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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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북방 토벌 (5)
“이런 경우는 뭐죠?”
시후의 질문에 일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짧은 침묵을 깨고 남궁천이 슬쩍 앞으로 나섰다.
“음, 짧은 생각을 말해 보자면 왠지 서열 정리를 마친 것 같은데······. 척 천호의 의견은 어떻소?”
척준모 천호장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가 가장 전문가니깐.
하지만, 그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소.”
그의 대답에 다들 말없이 새장을 바라봤다.
모두의 걱정과 달리 두 녀석은 무사히 돌아왔다.
그놈까지도.
“그보다 저렇게 두어도 문제없겠나?”
이번엔 시후에게 시선이 모였다.
새장이라고 부르기에 지나치게 큰 그곳에는 세 마리의 조류가 모여 있었다.
다만, 그 모양새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본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녀석은 바닥에 잔뜩 움츠려 있었다.
편히 쉬도록 꾸며 놓은 보금자리를 점거하곤, 녀석은 뭘 보냐는 듯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시후가 주저하며 입술을 떼려 했지만, 그보다도 척 천호가 먼저 나섰다.
“솔직히 잡아먹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돌아오지도 못했을 테니, 식사만 제때 잘 챙겨 주면 괜찮아 보입니다.”
“척 천호는 이대로 두어도 괜찮다는 의견인가?”
“아이들이 다소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긴 해도,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언뜻 돌아올 때 활강 기술을 가르치는 듯한 모습을 포착했는데, 잡아먹을 대상에게 기술을 가르칠 리는 없으니······. 자신의 무리로 받아들였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습니다.”
척 천호장의 말에 팽초량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잡아당기며 고민했다.
이번 북벌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특히나 이렇게 중군이 독자적으로 떨어져 나온 상황에선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해동청이 아무리 귀하다고 한들, 이번 북벌에 훼방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면 죽이는 게 옳았다.
아무리 금 몇백 냥의 몸값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북벌은 값어치를 놓고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니깐.
하여, 팽초량은 오래 고심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천천히 뗐다.
“병사들을 시켜 인근 설치류를 포획도록 하라.”
* * *
척 천호는 잠을 잘 때를 제외하면 종일 새장에 붙어 있었다.
사실 잠도 새장에 붙어서 자려고 했으나, 병사들을 보초로 세웠기에 그는 침대에 몸을 뉠 수 있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불편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해동청은 두 녀석의 머리 위에 군림한 뒤, 이것저것 비행 기술을 가르쳐 줄 뿐 해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니깐.
오히려 정찰 시, 체력 소모를 줄여 주기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 정찰을 떠난 세 마리는 점심이 다 되어 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방심을 유도했다가 이제 잡아먹은 거 아냐?”
“헛소리하지마. 찾은 거겠지.”
시후는 제갈려의 장난기 어린 말을 무시하며 척 천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도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천응단의 존재 이유.
눈을 가리는 역할은 하오문의 해동청에게 빼앗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놈들의 위치를 알아내어 전달하는 것이었다.
“대충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까요?”
“어제 오후 정찰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백 리 언저리라 생각하면 될 것이오.”
사백 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였다.
양측이 모든 걸 버리고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면 그날 저녁에도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
하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상대는 이쪽의 추격을 피하고자 안간힘을 쓰며 달아나야 하는 처지니깐.
시후는 남궁천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는 놈들이 하루에 몇 리를 이동하는지 파악 가능할 테니, 그에 맞춰서 행군 속도를 조절하겠군. 늦어도 닷새 안에 꽁무니를 잡을 수 있겠지.”
“저쪽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을 텐데 그렇게 빨리 가능할까요?”
“그쪽만큼이나 이쪽도 필사적이라는 점을 잊으면 곤란하네. 게다가 이쪽은 여차하면 보병을 천천히 따라오게 한 뒤, 발 빠른 기병으로 하여금 놈들의 발목을 붙잡아도 되지 않은가?”
“흠······.”
남궁천은 고민에 빠지려는 시후의 어깨를 두들겼다.
“가세. 이에 관하여 회의를 열지 않겠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직 천응단의 매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사백 리 밖에 놈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회의를 시작했다.
“내일부터 행군 속도를 높인 뒤, 이백리 내로 좁혀지면 별동대를 동원하여 놈들의 발을 묶어야 합니다.”
남궁천이 했던 이야기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이 근방 부족이 모두 합류하였을 것으로 산정하여 병력을 추측한 결과 최대 만삼천으로 사료됩니다. 이는 놈들이 십오 세부터 마흔다섯까지의 모든 성인 남자를 동원했을 때 가능한 수치이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길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이야기였음에 다들 집중에 집중을 이어 갔다.
“추격을 염두에 두고 후방 경계병을 배치했을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무리 경계병을 배치했다고 한들, 본대와 백 리 이상은 떨어지기 힘들 것입니다. 매를 통하여 본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경계병의 위치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별동대는 그들의 눈을 피하여 다소 우회한 뒤······.”
설명을 이어가던 부관이 말을 끊었다.
다들 경청하는 와중에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으니깐.
다섯 갈래로 찢어지기 전의 대회의에는 못 미치지만, 지금 회의에서도 시후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지금 설명을 이어가던 부관은 중군도독부의 도독첨사였다.
“차 천호? 할 말이 있는가? 있으면 해 보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놓았다.
시후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예, 아까 말씀하셨듯이 별동대가 그들의 시선을 피해, 본대를 묶어 두는 게 가장 상책입니다.”
시후는 느릿느릿 말을 내뱉으며 머릿속에서 적절한 단어를 골랐다.
“다만, 천응단의 매가 놈들을 확인했다면, 반대로 우리가 일정 거리에 들어온 걸 놈들도 눈치챘을 겁니다.”
“음······.”
몇몇이 시후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얕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시후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짐작했다.
“우리가 놈들의 기습을 받아쳤듯이, 놈들도 우리 별동대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로군”
팽초량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만의 생각이었다면 모르지만, 팽초량 또한 제법 진중한 표정으로 고민하자 다들 이것저것 의견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밖에서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시선이 입구로 쏠리기 무섭게 척 천호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들어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던지는 의견은 ‘그래도 별동대를 보내서 속도를 늦춰야 한다’라는 쪽이 대다수였다.
발이 느린 보병으로선 지금도 충분히 무리하고 있는데, 이대로 계속 가는 건 체력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 말하는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팽초량은 여러 의견을 종합한 뒤 결정을 내렸다.
“별동대를 보내지 않을 순 없다. 단, 저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떨쳐내기 힘들 것이니 직접적인 교전은 지양하도록.”
별동대를 보내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다들 앞다투어 자신이 가겠노라 나섰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강행군을 통하여 놈들을 앞질러야 하는 등, 고생길이 훤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전공을 올릴 수 있으니 보상 또한 보장되어 있었다.
그 보상은 진급으로 이어질 것이니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뛰어들 만했다.
다만, 팽초량은 이미 보낼 사람을 골라 놓은 듯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종유, 연위랑.”
“충!”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쪽 무릎을 땅에 꽂았다.
한 명은 저 어디 녹림에서 구르다 온 것처럼 생겼고, 다른 한 명은 먹물을 꽤 갈아 본 듯 유약해 보였으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눈빛.
흥분할 법도 한데 붙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결의에 차 있었다.
“별동대 병력으로는 기병 팔천을 배정할 것이니,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술시에 날 찾아오도록.”
“명을 받듭니다!”
최대 만삼천으로 추정되는 놈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숫자.
하지만,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게 목적이라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막사를 나갔다.
그와 반대로 나머지 인물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차 천호와 그의 부관은 잠시 남게.”
막 막사를 나서려던 시후와 남궁천은 팽초량의 말에 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시후는 돌아서자마자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팽초량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혀 있었으니깐.
시후는 모두 다 나간 걸 확인한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해 줘요.”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고 그러나?”
“뭔진 모르지만, 그다지 알고 싶진 않은 내용일 거라는 느낌은 팍팍 오네요.”
“으허허허, 그 눈치면 역시 보낼 만하겠어.”
팽초량의 말에 남궁천이 낮게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흠흠, 보낸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별동대를 따라 보내려 하십니까?”
“정답이네. 두 사람이 별동대에 더해진다면 놈들의 발은 두 배로 느려질 걸세.”
“저희 두 사람을 너무 좋게 봐주시는 게······.”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팽초량이 남궁천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다만,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말이 있기 때문임을 알기에 남궁천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풍족한 군량미, 고도로 훈련된 병사, 높은 성벽과 깊게 파인 해자 등등······ 너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찍어 누르는 게 있지.”
팽초량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 뜸을 들였다.
짧은 정적 뒤에 남궁천이 손가락을 튕겼다.
“사기.”
그 대답은 정답인 듯 팽초량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기가 꺾인 군대는 활짝 열린 성문을 보고도 도망치는 법이지.”
“차 아우를 정면에 내세워 적들의 사기를 꺾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거기에 자네까지 더해지겠지.”
남궁천은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짧게 요약했다.
“요컨대, 무게를 잡아 달라는 거죠?”
“그리고 종유와 연위랑이 만약 무리해서 전공을 올리고자 한다면 말려 주게.”
“직접 말하지 않으시고요?”
“이런 사소한 것까지 지시를 내린다면 판단력을 기를 수 없는 법이지.”
“절 이용하는 건 괜찮고요?”
“으허허허, 도움이라고 하게나.”
넉살 좋은 그의 모습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동대가 본대와 떨어지는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사흘 뒤가 될 걸세.”
팽초량의 예상은 정확했다.
이틀간의 엄청난 강행군을 통하여 거리가 이백오십 리로 좁혀졌고, 사흘 뒤 오전에 시후는 별동대와 함께 본대를 떠났다.
놈들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기 위해서.
- 12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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