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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36화 (118/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6화 팔진도해법 (4)

팔진도가 펼쳐진 곳은 조그만 분지였다.

가파른 산중에 펼쳐진 분지치고는 제법 넓었으나,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듬성듬성 자라난 풀포기들을 제외하면 그 무엇도 없는 곳이었다.

분명 그러하였다.

[1인 미궁에 들어오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졸졸 흐르는 냇가 양쪽으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꽃 주변엔 나비가 날아들었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시후의 뺨을 스쳤다.

진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소복이 쌓인 눈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따스한 봄바람이었다.

냇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당이 있었다.

시후는 평화로운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난리 치겠네.”

제갈려가 거품 물고 달려들 게 분명했다.

시간이 걸릴수록 시달림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시후는 서둘러 사당으로 다가갔다.

사당 입구에 매달린 풍등이 바람에 흔들리며 귓가를 간지럽혔다.

거침없이 문을 밀자, 녹슨 경첩이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비명을 질러댔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사당 내부가 훤히 눈에 들어왔다.

양쪽에 나 있는 큼직큼직한 창 덕분에 채광이 잘 되어 내부가 훤히 보였다.

바닥은 나무 대신 청석을 깔아 깔끔했고, 천장은 높아서 사방이 막혀 있음에도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다만,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대들보 중간중간에 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가장 안쪽에는 제갈량의 석상이 석좌에 앉아 있었다.

시후는 조금 더 안쪽을 살피더니 불쑥 사당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안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 어떤 방해도 없었다.

중앙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 그대, 팔진도를 얻기 위해 이곳에 왔는가? 시험에 응하려거든 줄을 잡아당겨라.

물론이다.

시후는 바로 대들보에 묶인 줄을 당겼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깔린 청석이 붉은빛을 내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빛나던 청석은 시간이 지나자 대부분은 빛이 사라졌지만, 일부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 나는 누구인가?

너무 쉽다.

시후는 곧장 제갈량이라 대답하려 했지만, 붉게 빛나고 있는 바닥이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닥을 한눈에 바라보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려는 찰나, 방금 밟은 바닥에서 빛이 사라졌다.

“어?”

한 번 더 밟자 다시 빛이 돌았다.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대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글자다.’

시후는 같은 자리를 두 번씩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입구까지 물러난 다음에야, 바닥에서 나오는 빛이 글자를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다.

“목극(木克), 화생(火生)?”

바닥에 적힌 글자에는 한 글자씩 누락되어 있었다.

시후는 실영보를 사용하여, 붉게 빛나는 바닥을 죄다 밟고 다녔다.

네 글자를 지운 뒤, 시후는 바닥에 두 글자에 각기 빠져 있는 글자를 밝혔다.

- 토(土).

그와 동시에 바닥에 빛이 사라지며 잡아당겼던 줄이 올라갔다.

하나를 통과했다고 좋아할 틈이 없다.

남은 줄은 네 개.

시후는 지체없이 다음 줄을 잡아당겼다.

“어?”

바닥이 빛났다.

이번엔 청석이 아니라, 그 틈에서 빛이 나왔다.

빛은 청석 아홉 개를 가두며 정사각형을 만들었다.

다만, 하나에 그치지 않았다.

아홉 개의 청석을 가둔 정사각형은 정확히 아홉 개가 더 생겼다.

그리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선.

“혹시······.”

‘혹시’는 ‘역시’로 바뀌었다.

바닥에 숫자가 새겨졌다.

마방진(魔方陣)에서 발전한 수독(數獨)이었다.

시후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바닥에 나타난 숫자는 극히 적었다.

과연 이 적은 정보를 토대로 풀 수 있는지 의심이 생길 정도로.

결국, 수독을 푸는데 무려 반 시진이 지나갔다.

* * *

세 번째는 견양답습(見樣踏襲)이었다.

바닥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불빛을 똑같이 밟아야 했다.

다행히도 시후의 순간 암기력은 매우 준수한 편이라, 바닥에 나타나는 불빛을 짧은 시간에 단번에 암기했다.

그렇게 순서를 그대로 따라 걸으니, 그대로 통과되었다.

네 번째는 위험했었다.

바닥에 피(避)라는 글자가 새겨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으니깐.

중간에 몇 번이나 자운유성창으로 막아 내고 싶었지만, 피하라는 데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과적으로 왼쪽 귓불에 화살을 맞아 반으로 갈리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네 번째도 통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아직 한 시진이 지나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며칠간의 시달림은 확정이었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다섯 번째 줄을 잡아당겼다.

파스슥.

돌가루가 흘러내리는 소리.

“아, 이건 아니지.”

시후는 움직이기 시작하는 제갈량의 석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한편으론 예상하였기에 자운유성창을 들어 올렸다.

그에 석상이 반응했다.

- 운(雲)의 물건이로군. 그의 자손인가?

시후는 잠시 멈칫거렸다.

잘하면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시후의 고민은 짧았고, 그보다 더욱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의 창을 보고 싶군.

문자 그대로 창을 보고 싶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시후는 바로 조가창식을 펼쳤다.

“용적출해(勇績出解), 등룡적출(登龍摘出), 일수만리(一手萬里), 승천호(昇天號)······.”

여러 절대 등급의 무공 중 ‘조가창식’을 고른 가장 큰 이유.

조가창식(趙家槍式)은 바로 조자룡의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자운유성창이 조자룡의 무기인 만큼, 자운유성창으로 펼치는 조가창식은 절대 등급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최소한 고금.

때에 따라서는 신화 등급이라 보아도 부족하지 않았다.

시후는 전력을 다해서 조가창식을 펼쳤고, 창술의 시연을 본 석상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 되었다.

그 말과 함께 석상은 다시 석좌에 앉았다.

시후는 멍한 눈으로 제갈량의 석상을 바라봤다.

“끝? 진짜 끝?”

[1인 미궁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였습니다.]

시후의 물음에 화답하듯 알람이 알려 주었다.

허탈한 마음도 잠시.

석상 무릎 위에 책 한 권이 나타나자, 시후는 황급히 석상으로 다가가 책을 집어 들었다.

[1인 미궁의 보상 ‘팔진도해법’을 획득하셨습니다.]

[제갈세가에 ‘팔진도해법’을 전달하면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팔진도를 성공적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유일 등급의 진을 돌파하여 ‘종횡무진’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책을 집어 들자마자 석상은 급속도로 풍화되었다.

수북이 먼지가 내려앉았고, 마른 이끼가 뒤덮였다.

밖에서 누군가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시후는 급히 팔진도해법을 품 안에 넣었다.

쾅!!

제갈려가 사당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잔뜩 뿔이 난 모습을 보니, 최소 삼일.

아니, 최소 일주일 동안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

스산한 목소리에는 당장이라도 서리가 내릴 듯했다.

시후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돌렸다.

제갈려는 발을 쿵쾅거리며 들어오다가 뒤늦게 제갈량의 석상을 발견하곤, 손바닥을 마주쳐 합장을 취했다.

시후는 그 틈에 뒤따라 들어온 남궁천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차 아우, 다쳤나!?”

“아, 살짝 귀를 베였어요. 저 화살······.”

화살은 온데간데없었다.

1인 미궁에서 겪었던 일이니 당연했다.

“······ 진 속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줄 알고 피하다가 제 창에 베였나 보네요.”

“혈을 짚어 지혈이라도 하게.”

남궁천의 말에 시후는 기초 금창약을 꺼내어 쥐똥만큼 퍼냈다.

조심스럽게 귓불에 바르자, 뜨끈한 열감과 함께 살이 붙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그 금창약은 정말 대단하군.”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문제죠. 신의가 빨리 만들어 줘야 할 텐데······.”

시후는 뭔가 찜찜한 기분에 말끝을 흐렸다.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그게 뭔지 고민하는 찰나, 한 가지 더 놓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왼발에 들숨, 오른발에 날숨이라고 이야기했지? 그 간단한 것도 못 해서 이 사달을 일으켜? 너 때문에 진을 붕괴시키느라 제대로 확인도 못 했는데, 내가 이런 개고생이나 하려고 사천 땅에······.”

남궁천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사당을 빠져나갔다.

‘망할.’

* * *

당가로 돌아오자마자, 대문을 나서는 당패철과 마주쳤다.

그는 세 사람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군?”

“생각보다 볼일이 빨리 끝났죠.”

“쟤 때문에요.”

시후가 대답하자 제갈려가 눈을 부라리며 사족을 달았다.

그 모습에 당패철은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난 잠시 밖에 볼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하니······ 효충아, 네가 휴심각으로 안내해 주거라.”

“아무리 당가가 넓어도 한 번 간 길을 잃을 정도로 아둔하진 않습니다.”

“그게 아닐세. 지금 당가에 제법 많은 인원이 자리를 비워서 길에 진을 깔아 뒀는데······. 아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그는 제갈려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금지(禁地)에 펼쳐 놓은 절진이라도 우습게 지날 것이니깐.

패철은 진을 파훼하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저 멀리 사라졌다.

시후는 패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많은 인원이 자리를 비웠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제갈려가 진법을 지날 때 이번에는 잘 따라오고 있냐고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방까지 쫓아와서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시후는 침대에 뒹굴뒹굴하며 패철이 했던 말을 곱씹었는데, 누군가 문고리를 덜컥덜컥 흔들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남궁천이 들어왔다.

시후는 몸을 일으키며, 무슨 일로 온 것인지 남궁천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가? 요 며칠 사이에 도통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았나?”

역시 눈치가 빠르다.

시후는 머리를 긁으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꺼냈다.

“그 뭔가를 잊고 있는 거 같은데, 뭘 잊고 있는지 잘 몰라서요.”

“억지로 생각하려고 하다 보면 도리어 생각나지 않는 법일세. 나 같은 경우는 그럴 때 그냥 아예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려보곤 하네.”

“다른 쪽이라 함은······?”

“차 아우의 경우라면······ 어떻게 하면 려의 화를 풀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정도겠지.”

“시간이 약이겠죠.”

시후의 심드렁한 대답에 남궁천은 씨익 웃었다.

마치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다는 듯했다.

“그래도 생각날 듯 생각나지 않으니 계속 붙잡고 있으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다만, 너무 집착하진 말게나.”

시후는 걱정해 준 남궁천의 배려에 고개를 살짝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에 남궁천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다만, 손사래라고 생각하기엔 움직임이 조금 묘했다.

“그보다 오래간만에 어떤가?”

“······ 진짜 목적은 그거였네요.”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군.”

그의 솔직한 대답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머리맡에 기대어 놓은 자운유성창을 집었다.

남궁천은 싱글벙글 웃으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많은 인원이 당가를 비웠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연무장으로 향하는 길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이 몸을 푸는 사이 당모준이 연무장을 찾았다.

“아, 잠시 전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네.”

“사람을 보내지 않으시고······.”

“내가 직접 전해야 할 듯싶어서 말일세.”

당가의 가주가 직접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일까.

“그리 심각한 이야기는 아닐세. 어찌 보면 심각한 이야기일 수도 있긴 하지만······.”

당모준은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뜸을 들인 뒤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숙부께서 부탁했던 일에 조금 지장이 생겼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응? 패철이가 아직 이야기를 안 했나?”

그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남궁천은 잠시 눈썹을 찌푸리며 턱을 긁적였다.

“혹시, 운남의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렇네. 숙부께서 부탁하신 상엽초 뿌리와 복수초 꽃잎 등을 구하는데 차질이 생겼네.”

정의맹의 요청이라면 고독의 방지에 쓰이겠지만, 신의의 부탁이라고 했으니 분명 기초 금창약의 재료일 것이다.

안 그래도 제작이 늦어지고 있는데, 더 늦어지게 생겼다.

“그런데 그 실종 사건을 조사하는 데 많은 인원이 갈 필요가 있나요?”

“물론 그럴 필요는 없네만, 실종을 조사하다가 독왕문과 마찰이 있었네. 소수 인원만 보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다소 과한 숫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지.”

당모준의 말에 시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흑련회의 개입이 강하게 느껴졌다.

북원을 손에 넣는 데 실패하자마자, 바로 세외 쪽으로 눈을 돌린 게 분명했다.

- 13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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