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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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대화합 (2)
마교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그에 반해, 중원은 삼십 년 만에 열린 대화합으로 떠들썩했다.
마교의 발호를 모르는 이들에게 대화합은 축제나 다름없었다.
당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팔황까지 참석한다고 퍼트린 탓에, 예상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릴 듯했다.
안 그래도 공동파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끽해야 천 단위.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증축 공사가 병행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공동파의 모든 제자는 검 대신 도끼와 삽을 들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복마검(伏魔劍)’과 ‘자전마도(慈電魔刀)’는 나무를 베는 데 사용되었고, ‘흐르지 않으면 공동이 아니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행운유수(行雲流水)’는 땅을 다지는 데 매우 유용했다.
쌍괴는 그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의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몇몇은 아예 대놓고 두 사람을 감시했다.
불쾌할 만도 했지만, 쌍괴는 감내했다.
강호에서 두 사람에 향한 평가를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둘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이름을 떨친 만큼, 도끼와 삽을 쥔 모습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진지함이 한껏 묻어났다.
게다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이 옷을 적시듯, 두 사람의 진정성은 공동파 무인들의 마음에도 젖어 들었다.
“쉬엄쉬엄하십시오. 날이 덥습니다.”
“허허, 고맙네.”
중간중간 말을 건네는 자들이 부쩍 늘었다.
그럴수록 쌍괴는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런 둘과 달리, 손도 까딱 안 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제갈려.
그러나 그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전체적인 조언을 툭툭 던져 주는 것으로 제값을 톡톡히 했다.
“여긴 병(丙)의 형태로 지어 주시고 문은 남쪽을 향하되, 뒤에 따로 소문을 지어 주세요. 이곳은 음이 허해서 산 뒤편의 음기를 끌어 오지 않으면, 화가 흥해서 횡액이 일어나기에 십상이네요.”
“소문의 크기는 어느 정도면 적당하겠나?”
“사람 하나 드나들 정도로 지어 주시면 돼요. 문이 있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저쪽 터를 닦고 있는 곳은 갑(甲)의 형태로 짓되, 높이는 삼 장을 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제갈려의 풍수지리를 읽는 능력은 제갈마혁도 인정한 수준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최선을 끌어낼 순 없지만, 최악은 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다만, 본래 공동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 진전이 없었다.
“그나마 없다는 게 다행인가?”
시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쌍괴를 바라봤다.
신의가 넌지시 이것저것 물으며 다닌 결과, 근래 종남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냈다.
그나마 다행이다.
행여라도 청일표국의 인물이 쌍괴를 알아본다고 하여도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인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천양초 뿌리’를 구하려 했는가.
하지만, 생각을 오래 할 여유는 없었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후괴가 어서 삽질이나 하라는 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망할.”
시후는 짧은 투정을 내뱉으며 바닥에 삽을 찔러 넣었다.
* * *
대화합 닷새 전부터 슬슬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더니, 이틀을 남기 시점에 공동파를 찾은 사람은 천을 넘겼다.
공동파의 총 문도 수는 삼백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니, 지금 모인 인원만 해도 제 몸집의 세 배가 넘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몇이나 왔습니까?”
“다섯이오.”
“많군요.”
중원에 스며들었던 서른 명 중 스물은 추살(追殺)했다.
남은 인원은 열에 불과하니, 그 절반이 이곳에 온 것이다.
“거기에 셋이 더해질 것이외다. 물론, 눈을 벗어난 자들이 없다고 확언할 수 없으니, 숨어든 숫자는 그 두세 배에 달할 것으로 염두에 둠이 옳겠지만.”
일단 들키지 않은 경로는 다음에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두세 배는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하지만, 마음을 놓고 있는 것보다야 나았다.
구양두는 잠시 품을 뒤지더니, 제법 큼지막한 종이 석 장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새로이 파악한 세 사람의 용모파기요.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썼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일단 기억들 하시구려.”
다들 용모파기를 주의 깊게 들여다본 뒤 옆으로 돌렸다.
시후도 그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피며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이후 이어진 이야기는 어제와 같았고, 그제와 같았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만큼 다들 이번 일에 얼마큼 신경을 쓰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시후는 반 시진 동안 이어진 지루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다다른 곳은 시후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지은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홀로 적적히 술을 마시고 있던 사내가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차 형께선 어딜 그리 다녀오시오?”
“아는 사람들 좀 보고 왔지. 그보다 왜 혼자 먹고 있어? 주현이는?”
“술을 마실 바에 무공 수련을 하겠다며 나갔소.”
사내의 대답에 시후는 자연스레 맞은편에 앉으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앞에 놓인 잔에 병을 기울이자, 골골거리는 소리와 함께 맑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시후는 잔을 그득히 채운 뒤 냅다 비웠다.
그리고 곧바로 똑같은 행동을 두 번 더 반복했다.
그러자, 맞은편 사내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차 형,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소?”
“안 좋은 일은 무슨.”
시후는 퉁명스레 대답한 뒤 재차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앞에 앉아있던 사내가 조금 더 빠르게 술병을 낚아챘다.
시후는 짐짓 화난 듯 눈을 부라렸지만, 사내는 완강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차 형께서 안에 가셨다가 잔뜩 기분이 상하신 듯한데, 이 진모가 도움은 안 될지라도 같이 욕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사내의 말에 시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잔을 내밀었다.
“일단 한 잔 줘. 목 좀 축이고.”
“안주 먼저 드시면 채워 드리지요. 탕평채가 제법 맛납니다.”
시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사내의 태도도 조금 전 시후와 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들어 탕평채를 입에 넣곤 우적우적 씹었다.
사내는 그제야 빙긋 웃으며 잔을 채워 줬다.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일 때문에 그리 화가 나셨는지.”
시후는 반쯤 채워진 잔을 내려다보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인 뒤, 시후는 주위를 슬쩍 살피며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정의맹 놈들.”
시후의 말에 사내가 다소 당황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차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겉도는 건 좋단 말이야. 근데 이런 대접은 곤란하지. 막말로 내가 제깟 놈들보다 못한 게 뭐야? 고작 안에 자리하나 내어달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부탁이라고······.”
시후는 주저리주저리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눈앞의 사내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사내는 연신 추임새를 넣으며 같이 정의맹을 욕했다.
“차 형께서 분개하는 것도 당연하오. 그간 제가 들은 이야기만 해도 차 형의 공로가 적지 않거늘, 고작 자리 하나 내어주지 못한다니······.”
시후가 거칠게 잔을 비우자, 사내는 속을 걱정하던 이전과 달리 재빨리 잔을 채워 주었다.
연거푸 잔을 비운 탓에 술은 금방 동이 났다.
새로이 술을 시켰다.
시후는 가득 채운 잔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어르신들이 오면 내 불만을 말할 걸세.”
사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르신들? 누굴 말하는 것이오?”
“내가 팔황 중 두 분과 제법 친하다는 건 말했지?”
“천변기황과 검후와 친분이 두텁다고 하지 않으셨소.”
“이번에 그 두 분을 필두로 죄다 모이는데, 대화합 마지막에 열리는 비무 대회에 앞서 그분들의 시연식이 예정돼 있거든? 딱 마치고 내려오실 때 죄다 말해 드려야지. 정의맹이 이렇게 썩었다고.”
사내의 동공이 커졌다.
“팔황이 죄다 모입니까?”
“이미 와 계신 분들도 있지만, 멀리 계시는 분들은 이제쯤 출발하셨겠지. 그래도 나흘 뒷면 죄다 여기 모이실걸?”
“그렇군요.”
이후 시후는 취한 듯 주저리주저리 더 떠들다가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차 형? 차 형,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되오.”
사내가 시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지만, 깨우겠다는 기색보단 확인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잠시 뒤, 사내는 밖으로 나갔다.
시후가 속으로 서른쯤 샌 뒤 고개를 들자, 뒷문으로 추나행이 걸어 들어왔다.
“신나게 뛰어 내려가더구나.”
“돌아올까요?”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를 보면, 집안에 급한 사정이 생겨서 어쩌고저쩌고하는 서찰 한 통을 보내는 법이지.”
추나행은 조금 전까지 사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술을 병째로 들이켰다.
그 모습에 시후는 헛웃음을 지었다.
“다 일러바칠 겁니다.”
그 말에 추나행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헹, 반 잔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고 허락받았다.”
“반 잔 정도가 아니지 않아요?”
“누가 쪼잔하게 그걸 잔이라고 치더냐? 무릇 대(大) 개방에 몸담고 있다면 사발이 잔인 법이지.”
그의 말에 시후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온전히 한 병을 다 비웠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미 반은 자신이 비웠으니깐.
“그보다, 이제부터 시작이네요.”
시후의 말에 추나행은 입가를 소매로 닦으며, 사내가 나간 방향을 노려봤다.
“놈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살펴야지.”
“준비는요?”
“공동파보다 잘해 놓았지.”
그의 대답에 시후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공동파는 건물만 지었을 뿐이지,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지금 있는 이 건물만 해도, 저 아래 용강객잔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꾸렸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죄다 그랬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 공짜로 일을 도와줬겠는가.
죄다 돈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문세가가 도와줬기에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머지 넷은 어때요?”
“씨알도 먹히지 않지. 네 녀석이야 출신 성분이 낭인이라지만······.”
공동파로 스며든 마교에 가짜 정보를 쥐여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애초에 시후를 제외하고는 성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구파에 소속된 그들이 정의맹을 욕하는 건 되려 의심을 자아낼 테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무명 소졸로 위장한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한단 말인가.
그에 반해 시후는 편했다.
놈이 접근할 수 있도록 틈을 내어주었으니깐.
“그것보다 진짜 불만도 있는 것 같던데?”
“없어요.”
“없긴. 꼭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욕을 하는 것 같았단 말이지.”
“······ 누군가를 떠올리긴 했죠.”
시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욕할 사람이 한둘이던가.
추나행은 몇 번이고 더 캐물었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뭐라 구시렁거리며 남은 안주를 집어 먹었다.
“장로님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뭐예요?”
시후의 물음에 추나행은 탕평채를 싹싹 비우며 배를 두들겼다.
곧 기다란 손톱으로 이를 쑤시더니, 손톱을 바닥으로 튕겼다.
“놈들이 나오는 거지.”
“어느 정도로요?”
“완전히.”
‘완전히’라.
시후는 마교와 정의맹의 전력을 가늠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면 싸움으로는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정면으로 부딪칠 만하다고 생각하세요?”
“물 아래 숨어 있는 놈들이 더 무서운 법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숨어 있을 때는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지만, 수면 밖으로 나온다면 대략 어찌 행동할지 보이는 법이니깐.
시후는 추나행과 마찬가지로 녀석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다음으로 가죠.”
- 16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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