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0 회: 간신들을 모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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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이진이 칩거한지 일 순(旬)째 되는 날이었다.
열흘 동안 여러 대신들은 지치도 않는지 이진에게 경연과 정사에 임할 것을 매일 같이 독촉했다. 그러나 오불관언 오늘도 이진은 그의 침소에서 뜻밖의 두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곧 경상수군절도사 이순신과 전라수군절도사 이일이 그들이었다.
“원행에 고생들이 많았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밤을 낮 삼아 달려왔사오나, 늦은 죄를 청하옵니다. 전하!”
부복하여 아뢰는 이순신의 말에 빙그레 웃은 이진이 넉넉한 웃음으로 말했다.
“고개를 들라!”
“네, 전하!”
“해풍과 모래바람을 맞으며 전쟁준비에 고생들 많았소. 다름이 아니라 과인이 둘을 동시에 부른 것은 한 사람은 중앙 정계에 남기기 위함이고, 또 한 사람은 좀 더 직제를 높여 그의 주관 하에 전쟁 준비에 더 철저를 기하기 위함이오.”
이렇게 두 사람의 부른 용건을 말한 이진의 시선이 먼저 향한 사람은 이일이었다.
“그대 같이 뛰어난 장군을 일선에 투입치 못하고 중앙 정계로 불러 올려야하는 과인의 마음도 답답하오만, 문신들의 세가 너무 강하여 도통 전비마련을 할 수 없으니, 어쩌겠소. 과인이 경을 지변사재상으로 임명할 테니, 경은 적극 무인의 입장을 대변하오.”
“신 명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전하!”
부복한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이진의 마음은 쓰렸다. 누가 뭐래도 작금 조선에서 최고의 무장을 꼽으라면 이일과 신립이었다. 그나마 빈약한 무의 자원을 전쟁준비에 활용치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무신들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왕조실록에 보면, 보고도 없이 무단으로 부하를 참했다고 여러 번 그의 치죄를 청하는 상소가 올라온다. 그만큼 우락부락한 면모도 있는 이일이었기에 조정 내에서도 강경한 발언을 기대하고 그를 부른 것이다.
“경에게 할 말은 다 했으니 비변사에서 보도록 하고 이만 나가보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절하고 곧 물러나는 이일을 눈으로 전송한 이진이 곧 이순신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종전 과인의 말 들었지요?”
“네, 하오나.........?”
“과인의 말을 잠시 들어보오. 과인은 그대를 약속대로 조금은 빠르지만 삼도수군통제사로 보임하려 하오. 이 직제가 없다는 것은 과인도 잘 알고 있소. 이제 비변사 회의가 열리면 첫 안건으로 이 직제를 신설하려 함이니 그런 줄 알고, 임무에 충실을 기하면 되오.”
삼도수군통제사는 직제는 임란도중에 생긴 직제였다.
“하오면 소신이 충청, 전라, 경상수군을 총 지휘하는 것이옵니까? 전하?”
“그렇소. 하고 과인이 미리 준비한 밀계가 있소. 앞으로 삼년이 채 안 남았은즉 임진년이 되거든 열어보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이진은 또 다시 부복해 감사를 표하는 이순신을 내려다보다가 뒤로 손을 내밀었다. 이에 송익필이 급히 다가와 금낭 한 개를 이진에게 전했다.
“여기 있소. 잘 간직했다가 꼭 임진년이 되는 해에 열어보도록 하오. 그곳에는 천기(天機)가 들어있은즉 함부로 열어보면 안 되오.”
“네, 전하!”
“하고, 거북선은 좀 만들었소?”
이진의 말에 해연히 놀라 눈이 커지는 이순신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전선도 충분히 확보하여 전선이 부족하여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오. 앞으로 화폐가 발행되어 나라의 살림이 펴면, 제1차적으로 군기시와 수군을 지원할 것인즉, 그리 알고 더 열심히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과인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오.”
“소직이 통제사로 옮겨가게 되면 본영은 어디에다 설치하며, 경상좌수사로는 누구를 임명하옵니까? 전하!”
“아무래도 삼군을 통제하려면 중앙에 위치하는 것이 좋으니, 본영을 전라좌수영에 설치하고, 또 임진년 정월 초하루 날이 밝으면 금낭을 열어보는 것은 물론 본영도 경상좌수영으로 옮기도록 하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하고, 인사야 어느 것 하나 국왕의 고유 권한 아닌 것이 없으나, 특별히 과인은 그대의 혜안을 믿거나와, 신임하는 자 중에서 하나를 선임하여 그 자리에 보임토록 하오.”
“전하! 어리석고 못난 무부를 이렇게 어여삐 여기시니, 신 이순신 분시가 된들 전하의 은혜를 어찌 잊으오리까! 죽는 그날까지 전하와 사직을 보위하는데 신명을 바치겠나이다. 전하! 흑흑흑.........!”
끝내 오열을 터트리고 마는 이순신이었다.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는 이진이었다.
* * *
이순신이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등대했다.
“어서 오오!”
“전하........! 미거한 신 전하의 어지신 부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나이다. 전하!”
“잘들 왔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치하한 이진이 곧 수라상궁을 불러 주안상을 봐오도록 명했다. 이번에 등대한 인물들은 유사당상에 임명될 자들이었다. 고경명, 김천일, 김시민이 그들이었다.
“과인이 그대들은 부른 것은 비록 과인의 몸 멀리 있으나, 그대들의 충절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날로 정세 어지러워지는 바, 해서 삼 인 모두를 비변사의 유사당상으로 보임하려니와, 그 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한 점 그릇됨이 없도록 하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유사당상이면 첫째로 실무를 담당할 것이나, 사직의 안위를 위해서는 과감히 발언도 할 것은 과인은 기대한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곧 주안상이 들어오고 이각 동안 이들과 술잔을 나눈 이진은 곧 이들을 내보내고 새로운 인물들을 맞았다. 이십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었다. 곧 의병장으로 혁혁한 명성을 떨친 김덕령과 그의 별장 최담령 또한 인물은 김덕령의 처남 이인경이 그들이었다.
“신 백면 김덕령 전하의 어지신 부름 받고 밤길도와 달려왔사옵니다. 전하!”
“전하! 백면 최담령 용안을 우러러 뵐 기회를 주심에, 일생일대의 광영이 아닌가 하옵니다.”
“신 이인경 성상의 부름 받고 달려온즉 곧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전하! 흑흑흑.......!”
이인경의 흐느낌이 시발이 되어 모두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감격해하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직 벼슬이 없는 이들이었기에 임금이 자신들을 알고 부른다는 것은, 꿈에서라도 전혀 상상도 못 할일 이었기에, 그 감회가 남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진이 감격해 흐느끼고 있는 김덕령이라는 자를 보니, 비록 작은 키지만 날쌔고 신용(神勇)이 있어보였다.
‘역시.........!“
내심으로 주억거린 이진의 시선이 아직도 부복해 있는 최담령과 이인경을 한 번 쓱 훑었다.
최담령의 담력과 지략이야 모두 아는 바이고, 김덕령의 처남 이인경(李寅卿) 역시 담력과 지략이 빼어난 자로 함께 의병 활동을 했으며, 김덕령이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된 뒤로는, 장님으로 칭탁하고 전혀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한다.
아무튼 삼인을 맞아 이진은 이들에게도 술을 권하고 측근에 머물 것을 명했다. 그들의 지략과 타고난 무용을 쓸 일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그들이 옆방으로 옮겨가자 이번에는 역사에서 악행을 일삼던 간신 삼인방이 들어왔다. 곧 윤인(尹訒), 한자까지 똑같지만 전혀 다른 이인경(李寅卿), 한찬남(韓纘男) 등이 그들이었다. 간신 이인임이 기획을 한다면 이들은 그 밑에서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행동대장들이었다.
이이첨의 명을 받고 경운궁에 난입 인목대비를 죽이려 날뛴 자들이 곧 이들이었던 까닭이다. 아무튼 이진은 이들에게도 어주를 하사하고 비변사 낭청으로 삼아, 그들의 행동력을 기대했다.
이진이 이들을 물리고 또 한 사람을 맞으니 종전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충절의 표상이라 할까, 이런 인물이 역사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의 인물이 그였다. 곧 박승종(朴承宗) 이라는 인물이 그였다.
“퇴우당(退憂堂), 어서 오오!”
“전하........!”
조선 최고 지존의 몸이 말단의 하나인 정7품 예문관 봉교(奉敎)의 호까지 알고, 부를 줄은 몰랐던 듯 깜짝 놀라 부르짖고는, 곧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얼른 부복하는 박승종이었다.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그런데 이진이 부복한 박승종의 손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 자세에서 손을 곧게 펴는데, 이 자는 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서 이진이 물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보여라!”
이진의 명에 박승종이 한 점 당황한 빛 없이 손을 곧게 펴니, 그 손에는 붉은 색을 띤 오리 알만한 결정체가 들어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비상(砒霜)이 옵니다. 전하!”
“그것은 독약이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때였다. 뒤에서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송익필이 고함을 질렀다.
“이놈, 무엄하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하하하.........!”
송익필의 호통에도 방자하게 웃기만 하는 박승종이었다. 그러던 그가 우뚝 웃음을 멎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
“모르면 잠자코 게시오.”
“저, 저 놈이.........”
송익필이 노하거나 말거나 이진이 조용히 물었다.
“연유가 있을 같은데?”
“그렇사옵니다. 전하! 조선의 지존께서 말단 봉교를 부르실 적에는, 응당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이런 비상한 시국에 소신을 부르신 것은, 소신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 언제든 전하의 명을 수행타가 죽을 각오로 가져온 것입니다. 전하! 이는 곧 소신의 각오입니다. 전하!”
“허허.......! 역시 범상치 않음이야!”
찬탄한 이진이 말했다.
“좋소! 그대는 그대의 목숨처럼 가문마저 내려놓을 수가 있는가?”
“사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문도 존재하는 것이옵니다. 사직이 존망지추에 섰다면 어찌 가문에 미련을 두오리까. 언제든 명만 내려주시옵소서. 전하!”
“참으로 대견스럽소!”
이제 스물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 이나 저절로 하오체가 나오는 이진이었다.
“통신사의 보고가 며칠에 걸쳐 떠들썩하게 조보에 실린 이래, 나라의 위태로움을 모르는 자가 없소. 헌데도 완고한 대신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빼앗길까 두려워 연명하여 저항하는 작금이오. 이를 타파하는데 그대가 앞장서 주겠소?”
“여부가 있사옵니까? 전하! 아무리 정해진 신분 틀 위에 선 양반이라 해도 나라가 없고서야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사옵니까? 이는 선후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하의 가시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소신 거열형(車裂刑)을 당해 시신이 다섯 갈래로 찢기고, 가마솥에 삶아진다 해도, 전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전하!”
장중한 그의 말에 오히려 숙연해진이 이진이 한참만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대 앞에는 완고한 늙은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제 출세를 위해서라면 간 쓸개라도 다 빼줄 듯 설쳐대는 인간도 분명 있을 것이오. 이도 또한 참아야 하느니, 할 수 있겠소?”
“한때의 욕됨을 참지 못하고서야 어찌 뜻을 이룰 수 있겠사옵니까? 언제든지 명만 내려주십시오. 전하!”
“고맙소!”
비로소 보료에서 벌떡 일어나 급급히 그의 손을 꼭 잡아가는 이진이었다.
박승종이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앞서 이야기한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로 윤인(尹訒)·이인경(李寅卿) 일당이 경운궁에 난입,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죽이려 할 때 일신의 위협을 돌보지 않고 수위(守衛)하기를 한결같이 하여 불측한 변을 방비한 사람이 이 사람이었다. 정청(庭請)하는 날에도 끝까지 불참하였고, 1617년 폐모론(廢母論)이 제기되자 극력 반대한 사람이기도 했다.
늘 나라 일을 생각하며 폭음을 하고 말하기를 “내가 술을 즐겨함이 아니고 속히 죽기를 원하여 그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시를 짓기를 “한 말로 임금을 깨우칠 수 없고, 만 번 죽어 은혜에 보답하여도 오히려 남음이 있겠네.” 하였는데, 이 시가 한때 전송(傳誦: 입으로 전하여짐)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미처 이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황급히 성문을 나갔으나, 군사를 모으려는 아들의 행동을 중지시키고, 아들 자흥(子興)의 딸이 광해군의 세자빈(世子嬪)으로서 그 일족이 오랫동안 요직에 앉아 권세를 누린 사실을 자책하여, 아들과 같이 한낮에 목매어 자결하였다. 반정 뒤 관작이 삭탈되고 가산이 적몰되었으나, 뒤에 신원(伸寃)되었다.
이런 박승종을 이진은 또 하나의 낭청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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