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 회: 쪽박 or 대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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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과상을 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이진이 물러날 뜻을 비쳤다.
“오늘은 불민한 소자가 소주방으로 행차하여 아바마마의 수라상을 감독해볼까 하옵니다.”
“네 말을 들으니 실로 다른 사람이 되었음이야! 어서 나가 보거라!”
“감사하옵니다. 어마마마!”
곧 부인과 함께 자리를 물러난 이진은 자신의 말대로 소주방으로 향하였다. 때로 돌아가며 수라상을 살피는 것 또한 왕자들의 임무 중의 하나였다. 오늘 이진 아니 임해는 모처럼만에 이 일을 하려는 것이다.
곧 이진은 수라상을 비롯해 왕실 잔칫상 등을 만드는 궁중 요리원인 소주방(燒廚房)으로 향했다. 임금의 전용 식사를 만드는 수라간도 이 안에 위치해 있었다. 또 드라마 ‘대장금’에서 상궁들이 음식을 만들던 장소가 바로 소주방이었다.
아무튼 이진이 부인과 일행을 대동하고 소주방으로 향하여 수라간 문을 들어서는데 한 물체가 그와 크게 부딪쳐 나뒹굴었다.
“무슨 짓이냐?”
이진의 호통에 나뒹군 나인이 곧 자세를 바로 해 부복하더니 말했다.
“쇤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한 번만 용서하여주십시오. 군 마마님!”
“고개를 들라!”
이진의 명에 상궁이 미적미적하다가 고개를 드는데 전혀 공포의 기색이 없었다. 다른 나인들 같았으면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부들부들 떨어야 정상이나 입으로는 ‘죽을죄를 지었다’ 하면서도 신색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요것 봐라!’
속으로 생각한 이진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김개시(金介屎) 이옵나이다. 마마님!”
시(屎) 자가 똥 시 자이다. 즉 김개시를 순수한 우리말로 번역하면 ‘김 개똥’ 이라는 말이었다.
“김 개똥이라.........?”
중얼거리는 이진의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선조의 후궁이나 광해가 세자로 책봉되었을 때 동궁전의 나인이 되어, 그를 따르게 되는 여인이 이 여인이었다.
글을 알고 문서 처리에 능했던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제거에 앞장서는 등 광해군의 왕권강화를 위해 온갖 악역을 도맡아했던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던 궁녀였다.
아무튼 김개시는 뛰어난 판단력과 두뇌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훗날에는 매관매직을 일삼지만 말이다. 김개시는 어려서 입궁하여 상궁에까지 올랐을 뿐, 선조의 승은을 입지 못하여 정식 후궁이 되지는 못했다.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천예(賤隸)의 딸이란 기록으로 보아 노비의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입궁한 나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린 나이에 입궁한 것으로 짐작된다.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다고 한 실록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까지 기억을 떠올린 이진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용모로 눈길이 갔다.
기록대로 빼어난 용모는 분명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박색도 아니었고 평범함보다는 조금 나은 수준이나, 부인 허 씨에게는 없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충분이 먹을 수 있는 소주방에 근무해서인지 제법 살집이 풍성했고 살결은 백옥 같았다. 나이는 벌써 이십 대 후반으로 추정되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이진이 갑자기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너 잠시 나를 따라 오너라. 부인과 너희들은 잠시 여기 대기해 있고.”
“네, 군 마마님!”
부인 이하 모두가 명을 받드는 가운데 미적미적 일어난 개똥이 기어코 이진의 눈총을 받고서야 수라간을 나와 조용히 이진의 뒤를 따랐다.
“오늘 오후에 우리 집에 오너라. 나올 수는 있겠느냐?”
역시 머뭇머뭇 대답이 없는 그녀였다.
“핑계로는 내가 소주방의 음식을 맛보고 그 음식이 맛있다하여 가져오라 할 테니, 그 핑계를 대어라. 알았느냐?”
“네, 군 마마님!”
비로소 명료하게 대답하는 김 개똥이었다.
돌아서서 음흉한 웃음을 흘린 이진이 곧 다시 수라간으로 향하자 그녀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곧 수라간 문안으로 들어온 이진은 검식(檢食)을 목적으로 이것저것 맛보았다. 그러던 이진이 곧 방금 먹어본 전유어(煎油漁)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음식이 아주 맛있구나! 이것을 네가 부딪친 죄로 오늘 오후에 우리 집으로 가져오너라! 알겠느냐?”
“네, 군 마마님!”
안에는 수라상을 차리던 많은 상궁 나인들이 있었지만 평소 포악하고 개차반 같은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궁녀가 궁 밖을 드나들 수 없음에도 감히 누구도 나서 대거리하지 못했다.
이진이 지금 가리킨 전유어(煎油漁)라는 것은, 야채나 생선, 고기 따위를 얇게 저며 소금과 후춧가루 따위로 간을 한 다음,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기름에 부친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이름 모를 생선류였다.
아무튼 수라상의 모든 검식을 끝낸 이진은 곧 수라간을 나와 선조 이연에게 작별을 고하고 궁궐을 나섰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이진은 무슨 생각인지 미처 가지 않은 덕삼에게 물었다.
“수노 중에 상재에 밝은 자가 있더냐?”
“충삼이가 개중에는 가장 밝사옵니다.”
“가서 그를 보내되, 그림에 뛰어난 자도 한 명 구해오너라!”
“네, 군 마마님!”
그가 대답하고 물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부인은 어느새 안채로 갔고, 금란만이 남아 대기하고 있었다.
“너도 내가 부를 때까지는 잠시 쉬어라.”
“네, 마마님!”
그녀마저 물러나자 이진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잠시 명상에 잠겼다. 나름 수양을 하기 위해서였다. 선조 이연의 앞에서와 같이 때로 자신이 의도치 않는 행동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은 임해의 버릇이 나타나는 것 같아 이를 다스리고자 함이었다.
한참 후, 그런 이진에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충삼 대령했사옵니다. 군 마마님!”
고요히 눈을 뜬 이진이 대청 앞뜰에 부복해 있는 충삼이라는 자를 내려다보았다.
수노 중 한 명으로 사십대의 충직하게 생긴 자였다.
“내 글 한 통을 닦아 줄 테니 개성에 좀 다녀오너라. 가서 송상의 대방을 데려오면 되느니라.”
“알겠사옵니다. 군 마마님!”
그의 대답을 들으며 이진은 곧 문방사우를 찾아 몇 자 휘갈겨 쓰고는 먹이 마르기를 기다려 이를 봉해 충삼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떠나자 이진은 비로소 학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송익필을 불러 자문을 구하며 경서 공부에 몰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신시가 지났건만 개똥을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괘씸한 생각에 이를 갈고 있는데, 저녁상도 물린 술시 초(저녁 7시)가 되자 장옷을 뒤집어 쓴 개똥이 나타났다.
자신의 방으로 들인 이진이 낮게 소리쳤다.
“왜 이리 늦었느냐?”
“아녀자가 어찌 백주 대낮에 길을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 조선의 여인들은 대부분 낮에 움직이는 것을 극력 꺼리고 밤이 되어서야 그것도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다녔다. 할머니가 되면 장옷을 안 가려도 되지만 젊은 처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놓지 않는 것이 당시의 불문율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 잠시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자니 개똥은 가져온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군 마마께서 부탁하신 음식이옵니다.”
음식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이진은 여전히 장옷을 쓴 채인 그녀를 주시하며 물었다.
“글을 아느냐?”
“이름 석 자 정도는 쓸 줄 아옵니다.”
“흐흠........! 장옷을 벗어봐라!”
“아무리 군 마마라 하옵지만 저는 궁녀이옵니다.”
“내 말이 말 같이 들리지 않느냐?”
이진의 노호에 찔끔한 개똥이 비로소 마지못해 장옷을 벗어 바닥에 놓았다.
“몇 살 이드냐?”
“스물아홉이옵니다.”
“나이가 제법 되었구나.”
이진의 말이 옳았다. 조혼 풍습이 있는 당시로서는 노처녀를 넘어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야 있지만 말이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포악하고 군왕의 자질이 없다는 세간의 평가이나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포악한 것은 맞으나 자질은 충분하고도 넘치는 것 같사옵니다.”
대가 센 개똥이었다. 이진의 앞에서도 한 점 망설임 없이 자신의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흐흠.......! 그렇다 라........?”
서안을 톡톡 두드리며 잠시 생각을 하던 이진이 돌연히 개똥에게 물었다.
“네가 볼 때 이 임해가 왕통을 이을 여지가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말이 없던 그녀가 이진의 채근을 받고서야 입을 열었다.
“천한 것이 무엇을 알겠사옵니까 만은, 이대로 간다면 십에 여덟은 힘들 것 같사옵니다.”
“그 이유로는?”
“어심부터 조정 대신에 이르기까지 군 마마를 지지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 보았다. 그래서 내 네게 하는 말이다 만은, 네가 나를 도울 수는 없겠느냐?”
“천것이 돕는다고 무슨 힘이 되겠사옵니까? 군 마마!”
“아니다. 영리한 너라면 여러 면에서 충분히 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주겠느냐?”
“그것이........”
“내 왕통을 잇게 되는 날 충분이 너에게 보답을 해주마.”
이진의 말에 무엄하게도 잠시 그의 표정을 자세히 한 번 훑은 그녀가 말했다.
“약조를 저버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입술을 깨물며 야무지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기꺼워진 이진이 그녀를 가까이 불렀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아, 아니 되옵니다. 천것은 이미 주상의 여인으로 지정된 궁녀의 몸이옵니다.”
“서로의 약조를 배반치 않을 징표가 필요하다.”
“네.......?”
“영리한 네가 몰라 되묻는다는 말이냐?”
“이러다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천것이 죽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사오나, 같이 죽사옵니다. 군 마마!”
“그러니 내 더욱 네 몸에 화인(火印)을 남기려는 것이다. 너와 나의 생사가 곧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군 마마! 흑흑흑.........! 천것을 이렇게 아끼는 이는 세상에서 군 마마가 유일하십니다. 흑흑흑........!”
다가가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쓸던 이진이 말했다.
“내 옷을 벗기랴?”
“아, 아니옵니다. 허나 군 마마, 이미 천것은 ........”
“남자를 안단 말이냐?”
“딱 한 번, 수염 없는 것에 당했사옵니다.”
“환관?”
“네. 군 마마!”
당시 조선의 환관은 중국과 달리 고환만 제거했지 남성의 상징인 성기는 제거하지 않은 상당수의 환관이 존재했다. 이런 연유로 대개의 환관들이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자손을 둘 수 없었기에 양자로 대를 이었으며 출퇴근이 가능했다.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이 출퇴근을 했으며,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지밀만이 대궐을 지키는 예가 많았다. 그러니 환관에게 당했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내 그 자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겠다. 걱정 말고 옷이나 벗어라.”
“네, 군 마마!”
감격한 표정으로 조용히 일어나 등을 돌리고 옷을 벗기 시작하는 개똥이었다.
“부끄럽사옵니다. 군 마마! 불을 꺼주시옵소서.”
“알았다.”
이진이 일어나 촛불을 끄니 온 방안이 먹물 같이 깜깜했다. 그러나 곧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이 주변의 사물을 어렴풋이 살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구름에 가려졌던 보름달마저 그 얼굴을 내미니 금빛 달빛 속에서 그녀의 몸매가 확연히 드러났다.
얼굴은 별로였지만 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풍만한 여체가 과히 압권이라 할 만 했다. 잠시 그녀의 뒤태를 감상하던 이진 스스로가 이부자리를 펴고 그녀를 불렀다.
“이리 오너라.”
“네, 군 마마!”
나직이 대답한 그녀가 부끄러운 몸짓으로 이진이 누워있는 이불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곧 그녀를 품에 당겨 안은 이진이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쓸며 물었다.
“정녕 후회하지 않겠느냐?”
“군 마마께옵소서 이미 생사가 한 몸이라 언명하셨거늘, 소비야 무엇이 아깝겠사옵니까?”
“하하하.......! 좋다! 내 오늘 네게 극락을 구경시켜주마.”
이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더욱 이진의 품을 파고드는 개똥이었다.
그런 그녀의 등을 한동안 토닥여준 이진이 돌연 벌떡 일어나 스스로 옷을 벗어던졌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이진이 다시 그녀를 끌어안고 벌써 가쁜 그녀의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여간해서 그녀의 거친 숨결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미 남자를 알아서 일까, 아니면 서로 맞댄 살갗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가쁜 호흡은 가라앉지를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거칠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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