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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9화 (9/210)

< -- 9 회: 쪽박 or 대박? -- >

9

“감읍하옵니다. 군 마마님! 새는 모이 때문에 죽고 선비 또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했습니다. 무부 또한 같아서 이 떠돌이 무사를 알아주는 주군께 오늘부터 목숨 바쳐 헌신하겠사옵니다.”

“하하하........! 좋고, 좋다! 다들 나를 따라 들어오너라.”

이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앞장서서 그들을 자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다들 앉게!”

“네, 군 마마님!”

일행이 모두 자리를 잡자 이진은 여전히 흡족한 표정으로 검객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특별히 김명순에게 눈길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그대 또한 내 곁에 머무는 게 어떠한가?”

“충심으로 보필하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좋다! 너에게도 상급을 내리마.”

이렇게 말한 이진은 멀찍이 대청의 뜰 앞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덕삼을 불러 김명순에도 한 움큼의 금화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검계 두령인 세 명에게 차례로 눈길이 갔다.

“그대들 또한 마찬가지야. 어찌 한낱 파락호로 일생을 낭비한단 말인가? 내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 임해가 왕통을 잇는 날, 그대들 또한 중한 쓰임이 있을 것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나라의 비밀 특무기관원이 되어 사대부들을 규찰하고 비리를 조사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일조케 하려함이니, 내 뜻에 따르겠는가?”

이진의 장중한 뜻에 감격한 백일문이 급히 부복해 아뢰었다. 그가 검계의 두령인 모양이었다.

“양반가에 태어났으나 모두 얼치기들이라 할 일이 없어 무뢰배 노릇을 했사오나, 실로 나라에 중히 쓰일 일이 있다면 기꺼이 목숨 바쳐 헌신하겠나이다. 명만 내려주옵소서!”

“하하하........! 좋고, 좋도다! 내 그대들을 금일부로 ‘금의위(錦衣衛)’로 명하노니, 이 임해 이진이 동궁 전에 거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하라. 해서 내 보위에 오르는 날, 내 기 말한 바와 같이 나라의 정식 관원으로 임명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데 일조케 할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는가?”

“네, 군마마님!”

일제히 부복해 대답하는 세 명을 내려다보며 이진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도 잠시 어느 순간, 표정 없는 얼굴이 되어 이진이 검계의 두령 백일문에게 말했다.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항상 신중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야!”

“네, 군 마마님!”

일제히 부복하는 세 명을 다시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전 이진이 물었다.

“검계의 계원은 몇 명이나 되는가?”

이진의 물음에 백일문이 대표로 대답했다.

“한양 도성 내에 수백이 있사옵고, 지방에도 조직이 있나이다.”

“지방까지?”

“네, 군마마님!”

“좋다. 돈을 내가 댈 것이니, 지방까지 그 조직을 더욱 확대하고 다지도록 하라. 단 쭉정이가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지금이라도 신분과 사상을 검토하여 해가 될 자는 일찍이 입을 막아놓도록.”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역모나 다름없는 말을 뱉은 이진인지라 배반자가 나올 것이 두려와 미리 단단히 오금을 박는 것이다.

잠시 세 사람을 더 내려다보던 이진이 이제는 김체건과 김명순에게 눈길을 주고 말했다.

“오늘부터 두 사람은 내 거소 옆에 머물며 나를 숙위(宿衛)해야 할 것이야. 외출 시에도 당연히 나를 경호할 것은 물론 내 숙소 부근에는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않도록 하시게.”

“명 받자옵니다. 군 마마님!”

두 사람이 부복해 아뢰는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흡족한 표정을 짓는 이진이었다. 이어 이진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가 손가락으로 마당 저편의 행랑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담벼락을 따라 십여 칸의 모사(茅舍)가 줄지어 서 있었다.

“너희 셋은 금일부터 저 행랑채를 전용 주거지로 쓰며, 당상관 이상 중요 관직에 있는 자들의 비리를 캐, 여기에 앉아 있는 송 군사(軍師)에게 일러, 쓰임이 있게 하라.”

“네,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감읍하옵니다. 군 마마님!”

세 사람 외에 졸지에 군사(軍師)가 된 송익필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함께 부복했고, 이로써 대충이나마 체계가 잡히는 이진의 사조직이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진이 불쑥 송익필을 불렀다.

“송 군사!”

“네, 군 마마님!”

“저들이 기거할 방에 내릴 적당한 휘호가 없겠는가?”

검 계의 인물들을 가리키며 묻는 이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거듭하던 송익필이 곧 행동으로 옮겼다.

잠시 후 그가 종이 위에 쓴 글자는 ‘위국망신(爲國忘身)’ 이라는 단어였다. 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이진이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모여 앉은 대중을 위하여 물었다.

“무슨 뜻인가?”

“국가를 위하여 몸을 잊는다.’는 의미입니다.”

“좋다! 그대로 현판 하나를 만들어 저들이 기거할 행랑채에 붙이도록.”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자, 모처럼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났으니, 이 어찌 술 한 잔이 없을 손가. 금란이 계 있느냐?”

“네, 시비 대령이옵니다. 군 마마님!”

“마님께 일러 이곳으로 주안상을 들이도록 해라!”

“명 받자옵니다. 군 마마님!”

곧 금란의 물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진은 아직 많이 남은 해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새벽부터 찾아온 사부 하락으로부터 광해와 함께 경서를 읽은 이진은, 오늘 배운 것은 물론 기존의 것들도 모르는 것은 송익필에게 물으며, 암송보다는 그 뜻을 익히기에 주력하고 있을 때였다.

거소 밖에는 김체건과 김명순이 번을 서며 잡인을 엄금하고 있는데, 이들에 의해 안내되어 들어온 덕삼이 이진에게 고했다. 옆에는 낯모르는 사람 하나가 동행을 하고 있었다.

“일전에 이르신 그림에 능한 선비 한 분을 모셔왔사옵니다.”

“허허, 그러냐? 누구시더냐?”

“시생 허봉(許篈)이라 하옵니다.”

“허봉?”

“시생 작고하신 동지중추부사 엽(曄) 자 되시는 둘째 아들로, 서화보다는 군 마마께 죽기 전에 몇 마디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죽다니?”

“제 얼굴을 보면 모르시겠사옵니까?”

비로소 이진이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니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얼굴이 노리끼리 한 게 소위 황달에 걸린 것 같았다. 정말 그의 말대로 병색이 완연했다.

“흐흠.........!”

침음한 이진이 침중한 음성으로 수노를 불렀다.

“덕삼아!”

“네, 군 마마님!”

“당장 내의원에 가서 내 명이라라 하고 허준을 데려오너라!”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곧 덕삼이 물러가자 다시 허봉이라는 자를 바라보던 이진이 말했다.

“거기서 그럴게 아니라, 이리 들어오시오.”

“고맙소이다. 군 마마!”

뜰에 미투리를 벗어던진 그가 곧 장 대청을 거쳐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이진이 말했다.

“그래 나에게 하고 싶다는 말이 무엇이오?”

힐끔 옆에 앉아 있는 송익필을 한 번 바라본 허봉이 곧 입을 열었다.

“시생이 듣건데 군 마마께옵서 서는 학문 보다는 재물을 모으는데 힘쓰신다 들었습니다. 이는 나라가 망할 징조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주상에게 적통의 자손이 없는 이즈음, 가장 다음 대 보위에 오를 적임은 군 마마이십니다. 허나 벌써부터 성정이 난폭하고 학문은 게을리 하여 군왕의 자질이 없다는 평판을 받으심은, 이 나라에 또 하나의 큰 근심을 안기는 일입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입술을 축인 그의 말이 이어졌다.

“만의 하나 차자에게 왕통이 이어진다면 이는 서자의 차자이니 더욱 왕의 권위가 떨어지는 일인 데다, 혹여 군 마마를 지지하는 대신들이 있다면 그나마 둘로 나뉜 조정의 의견이 더욱 쪼개져 붕당의 다툼이 심해질 터, 이것이 곧 패망의 지름길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사옵니까?”

“비록 못난 시생이나 이 이치를 알기에 죽기 전에 간곡히 군 마마께 충언을 드리고자 시중에 떠도는 서화에 능한 자를 모신다는 풍문을 핑계로, 군 마마를 뵙고자 한 것이옵니다. 부디 악업을 중단하시고, 더욱 학문에 정진하시옵소서. 군 마마!”

허봉의 폐부에서 우러나는 충언에 숙연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이진이 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그대의 금언을 뼈에 아로새겨 바른 길을 가도록 노력하겠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두창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소. 죽음에 이르렀다 깨어나니 세상의 이치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소. 해서 내 백성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자 그대를 모신 것이오. 그 일이 무엇인가 하면.........”

이진은 여기서 말을 길게 끌며 새삼 병색 가득한 허봉을 잠시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 일이라는 것은 곧 구황작물을 이역에서 구해오는 일이오.”

“구황작물이라니요? 칡과 소나무 껍질 외에 또 춘궁기나 기근에 먹을 것이 있사옵니까?”

“왜 아니 라오? 내가 알기로 중국만 해도 벌써 20여 년 전에 감자, 고구마, 땅콩 등이 들어와 재배되고 있소. 일본은 아마 지금쯤 감자라는 작물이 전래되어 재배되고 있을 것이오. 이 작물들이야말로 적은 품으로 재배할 수 있고, 기근에는 밀과 쌀, 보리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작물들이라오.”

“허허, 그런 일이..........!”

허봉의 놀람은 아랑곳없이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해서 나는 말이오. 그냥 말로 일러주고 구해오라하면 어려울 것 같아서 이를 그림에 능한 자를 시켜 그리게 하여, 사람을 중국과 일본에 파견하여 이 그림을 바탕으로 구해오려는 목적으로, 그림에 능한 자를 구하도록 한 것이오.”

“군 마마님의 말씀이 정녕 진정이오니까?”

“하면 내가 실없는 말을 한단 말이오?”

“그, 그것이 아니오라, 이렇게 되면 군 마마에 대한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 중상 아니옵니까?”

“사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 맞소. 내 종전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사경에서 소생한 후로, 좀 개과천선했다할까. 하여튼 앞으로는 조정과 백성들을 근심하며 살기로 했소.”

“군 마마! 이 하곡(河谷) 얼마 남지 않은 생이나마 군 마마를 보필하며 살고 싶사옵니다.”

“고맙소!”

이진은 부복해 있는 허봉의 손을 덥석 잡아 일으켜, 감사의 표시로 그의 손등을 두드렸다.

허봉(許奉).

그는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이복형으로 두루 많은 벼슬을 역임했고, 서장관으로 명나라에도 다녀온 바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시재와 학문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만나 토론한 중국의 대유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은 물론,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것을 아까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술을 즐겨 지금의 병을 얻었고 성정이 곧아 직간을 하는 과정에서도 옆의 사람이 땀을 쏟아낼 정도의 발언을 임금 앞에서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한다. 아무튼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오늘 그가 찾아들어 한 팔이 되고자 함에 이진은 기꺼웠고, 명의 허준을 통해 꼭 그를 죽음의 병마에서 구출해주고 싶었다.

이후에도 이런 저런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이진은 그의 병을 생각해 절대 술을 내오라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허준이 이진의 명을 받고 찾아왔고, 진맥을 한 허준은 곧 처방을 했다.

이진이 허준에게 물어본 바로는 역시 술이 원인으로 요즈음으로 말하면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인 모양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만성 B형 간염도 앓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는 이진이었다.

이로 인해 이진이 가내에 엄명을 내린 것이 있으니, 상용하는 음료 즉 물은 물론 모든 요리는 끓이고 익인 후에나 먹을 수 있도록 모든 비복들에게도 단단히 명을 내렸다. 더하여 반드시 식사 전에는 손을 씻도록 하고 아니더라도 자주 손발을 씻도록 단단히 못을 박았다.

이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개성으로 송상의 우두머리인 대방을 데리러 갔던 충삼이라는 수노가 돌아왔다. 그의 곁에는 목적을 달성했는지 웬 낯선 자 하나가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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