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65화 (14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65화 대화합 (1)

시후와 쌍괴는 이야기가 진행 중인 통에 들어온 터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따로 물어봐야 했다.

추나행이 말해 준 내용은 간략했다.

택산(澤山)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사람이 지나갔다.

문제는 개방의 눈을 피해서 지나쳤다는 점이다.

게다가 숫자도 적지 않았다.

발자국과 그들이 지나며 남긴 흔적으로 추산해 본 결과, 족히 서른.

적다면 적은 숫자지만, 독마와 혈랑을 생각한다면 적다고 할 수도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이 지나간 흔적으로 짐작건대, 그리 높은 수준의 고수는 아니라는 게지.”

“그게 어느 정도인데요?”

“끽해야 절정?”

끽해야 절정이라는 말이 당연했다.

상대는 마교니깐.

주변이 워낙 시끄러운 통에 추나행은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 탓에 가슴에 잔잔한 통증이 느껴지는지 눈을 찌푸렸다.

“고작 절정 서른으로 뭔가를 꾸미려 들진 않을 텐데요?”

“안 그래도 성동격서가 아닐까 싶어 다른 곳으로도 눈을 돌려놨네.”

“개방에서도 골치 아프겠네요.”

“아프지. 예로부터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막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저들이 작정하고 중원으로 숨어들려고 한다면 사실상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중원 전역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하지만, 말과는 달리 추나행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곧 탁자에 올려진 큼지막한 지도를 가리켰다.

“저기 붉은색 실들이 보이는가?”

지도 위에는 붉은색 실이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마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처럼 실은 천산산맥에서 출발하였고, 중원 전역으로 뻗어 나가려 했다.

“놈들이 지나간 길이지. 개방에선 저 길을 지나는 놈 중 몇몇은 잡을 걸세.”

“몇몇은?”

그의 말에 시후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의도적으로 모른 척을 한다.

개방이 뭘 하고자 하는지 대략 짐작은 갔다.

들키지 않은 경로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쉽게도 놓친 녀석들은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겠지.”

그의 얼굴에는 아무 매력적인 미소가 맴돌았다.

그들이 얻은 정보는 개방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일 테고, 놈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움직일 것이다.

계획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점이 있었다.

“어차피 놈들은 저기 천산산맥에 틀어박혀 있을 텐데, 정보를 흘리는 게 의미가 있나요?”

이번 독마와 혈랑의 일을 마교가 알아차린다면, 몸을 잔뜩 웅크릴 것이다.

그런데 정보를 흘린다?

별 의미 없는 짓이 될 공산이 높다.

시후의 물음에 추나행은 한층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귀가 쫑긋거릴 정보가 아니라, 몸이 들썩할 정보라면 어떻겠나?”

“몸이 들썩할 정도라면?”

그의 말에 쌍괴도 호기심이 동하는지 관심을 보였다.

세 사람은 추나행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알려 주는 대신 주변을 가리킬 뿐이었다.

사방에서 떠들어대긴 했지만, 가장 목소리가 큰 두 사람을 꼽으라면 종남과 화산의 두 장로였다.

두 사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대화를 나눴다.

“이 지도만 놓고 보더라도, 이번 일은 화산에서 진행함이 옳소!”

“옥 장로께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오? 화산은 논외외다.”

“논외라니! 종남은 지금 화산을 욕하는 것이오!”

“욕하다니? 논외라는 이유를 정녕 모르시오? 누가 화산파를 접근성이 용이하다고 하겠소?”

“다소 산세가 험준하다는 건 인정하오. 하지만, 각 문파와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 화산에서······.”

“거리라고 하셨소? 그렇다면 우리 종남이 더 적격이겠구려.”

두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갈등이 커져 갔다.

결국, 이를 지켜보던 정진 대사가 그들을 만류했다.

“각 문파와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종남과 화산이 가장 적격이라는 건 소승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두 분께서 이토록 서로를 헐뜯고 계시니, 이번 대화합은 종남에서 연다면 화산이, 화산에서 연다면 종남이 반발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로 뭉쳐야 할 이 시기에 갈등을 유발하니, 차라리 다른 문파에서 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아주 강경하게.

덕분에 화산과 종남의 두 장로는 깜짝 놀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쏘아진 화살이었다.

“정진 대사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종남에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만, 화합을 깨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찬성합니다.”

무당에 이어 남궁세가에서도 정진 대사의 의견을 지지했다.

대화합은 단순히 구파일방과 팔대세가만의 모임이 아니었다.

무림인 모두를 아우르는 자리이기에, 어디서 열리느냐가 중요했다.

흔히 소림과 무당을 ‘북숭소림(北崇小林)이며 남존무당(南尊武堂)이다’라고 부르지만, ‘대화합이 열리는 문파는 그다음’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막대한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다.

팔대세가라고 다르지 않다.

남궁세가를 넘어서진 못할 테지만, 멸문하기 이전의 모용세가의 위치까지는 넘볼 수 있을 터.

다들 눈을 반짝였다.

“팽가는 너무 멀지만 않으면 됩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

팽헌과 제갈마혁은 열지 않겠노라 말했다.

두 세가를 필두로 특정 문파와 멀리 떨어진 곳은 양심을 지켰다.

위치를 놓고 본다면, 화산과 종남 다음으로 무당과 소림이 좋았다.

하지만, 두 문파는 이런 일에 욕심 없다는 듯 바로 발을 뺐다.

그렇다면 남은 것 네 곳이다.

“사천은 드나들기가 힘들 곳이니, 이번 대화합은 공동파에서 여는 게 어떻습니까?”

당금벽의 말에 아미파는 곧장 동의했지만, 청성에서는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청성은 당가에 빚이 있었다.

도움을 한 번 외면하지 않았던가.

청성까지 동의하자, 이번 대화합은 공동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 났다.

공동의 수석 장로 추명현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당금벽을 향해 감사의 눈짓을 보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청성과 경쟁을 해야 했을 테니깐.

곧 추명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포권을 취했다.

“삼십 년 만에 열리는 만큼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종남과 화산의 두 장로는 표정을 구겼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나 간다’라는 옛말은 전혀 틀린 게 없었다.

* * *

“하필이면 공동파라니.”

후괴는 정론각을 빠져나오며 중얼거렸다.

시후는 공동파와 안 좋은 관계냐고 물으려다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쌍괴는 공동파로 향하던 청일표국을 털었으니깐.

정확히는 천양초 뿌리를 훔쳤었다.

“그 표국에서 오기라도 한다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닌데······.”

“설마 오겠어요?”

시후의 물음에 후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영약은 보통 문파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곳을 통해서 보내는 법이다. 아무리 못해도 국주는 참석할 테지. 총표두라는 자까지 온다면 분명 알아볼 텐데 말이야.”

아무리 밤중에 습격했고 얼굴을 보인 건 아니지만, 쌍괴의 신체적 특징은 흔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고절한 무공까지.

공동파에서 마주친다면 필연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

“차라리 공동파에 자백을 할까?”

“원래 받아야 할 사람이 죽었으면?”

“우라질.”

쌍괴는 대화를 나누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당시에는 혜아를 구하기 위해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를 지금에서 깨달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후도 잘 몰랐기에, 뭐라 말해 주기 어려웠다.

“넌지시 물어볼까요?”

“천양초 뿌리를 받기로 하지 않았었냐고? 행여나 그리 물으려거든 내게 미리 말하거라. 우리가 훔쳤다고 말할 테니.”

표국이 옮기는 물건은 보통 비밀리에 붙인다.

하물며 그 물건이 영약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쌍괴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끙끙댔다.

시후는 그런 두 사람을 데리고 신의를 찾아갔다.

“아, 마침 잘 왔네. 안 그래도 내일쯤이면 약을 다 만들 듯한데 어디쯤 왔다던가?”

“닷새 전에 서장을 출발했으니 잘 하면 청해 언저리에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지금쯤 꽁지 빠지게 달려오고 있겠군.”

신의는 씩 웃으며 허리를 쭉 펴며 일어섰다.

그는 화로에 불이 약해진 걸 보곤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시후가 뒤에서 쭈뼛거리자 걸음을 멈췄다.

“할 말이 있는 눈치구나.”

시후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 당시에 천양초 뿌리가 필요하다고 물었던 이유도 필요 없다고 말하면 자신이 먹으려 했었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 당시에, 먹어 치웠노라 말했다.

신의의 표정이 착잡하게 변했다.

결과적으로 시후가 했던 짓은 어찌 되었든 범죄였다.

“내가 공동으로 가서 확인해 줬으면 하느냐?”

“예.”

“흠······.”

신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기회에 바람이나 쏴야겠구나. 어디 보자, 진류 이 녀석한테는 서신 한 통을 보내야겠구나.”

그의 막내 제자이자 배교에 모을 담갔던 양진류는 지금 소림에 없다.

최근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건 복건이었다.

그간 해쳤던 수많은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그에게는 병으로 죽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되살릴 능력이 있었다.

에초에 그를 살려뒀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니깐.

다만, 처음부터 그가 이렇게 멀리 나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삼엄한 보호 속에 가까운 마을로 진찰을 보내고, 한 번, 두 번, 횟수가 쌓이고 거리가 멀어졌다.

이제는 단 한 명의 동행과 함께 천하를 주유할 정도로 풀어 주었다.

혼자라면 다소 위험하지 않으냐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한 명이 전대 ‘사대 금강’ 중 하나라면 차고 넘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아는 잠시 집에 보내야겠구나. 혹시라도 모르니 금제를 걸어서······.”

그리고 지아.

천씨세가의 딸인 그녀를 되돌릴 방법은 신의도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미 날아온 서신이 십여 통이 넘었다.

진척이 없다면 얼굴이라도 보게 해 줄 수 없냐고.

어차피 고독과 지아의 신경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금제를 가하면 무음필대를 아무리 불어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신의는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뒤, 필요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약재 주머니를 하나둘 쌓아 가던 그는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거라. 내가 소림에 있는 걸 알면서도 찾지 않았다는 건, 이미 운명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말에 쌍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다.

정말 급하다면 신의를 찾았을 것이다.

아니면 소림으로 직접 왔던지.

시후는 나가보라는 신의의 손짓에 쌍괴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만약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재수 없긴. 뭐라 변명할 거리라도 생각해야지.”

“혜아를 팔 거냐?”

후괴의 말에 서괴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

“그게 아니라면 뭐라고 변명하게? 어설픈 변명을 하려 거랑 집어치워. 내가 죄다 뒤집어쓸 테니까.”

“······ 나보다 나흘은 늦게 태어난 놈이 어른 행세는.”

서괴는 툴툴거리면서도 후괴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어설픈 변명을 할 바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니깐.

그게 사람 목숨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보다, 한 달이라······. 너무 짧지 않아?”

대화합이 열리는 날은 고작 한 달 뒤.

무려가 아니라 고작이다.

삼십 년 만에 열리는 대화합은 수천의 사람이 몰릴 테니깐.

“공동파에서 알아서 하겠지.”

서괴는 별 관심 없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후괴는 고민이 있는 듯 입을 꾹 닫고 생각에 잠겼다.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뒤돌아 신의가 있는 건물을 바라봤다.

“우리도 가자.”

후괴의 말에 서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밑도 끝도 없이 어디를 가자는 말인가.

“어디를?”

서괴의 물음에 그는 재차 몸을 돌려 서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통했다.

그렇기에 서괴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소림에서 서쪽으로 2,000리.

그곳에는 두 사람의 마음에 커다란 짐 덩이를 얹혀 준 공동파가 있었으니깐.

- 166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