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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5화 (5/210)

< -- 5 회: 쪽박 or 대박? -- >

5

“군 마마, 쾌차하셨다 들었사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아직은 아니 오. 조금 더 조섭을 해야 하오.”

“이 핑계 저 핑계로 학문을 등한이 하오시면........”

“내 앞으로는 열심히 할 것이니 조금 더 말미를 주오.”

“알았사옵니다. 기별을 주시옵소서.”

“내 그러 하리다.”

웬일인지 선선히 물러나는 왕자사부 하락이었다. 이내 인사를 한 그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형님, 궐 안으로 문안이나 여쭈러 갑시다.”

광해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이진이 말했다.

“너무 이르지 않느냐? 조강이 끝난 시각에 입궐하는 것으로 하자.”

“네, 형님!”

이진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광해 이 혼이었다. 궐 밖으로 거처를 옮긴 왕자들은 사오일에 한 번씩 문안 인사를 올리러 궐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었다.

“들어오너라.”

“네, 형님!”

원래대로 조강이 시작되었다면 아직 끝나려면 한 시진 정도 남았으므로, 이진은 광해를 자신의 거처로 불러들였다. 약 두 시간이 남았는데 마냥 광해를 밖에다 세월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안을 끼고 보료 위에 앉은 이진이 맞은편의 광해를 향해 물었다.

“요즘 세상의 내 평판이 어떠 하드냐?”

이진의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광해 이 혼이 대답했다.

“세상의 평판이야 형님이 잘 아실 것 이온 즉 요즘 말썽이 되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과 저의 집을 지을 당시 저와 형님의 집 모두 이웃집 터를 잠식하였은즉 이를 허물 삼아 매일 소를 제기하는 것으로 압니다. 부왕의 낯을 보아 관원들이 미적미적 하고 있사오나 바른 일은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하면 너는 어떻게 처리하였더냐?”

“저는 즉각 말썽이 일자 변상 조치하였사옵니다.”

“흐흠........! 잘못된 일은 잘못된 일이로다. 금란이 계 있느냐?”

“네, 군 마마!”

“가서 덕삼이에게 일러 요즘 시세대로 쳐서 모두 변상 조치하도록 해라.”

“네, 군 마마!”

곧 금란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진의 이 조치에 황당하다는 표정의 광해였다. 예전의 임해군 같았으면 어림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형님의 성품이 변하신 것 같사옵니다.”

“문득 죽음에 이르렀다 깨어나니 이제 세상이 달리 보이느니라. 허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진의 말을 끝으로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해진 이진이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광해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내 시간이 되면 들르마. 잠시 집에 가 있거라.”

“알겠사옵니다. 형님!”

광해가 처소를 나가자 이진은 돌아와 대기해 있는 금란에게 명해 허 씨 부인의 입궐을 준비하도록 하는 한편 옆방의 송익필을 불러들여 대담을 나누었다.

“내가 왕통을 이을 수 있는 첩경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 보는가?”

이진의 물음에 송익필은 평소에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우선 학문적 소양을 충실이 쌓으십시오. 평생에 걸쳐 유학을 전문으로 익히는 신하들에 비할 수는 없겠사오나 최소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행실을 보다 바르게 하여 인망을 모으는 한편 궐 안팎으로 내 지지자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차 즉하면 그들이 군 마마의 충실한 수족이 될 수 있도록 그것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어 그것을 조정을 하시던 지요.”

“약점이라........?”

반문하는 이진의 머리에는 명대 영락제가 시행했던 금의위와 동창이라는 제도가 떠올랐다. 내심 이를 시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진의 표정을 살피던 송익필이 부언을 했다.

“군 마마께서 궐내의 인물로 가장 친밀히 사귀어 놓을 사람은 왕비마마이옵니다. 비록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여 지금은 그 권위가 많이 훼손되었사오나, 여차 즉하면 어보(御寶)가 어디로 가겠사옵니까?”

만약 선조가 왕세자를 책봉치 않고 돌연히 승하한다면 당연히 국새는 이제 대비가 된 중전 박 씨에게 갈 것이다. 그녀의 언문 교지에 의해 다음 대 보위가 결정될 것을 생각하니 이진은 특히 그녀에게 누구보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고 더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재물이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과 재물이온 즉 평소에도 이를 소홀히 하지 마옵시고, 많은 재물을 축적하여 이를 기화로 직간접적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음입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송익필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 틀림없는 말이었다. 이에 이진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을까에 대해 집중되었다. 재물을 모으되 지금까지 임해가 해오던 대로 남의 재물을 갈취하는 방법은 절대 지양할 일이었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을 방법을 생각하는 그의 머리에 많은 생각들이 명멸해갔다. 첫째로 이진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인삼이었다. 이진이 알기로 인삼은 17세기 후반인 숙종  때나 되어야 채취가 아닌 재배에 성공하여 조선 후반기의 무역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진은 이를 시기를 앞당겨 대량 재배에 성공한다면 국부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도 치부할 수 있다는 생각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삼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송상이 떠올랐다. 송상이 이를 공급하면 조선 조정은 이것을 가지고 조공무역에 나섰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무엇을 결심하고 고개를 끄덕인 이진의 머리에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무역  즉 대외교역이었다.

조선 조정은 명나라와 같이 해금정책과 공도 정책을 취해 원칙적으로 사적인 대외 무역은 금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역으로 뒤집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물론 예외적으로 초량 왜관을 통해 일정 정도의 무역은 행하고 있었다.

또 왜관을 생각하니 임진왜란의 원흉 풍신수길이 떠오르며 그가 부하들에게 많은 금은을 내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에도 생각이 미쳤다. 이는 그가 당시 서양인들을 받아들여 금광을 개발했다는 방증이었다.

금광개발, 무역, 이 생각 뒤에 떠오른 것은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구황식물이었다. 임란이 1592년에 일어난다면 정확히 100년 전인 1492년에는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기에 지금 서양에는 이 구황작물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이에 구황작물도 자신의 손으로 미리미리 구해 이를 빨리 조선 전역에 보급시켜 백성들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 이진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험, 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십니까?”

혼자 앉아 있기가 무료했던지 헛기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송익필 때문에 생각에서 깨어난 이진이 말했다.

“내 그대의 재물 이야기에 그 방법을 모색하다보니 생각이 길어 졌구료. 곧 입궐을 해야 하니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합시다.”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

이진의 말에 송익필이 물러나자 이진은 곧 금란을 불러들여 허 부인에게 중전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이곳으로 오도록 했다. 그의 지시로 금란이 물러나자 이진은 계속해서 재물을 불릴 생각에 골몰하였다.

이진이 이렇게 깊은 생각에 빠져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금란의 목소리에 생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진이었다.

“군 마마님, 군부인 납시었습니다.”

“어서 오오!”

이진의 말에 사르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이진의 방으로 들어오는 허 씨 부인이었다. 이 진 앞에 서니 새삼 어젯밤의 황홀했던 정사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를 모른 채하며 이진이 물었다.

“그래, 중전에게 드릴 선물은 장만했소?”

“이것이 옵니다.”

부인이 내민 보함을 받아 열어보니 그곳에는 팥알만 한 진주 한 알이 영롱히 빛을 발하고 있는 목걸이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소첩의 생일 선물로 군 마마께옵서 가례를 올리던 해에 주신 것이오나, 중전마마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면 아깝지 않사옵니다.”

“부인의 마음씨가 아주 곱소. 내 오늘은 이것을 받아들이지만 훗날 더 멋진 선물을 하리라.”

“감읍하옵니다. 군 마마!”

이때 덕삼의 목소리가 대청 앞뜰에서 들려왔다.

“군 마마, 입궁 준비 되었사옵니다.”

“그래, 알았다. 갑시다!”

대답을 한 이진이 부인 허 씨를 종용하여 마당에 내려섰다.

마당에는 말 한 필과 가마 한 채가 종복들에 의해 준비되어 있었다. 곧 부인이 준비된 가마에 오르고 금란이 가마 뒤에 섰다. 이진 또한 말에 오르니 행렬이 곧 출발을 했다.

“광해의 집에 들렀다 가자!”

“네, 군 마마님!”

말고삐를 잡은 덕삼에게 명하니 덕삼이 곧 대답했다.

내원을 벗어난 이진에게 중원(中院)이 펼쳐졌다. 200여 비복들이 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임해의 위세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중원마저 벗어나 외원에 이르니 그곳은 제법 큰 마당에 처처에 창고가 즐비하고 마구간과 외양간도 보였다. 외원을 지나 대문마저 벗어나니 곧 큰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광해의 집 같아 흔들려 가고 있는데, 곧 그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덕삼이 크게 비복들을 불렀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그의 부름에 비복들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광해의 행렬이 나타났다.

“가시지요. 형님!”

그런데 광해는 부인을 동반하지 않은 홑몸이었다. 짐작을 한 이진이 넌지시 물었다.

“너도 이제 장가를 가야하지 않겠느냐?”

“아니래도 아바마마의 말씀이 계셨사옵니다. 아마 곧 간택이 있지 않을까 사료되어 집니다.”

“그래, 얼른 장가를 들어 손을 이어야겠지.”

남의 일인 양 중얼거린 이진이 흔들려 가는데 그를 보자 생각나는 것이 있어 이진은 덕삼에게 물었다.

“이웃집의 경계를 침범했다는데 사실이냐?”

“그렇사옵니다. 문후가 끝나면 그 집 영감을 찾아뵙고 시세에 따라 변상할 예정이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인심을 잃는 일은 하지 않도록 해라. 이를 어길 시에는 고하를 막론하고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네, 군 마마!”

이진의 말에 새삼 그를 다시 보는 광해와 덕삼이었다. 아무튼 이들 형제가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思政殿)에 도착하니, 마침 조강을 마친 선조 이연이 신하들을 배웅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녕하셨사옵니까? 아바마마!”

임해군 이진의 인사에 보료에 앉아 있던 이연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금년 봄에 창궐한 역질로 성(珹:의안군)을 잃고 시름 깊던 차에, 다행이 장자인 네가 쾌차하였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다. 이제 학문에 더욱 힘쓰고 왕자로서의 소양을 더욱 갈고 닦아야 할 것이야.”

“네, 아바마마! 하온데 아바마마?”

“할 말이 있거든 하거라.”

“얼마 전 동서반 이품 이상 열린 중신회의에서는 일본에 통신사 파견을 않기로 하였다 들었사옵니다.”

“그러했다.”

“반드시 파견하셔야 합니다. 해서 반드시 그놈들의 실체를 온전하게 파악해 대비해야할 것이옵니다.”

“쓸데없는 소리. 이 평화로운 시기에 무슨 망발이냐! 너는 더 이상 나라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학문을 익히는 데나 힘써라!”

이렇게 말하는 이연을 보니 기가 막혀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지는 이진이었다. 해서 이진은 볼이 부은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하고 한 발치 물러섰다.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이에 광해가 이연에게 문후를 여쭙고 간단한 다과를 앞에 놓고, 잠시 삼부자 간에 대화가 오갔다. 일상의 대화였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마저도 이진은 혹 말실수라도 있을까 하여 일체의 말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광해와 선조의 이연의 대화가 길어지자, 갑갑증이 인 이진이 평소 그의 방자한 태도대로 말했다.

“아바마마, 중전마마를 뵙고 오겠사옵니다.”

이는 자신이 의도치 않는 전혀 통제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의 태도에 선조 이연이 불쾌한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가 보라는 뜻이었다. 이에 이진은 절을 하고 부인과 비복들을 데리고 왕비의 침전이 있는 교태전으로 향했다.

그의 출현에 의인왕후 박 씨를 모시던 나인들이 분주해졌다. 고했는지 곧 침소로 들어오라는 박 씨의 명이 떨어졌다. 부인을 대동한 이진이 왕비의 침소에 다다랐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가운데 왕비 박 씨가 단정한 자세로 보료에 앉아 있었다.

“이제야 쾌차해 어마마마께 문후 여쭈옵나이다.”

“시방 나를 어마마마라고 불렀느냐?”

“네, 어마마마!”

이진의 말에 깜짝 놀란 의인왕후 박 씨가 보료에서 벌떡 일어나 부복해 있는 이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실로 이게 얼마 만이냐? 네가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장성해서는 처음 듣는 어마마마 소리로 구나!”

“생사경을 넘다들다 살아나니 세상이 많이 달리 보였사옵니다. 앞으로는 어마마마께 효도하고  충실히 봉양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래, 그래. 그래야 사직의 장자지. 네가 정신을 차렸다니 이 어미는 그 무엇보다도 기쁘다!”

진심인지 의인왕후 박 씨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자태가 아리땁고 살아있는 관음보살로 불리나, 왕자를 생산치 못해 평소 후궁들에게도 큰 소리 한 번 치지 못하고 적적하게 지내는 그녀에게, 임해 이진의 ‘어마마마’ 소리는 그 어떤 말과 행위보다도 친근하게 들렸다.

곧 상체를 일으킨 이진이 부인을 보고 말했다.

“그간의 불효를 용서해달라는 의미에서 제가 모처럼 어마마마께 드릴 선물을 하나 준비해왔사옵니다.”

“이 어미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네가 개과천선했다는 것이 기쁘다. 앞으로는 집안의 장자답게 행실을 바르게 하고 학문에도 힘 쓰거라. 이 어미로서는 더 한 소원이 없다.”

“감사하옵니다. 어마마마!”

다시 한 번 절을 올린 이진은 곧 부인에게 받아든 보함을 왕비 박 씨에게 받쳤다.

“뭐, 이런 걸 다.........! 어마! 곱기도 해라! 이것은 진주가 아니 더냐?”

“네, 어마마마!”

“설마 이것마저도........”“절대 그럴 리 없사옵니다. 어찌 어마마마께 불경한 물건을 올리리까?”

“암, 그래야지. 살다보니 우리 큰아들에게 선물도 다 받아보는구나.”

후비의 자식이라도 자신의 자식인 양 아끼는 왕비 박 씨였으나, 그간 말썽을 피우던 자식이 개과천선했다함은 물론 선물마저 안기자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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