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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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북방 토벌 (4)
메마른 늪을 지나 부대는 다섯으로 갈라졌다.
우려완 달리 다섯으로 나뉜 부대의 전력은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배분은 상식적이진 않았다.
나뉜 부대의 전력은 비슷할지 몰라도 상대는 그렇지 않으니깐.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귀찮게 굴 사람은 없겠네. 오히려 다행이지.”
시후와 제갈려는 동시에 뒤를 힐끔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는 이는 중군 도독동지 팽초량이었다.
이번 북벌은 전군도독부가 주력이었지만, 중군도독부도 일정 수 참가하였다.
물론, 황제라면 모를까, 중군도독이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중군 도독동지인 그는 병력을 이끌고 편제되었다.
팽초량은 이번 북벌에서, 순수하게 지위를 놓고 본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전군도독부 사람이었기에 그는 회의에서 의사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번에 부대를 나눔에서도 그랬다.
마침 중군의 병력은 총 병력의 오 분의 일 정도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쿠빌라이의 영역을 배정받았다.
“어떤 사람이야?”
“글쎄, 내가 아는 건 철우의 칠촌이라는 점?”
시후는 한심한 눈으로 제갈려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제갈려는 바로 발끈했다.
“네가 직접 말 걸어서 알아보던가! 나도 여기서 처음 봤는데,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시후는 발광하는 제갈려에게서 떨어져 초량을 힐끔거렸다.
그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었다.
하루에 다섯 마디 이상 말하는 걸 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친분을 쌓기 어려운 부류다.
초량이 세 사람을 부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홍가 그놈의 주둥이를 납작하게 눌러줬을 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칠 뻔했지 뭔가? 정말이지 통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네. 그리고 오늘 아침 홍가 그놈의 눈 밑이 시꺼먼 걸 보았나? 필시 어젯밤 분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겠지. 덕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더군. 참으로 잘했네!”
초량은 시후의 옆에 말을 바짝 붙여 어깨를 두들겼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 각은커녕 그의 반의반도 안 되는 사이에, 그는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했던 말보다 몇 배는 많은 말을 내뱉었다.
“홍가라는 사람이 총병관 좌측 세 번째에 앉은 사람이 맞나요?”
“으허허허, 아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군? 남자다워, 아주 남자다워! 암, 우리 팽가의 핏줄과 호형호제할 정도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내 사실 자네를 봤을 때, 여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내심 맘에 들지 않았는데, 남자는 역시 건실한 알맹이 아닌가?”
“그렇죠.”
“아, 그리고 놈들에게 달려든 판단은 정말 좋았네. 그 판단이 아니었으면 절반은커녕 삼 분의 일도 붙잡지 못했을 걸세. 게다가 기도를 잘못 읽은 게 아니라면 아직 초절정에 들어서진 못했을 텐데, 내공은 소림의 사대 금강에 필적하다니! 사문이 어딘지 말해 줄 수 있는가? 아, 부담된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네. 오히려 그편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으니 말일세.”
시후가 한마디 하면 열 마디 스무 마디를 내뱉는 통에 귀가 따가웠다.
슬슬 눈치를 살피며 제갈려에게 떠넘기려 했지만, 그녀의 눈치 또한 보통은 넘었다.
제갈려는 진즉에 말 속도를 늦추며 거리를 벌린 뒤였다.
다급히 남궁천을 찾았지만, 그 또한 어느새 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시후는 밀려드는 배신감에 이를 빠드득 갈았다.
* * *
병력이 다섯으로 찢어졌다고 한들, 저들보다 우세하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놈들에게 남은 건 역시나 기습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실행할 수 없었다.
“쟤는 시키지도 않은 짓을 계속하네.”
“뭐, 해는 안 되잖아? 좀 귀찮긴 하지만.”
삐애애액!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해동청은 피로 범벅이 된 머리를 들어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천응단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육포보단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선호했으니깐.
그런 놈에게 머리 위로 날아드는 매는 놈의 훌륭한 한 끼 식사였다.
덩치는 조금 작을지 몰라도 녀석은 하늘의 절대자였다.
다만, 천응단에서 데려온 매 두 마리는 해동청을 볼 때마다 겁에 질려 울어대는 통에 시후는 눈총 아닌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이제 안 보내겠지?”
벌써 여덟 마리째다.
미치지 않고서야 보낼 리 없다.
해동청은 식사를 다 마쳤는지 시후의 어깨에 앉았다.
하지만, 처음처럼 고통스러워하진 않았다.
고통에 익숙해진 게 아니라, 천응단에서 받은 어깨 보호대가 녀석의 발톱이 파고들지 못하게 막아 주었다.
“어휴, 좀 깔끔하게 못 먹냐?”
시후는 익숙한 듯 마른 헝겊으로 부리를 닦아 주었다.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뻣뻣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이젠 아주 상전이었다.
워낙 윤기가 좔좔 흐르는 탓에 슬쩍슬쩍 닦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후가 헝겊을 조심스럽게 포개어 주머니에 넣는데, 어깨 보호대를 내어준 척준모라는 자가 다가왔다.
공식적으로 그의 직책은 시후와 같은 천호장이었다.
“차 천호,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 좀 내어줄 수 있소?”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죠.”
시후는 해동청을 잠시 떨쳐 낼 요량으로 어깨를 가볍게 털었지만, 녀석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쩔 수 없이 녀석을 어깨에 얻은 채로 그와 나란히 걸었다.
척 천호장은 진지 외곽에 다다르자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부터는 우리가 역으로 놈들을 감시할 것이오.”
“아, 단순히 사냥용이 아니었군요.”
“물론이오. 모여 있는 숫자까지 헤아릴 수 있으니, 놈들은 밤에도 잠 못 이룰 것이오.”
그의 말에 시후는 어깨에 앉은 해동청을 바라봤다.
녀석은 막 식사를 끝내 배가 부른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용케도 떨어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 녀석을 잠시 새장에 넣어 둘 수 있겠소?”
“아······.”
천응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만큼,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소중할 것이다.
혹여 이 녀석이 해라도 끼치면 시후뿐만 아니라 하오문까지 곤란을 겪을 것이다.
“따로 새장이 준비됐나요?”
“일반 관상용 새처럼 조그만 곳에 넣어 둘 수 없다 보니, 따로 준비한 건 없소. 아이들을 빼낸 다음에 그곳에 녀석을 넣었으면 하오만.”
“그러도록 하죠.”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듯 쭈뼛거리더니, 곧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이번 작전과 관련이 없지만, 한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소?”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요.”
“그 해동청은 어떻게 길들인 거요? 우리도 몇 번이고 시도했는데, 죄다 물조차 거부하고 죽었소만.”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었다.
해동청은 하오문의 소유고, 하오문에서도 해동청을 사 왔다고 했으니깐.
그 이야기를 들은 척 천호장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해동청을 바라봤다.
그 상태로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인사를 건네곤 돌아갔다.
다음날, 시후는 그가 왜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 * *
“야 이 새대가리야!! 안 내려와?”
시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녀석은 창공을 유유히 누볐다.
화살을 쏠 수도 없을뿐더러, 닿을 거리도 아니었다.
“해동청은 주인의 말이 아니면 절대 듣지 않으니 의미 없는 짓이오.”
척 천호장이 차분한 어조로 힐난했지만, 시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침 식사를 배불리 먹인 뒤 새장으로 갔지만, 꾸벅꾸벅 졸던 녀석은 돌연 고개를 번쩍 치켜들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워낙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들, 시후가 놓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여태껏 날아온 방향으로 어디에 있을지 한정 지을 순 있으나, 그 반경이 무려 삼백 리에 달하오.”
삼백 리.
그 아득한 반경을 뒤지다 보면 놈들은 더욱 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출정의 소득은 고작 삼천을 베어 넘긴 것으로 끝날 것이다.
군이 한 번 움직일 때 들어가는 돈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이번 출정에 들어간 돈은 어림잡아 최소 금 오천 관.
고작 삼천 명과 금 오천 관이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책임지고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다른 쪽에서 나올 성과를 생각한다면 고작 삼천에 그치진 않겠지만, 그건 온전히 전군도독부의 전공이 될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중군은 죄다 이쪽에 편성되었으니깐.
시후는 여느 때보다 강렬한 팽초량의 시선을 느꼈다.
“어? 간다!”
누군가의 외침에 시후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거짓이 아니다.
진지 위를 한 바퀴 크게 돌더니 저 멀리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큰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곁눈질로 척 천호장을 바라보자, 그는 해동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뒤 새장을 열었다.
녀석들은 며칠 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탓인지, 바로 날지 않고 날개를 연신 푸드덕거렸다.
척 천호장은 얇은 적(笛) 하나를 입에 물었다.
삑. 삐빅. 삑삑삑.
소리를 듣더니, 녀석들의 날개는 한층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척 호장은 한 마리를 품에 안아서 하늘로 던져 주었다.
뒤이어 다른 녀석도 던져 주자, 두 마리는 머리 위를 빙글 돌더니, 앞다투어 동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시후는 괜찮다고 말하는 그에게 연신 사과를 한 뒤 뒤로 물러났다.
시후가 속으로 하오문과 해동청을 욕하는 사이, 제갈려는 멀어지는 매 두 마리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별일 없겠지?”
“어차피 저쪽 애들 사냥하도록 키워졌는데, 막으려고 띄우면 이쪽이야 고맙지.”
“아니, 그쪽 말고.”
시후는 제갈려의 말뜻을 알아차리곤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될 수도 있으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출(出)!”
곧이어 부대도 동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매는 한 시진 만에 돌아왔다.
돌아왔다는 건 최소한 동남쪽으로 사백 리 내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의미했다.
“동쪽으로 보내 보게.”
팽초량의 명령에 곧장 날려 보내진 못했다.
척 천호장은 혹시라도 적을 발견했을 때, 최장 세 시진은 하늘에 떠 있어야 하기에 비행 후 체력 회복은 필수라고 말했다.
매는 반 시진의 휴식을 가진 뒤 다시 동쪽을 향해 떠났다.
“진작에 도망쳤나 본데요?”
“기습이 아니면 의미가 없지 않겠나. 애초에 병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데, 저들도 지금 싸우기보다는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일 걸세.”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어제 너무 강경하게 몰아붙이려고 한 거 아닌가요?”
“전쟁에서 기세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비무도 마찬가지 아닌가? 기세에서 짓눌리면 검 한 번 제대로 뻗지 못하고 패배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시후는 두 사람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귀를 팠다.
손가락으론 아쉬웠기에, 귀이개를 빌리려 고개를 돌렸다가 몸이 굳었다.
저 먼 하늘에 점으로 보이는 형체가 아른거렸다.
시후는 아니길 빌고 또 빌었지만,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형체를 키웠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잖아······.”
제갈려의 탓이 아니었지만, 시후는 제갈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천응단의 매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시후는 기도하며 동쪽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천만다행이라면 천응단의 매는 해동청을 발견했는지, 방향을 선회하여 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동청 또한 두 녀석을 포착한 듯 속도를 더욱 높였다.
시후는 머리 위를 지나치는 해동청을 바라보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던 척 천호장은 분칠이라도 한 듯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 12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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