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92화 공세 (5)
모든 무공에는 각기 다른 색채가 있다.
쾌를 중시하는 무공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중을 중시하는 무공도 있는 법이다.
여러 색채가 있듯, 각기 문파들이 추구하는바 또한 다르다.
무당은 그중에서도 유(柔)를 추구했다.
그건 가장 널리 알려진 태극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공진은 무당이 추구하는 유의 극에 달한 자다.
검마의 검을 부드럽게 받아 흘리며 ‘물 흐르듯’이라는 말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성정은 무당의 무공과도 꼭 맞았다.
게다가 한 번 패배한 이력이 있기 때문일까.
그의 검은 이전보다 더욱 견고해졌다.
“그에 반해······.”
시후는 공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제자리에서 공세를 받아내는 공진과 달리, 정신 사나울 정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적시걸이다.
그가 익힌 ‘난영산회겸(亂影散會鎌)’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철저한 변(變)의 무공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정말 끊임없이 움직였다.
진마의 앞뒤 좌우 모든 방위를 점하려 듯 말이다.
그러나 그는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주둥이는 더욱 바빴다.
“그렇게 느려서 어디 그림자나 밟을 수 있겠나? 어이쿠, 방금 그림자는 밟았군. 내 칭찬해 주지. 대단해, 아주 대단해. 한 십 년만 지나면 옷자락이라도 스칠 수 있으려나?”
전혀 아니다.
말만 들으면 적시걸이 일방적으로 진마를 농락하는 것 같지만, 실상 상대를 흔들고 흔들어 빈틈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진은 여유가 있지만, 적시걸은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자충수를 둘 게 분명했다.
시후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진마를 향해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적시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혼자서도 충분한데 손 좀 거들어 주려고?”
“어휴······.”
이 와중에도 너스레를 떠는 적시걸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진마의 뒤를 점했다.
그와 동시에 진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대로 싸운다면 필패라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진마는 재발리 주변을 훑었다.
“어딜!”
적시걸은 진마가 주변을 살피지 못하도록 달려들었다.
그에 질세라, 시후도 창을 찔렀다.
일 대 이의 싸움.
하지만, 진마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공격을 받아 냈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 더 하기 일이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놈아! 나를 죽일 셈이냐?”
“거기서 좌측으로 돌면 어떻게 해요?”
두 사람은 일전에 도마를 상대할 때와 달리 손이 엉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는 주(主)와 부(附)가 확실했지만, 지금은 시후도 주가 될 수 있었으니깐.
두 사람은 손이 몇 번이고 엉키자 시후는 잠시 뒤로 물러나 소리쳤다.
“제 공격에 맞추셔야 해요!”
“이······. 알았다.”
적시걸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시후가 적시걸의 움직임을 따라가긴 버거웠다.
그의 공격은 워낙 변화막측하니깐.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쉬웠다.
시후의 공격은 굵직굵직하니 말이다.
주와 부를 정하자마자, 두 사람의 공격에 탄력이 붙었다.
“분혼파쇄!”
일원신공으로 펼치는 조가창식 후반부 초식은 강력했다.
쩌어어엉!!
“흡!”
진마의 중심이 흐트러질 정도로.
적시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좌수에 드린 겸을 마치 풀 베듯 낮게 휘둘렀다.
진마는 분혼파쇄를 막아 낸 충격을 모두 떨쳐 내진 못한 듯 몸을 휘청이면서도 적시걸의 공격을 막았다.
그 와중에 반격을 날리려는 듯 손목을 비틀었지만, 적시걸은 날다람쥐처럼 뒤로 쏙 빠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후의 공격.
“놈!!”
진마의 눈에서 흉광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공격을 막아 내는 것밖엔 없었다.
그렇게 십여 합을 더 섞었을 쯤.
적시걸의 우겸이 그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얕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지극히 옅은 상처다.
하지만, 적시걸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매우 짙었다.
몸에 공격을 허용했다는 건 거리감이 둔해졌거나, 지쳤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깐.
“하하하, 호흡이 거칠어졌군. 체력이 영 엉망이야. 잠시 쉬는 시간이라도 줄까?”
진마는 여전히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말을 섞느니 호흡을 고르겠다는 듯 대꾸조차 없었다.
“그럼 공격하는 수밖에!”
적시걸이 자세를 낮추며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정작 공격을 퍼붓는 건 시후였다.
자운유성창과 맞부딪힌 그의 몸이 휘청였고, 이어 적시걸의 쌍 겸이 그의 몸 주변을 번뜩였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려는 것인지 그의 옷은 순식간에 넝마로 변했다.
하지만, 그의 살가죽을 베는 정도에 그쳤다.
“빌어먹을!”
도통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자, 적시걸은 분통을 터트렸다.
한 끗 차이로 계속 피하고 있으니, 화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마교의 본대가 지척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오십 악은 그보다 더욱 가까웠다.
그에 맞춰 정의맹도 달려오고 있었고, 쌍괴를 비롯한 전대 고수들도 그 앞에서 발에 불이 나도록 뛰고 있었다.
시후는 좌우를 힐끔거리며 어느 쪽이 더 먼저 도착할 수 있는지 살폈지만, 거리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알 수 있는 건, 양쪽 진영에서 유달리 툭 튀어나와 달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백여 장 정도 앞서 도착할 거다.”
그런 시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적시걸은 정의맹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의맹이 앞선다.
힘을 얻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 팔다리 긴 놈만.”
아마도 후괴를 말하는 것일 터.
하지만, 그의 대답에 시후의 등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마지막에 ‘만’이라고 했다.
“그 말은······.”
“놈을 제외하면 늦어.”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마교 쪽을 바라봤다.
오십 악으로 추정되는 이들 중 유독 앞서 달리는 이들은 다섯.
후괴가 저들을 다 막을 수 있느냐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길 수 있겠지만, 둘은 힘겨울 것이고, 셋은 필패였다.
시후 또한 마찬가지다.
검후와 백리은이 나서 주면 좋겠지만, 풍마와 전마도 악착같이 버텨 내는 중이었다.
앞에 다섯은 저지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시후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홀로 상대하고 있을 테니 다섯 놈이나 막아!”
적시걸은 막 호흡을 가다듬은 진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잠시 ‘후괴가 돕는다면 진마를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가 작정하고 버틴다면 다섯이 도착할 때까지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혼전으로 간다면 더 불리했다.
“둘이서 상대해야 한다고······.”
가능성이 없진 않다.
먼저 달려온다고 무조건 강한 건 아니다.
후괴처럼 경공이 뛰어날 수도 있으니깐.
시후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달려오는 후괴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간다면······.”
천외무신에게 받은 또 다른 신화 등급의 무공을 펼쳐야 할 것이다.
* * *
“승천호! 일수만리!! 파천도래!!!”
시후는 초식을 연거푸 쏟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겠지만, 초마를 죽인 이가 창을 쓴다는 건 죄다 보았다.
즉, 시후는 셋을 상대해야 했다.
“이건 아니지!”
시후는 가랑이 사이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쳐 냄과 동시에, 몸을 돌려 등을 노리는 유성추를 튕겨 냈다.
아직 하나 남았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음험한 기운에 몸을 비틀었다.
덕분에 살짝 중심을 잃었다.
그 틈을 노리고 튕겨 낸 유성추가 뒤통수를 찔러 왔다.
이놈이 문제다.
검을 쓰는 놈과 사기(死氣) 섞인 장법을 쓰는 놈은 별 볼 일 없었다.
하지만, 이 유성추 쓰는 녀석은 정말 껄끄러웠다.
까앙!
“으윽.”
손에 전기가 흘렀다.
물론, 유성추를 사용하는 놈이 뇌전을 쓴다는 말은 아니다.
회전력이 가미된 유성추에 담긴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당장 자운유성창을 내려놓고 손을 주무르고 싶었지만, 시후가 흘린 신음을 저들도 들었기에 더욱 거칠게 몰아쳤다.
창을 비스듬히 눕혀 검을 흘림과 동시에 어깨를 향해 날아드는 음험한 장법을 피했다.
유성추는 이번에 명치로 날아들었다.
“붕악굴천!!”
시후가 추를 박살 내 버릴 요량으로 창을 찔렀지만, 날아들던 유성추는 돌연 쏙 하고 흔적을 감췄다.
허공으로 내공을 날려 보낸 것과 다름없었다.
시후에게서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앞뒤 안 가리고 놈을 향해 달려들고 싶은 생각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시후가 이를 빠드득 깨무는 순간.
등 뒤에 찔러오는 섬찟한 기운에, 비룡붕요를 펼쳐 날아드는 검강을 파훼했다.
아니나 다를까, 장법까지 같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는 대신 자운유성창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놈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럴 만도 했다.
하나를 노린다면 둘이 남는다.
둘이서 동시에 뒤를 노린다면 치명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장법을 펼치던 놈은 기꺼이 미끼가 되겠다는 듯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그리고 시후가 바로 앞까지 달려들었을 때.
훌쩍 뒤로 몸을 날리며 쌍장을 앞에 모았다.
“분혼파쇄!”
시후의 창에서 파괴적인 기운이 쏘아졌다.
다만, 방향은 뒤를 노리던 놈들을 향해서였다.
이미 달려드는 도중이었기에 분혼파쇄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공격을 맞받아치기에 유성추는 그리 좋은 병기가 아니었다.
즉, 시후가 쏘아 보낸 분혼파쇄를 막아 내는 건 오롯이 검강을 날린 검사 혼자만의 몫이었다.
단번에 그를 지워 버릴 정도의 내공을 쏟아붓진 않았지만, 최소한 속이 진탕될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리고, 쏘아 보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후는 유성추를 쥔 놈에게 달려들었다.
“멈춰라!”
뒤에서 노호와 함께 음험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시후는 끝까지 유성추를 든 놈을 향해 나아갔다.
놈이 쏘아낸 장법이 오른쪽 옆구리를 가격했다.
살점이 뜯어져 나갈 게 분명했으나.
“뭣이?!”
단순히 옷자락만이 뜯겨나갔을 뿐이다.
비천보어검이 발동한 건 아니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 아니니깐.
이건 무강 객잔 주인이 만들어 낸 물건 덕분이었다.
[비룡갑]
「독각혈망의 비늘로 인해 음기 무공에 대한 저항력을 지닙니다.
검기 이하의 공격을 막아 냅니다. 단, 완전히 굳어진 비늘이 아닌지라 강을 이용한 공격에는 취약합니다.」
장법은 강의 형태를 띠지 못하기에 기로 분류된다.
즉, 애초부터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피하려 했던 건 이렇듯 역습을 염두에 두고 피한 것이다.
그런 시후의 모습을 본 녀석은 몸을 뒤로 훌쩍 날리며 유성추를 사납게 휘둘렀다.
시후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고맙군.”
녀석의 표정에 의아함이 어렸지만,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후의 말뜻을 깨달은 것이다.
유성추는 혼자라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장법을 펼치는 녀석은 시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껄끄러운가.
답은 간단하다.
남은 이는 하나니깐.
“잘 가라.”
시후의 말과 함께 진탕된 단전을 안정시키던 놈이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무의미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놈이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시후의 자운유성창이 반 박자 빨랐다.
“끄르륵······.”
분명 셋은 필패고 둘은 힘겹다.
단, 하나는 쉽게 이길 수 있다.
시후는 하나를 상대하는 방법을 떠올렸으며 실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이는 둘.
하지만, 비룡갑을 입은 이상.
“혼자와 마찬가지란 말이지.”
시후의 혼잣말에, 유성추를 쥔 녀석이 한 발짝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본 시후는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까 뒤에서 재미 쏠쏠히 봤지? 이번엔 내 차례다.”
- 19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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