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51화 (51/210)

< -- 51 회: 간신들을 모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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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거 열하루 째.

이진은 마침내 칩거를 깨고 당당히 창덕궁 맞은편에 있는 비변사로 향했다. 마침내 이진이 비변사에 당도하여 어좌에 정좌하자, 제 신하들이 일제히 절을 하고 품계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았다.

잠시 무겁게 침묵을 유지하던 이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과인이 지난번 언명한 대로 앞으로 군국기무는 모두 이 비상회의를 상설화해 논할 것이나,

지금까지도 비변사가 존재했지만 과인이 이 회의를 주재한 적은 오늘이 처음이 아닌가 하오. 이 회의가 중요해진 만큼 그동안 궐원이었던 인원도 채워 넣었고, 새로 임명된 사람도 있소. 서로 구면도 있고 낯선 사람도 있을 것인즉 새로 임명된 사람에 한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소. 먼저 신규 임명자의 명단부터 발표하겠소. 도승지 발표해주시오.”

“네, 전하!”

이진의 명을 받아 도승지 이항복이 손에 쥐고 있던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지변사재상에 김귀영, 홍여순, 이일.

유사당상에 고경명, 김천일, 김시민.

무비사 낭청을 포함하여 새로 임명된 10인의 낭청을 발표하겠습니다.

무비사낭청에 박승종, 낭청에 이이첨, 윤인, 이인경, 한찬남, 황진, 고언백, 박광옥, 최경회, 정문부 이상입니다.”

위의 발표자 중 모두 소개가 되었는데, 네 명이 빠져있었다. 황진은 지난번에 통신사를 수행했던 선전관 출신의 무관이었다. 나머지 고언백, 박광옥, 최경회, 정문부 등은 의병장 출신이거나, 그에 준한 무부로 임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자들로 낭청을 구성한 것이다.

이어 이진은 지변사재상 김귀영부터 차례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자 본격적인 비변사 첫날 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다.

“먼저 과인은 오늘 회의를 주재함에 있어서, 회의의 효율을 기하기 위해 의사봉 제도를 도입하려 하오. 준비한 것을 가져오너라.”

이진의 명에 김 개똥이 들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 장방형의 탁자 위에 단정히 놓았다. 이진은 그 중 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의사봉으로 세 번을 친 안건은 가결된 것이오. 하니 더 이상 그 안건에 대해서는 재론하지 않기를 바라오. 이는 기존 과인이 말한 대로 회의의 효율성을 기하고자 하는 것이니, 꼭 지켜주기를 바라오. 알겠소?”

“네, 전하!”

‘대답들은 냉큼냉큼 잘 한다. 어디 지켜지나 보자.’

내심 중얼거리며 이진은 첫 안건을 상정했다.

“우선 비변사의 구성인원부터 일부 개정하겠소. 개성유수와 교동 유수는 회의에 참석하려면 거리가 너무 멀어 번거로우므로 이들을 배제하겠소. 대신 6판서 중 형조, 공조판서가 제외되었다 말았다하는데, 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6판서는 전원 참석하는 것으로 하겠소. 그리고 나머지 한성판윤, 훈련원 지사, 내금위장 등은 당연직으로 계속 회의에 참석토록 할 것이오. 이 외에 육 승지 또한 과인의 명령을 출납하는 관계로 이제 당연직에 포함시키겠소. 하고 훈련원을 장차 더 확대 개편하기 위해 훈련도감으로 개칭하겠소. 이의 있소?”

“..........!”

서로 잠시 생각하나 큰 무리가 없었고, 6판서가 모두 참석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지 반론이 없었다.

“그럼 통과 된 것으로 하겠소.”

이진은 통과 의례로 의사봉 세 번을 두드렸다. 속으로 별짓 다 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진이었다.

“다음으로 만약 왜구가 침략을 해온다면 당연히 일차 저지선은 바다가 될 것이오. 해서 과인은 수군의 중요성을 감안해, 하삼도수군의 명령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신설하는 한편, 그 직제에 이순신을 보임했소. 이의 있는 사람은 발언하시오.”

“하오면 기존 삼도의 좌우수사가 그의 명을 따르는 것이옵니까?”

“그렇소!”

병판 정언신의 질문에 가볍게 대답하는 이진이었다.

“이견 있는 사람 없소?”

서로 눈치를 보나 발언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칩거 열흘의 효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들 딴에는 어린 주상이 또 삐쳐서 정무를 팽개치면 어쩌나 하는 조심성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니면 저희들 손해 보는 일 없으니, 가만히 있는 지도.......

“그럼, 가결된 것으로 하겠소!”

이진은 의사봉을 번쩍 들어 세 번을 탕탕 내리쳤다.

“다음은 안건으로는 지난번에 논의되다만 선무군관 제에 대해 다시 부의하겠소. 지난번 과인이 인구 비례에 의거해 뽑을 인원까지 각도에 할당한 바 있으나, 요는 그들에게 유인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오. 그 자식들을 군역에서 면제해주는 것은 다음 대의 군 자원 감소를 우려해, 다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하나, 아직 묘책이 없어 통과되지 않은 안건이오. 묘안들 있으면 발언하시오.”

“.........”

잠시 서로 눈치를 보나 발언하는 사람이 없자 이조판서 정인홍이 나섰다.

“고려 시대의 2군(二軍) 6위(六衛)의 말단 벼슬로는 정9품의 위(尉)와 품외(品外)인 대정(隊正)이 있었고, 조선 건국 초에는 위(尉)와 정(正)이 각각 정9품과 종9품으로 규정되었는데, 태조 3년에 이르러 이들이 각각 대장(隊長)과 대부(隊副)로 개칭되었사옵니다.

그러나 조선 초에 반포된 관제에는 서반(西班)의 경우 8품까지만 있고, 9품의 관계(官階)가 없었으므로 대장과 대부는 정식 품관이 아니라 유외관(流外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세종 18년에 정, 종9품의 관계(官階)를 새로이 더 설치하여, 9품의 무관직으로 사용(司勇)을 별도 설치함으로써, 사용은 정9품관으로 고정하게 되었습니다.

해서 지금은 고려시대에 사용하던 위(尉)와 정(正)이 유명무실하게 된 바, 품 외로 명예직인 대정(隊正)을 하사하오시면, 그들 또한 명예롭지 않겠사옵니까? 하면 다투어 군문에 들것으로 사료되어 집니다. 전하!”

자세히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래서 이진은 그의 의미를 새기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판의 말인즉슨 종9품 밑으로 고려시대 사용하던 관직 명칭인 ‘대정(隊正)’이라는 품계를 신설하여 선무군관들에 주잔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전하! 지원자 대부분이 부농일 것이니, 이제 밥이 그립지는 않고, 명예가 그리울지니, 그대로 행함이 좋을 듯하옵니다. 전하!”

“좋은 제안이오. 그대로 행하되, 이들의 취지가 하위군관을 확보하는 것인즉, 이들에게 초관(哨官) 지휘를 주어, 같이 향리에서 선발하게 될 대총(大摠) 이하를 거느리게 하는 것이오. 어떻소?”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그럼, 통과된 것으로 하겠소.”

또 한 번 의사봉을 두드리며 이진은 너무 순조롭게 일이 풀리자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은 지난번에 매듭짓지 못 한 군령 문제와 병농일치제 하에서 지방군 구성과 개인병기 조달에 관한 문제요. 먼저 군령권 단일화 문제부터 논의합시다. 과인이 먼저 제안을 하리다.”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이 말을 이어나갔다.

“과인의 제안은 한 마디로 전담영장제(全擔營將制)를 실시하자는 것이오.”

“이때 전담영장(全擔營將)은 무관 출신으로 임명하되 평소에는 군사훈련만 전담하는 관리요. 전담영장은 겨울철 농한기 한 달 동안 담당 지방군을 소집하여, 진법훈련과 포술, 검술 창술, 궁술 등 다양한 무예훈련을 실시하고, 매년 1회씩 도 전체의 병력을 소집하여 진법훈련도 시행하는 것이오.”

“이러한 전담영장제가 실시되면 그전까지 지방의 수령이 장악했던 일부의 행정권과 군사권이 분리되어야 하오. 즉, 수령은 병력의 소집과 동원만을 담당하고, 군사훈련은 영장이 전담하게 되는 것이오. 또한 전시에는 각 군 지휘관이 전담하여 전쟁에 임할 것인즉, 전시에도 지방의 수령은 병력 통제권은 없고, 단 동원책임만 지면되오. 어떻소?”

“하오나 전하........!”

이때였다. 새로 지변사재상에 임명된 이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노성을 질렀다.

“그럼, 훈련 안 된 오합지졸을 끌고나가 전쟁을 하라는 거요. 뭐요? 주상전하의 말씀은 훈련 시와 전시에만 군이 통솔할 수 있다하지 않소. 이마저 양보 않으면 지금 다 같이 함께 죽자는 것으로 알아듣겠소.”

“지변재상님의 말이 옳사옵니다. 평소에도 통솔권을 갖자는 것도 아니고, 훈련과 전시에만 한한다지 않소. 이마저 안 들어주면 공멸하자는 것이니,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직 보위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오. 하니 역신으로 몰아 최소 유배형 내지는 가문을 적몰해야 할 것이옵니다. 전하!”

낭청에 적을 올린 말단 참봉 이이첨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설치자, 일부는 안색이 핼쓱하게 변하고 일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어디서 굴러온 물건인데, 이 자리가 어느 자리라고 설치는가? 여기는 낭청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정철의 삿대질과 고함에 느긋하게 웃은 이진이 말했다.

“아, 과인이 잠시 깜박했소. 저들이야 말로 비록 당하관이지만, 전적으로 8도의 군사실무를 담당하는 관리로 의당히 발언권이 있소. 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함은, 나라 차원에서도 인재를 모아놓고 사장시키는 것인즉, 금번회의부터는 어느 누구라도 하시라도 발언을 해도 상관없소. 이의 없는 것으로 알겠소.”

말이 끝나자마자 이진은 왕의 직권으로 의사봉 세 번을 쾅쾅 두드려 이의제기를 원천 봉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판 정인홍이 팔을 걷어붙였다.

“하오나 저런 말단까지 발언기회를 주신다함은,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갈 것인즉, 원만한 회의 진행이 어렵게 될 것으로 사료되어집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기존의 대신들이 일제히 부복하는데 명아주 지팡이를 자랑스럽게 짚고 일어나는 이 있으니 김귀영 노 대신이었다.

“방금 전하께옵서, 한 가지 규칙을 제정한 것으로 아오. 의사봉을 두드린 이상 그것은 가결된 안이니 이의 제기를 하여 시간을 끌지 말라 하시지 않으셨소? 곧 관속에 들어갈 늙은이이나, 신하가 왕명을 거역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어디서 배운 법도인지 모르나 잘들 배우셨소.”

“합당 안 이유가 있으면 이의 제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정철의 반론에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또 하나의 지변사재상 홍여순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백성들의 언로도 보장하기 위해 신문고 제도도 운영했거늘, 담당 실무자의 의견이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아예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은 어느 나라 법도요. 거기에다가 주상전하의 특별한 하명이 계셨거늘, 나라의 녹을 먹는 조선의 최고위 관리들이 이래서야 되는 거요. 당장 내입부터 막아보시오.”

간특하다고 몇 번을 파직당한 홍여순마저 나서 삿대질을 하자, 뜨악한 얼굴의 제 대신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직정적인 성격인 예판 정철이 노성을 터트렸다.

“전하! 저런 간특한 자를 지변사재상에 임명하심은, 이는 나라에 망조가 드는 일이오니, 당직 파직하옵소서! 전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력시위인지 정철은 이마가 깨지거나 말거나 마루바닥에 이마를 짓찧었다.

“예판 대감 말을 삼가시오. 말이라면 다 말인 줄 아오. 하늘이 이 세상에 사람을 냄은, 다 쓸모가 있어서 이거늘, 너무 지나치지 않소?”

한 마디 쏘아부치고 자리에  앉는 자 행동대장 윤인이었다.

“그만, 그만.........!”

탁자를 쾅쾅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이진이 점잖게 말했다.

“여기가 저잣거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들이오. 누가 뭐라 해도 저들의 발언을 규제할 수는 없소. 하니 종전 안건에 대한 가부나 말하시오.”

이때 도승지 이항복이 소리 없이 일어나더니 발언을 시작했다.

“어리석은 소신이 생각하기에도 주상전하의 말씀은 각 지방 수령들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 같소이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반대만 일삼다가는, 제일 먼저 우리 설자리부터가 없어질 것이오. 하니 합리적인 안에는 자신의 권리도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올바른 도리인줄 아뢰오.”

“ㅤㅇㅗㅎ소! 도승지의 말이 백번 옳소이다!”

이항복의 말이 끝나자마자 충성 경쟁을 하듯 이번에는 또 하나의 행동대장 한찬남이 소리 질러 찬성을 표했다.

“저런, 저런.........!”

정철의 삿대질에 이진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만들 하고 이 안은 통과된 것으로 하겠소.”

또 한 번 의사봉을 두드려 제 대신들이야 볼이 붓거나 말거나, 결론을 내린 이진은 다음 안건을 개진했다. 이번 안건이야 말로, 이 자리에 있는 누구의 머리 하나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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