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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37화 (37/210)

< -- 37 회: 백성 앞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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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은 실제로 가난하게 사는 많은 백성들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외침을 막을 수 있을까? 이 생각으로 이진은 혼자 촛불을 밝히고 많은 번민을 했다. 부인은 물론 여타 계집들도 불러들이지 않고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길 며칠. 이진은 마침내 몇 가지 확실한 방법을 도출해 내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밀어붙이면 대신들의 저항에 부딪쳐 죽도 밥도 안 될 것을, 이진은 경험 측면으로 터득했기 때문에 이를 순차적으로 밀어 붙이기로 했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농업국가다. 그것도 쌀농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바가 컸다. 주식(主食)이 가치로서도 가치지만, 쌀은 면포와 함께 화폐를 대용하는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에, 현재우리가 생각하는 쌀의 가치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18새기 후반에도 조선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확히 50%였다. 여기에 면포산업이 21%. 그러니 이 양대 산업이 조선의 경제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 쌀 수확을 늘리고 국가경제 전체의 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즉 이앙법의 전면 허용과 대대적인 실시가 그것이었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나라가 망해 없어질 때까지 이앙법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논리는 이앙법을 실시하면 가뭄에는 농사를 망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도 일정 부분 수용할 근거는 있었다. 논에다 직접 볍씨를 파종하는 직파법은 가뭄에도 어느 정도 생산이 가능했다.

그러나 모를 모판에서 길러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은 절대적으로 물이 필요한 농사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찍이 12세기 송나라 시절부터 이앙법이 상당부분 전파된 중국의 남부나 14세기부터 많이 보급되기 시작한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한 여름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왔기 때문에 물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고, 가뭄이라도 들라치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응할 방법이 있으니 언제(堰堤) 시설의 확충이었다. 즉 저수지와 제방 등을 축조하여 물 부족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조정은 이런 것은 권장치 않고 무조건 막았던 데는 또 하나의 숨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광작의 출현으로 기존 중산층 아니 세금을 내는 농민들이 몰락할까봐 걱정이 돼서 시행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맞추어 모를 심으면 이래저래 일손이 상당량 줄어든다.

그러면 그만큼 농사지을 사람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조선의 정치가들은 이들이 유랑걸식을 하다가 끝내는 산적이 된다는 논거였다. 왜 그 방법 밖에 없는가? 구황작물도 재배하고 상품작물 즉 인삼이나 고추 담배도 재배하면 된다.

또 그래도 남는 인구는 상업 활동을 하면 된다, 상업 활동뿐인가, 가내수공업이나 광산을 개발하면 유휴 노동력을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광작의 출현은 곧 거대자본의 출현이라는 동의어였다.

유럽의 산업혁명은 이 거대자본을 기반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래저래 이앙법은 전면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의 정치가들이 근심하듯 세원확보였다. 광작의 출현은 양반지주들에게 주로 소작농으로 기생하는 상민층의 이합집산을 가져와 세원이 없어진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조선의 양반과 노비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상민과 노비 중에서도 독립가옥을 영위하는 외거노비뿐이었다. 이들이 최고로 많은 시절에도 전 인구의 50%를 넘지 않았으니, 조선은 개국서 망할 때까지 나라의 재정이 취약했다.

그래서 자릿세 밖에 내지 않는 상인에게도, 유럽이나 동양의 다른 나라와 같이 물품세를 도입해야 한다. 광산과 어업은 물론 전 경제인구가 세금을 내게 만들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양반들에게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

이것이 이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였다. 그렇지만 이진은 벌써 모범답안을 찾아 놓았다. 하지만 당장 시행하면 죽도 밥도 안 되므로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시행할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이앙법을 실시해야 농업국가인 조선은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생산력의 증대는 곧 부양인구의 증대를 가져와 인구가 증가한다. 이는 또 그만큼 인구가 많아지면 더 많은 경작지를 경영할 수 있고, 많은 인구는 국방자원이므로 외침을 막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침공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 상관관계가 분명히 나타난다. 이앙법이 실시된 이후로 중국 인구는 얼마 후 1억을 돌파했고, 일본도 2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 인구는 정체되어 있다.

호구 조사에 의하면 1200만 인구인데 실제로 등재되지 않은 서얼 등을 감안하면 1500만 명을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래저래 이앙법은 실시되어야 하므로 이진은 굳게 결심을 하고 다음날 조회에 임했다.

이진은 막상 조회가 시작되었어도 한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제 대신들이 이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때 이진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과인이 이번 황해도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은 참으로 백성들이 가난하다는 것이오. 이를 타개할 방법이 있으면 진언하시오.”

“.........!”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껌벅껌벅 눈치만 보는 제 대신들이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대신들이라 할 수 있소? 조금만 예법에 어긋나거나, 작은 잘못을 들추는 것으로 세월 보내지 말고, 이런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아니오!”

이진의 노성에 좌중은 얼어붙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진은 생각을 달리했다.

“지금부터 농한기요. 이 농한기에 농민들은 무엇을 하고 지내오?”

“여자들은 길쌈을 하고 남정네들은 가마니 등을 치고 하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은 노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공조판서 김명원의 말에 이진이 말했다.

“그래가지고야 어떻게 가난을 면한단 말이오. 과인이 그 방법을 제시하리다. 이런 농한기에는 모여서 도박이나 술타령들 하지 말고, 제언(堤堰)을 축조하는 것은 어떻겠소?”

“제언?”

“둑과 제방 모르오? 아니면 저수지라든가?”

“몰라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일 아닙니까?”

“왜 쓸데가 없소? 겨울에 수리시설을 만들었다가 이앙법을 행하면 되지.”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전하! 국초부터 이앙법을 허용한 예가 없사옵니다. 전하!”

우상 이산해의 말에 이진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그 이유가 뭐요?”

“물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옵니다. 해서 한발이라도 들라치면 전적으로 농사를 망치는 일이라 국법으로 금한 것이옵니다. 전하!”

“후후후.........! 그렇다 라?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도 그것이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세금을 낼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옵니다. 전하!”

호조판서 윤두수의 말에 이진이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신들도 이앙법의 장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옵니다. 하지만 이는 필연으로 광작을 태생적으로 잉태하옵고, 이는 많은 소작농들의 일거리를 빼앗는 것으로 그들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산으로 들로 유랑걸식을 하다가 종당에는 산적이 되어 나라의 큰 두통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아니면 노비로 전락할 것이옵니다. 전하!”

“흐흠.........! 그렇다는 말이지? 그래서 과인이 상업을 장려하고 광산을 적극적으로 개발한다지 않소. 또한 제 경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구황작물이라고, 과인은 이를 명국과 왜에서 들여와 시험재배를 할 요량이오. 잉여인력들은 이런 밭작물에 매달려도 되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도 될 것이오. 외국과 교역도 할 수 있고 말이오. 그러고 여러분들이 하나 간과 하고 있는데, 이앙법의 가장 큰 장점은 이모작 아니오?”

여기서 일단 말을 끊었던 이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추수가 끝난 논에 보리를 재배해 보시오. 이것이 여름 식량이 되어 수많은 아사자들을 구원한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소? 나라 전체로 보아도 부가 증가하는 일이고. 이 문제를 제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허나..........”

말만 꺼내놓고 그 다음 반발한 논리가 생각나지 않는지 금붕어마냥 입만 벙긋벙긋 하는 호판 윤두수였다.

“할 말 없으면 전국적으로 이앙업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조보에 게재 하오.”

“전하.........!”일제히 부복하여 간하려 하나 마땅한 논리가 없어 연신 이진만 부르는 제 대신들이었다.

“전하.........!”

“지금부터 반대하는 자들은 백성들을 전부 굶어죽이자는 것으로 알고, 파출시키는 것은 물론 재임시절의 비리를 철저히 캐보겠소.”

“전하.........! 저희 호조에서는 세수가 부족해도 책임 못 집니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지!’

호판 윤두수의 겁박에도 이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과인이 모든 책임은 질 테니 이앙법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하오. 오늘은 여기까지. 조회를 파합시다.”

“전하.........!”

애타게 부르거나 말거나 어좌에서 일어나 여유있게 한 번 돌아보기까지 하며 편전을 벗어나는 이진이었다. 다음 날 조보에는 이앙법 기사가 크게 실렸다.

<이앙법 전국적으로 전면 허용> 이라는 제목 하에 이를 상세히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면 욕심 많은 지주들부터 차례로 겨울철에 사람들을 고용하여 저수지를 축조하리라.

* * *

“전하!”

이진이 편전을 벗어나자 따라오며 부르는 자가 있어 돌아보니 대전내관이었다.

“무슨 일이냐?”

“내상(來商) 대방이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전하!”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천추전으로 모셔라!”

이진의 말에 대전내관이 힐끔 한 번 더 이진을 살피고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상것에게도 경칭을 사용하니 의아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진이 천추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대전내관이 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내 대방 입시옵니다.”

“들라하라! 아니.........”

말과 함께 몸소 일어나 전각문을 열어주는 이진이었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내상의 가장 큰 거상(巨商) 이진열(李陣烈)이 디딘 섬돌 위에 머리를 처박고 납작 업드려 감격을 표했다.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이진이 그런 이진열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잠시 후 고개를 드는데 패랭이 모자는 연신 고개를 처박는 바람에 빼딱하고, 하얀 수염을 바람에 나부끼며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그였다. 그런 그가 흐린 눈으로 이진을 일별하고는 얼른 또 다시 고개를 처박는다.

“어서 올라오오!”

이진의 부드러운 말과 반 공대에 이진열은 황송한 나머지 차마 올라오기가 더 힘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정중히(?) 그와 마주앉은 이진이 다시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래, 과인이 구하라는 물자와 사람은 다 구했소?”

“여부가 있사옵니까. 전하! 전하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이 구했을 것으로 소인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마음을 수습하고 한 번 입을 열자 상인답게 달변인 이진열이었다.

“그 양이 얼마나 되오? 물목 좀 봅시다.”

“여기 있사옵나이다. 전하!”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을 대충 훑어본 이진이 물었다.

“그 물건들은 지금 어디 있소?”

“마포나루에 정박해 있사옵니다. 전하!”

“양이 광산 기술자 10명과 왜인 기술자 2명은?”

“함께 선박 내이 있사옵니다. 전하!”

“흐흠.........! 그렇군. 물목을 대충 훑어보니 구리, 유황, 구황작물은 물론 조총도 200자루나 되던데, 이 많은 양을 무엇으로 구했소?”

“면포와의 물물교환 했습니다. 전하!”

“면포?”

“네, 전하! 저들은 아직 목화를 재배하지 않아 저들이 사용하는 면포의 대부분은 조선 면포라고 생각하시면 거의 틀림없사옵니다. 일 년에 제가 알기로 50만 필 정도는 조선에서 수입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진과의 교역에서도 면포는 유용합니다. 그들 또한 면포가 없는 관계로 주로 우리는 말과 바꾸고 있사옵니다. 전하!”

“그렇군. 앞으로도 기존 구입한 물목을 계속 구할 수가 있는 거요?”

“물론이옵니다. 전하!”

“과인이 하나 부탁이 있는데.........”

“말씀만 하십시오. 전하!”

급히 부복하는 모양새가 말만 하면 전부 들어줄 듯해 웃음이 나오는 이진이었다.

“과인의 하수인 하나를 상재로 키우고 싶소. 허나 먹물만 들어 상재에는 도통 문외한이니 외국과의 거래에 능한 장사꾼 몇을 이 사람에게 붙여줄 수 있소?”

“물론입니다. 전하!”

“고맙소. 과인이 그를 만나보게 해 줄 테니, 대방부터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오.”

“네, 전하!”

“자, 오늘은 이쯤 해두고 자주 만나는 것으로 합시다. 하고 과인의 별도 명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상기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을 해주오. 수요는 무진장 하니까.”

“네 전하!”

“계 아무도 없느냐?”

“네, 전하!”

대전내관이 등대하자 이진이 빠른 말로 지시를 했다.

“이 대방을 과인의 사저로 안내해 정여립을 만날 수 있게끔 해주어라.”

“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어서 가보오.”

“네, 전하!”

이진의 말에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내상의 대방 이진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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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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