물론 오늘날 시험해 봐도 총탄도 막을 수 있는 방탄복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철릭을 받쳐 입고 상방보검을 찼다. 또한 머리에는 전립(戰笠)을 썼다.

우리가 사또 하면 생각하는 모자가 바로 전립이다. 전립은 민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선시대 군모라고 할 수 있었다. 전립에 관해서 사람들의 인식은 대체로 ‘쓰나마나한 별 볼 일 없는 모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여러 서적들에서도 그 방어율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립을 다른 말로 모립(毛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립을 만들 때 짐승털이나 돼지의 털을 짓이겨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에는 영조 때 만든 전립의 성능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화살이나 총알이 능히 뚫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것으로 보아서 전립의 방어율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기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이렇게 되니 이진은 마치 제대로 복장을 갖춘 조선시대 무관의 모습이었다. 이는 이진이 이미지 재고를 위해 연출한 것이었다. 현세처럼 미사일이 밤하늘을 날아가 마치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전쟁 모습을 직접 TV를 통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자신의 복장을 보고 전쟁을 실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였다.

오늘 따라 어좌에 앉은 것이 아니라 우뚝 서서 편전으로 들어오는 제 대신들을 일일이 쏘아보고 있는 이진의 모습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위엄이 넘쳐났다. 그런 모습으로 마지막 하나 남은 정원이 입장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제 신하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이진이 모두 착석하자, 장내는 그야말로 정밀했다.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엄숙한 어전에 이진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과인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소. 어제 신시를 기해 왜적 20만이 떼를 지어 부산포로 침략을 했다는 것이오. 하니 공경들은 어찌하면 왜적을 조기에 격퇴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만 논하시오.”

“정군(正軍), 보인(保人)할 것 없이 소집하여 각 지방의 방어에 투입하시옵고, 격문(檄文)을 돌려 양반들을 떨쳐 일어나게 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어집니다. 전하!”

좌의정 성혼의 말에 이진이 여전히 묵직한 음성으로 답했다.

“정군은 이미 소집되어 각 전선에 투입한지 오래요. 좌상의 말대로 보인 전체를 비상소집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함은 물론 각 성에 주둔하여 총력 방어에 임해야 할 것이오. 하고 양반들에게도 격문을 발송해 자신들이 거느린 사노비 등으로 의병(義兵) 활동을 하도록 독려하시오. 물론 조보가 이 부분에서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고 과인이 기쁜 소식 한 가지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소.”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은 다시 한 번 좌중을 세세히 살핀 후 입을 떼었다.

“과인이 천기를 헤아린 바, 오늘의 일을 미리 예견하고 대처한 바 있소. 이미 얼마 전부터 저들의 군대가 대마도에 상륙해 있을 것을 안 과인의 지시로, 저들을 우리의 장한 특공대가 급습한 바, 적의 병선 200척을 단 100명이 폭침시킨 쾌거가 있었소. 이 모두 자원한 이들로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사했고, 노비출신이었소.”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해서 과인은 그들 식구 모두에게 양반 직첩을 내리는 한편, 은전 100냥씩을 하사해 의식주 해결에 부족함이 없도록 조처했소. 이와 같이 앞으로 금번 전란에서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신분 여하를 불문하고 위와 같이 할 것인즉, 이를 널리 알리도록 하오. 하고 이럴 때일수록 도성의 치안 방비를 엄히 하여 준동하는 자가 없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하고 과인은 당장이라도 전선으로 달려가고 싶으나, 일국의 지존으로서 함부로 경거망동 할 수도 없는 노릇. 최악의 경우 도성을 베고 누워 죽는 한이 있더라도, 파천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를 온 나라에 백성에게 알려, 앉은 그 자리에서 직분에 충실할 것이며, 한 점 동요 없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지금부터 백관은 제 위치로 가 맡은 임무에 보다 충실할 것이며, 누란의 위기를 맞아 밤낮이 있을 수 없으니 알아서들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시종 이진의 위엄 앞에서 앵무새가 되었다가 분분히 흩어지는 제 대신들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진의 명에 의해 전내로 들어오는 자들이 있으니, 경기, 황해 절도사인 김여물과 고언백이 그들이었다. 또한 어영대장 곽재우를 비롯한 금군의 수뇌부인 김덕령 그리고 홍계남 마저 일제히 달려와 이진의 면전에 부복해 있었다.

“모두 일어들 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종전과 달리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이진이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두 단병사는 한양 외곽 방어에 면밀을 기하고, 금군은 궐내를 철통같이 방어하여 일절 잡인의 범궐이 없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그들마저 내보낸 이진은 묵묵히 앉아 앞으로의 전황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 * *

둥 둥 둥!

전고소리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순신이 거느린 600여척의 전함과 약 5만의 수군이 대규모 왜적을 맞아 전열을 정비해 앞으로 항진을 개시했다.

어느 진형으로도 변할 수 있고 가운데 위치한 대장선 호위에도 뛰어난 어린진으로,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중첩되어 항진하던 대형이, 좀 더 빨라지는 전고 소리와 수기의 색깔이 변함에 따라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곧 학(鶴)이 날개를 펼친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사방 어디로 그 독침을 쏠지 모르는 마름모 꼴 능형진(菱形陳)으로, 중앙에서 보호를 받던 대장선의 고시니 유키나가는 광오한 웃음을 터트렸다.

“앗 하하하.........! 병법의 병(兵) 자도 모르는 자로고! 선봉을 두터이 하여도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없거늘, 엷게 저며 어쩌자는 것인지........ 쯧쯧........! 게다가 대장선이라는 것이 벌써부터 꼬리를 말고 뒤로 후퇴하고 있지 않은가! 우 하하하..........!”

“적을 너무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장군!”

“잘난 체 하지 마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수하 장수의 충고를 일축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돌연 표정을 엄숙히 굳혀 일갈했다.

“우리는 추행진(誰行陣)으로 곧장 돌격한다! 마치 쐐기가 대나무를 쪼개 듯 파죽지세로 적의 종심을 돌파해 대장선을 잡고, 그대로 육지로 상륙한다! 돌격개시!”

“돌격개시!”

부하들의 복명과 함께 전고소리가 급격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결코 물러 설 수 없는 피아간의 혈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둥 둥 둥!

둥둥둥 둥둥둥!

양측의 전고소리 드높은 가운데 마침내 조선 수군이 펼친 커다란 그물 안으로 적선이 뛰어 들었다. 그러나 그 기세는 사납고 놀라웠다. 애초부터 조선수군보다는 빠른 배인데다, 동풍의 영향으로 그들의 항진 속도는 조선 수군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게다가 선두는 뾰족하게, 뒤로 갈수록 두터워지는 쐐기 모양의 돌진 또한 사나운 기세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반원형으로 넓게 포위망을 구축한 조선 수군도 이들을 향해 점점 속도를 높여 달려들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적의 대장선을 잡을 수 있다. 힘을 내라, 힘을 내!”

고니시 유키나가의 고함처럼 이순신의 대장선과 적의 선봉과는 현격히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순신이 곁의 판관 이영남에게 물었다.

“사정거리에 들지 않았는가?”

“곧 들 것 같사옵니다. 장군님!”

이순신의 인품에 반해 그의 손발을 자처하길 얼마! 빠른 속도로 승진한 이영남의 분석 또한 맞았다.

“지금이다. 전군에게 방포 명령을 내려라!”

“네, 장군님!”

“방포하라!”

“방포하라!”

이영남의 명에 기수와 고수가 복창하며 붉은 기를 올리고, 전고는 더욱 급격하게 뛰놀기 시작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200년이나 앞선 조선의 함포사격이 일제히 개시된 것이다.

펑 펑 펑!

쾅 광 쾅!

천지현황 따질 것 없이 각종 조선의 포들이 일제히 섬광을 작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정거리 천 보(1.8km)가 넘는 천자총통이 아니더라도, 이미 오백 보 내에든 세키부네들이 함포를 맞고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기우뚱대기 시작했다.

아군의 함포에서 토해내는 검은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수십 발의 신기전 세례는, 선두에서 맹추격전을 벌이던 안택선들이 기웅뚱대며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우와, 저게 뭐냐? 벌써 포가 날아오는 것이냐?”

“뿐만 아닙니다. 양쪽에서 일제히 포격합니다. 독 안에 쥐 꼴이 되었습니다. 장군!”

“누가 몰라! 입 다물고 있어!”

부화를 지르는 오무라의 보고를 일언지하에 틀어막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적을 너무 깔 본 느낌을 금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선두를 맹렬히 추격하여 사정거리 안에 넣었다 싶은 순간, 대장선 뒤에서 돌연 거북 형상에 용머리를 한 괴이한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입에서는 누런 연기와 불까지 뿜어내는데 마치 지옥의 나찰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그 괴기한 것이 불만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제히 불꽃마저 피워 올리는데, 그때마다 아군의 배에 구멍이 나거나 화재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생각은 한가한 면이 있었다. 그 시간 적의 측면 공격에 나선 전라좌우수영의 전함에서도 계속해서 함포공격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수백발의 불화살이 날아들어 아군의 배를 화염에 휩싸이게 하고 있는 것을 채 보지 못한 까닭이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이순신이 높다란 대장선에서 묵묵히 전황을 주시하는데 반해, 이영남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독려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철제 거치대까지 아예 달려있는 호준포가 불을 뿜는가 싶더니, 화차에 실린 수십 발의 신기전이 적선으로 날아가고, 질세라 승자총통 또한 불을 뿜고, 대완구에서 발사한 비격진천뢰마저 적선으로 날아들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안택선 하나가 공중분해 되어 하늘로 비산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또 궁수와 조총수들도 아직 사정거리에 들지도 않았건만 덩달아 탕탕거리고 조총을 쏘고 화살을 날렸다. 이를 보다 못한 이영남이 화살을 아끼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니지만 쉽게 통제될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다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혀 제정신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조련을 했다지만 실제 전장에 임한 것은 처음이니, 그 공포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줌이, 똥이 마렵다고 느끼지만 나중에는, 바지에 오줌을 지리는지 똥을 싸는지 그것을 개의할 놈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불꽃과 포탄이 작렬하고 비명 소리 포성소리 천지간에 아득한데, 피륙의 상처 정도는 아픈지도 모르고 미친 놈 널뛰듯 광분 상태에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상황보다는 전체 전황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던 이순신이 어느새 곁에 와 헉헉거리고 있는 이영남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안행진(雁行陣)으로.”

“안행진으로!”

이영남이 복창하며 또 뛰어가지만 이순신의 눈은 마치 무심 그 자체였다. 사극에서 보면 장수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만 이순신쯤의 위치가 되면 전혀 그럴 일이 없었다. 그렇게 연기를 하는 놈은 다 오버액션이다.

아무튼 이순신의 명에 의해 조선 수군의 전체 진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뒤로 물러나던 판옥선들이 일제히 선회를 시작한 것이다. 거의 제자리에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본의 안택선은 배 밑이 뾰족해 선회반경이 큰 반면, 우리의 판옥선은 밑이 평평하여 제자리 선회능력이 뛰어난 까닭이었다.

아무튼 이에 반원으로 적을 가두고 포위 공격하던 양익이 왜선을 추격하며 포격전을 전개하면서도 더욱 속도를 높여 이제 팔자(八) 자 형의 공격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적을 쫓던 안택선의 하나.

쾅!

“이게 뭣미?”

“웬 쇠솥? 쇠 박?”

‘비격진천뢰다. 이놈들아!’

이를 들었다면 가르쳐주고 싶은 조선 수병의 일갈이었다.

쾅!

“이건 또 뭣미?”

“통나무 화살?”

통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만든 앞에 철갑 표피를 씌운 장군전을 보고, 묻고 답하는 왜병들의 모습이었다.

“우와, 배에 구멍이 뚫렸다. 물이 샌다, 물이 새!”

“틀어막아 자식아! 안 되면 네 몸이라도 던져 막아!”

“네가 막아, 개 세이..........”

콰, 콰, 쾅!

언제 죽을지 모를 전장이라고 상관에게 꼬장을 부리던 왜병이 미처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육신이 갈갈이 찢긴 것은 물론, 눈을 부릅뜨던 놈조차도 피륙이 되어 흩어지는 그 순간. 배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연출하고 있었다.

어느새 부산포 앞바다는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이들의 색채를 더욱 화려하고 극명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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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늘 즐겁고 유쾌한 날들 되세요!^^

후의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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