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 회: 쪽박 or 대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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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일행은 김예직 즉 문백(文伯)을 앞세워 밤섬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헌데 일행이 얼마쯤 나아가, 인가 밀집 지역을 벗어나자 악취가 진동을 했다. 아주 고약한 냄새로 인분 냄새였다.
이진이 두창에서 깨어나 씻으러 갈 때 맡았던 냄새가 바로 이 냄새였다. 그 당시는 강도가 좀 덜했으나 지금은 아예 코를 싸맬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다. 앞으로 나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는데 곧 그 정체가 밝혀졌다.
한양에 공급할 온갖 채소들을 공급하는 밭이 잇달아 전개되는데, 그곳 모두에 인분을 뿌려 이런 냄새를 풍겼던 것이다. 하긴 지금과 같이 정화조 시설이 있나, 하수구가 설치되어 있기를 하나. 오직 거름으로 쓰기 위해 모은 것들을 죄다 뿌린 듯했다.
이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면역이 되어 덜한 모양이었지만 이진으로서는 아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이진이 외삼촌 김예직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냄새가 너무 심합니다. 하인들을 시켜 외조부님을 모셔오는 것으로 하죠.”
“그렇게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코를 감싸 쥐고 하는 이진의 말에 빙긋이 웃으며 김예직이 대답했다. 일행은 곧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예직을 수행했던 하인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빴다.
하인 하나는 밤섬으로 김희철을 모시러 가고, 김예직의 나직한 지시를 받은 다른 하인 하나는 미리 자신이 거처하는 집으로 달려갔다. 이들이 다시 외조부의 집으로 돌아가 사랑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곧 푸짐한 주안상이 차려져 나왔다.
사내들끼리도 사대부는 모두 독상이었다. 사대들만이 아니고 상민들도 아낙들은 남편과 겸상을 안 하는 것이 조선의 법도였다. 그래서 상민의 아낙들조차도 남편이 남긴 반찬을 가지고 따로 추후에 먹는 것이 조선의 식 문화였다.
이진으로서는 참으로 정나미 떨어지는 관습에 함께 좌정해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대화가 되겠소? 모두 내 상으로 합칩시다.”
“천부당만부당 한 말씀이옵니다.”
송익필부터가 펄쩍 뛰었다.
“명을 거역하는 것도 예가 아닙니다.”
거듭되는 이진의 종용에 의해서 교자상에 그들의 술과 안주도 합쳐졌다. 이를 보고 만족한 표정을 지은 이진이 김예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관직에 좀 나가셔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래도 식년 무과 준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무과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무과가 더 성정에 어울립니다.”
“허허.......! 그렇군요.”
문관보다는 확실히 무관을 천시하는 조선 사회에서 자신의 소신대로 지원하는 것도 괜찮아 보여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이었다.
“헌데 갑자기 이렇게 내방을 기획하셨는지요?”
말도 참 어렵게 한다. 그냥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하면 될 것을........ 이진은 내심 혀를 차면서도 명색이 외삼촌의 물음인데 답을 안 할 수가 없어서 답을 했다.
“어려서 어마마마를 잃고 장성하여 문득 돌아보니 주변에는 부왕밖에 없는데, 부왕이야 정사에 바쁘신 몸이고, 많이 외로웠습니다. 하여 외가댁이라도 방문하면 덜 외로울까 하고 찾아뵈었습니다. 물론 동생 혼이 있지만 나에게는 돌봐야할 동생이지 의지 처는 아니잖습니까?”
“맞고, 잘 찾아오셨습니다. 부친이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라도 미력하나마 저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서로 의지하고 삽시다.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 평판이 어떻습니까?”
“저도 귀가 있어 들었습니다만, 소문이 훨씬 과장되었고, 아니 와전 된 것 같습니다. 실제 오늘 접해보니 소문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친척들에게까지 제가 사납게 굴고 탐욕스럽게 굴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그렇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외삼촌부터라도 저에 대한 소문을 좋은 쪽으로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이를 말입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고 저의 내방을 기화로 앞으로 서로 자주 만남을 갖도록 합시다.
“당연합죠. 나의 눈총을 안 사는 선에서 저도 종종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따라 놓은 술, 초가 되겠으니 들면서 이야기 합시다.”
“네, 군마마님!”
이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외조부 김희철을 기다렸으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변이지만 공무 시간에 현장을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변이었다. 아들과 달리 강직한 그다운 답이고 행동이었다.
이러니 이진의 오늘 나들이는 반만의 성과를 거둔 셈이 되었다. 가까운 지인부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그의 계획은 외삼촌 김예직을 자신의 편에 서게 하는 것으로 어떻게 되었든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체적으로 확대하면 미흡한 정도였다. 또 하나의 친인 장인 허명 일가는 현재 충주로 낙향한 바, 소식을 전해도 도통 한양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 기대에 못 미치는 주변 친인척들이었다.
다음 날.
오늘은 문안 인사가 있는 날이라 이진은 부인은 물론 동생 광해와 함께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부왕이 있는 곳을 찾아 경복궁의 편전이 사정전을 찾아드니 마침 경연이 막 끝난 참이었다. 선조 이연이 기단 위에 서 있는 임해와 광해를 보았는지 명했다.
“마침 잘 왔다. 대신들이 있지만 과인이 물어볼 말이 있으니, 들어오도록 해라.”
“네, 아바마마!”
일제히 대답한 둘이 사정전에 들자, 앉으라는 말도 없이 선조 이연이 대뜸 이진에게 물었다.
“내 듣기로 진 너는 무사 몇몇을 모아 곁에 두고 있다는데 어찌 된 일이냐?”
갑작스러운 선조 이연의 말에 이진은 내심 깜짝 놀랐으나, 정신연령으로 말하면 이연보다도 높은 그인지라 곧 침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무사 몇을 곁에 둔 것은, 무예를 익히고 제 개인 신상을 보호하고자 함이지, 전혀 딴 뜻이 없사옵니다.”
“흐흠........! 매사 행동거지에 조심해애 할 것이야.”
애써 납득한 이연이 훈계로 말을 맺었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과인이 간만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네가 요즘 학문에 열심히 라고 왕자사부가 전하더구나. 전에는 암송은 했으나 전혀 오의도 모르던 것을, 요즈음은 제법 오의까지 깨쳐 담론을 할 정도는 되었다니, 이 아비로서는 기쁘기 한량없다.”
이에 이진이 겸손한 몸가짐으로 더욱 자신을 낮추었다.
“더욱 학문에 매진하여 아바마마를 기쁘게 해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
“하하하.........! 좋은 일이로다.”
이렇게 모처럼 이진을 칭찬하던 이연이 돌연 눈을 빛내며 두 사람에게 동시에 물었다.
“너희 공히 대답해 보거라! 음식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물음이 끝나자마자 선뜻 광해 이혼이 앞질러 대답을 했다.
“소자는 소금이라 생각하옵니다.”
“왜?”
“소금이 아니면 온갖 맛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옳거니! 너는?”
“소자는 구황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황작물? 칡뿌리나 그깟 소나무 껍질이 무에 귀하단 말이냐?”
“물론 다른 곡식도 소중하긴 합니다만, 춘궁기나 나라 전역에 기근이 들었을 때는 주곡을 대체할 작물이 있어야 합니다. 즉 구황작물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백성들이 목숨을 연명할 것인즉, 그래서 구황작물이 가장 귀한 것으로 사료되어집니다. 여기서 소자가 말하는 구황작물은 한낱 칡이나 소나무 껍질, 도토리 따위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또 있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답답하니 속 시원히 말해 보거라.”
“명국에는 이미 서역에서 들어온 고구마 감자 땅콩 같은 것들이 있어,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있다합니다.”
이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이연이 반박하는 말을 했다.
“그것들이 명국에 널리 퍼졌다면 과인은 몰라도 명국을 방문하는 사은사나 여타 사절들은 들을 바가 있을 터인데, 그들의 글이나 입에서조차 그런 말은 일체 들은 바가 없으니, 이 어찌 된 일이냐?”
“아직 서역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낯선 작물이 되다보니, 백성들 대다수가 먹길 꺼려 널리 보급이 안 된 것으로 아옵니다.”
이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고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수십만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해야만 그 효험을 깨닫고 제대로 보급이 된다. 이 기간이 대체로 한 세기를 넘어갔던 것이다. 이진의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왜국에서만은 전 일본을 휩쓴 기근 때문에 이 작물들의 효험을 깨닫는 일이 있었다합니다. 이 당시 홋카이도를 비롯한 동북부 지방과 큐슈지방 사람들만이 유독 아사자가 덜했다합니다. 이를 왜의 조정에서 살핀 결과, 북부에는 감자가 남부 큐슈에는 고구마가 보급되어 있어, 이를 먹은 자들만이 많이 살아남았다 합니다.”
이 부분은 훗날의 일을 이진이 증명을 위해 과감히 날조한 것이다.
“그런 일이.........!”
아무것도 모르고 해연히 놀란 선조 이연이 이진에게 다그쳤다.
“너는 어디서 이런 해괴한 소식을 접한 것이냐?”
“요즘 민생을 살필 겸 공부를 위해 여러 사람들을 접촉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흐흠.........! 별일이로고. 경들은 이를 어찌 생각하오?”
선조 이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경연에 참가했던 대사성(大司成) 백유양(白惟讓)이 황급히 부복해 아뢰었다.
“종계변무 사례 사절이 대국을 방문할 시, 자세히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 좋다. 그 일은 이쯤 해두고 내 너희 형제에게 묻노니, 너희들이 평소 부족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이더냐?”
광해가 입을 움찔움찔하나 잽싸게 선수를 친 것은 이진이었다. 지금 이진이 대답하려는 말이 역사적으로 광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친이 일찍 돌아가신 것을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허허........! 그런 일이.........!”
새삼 안쓰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던 선조 이연이 종내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이진을 새삼 다시 바라보았다.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아바마마!”
광해 역시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과인은 오늘 흡족하면서도 기특하도다. 과인이 너희 형제에게 각기 상을 내릴 터이니 소원이 있으면 말을 해보도록 해라!”
“사부 하락은 광해만을 가르치도록 하옵시고, 소자는 정철을 사부로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정철만은 안 된다. 너무 직정적이라 그의 성격에 물들까 저어된다. 다른 사람을 선택해 보도록 해라.”
“동암(동암(東巖)은 어떻사옵니까?”
“이발(李潑)이라........?”
잠시 생각하던 선조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했다.
“그라면 괜찮겠지.”
“감사하옵니다. 아바마마!”
부복한 이진을 웃음으로 바라보는 이연이었다.
많이 컸다는 뜻의 웃음인 것 같았다.
이발이라하면 현 정권을 잡고 있는 동인의 영수였다. 이조정랑 시절 동인을 많이 천거한 관계로 동인의 사랑을 온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이진의 속셈은 그런 사람이니 여차 즉하면 그에 기대어 많은 지지를 끌어내고 싶어 선택한 사람이었다.
반대로 정철은 현 서인의 영수로 공식 사부로 그를 들이려 했으나, 이연의 거절로 이는 기대에 어긋났지만 일단 검계의 두령 중 한 명인 김득신을 그에게 보내 초치했으니 두고 볼 일 이었다.
* * *
문안 인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이진이 경서를 탐독하고 있는데, 누가 조심스럽게 인기척을 내었다.
“누구냐?”
“시비 옥란(玉蘭)이옵니다. 군 마마님!”
돌연한 허 부인 최측근 몸종의 내방에, 이상함을 느낀 이진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군부인 마마님의 몸에서 열이 나고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그래?”
놀란 음성을 뱉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는 이진이었다.
아침 문안인사 때에도 아무런 조짐을 발견하지 못한 이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녀는 오고 가는 내내 가마 속에 있었고, 얼굴을 드러낸 시간이 짧아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키는 이진이었다.
“가보자!”
“네, 군 마마님!”
옥란이 달음박질을 하고 이진과 금란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침내 이진이 안채의 방에 들어서자, 이마에 흰 띠를 두른 채 누워 있는 부인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부인이 일어나려 애를 쓰자 이진은 대경하여 급히 그녀를 다시 편안하게 눕히며 말했다.
“어디가 아프면 진즉 말할 것이지, 쯧쯧.......! 사람하고는.......”
“어제 날씨가 더워 찬물에 수욕을 한 뒤로 신열이 있었으나, 곧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좀 무리를 했더니........”
“여러 말 할 것 없소. 내 곧 어의를 부를 테니, 그에게 보입시다.”
“네.”
이진은 곧 금란을 시켜 내원으로 사람을 보내 허준을 청하도록 했다.
채 이각이 지나지 않아 허준이 들이닥쳤다.
“군부인 마마께서 환후가 계시다고요?”
“그렇소.”
이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허준이 조심스럽게 허 부인의 곁으로 가 표정을 세세히 살폈다. 그러더니 그가 말했다.
“외부로 보아서는 고뿔 같사오나, 자세한 병증을 알기 위해서는 진맥을 해야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오,”
이진의 대답이 떨어지자 어의 허준보다도 시비 옥란이 더 바빠졌다. 허준이 보따리에서 꺼낸 명주실을 곧 허 부인의 왼 손목에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게 줄을 내어 허준의 손에 잡혀주었다.
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한 생각에 대신 덥석 부인의 손을 잡아 허준의 손에 넘겨주고 싶은 이진이었다. 맥 하나 재는데 저 모양이니 가관치도 않았던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더욱 난감한 일이 그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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