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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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수세 (1)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인 잃은 유성추가 바닥 깊숙이 틀어박혔다.
생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놈의 가슴에 자운유성창을 쑤셔 박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놈은 하나.
시후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운 좋은 줄 알아.”
하지만, 시후는 뒷걸음질 치는 놈을 노리는 대신 후괴를 향해 다가갔다.
덕분에 후괴를 상대하던 두 녀석은 황급히 좌우로 찢어졌다.
시후는 둘을 공격하는 대신 후괴의 곁에 바짝 붙어 나지막이 속삭였다.
“물러나죠.”
후괴는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었는지 귀를 후벼 팠다.
이 대 삼.
단순히 수적으로는 불리할지 몰라도, 유리한 건 이쪽이었다.
물러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소릴 하는가?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다 죽일 수······.”
시후는 조용히 손가락을 우측으로 뻗었다.
이유는 충분하다.
두 사람은 오십 악으로 추정되는 이들 중 먼저 도착하는 다섯을 막기 위해 마교 쪽으로 달려왔다.
그 말은 즉.
“가세!”
서괴를 비롯한 정의맹의 전대 고수들이 도착하는 것보다, 나머지 오십 악이 도착하는 게 빠를 수밖에 없다.
둘은 정의맹 쪽으로 달아나듯 달렸다.
다만, 후괴를 상대하던 두 놈은 쉽사리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뒤에 바짝 붙어 귀찮게 굴었다.
후괴는 둘을 상대로도 버텼고, 시후는 말할 것도 없다.
가볍게 등룡적출을 날려 주는 것으로 녀석을 떨쳐 낸 뒤, 서괴를 비롯한 전대 고수들과 합류했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애초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역할은 명확하다.
“이 싸움은 버티기만 해도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정진 대사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제갈마혁을 포함한 네 사람이 천마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느냐면, 아니다.
공진도 여전히 수세에 몰려 있었다.
적시걸은 곡예를 하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풍마와 전마는 두 사람보다 더욱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검후와 백리은이 승기를 붙잡은 것이다.
물론, 시후가 저쪽에 손을 보탠다면 그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다.
하지만, 시후는 이전과 달리 저쪽을 도울 수 없었다.
오십 악은 분명, 이름처럼 오십 명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죽기도 했으니 마흔 명쯤 될 것이다.
문제는 그보다 약간 수준이 떨어지는 고수의 숫자다.
당장 그들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려오는 이들만 헤아려도 이쪽의 두 배는 넘었다.
급한 불을 꺼야 한다.
한 사람이 더해진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냐 말할 수도 있지만, 시후는 전력을 다한다면 팔황을 상대로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토끼와 호랑이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들개와 호랑이 수준의 차이는 날 것이다.
“아미타불, 무운을 빌겠습니다.”
정진 대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앞으로 달려나갔다.
시후는 가장 앞서 달렸다.
그것도 정중앙으로.
정면에 마주한 녀석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부족해.”
시후는 낮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가늠했다.
아직 멀다.
하지만, 속으로 셋을 헤아리자 충분히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일원신공을 극성으로 일으키자 금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공포를 심어 주마.”
시후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되어 들개 무리를 헤집기 시작했다.
* * *
“무당의 제자는 칠성검진을 펼쳐서 놈들을 상대하라!”
“화산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우리 종남이 채울 것이다! 쇄월검진을 펼쳐라!!”
시후가 종횡무진 전장을 휩쓰는 동안 본대가 격돌했다.
숫자는 마교가 반 배 더 많았지만, 정의맹은 문파마다 특색 있는 진법을 펼치며 그에 대응했다.
물론, 마교도 간단한 진법을 펼치긴 했으나 유명한 진법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소림의 백팔나한진은 능히 천명을 상대할 수 있으며, 남궁세가의 대창궁무애검진은 성벽처럼 굳건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홍설과 초설의 음공이 더해지자 더욱 견고해졌다.
정의맹 무인들의 표정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건 마교 또한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힘을 놓고 본다면 마교가 우세하다.
게다가 숫자도 반 배가량 많았다.
고작 반 배라고 할지 모르지만, 단위가 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토로번에서 패배한 건 지형이 지니는 이점 때문이었다.
서로 승리를 확신하는 두 무리 간의 힘의 균형은 거의 완벽했다.
거의 완벽하다.
즉, 미세하게나마 우세를 띠는 쪽이 있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는 소림이 있었다.
“연(聯)! 뢰(雷)!”
소림은 압도적인 기세로 마교를 몰아붙였다.
백팔나한진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진을 이루고 있는 소림승 하나하나의 경지는 다른 문파와 비교해서 한 끗발 더 높았다.
이유는 뭘까?
소림이라서?
아니다.
그들이 강해진 이유는 기본이 탄탄한 것도 있지만, 초오 대사가 소림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준비되어 있던 소림승들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다들 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남궁무의 죽음으로 칼을 갈던 남궁세가 또한 대단한 기세로 마교를 몰아붙였다.
“네놈들의 목을 베어 형님의 넋을 기리겠다!”
그 선두에는 남궁천이 있었다.
제왕검형을 익힌 그는 초절정 끝자락에 다다랐다.
적어도 이곳에선 양 떼 속의 호랑이와 마찬가지였다.
베어 넘긴 마교 잡졸의 숫자가 스물이 넘었을 무렵, 그의 검을 받아내는 녀석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남궁천은 검을 맞댄 채로 상대의 복장을 살폈다.
“음?”
아무런 흔적도 없다.
조장이라면 최소한 팔에 붉은색 완장은 차고 있어야 한다.
그 위에 급의 특징도 없다.
새까만 무복과 가슴에 새겨진 ‘하늘 천(天)’이라는 글자가 전부였다.
남궁천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놈의 정체를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대?”
녀석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남궁천은 뒤로 살짝 몸을 젖혀 피하려 했지만, 놈은 한 발 더 앞으로 내디디며 가슴을 찔러 왔다.
몸을 완전히 뒤로 눕힘과 동시에 왼손을 튕겨 천뢰지를 쏘아냈다.
아래로 휘두르려던 검이 위로 튕겨 올라갔다.
남궁천은 그 틈을 타 몸을 일으켰다.
“천마대는 대주와 부대주를 제외하면 죄다 실력이 고만고만하다던데 사실인가?”
이번에도 대답 대신 검이 날아들었다.
고만고만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천마대는 대주와 부대주를 제외하면 직책이 존재하지 않았고, 실력은 어느 정도 비슷했으니깐.
다만, 고만고만한 수준이 초절정에 발을 디딘 정도다.
보통 구파와 팔대세가에서 초절정의 벽을 뚫는 시기가 사십 전후라는 걸 생각해 보면 대단한 수준이었다.
“천마대도 별거 없군.”
도발이 아니다.
‘초절정’이라 뭉그러트려 말하지만, 막 발을 내디딘 것과 끝에 다다른 무인의 간극은 실로 대단하다.
끝에 다다른 이가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이십여 초 내에 목을 날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궁천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유달리 눈에 띄는 실력을 지닌 이들이 있었다.
천마대가 분명하다.
놈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져서 틈을 만들어 냈다.
한 마리의 쌀벌레가 곳간을 털어먹는다.
하물며 놈들은 벌레도 아닐뿐더러 한 명도 아니다.
남궁천은 손에 들린 간장검을 움켜쥐며 천마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매초, 최소 한 사람의 목숨이 달아날 정도로 격한 싸움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죽은 이의 목숨값은 지금까지 죽은 이를 모두 더한 것보다 무거웠다.
풍마가 죽었다.
그 말은 검후가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녀의 검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다음 사망자가 정해질 것이다.
공진과 적시걸을 살펴보던 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군.”
그녀는 적시걸을 택했다.
얼핏 보기에도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웠으니깐.
진땀을 흘리던 적시걸은 검후의 얼굴을 확인하곤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내상 입은 놈을 처리하는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반가움을 표출하는 방법이 남들과 달랐지만.
그의 반응에 검후는 낯빛을 굳히며 몸을 돌렸다.
“공진을 먼저 돕고 오지.”
“내상 입은 티가 안 날 정도로 팔팔하긴 했지!”
적시걸의 빠른 태세전환에 검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몸을 돌렸다.
이전에 시후와 협공했을 때는 그가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조는 필요치 않다.
서로 각자의 공격을 쏟아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싹을 틔웠다.
“크윽.”
진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후와 협공할 때야 가죽을 긁는 것에 불과했으나, 검후와의 협공은 그 아래 살을 도려내기에 충분했다.
그의 잿빛 무복에 짙은 음영이 자리 잡았다.
“어떠냐? 지금이라도 한번 머리를 조아린다면······.”
“헛소리 말고 빨리.”
검후는 적시걸의 말을 끊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정의맹 무인들은 목숨을 잃어 가고 있었다.
빨리 천마를 죽이는 게 희생을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적시걸은 불만이 있는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검후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기에 입을 꾹 닫고 묵묵히 쌍 겸을 휘둘렀다.
진마의 몸에 상처가 늘었다.
그러는 와중에 검후의 검이 그의 왼팔을 깊게 긋고 지나갔다.
그의 표정이 구긴 종이처럼 변했다.
축 늘어진 왼손으로는 더 이상 도를 붙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 진마는 오른손 하나로 도를 붙잡았다.
“지독하긴.”
한 손을 쓸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시후도 초마를 이기지 않았던가.
진마가 초마보다 조금 더 강하다고 한들 그리 대단한 차이는 아니다.
적시걸의 겸이 그의 목젖 부군으로 휘둘러지며 반으로 갈랐다.
털썩.
진마는 반쯤 잘린 목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단순 출혈뿐만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피는 폐로 들어갔다.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적시걸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뒤늦게 다가오는 백리은을 힐끔거렸다.
“빨리도 끝냈군.”
“크흠, 중독당한 게 맞나 싶더군.”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내가 놈을 상대했으면 진작······.”
적시걸을 말을 하다말고, 검후의 시선에 말끝을 흐렸다.
대화가 끊긴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공진을 향해 달려갔다.
공진은 검마를 상대로 여전히 잘 버티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지 않다면 내버려 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괜찮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공진은 검마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면서도 홀로 상대하겠다는 자존심을 꺾은 것이다.
그의 마음을 읽은 백리은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이어 검후와 적시걸도 그의 좌우를 점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그가 천마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피해!!”
목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네 사람은 알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진 이가 달려오는 것을.
팔황인 그들이 무시무시하다고 느낄 만한 이는 이곳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천마.
제갈마혁을 비롯한 이들이 죽은 것은 아니다.
단순히 떨쳐 냈을 뿐이다.
그도 떨쳐 내는 과정에서 적잖은 내공을 소모했는지,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보이는 바로는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전해지는 기운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적시걸은 재빨리 공진 옆으로 바짝 붙었다.
검후와 백리은 또한 검마를 주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네 사람이 나란히 설 무렵, 천마는 검마의 곁에 다다랐다.
그를 본 검마는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살아남은 이는 너뿐이냐?”
검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천마의 뒤를 쫓아 네 사람이 도착했다.
제갈마혁이 잠시 상황을 살피더니 손짓을 보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럴 때 써먹기로 한 진법이 있었다.
바로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이었다.
펼칠 수만 있다면, 천마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다들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지만, 천마도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무릎 꿇은 검마의 이마에 손을 얻었다.
제갈마혁을 비롯한 이들이 제 방위에 서자, 무릎을 꿇고 있던 검마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다들 검마에게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천마의 기운이 커졌다.
이전보다 몇 배는 말이다.
“흡성대법(吸星大法)······.”
제갈마혁의 말에, 다들 바닥에 쓰러진 검마를 바라봤다.
검마의 얼굴을 사막에 열흘은 내버려 둔 것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 19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