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 회: 쪽박 or 대박? -- >
10
“다녀왔사옵니다. 군 마마님!”
“그래, 수고했다. 옆에 있는 자가 그 자이더냐?”
“네, 군 마마님!”
이진의 물음에 충삼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패랭이를 쓴 오십 줄의 중늙은이가 부복해 아뢰었다.
“송상의 대방 송 비인(宋 非人), 군 마마님의 부름을 받고 대령했사옵니다.”
“청으로 올라오너라!”
“어찌 천것이 함께 자리를 하겠사옵니까?”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라는 말이 조선시대의 신분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해, 송비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시 상인은 인간 대접을 못 받던 시절이었다. 그의 말은 겸양이 아니라 당연한 대우를 자처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감읍하옵니다. 군 마마님!”
어쩔 수 없이 대청마루에 올라 꿇어앉은 송비인에게 이진이 물었다.
“어찌 이름이 괴상하도다.”
“작고하신 선친께서 지어주시길, 상인은 인간도 아니니(非人) 상인 노릇을 하는 한 인간 대접을 받을 생각은 아예 말고, 재물을 모으는데 주력하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이름으로 아옵니다.”
“허허, 일리가 있도다.”
말과 함께 잠시 그를 주시하고 있던 이진이 송비인에게 물었다.
“나와 합작할 의향이 없느냐?”
“너무 갑작스러운 말씀이시라.........?”
“요즘 산삼의 산출량이 어떠 하드냐?”
“공물로 진상하려고 산이란 산은 전부 뒤지고 다녀도, 출하되는 물량이 매우 적사옵니다.”
“허허, 그것 참, 큰일 아니더냐?”
“하여 산양삼 (山養蔘)으로 일부 대체하고, 또 일부는 논밭에 심어 인공 삼을 재배하고는 있으나 그 양 또한 많지를 않사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인삼이 재배는 되고 있으나 그 양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역사의 기록을 보면 영, 정조 시대나 돼야, 인삼 재배가 급속히 보편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기록에 의하면 1542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공물 납부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풍기 땅에도 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하니, 인삼의 생산량은 적을지언정 재배는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기초로 이진이 확인을 해보았다.
“주로 어느 지역에 인삼이 재배되고 있느냐?”
“개성이 주옵고 풍기 또한 일부가 나옵니다. 하고 다른 지방에서도 일부 재배가 되고 있으나,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미미합니다.”
“흐흠........! 공급보다는 수요가 항상 많질 않느냐?”
“그렇사옵니다.”
“해서 하는 말이다 만, 이를 대대적으로 심어 국부(國富)를 늘려보지 않겠느냐?”
대답이 없어 송비인을 바라보니 눈을 멀뚱멀뚱 미처 이해를 못한 표정이라 이진이 보충설명을 했다.
“내 말은 꼭 개성이나 풍기에 한할 것이 아니라, 이를 재배하기 적절한 충청도의 금산, 괴산, 경기도의 용인 등에 심되, 생산조합 같은 것을 결성하여 너희들이 모두 수매하여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도 일부를 심을 예정이니라.”
“수요는 중국 일본 등 무진장하니 얼마든지 수매는 가능할 것이오나 그 땅이라고 생산이 잘 될 런지요?”
“적지다. 배수가 잘 되고 토질이 좋아 개성만큼 좋은 곳으로 알고 있다. 시험 삼아 시행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내 아직 인삼 재배하는 곳을 보지 않아 모르겠다만은 인삼 재배장에 혹시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덮어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느냐?”
“그런 방법도 있사옵니까?”
“허허, 저런, 저런.........! 있다마다. 인삼은 음지식물이므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잘 자라느니라. 하고 반드시 인삼을 경작할 땅은 미리 한두 해 정도 놀려 지력을 북돋은 다음에 해야 할 것이고, 또 한 번 경작한 밭은 최고 10년, 논은 한 6년 정도 휴경을 실시한 다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거름으로는 낙엽 등을 썩힌 부엽토가 좋을 것이고.”
역사물을 연재하다 얻은 상식으로 읊은 이진의 말에 함께 듣고 있던 송익필과 허봉이 놀라는 것은 물론 송비인마저도 미처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진은 아예 허봉에게 문방사우를 준비하도록 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삼밭의 풍경을 그리도록 일러주었다.
그 모양이야 별 것 없었다. 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짚으로 엮은 이엉을 해 덮은 모양이 전부였다. 이를 받아들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송비인이 아주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대부들은 물론 상민들조차 상인을 아주 천시하는 마당에 군 마마님께옵소서는, 우리 상업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시오니 여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명만 하시옵소서. 언제든지 군 마마님의 필요 경비를 저희 송방에서 대겠사옵니다.”
송비인의 감격 그대로였다. 당시 사대부들은 정말로 상업을 아주 천시했다. 그러면서도 농경 국가의 제1 재산증식 수단인 땅과 노비들을 사들이는 데는 아주 집요할 정도로 집착했으니, 웃기는 동물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이진은 송비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이제 함부로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거나 받을 일이 없다. 다만 백성들이 잘 살고 나라의 부가 증가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다. 내 굳이 대방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면 인삼의 씨앗을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내 아까 일러준 대로 내 농토에도 인삼을 경작해 볼 참이다.”
“여부가 있사옵니까. 가장 좋은 종자를 엄선하여 가져오도록 하겠사옵니다.”
“고맙다. 내 수시로 불러 그대와 상업의 발전에 대해 논의할 것인즉 종종 보도록 하자.”“감읍하옵니다. 군 마마님!”
이진의 말에 성현의 말씀에 세뇌된 송익필과 허봉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진실로 감격해 부복해 있는 송비인을 이진은 심지어 잡아 일으키며, 그의 손을 굳세게 잡아주기까지 했다. 그런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이진이 말했다. 아주 낮은 음성이었다.
“내 알기로 송방의 지부가 큰 고을에는 모두 있는 것으로 안다. 해서 하는 말이다 만은 나라나 나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곧 내게 일러주었으면 고맙겠다.”
“진실로 그리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또 다음에 보는 것으로 하자. 술이라도 한 잔 내리는 것이 예의이나 좌중에는 술을 먹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얼른 이진의 잡은 손을 놓고 부복한 송비인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누가 이 사람을 일러, 난폭하고 군왕의 자질이 없다 했는가?’
그 정반대의 상황임에 송비인은 임해가 대통을 이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생각은 그와 자주 내왕하는 만상과 동래상인들의 수장들에게도 전파가 되니, 앞으로 이진이 상업적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진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이렇게 한 달여의 세월이 흘러 허봉의 병세가 완연 회복하자, 이진은 곧 두 사람에게 명을 내렸다.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온 바가 있는 허봉에게는 자신이 일러 그리게 한 그림을 소지케 해, 중국으로 가 구황작물의 씨앗을 구해오도록 했다.
또 한 사람은 충삼으로 충삼에게는 일본에 다녀올 것을 명하여, 그 또한 이진의 내밀한 명을 받고 집을 나섰다. 물론 그에게도 허봉이 그린 그림이 종류별로 모두 품고 있었다. 곧 감자, 고구마, 옥수수, 호박, 땅콩, 고추, 해바라기, 토마토, 커피 등의 그림이었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이진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길 자신을 도울 친인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곧 외조부 되는 김희철(金希哲)과 장인이 되는 허명(許銘)이 그들 이었다.
조강을 끝낸 이진은 조참을 먹자마자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금란의 도움을 받아 도포를 걸치고, 그 위 허리에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붉은 술띠를 둘렀다. 이어 햇빛을 가리기 위한 삿갓을 쓰고 대청 끝자락으로 나섰다. 그리고 이진은 초피화를 신으며 금란에게 명하였다.
“너는 남장을 하고 수행하도록 해라!”
“네, 군 마마님!”
지시를 내린 이진이 마당에 내려서니, 준비를 마친 송익필과 김체건, 김명순이 검을 차고 그의 뒤에 나란히 섰다.
이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위국망신’이라는 현판이 걸린 모사로 걸어갔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진의 부름에 모사의 문 한 짝이 덜컹 열리며 백일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삼십대 초반의 헌앙하게 생긴 백일문이 오늘 따라 늘 위에 걸치던 적삼을 벗어던진 단정한 비단 옷차림으로 허리를 깊이 숙여 맞았다.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은 어디를 갔는가? 왜 모습이 보이질 않지?”
“한 사람은 군 마마께서 명하신 대로 담양 창평으로 송강을 뫼시러 갔사옵고, 한 사람은 계원들을 살피러 갔나이다.”
“알겠소. 내 외출을 하려 하니 함께 갑시다.”
“네, 군 마마님!”
이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잠시 지체하고 있자니 남장에 초립을 쓴 금란이 일행에 합류하였다.
“갑시다!”
이진이 발걸음을 떼자 일행 모두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곧 이진이 외원에 도착하니 덕삼이 말을 대령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들이 기이했다. 두 필을 제외한 다른 말들은 모두 조랑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 내에 있는 말 중 군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말이 조랑말이었다. 호랑이의 습격(虎患)으로 말 목장은 대부분 제주도를 비롯한 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말들의 체고가 가면 갈수록 작아졌다.
즉 북방에서 수입해온 말들도 몇 세대를 거치면 그 종자가 그냥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조랑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나라에서도 관심을 갖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으나 별 효험을 보지 못한 상태로 근자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랑말은 말 위에 올라 타 그냥 다리를 내리면 발이 땅에 닿을 정도였으므로, 말의 허리가 아닌 엉덩이에 타서 뒤로 눕듯 해야 그나마 다리가 끌리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진 또한 요 며칠 승마를 배운다고 배웠으나, 아직 익숙지 않아 자신의 몫으로도 조랑말을 대령하라 했고, 체구가 건장한 말은 김체건과 백일문이 타게 되었다.
김명순 역시 체구가 작아 조랑말이 더 어울렸다. 덕삼만이 이진의 말고삐를 잡고 터덜거렸지만 금란마저도 조랑말을 타고 가고 있었다. 조선의 여인들도 곧잘 말을 탔다. 특히 기생들이 말을 애용했고, 사대부의 아낙들도 개중에는 말을 탈줄 아는 여인들이 꽤 되었다.
가마라는 것은 꼭 사람의 손에 들려야하는 것이므로 세조 때부터 인력낭비가 심하다하여 가급적 타는 것을 금하였는지라, 아녀자들도 가마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당상관 이상의 고관 댁 마나님들이 아니면 함부로 타지를 못하고 있는 세태였다.
아무튼 일행이 솟을대문을 나서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종로방 싸리분동 방향이었다. 이곳에 외조부 되는 김희철 사포(司圃)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사포(司圃)라는 것은 관직명이었다.
정 육품으로 사포서(司圃署)의 실질적 우두머리가 사포라는 직책이었다. 위로 제조 한 명이 있기 있었으나 명예직이고, 실무는 사포가 다 맡아했다. 또 사포서라는 곳은 조선시대 궁중의 채소전과 원포(園圃:과일이나 채소 따위를 심는 밭)를 관리하던 관청으로, 밤섬과 여의도에 어전에 납품하는 원포가 있었다.
당금 왕인 선조 이연의 장인이나 딸이 일찍 죽는 바람에 한직이라 할 수 있는 사포서의 정육품 관리로 재직하고 있는 외조부의 집을, 행장도 기이한 일행이 찾아든 것은 어느덧 사시 초(巳時 初:오전 9시) 무렵이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거듭 부르니 하인 하나가 튀어나와 일행을 맞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거렸다. 곧 그의 고함으로 또 한 사람이 뛰쳐나오니 이 집의 장남인 김예직(金禮直)이라는 사람이었다.
곧 임해군 이진의 외삼촌 되는 사람으로 아직 관직이 없는 무관의 청년이었다. 올해 나이가 우리나이로 26세였다.
“군 마마, 어쩐 일로 이 누추한 집을 다 찾으셨습니까?”
“외조부님을 만나려고 왔는데 계십니까?”
“등청하시고 안 계시옵니다.”
“사포서에요?”
“그렇사옵니다.”
“흐흠.........! 우리가 조금 늦었군.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연락을 취해 모셔오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우리가 한 번 찾아가 보도록 하죠.”
“아마, 오늘은 밤섬으로 가셨을 것이옵니다. 봄 남새(채소)를 심는다고 직접 나가보시겠다는 말을 제가 어제 저녁 직접 들었습니다.”
“흐흠........! 그곳으로 직접 가봐야겠군.”
“시생이 직접 안내토록 하겠사옵니다.”
“외삼촌이 요?”
“당연합죠. 그것이 합당한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를 앞세우기로 작정한 이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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