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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22화 (104/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22화 변화 (2)

시후는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자금성으로 향했다.

다만, 남궁천을 데리고 입궐하려 했으나, 극구 거절하는 통에 부득이하게 홀로 가야만 했다.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덕분일까.

그도 아니면 시후가 맡은 일의 중요도 때문일까.

별다른 기다림도 없이 바로 황제를 볼 수 있었다.

시후는 최대한 간결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남궁천이 기지를 발휘했던 이야기와 쿠빌라이와 타이차무가 나눴던 대화는 가감 없이 전했다.

“······ 그리하여, 초현 공주를 무사히 아라사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습니다.”

“적룡패주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남궁천이라는 자의 역할이 매우 컸을 텐데, 왜 이 자리에 데려오지 않은 것이냐?”

“딱히 공을 바라고 행한 행동은 아니라고 하면서 사양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 얼굴이라고 한번 봐야겠구나.”

“그리 말씀하실 거로 생각하고, 제게 전해 달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영무제는 살짝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생각이 읽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관심이 동하는지 말해 보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을 바라고 행한 행동이 아닐지라도 그 자리에 간다면 공을 바란 것처럼 의도가 변질되는 법이니, 순수한 의도에서 행한 일이 곡해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시후의 말에 영무제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화를 내는 것인가 맘졸이는 찰나,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남궁천이라고 했던가? 내 기억하고 있도록 하지.”

남궁천은 단순히 황제와 대면하는 게 싫어서 오지 않았던 행동이, 되려 영무제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무제는 이름을 몇 번 되뇌곤,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를 삽시간에 사라지게 했다.

이젠 본론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뜸 들이고 있는지 생각하는 바가 있느냐?”

영무제의 질문에 시후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북경으로 오는 내내 남궁천과 제갈려도 합심하여 고민했지만, 딱히 짐작 가는 바는 없었다.

“알 수 없다면 알아봐야겠지. 여봐라, 병부상서를 불러오도록 하여라!”

영무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기척 하나가 줄어들었다.

곧 이만 물러가 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시후는 아직 받지 못한 보상 때문에 눈치를 살피며 뭉그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영무제는 피식 웃었다.

“위 천호장이 돌아오면 논공행상을 통해 적절한 상을 내릴 터이니 이만 물러가거라.”

표정과 달린 영무제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기에 시후는 조용히 물러났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자금성을 빠져나와 팽가로 향했다.

곧게 뻗은 대로를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팽가가 눈에 들어왔다.

“차 대협.”

문을 지키고 있는 위사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올 무렵, 푸른 바탕에 흰 학을 수놓은 도포를 입은 서생이 말을 걸어 왔다.

시후는 곰곰이 서생의 얼굴을 살폈으나,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다소 경계 어린 시선으로 불 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을 읽은 서생은 두 손을 황급히 저었다.

“하오문에서 왔습니다.”

여태 만났던 하오문도들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기에 의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차라리 지나가는 서생이라고 말했으면 이런 의심이 들지 않았으리라.

조금 더 의심이 짙어지자 서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오문은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소인은 천림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천모라고 합니다. 현재, 하오문에서 알아보기 위해 조금 전, 상단을 하나 꾸려 보냈습니다.”

시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젯밤에 말했으니 밤중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서생은 그런 시후의 반응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세히 보니 눈 밑에 거뭇거뭇 피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누가 밤새 준비를 했는지 알 법했다.

제아무리 하오문이라고 한들, 밤사이에 상단 하나를 꾸려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삿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그만큼 이번 일을 중요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생의 말대로, 하오문에서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하오문에서 이 정도로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시후의 눈빛을 읽은 것일까?

서생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만약에 저들이 갑작스레 잠적한 이유를 하오문에서 먼저 파악한다면, 출처를 황제께 말해 주십시오.”

서생의 말에 시후는 씩 웃었다.

하오문의 목적이 눈에 보였다.

무림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여도 개방을 앞서긴 힘드니, 관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겠다는 것.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려울 건 없죠.”

시후로선 손해 볼 게 없었다.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 하오문에 빚을 지울 수 있으니 말이다.

서생은 시후의 긍정적인 대답에 피곤이 가시는 듯 환하게 웃으며 물러났다.

* * *

팽가에 머무른 지 열흘이 지났다.

저 드넓은 초원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내기엔 아직 멀었기에, 시후는 그간 올리지 못했던 무공을 가다듬었다.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역시나 일원신공이었다.

그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틈이 없었기에 올리지 못했지만, 지난 열흘간 잠적하다시피 하여 무려 6성에 다다랐다.

[일원신공(7성) 활성화에 실패하셨습니다.]

[최초 실패로 재도전 기간 일주일이 적용됩니다.]

“7성은 힘드네······.”

시후는 쭉 떠오르는 알람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열흘째 되는 오늘, 일원신공의 7성에 도전했다가 최초의 실패를 맛봤다.

다음 도전이 당분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실패였다.

시후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스스로 뺨을 짝짝 때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복잡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니깐.

시후가 자운유성창을 들고 연무장을 찾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제갈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난 열흘간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얼굴도 제대로 못 봤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시후는 손에 들고 있는 자운유성창으로 바닥을 툭툭 찍으며 답했다.

“창이라도 휘두를까 싶어서. 그보다 여기서 뵐 줄 몰랐네요.”

“비번일세.”

충정의 대답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아무리 강철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들 최소한의 휴식이 필요하니깐.

다만, 왜 제갈려와 붙어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시후의 의문 섞인 시선을 읽은 것일까.

제갈려는 씩 웃으며 천로수변을 꺼내 들었다.

“오래간만에 한번 해 보겠다네.”

시후는 사악함이 깃든 제갈려의 웃음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려가 도발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충정의 표정이 저리도 좋지 않을 리 없으니깐.

“북쪽 상황은 어떻죠?”

시후의 질문에 충정은 한결 어두워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오문의 방식이라면 모를까, 관의 방식으론 알아내기 힘들 것이다.

“따로 알아보고 있긴 쪽이 있으니, 저들의 행방을 알아내면 말씀드리죠.”

“정말입니까?”

“다만,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으니 전하진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충고드리자면, 려의 진법은 일대종사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죠.”

시후는 눈을 부라리는 제갈려를 뒤로한 채 다른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까지 말해 줬는데도 고집을 피운다면, 진법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물론, 충정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제갈려에게 덤빌 확률은 반반이었다.

그의 고집 또한 보통은 넘었으니깐.

시후는 두 사람에게 관심을 거두곤 연무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대 연무장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팽가 무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창천일로!”

여러 연무장을 방황하던 시후의 귓가에 익숙한 초식명이 들려왔다.

팽가에서 남궁세가의 무공을 쓰는 인물이라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를 따라 도착한 연무장에선 남궁천과 팽철우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막 공방을 주고받은 듯했다.

남궁천은 한결 여유가 있었기에 눈치챈 기색이었지만, 철우는 더욱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넘치는 투기와 반대로, 철우는 자세를 조금씩 낮췄다.

어깨가 허리 높이까지 내려갔을 때, 철우에게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투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호거경저(虎踞頸咀)!”

끝없는 굶주림에 마주한 사냥감을 노리듯 정교하면서도 파괴적인 일격이었다.

거리가 워낙 창졸간에 좁혀진 탓에, 남궁천은 피하는 대신 검을 들어서 막았다.

시후와 비무하며 자주 써먹었던 창연지락에서 승천비룡으로 이어지는 연환계를 펼칠 것이다.

하지만, 시후의 예상은 빗나갔다.

남궁천의 창연지락은 거대한 대도에 담긴 거력(巨力)을 흘리는 대신 자신의 검으로 이끌었다.

“수극연휘(水隙聯揮)”

남궁천의 검이 물의 흐름을 쫓아 휘두르듯 유려한 움직임을 선보였다.

철우의 대도는 남궁천의 검의 흐름에 편승했다.

무인에게 제 병장기가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건 치욕이나 다름없었다.

철우의 손등에 실핏줄이 불거졌다.

두터운 대도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펄떡였다.

붙잡으려는 검과 떨쳐내려는 도가 엉켜 들다가 합의라도 한 듯, 두 사람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후······.”

철우의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이제 몸이 풀렸다는 듯 저잣거리 왈패처럼 목을 좌우로 까딱였다.

하지만, 남궁천은 씩 웃으며 납검(納劍)했다.

철우가 무슨 짓이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눈앞에 상대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을 살피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더냐?”

남궁천의 말에 철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시후를 발견하곤 반가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도를 집어넣었다.

“오호단문도의 성취가 매섭구나.”

“저와 얼추 비슷하게 맞춰 주셔서 그렇지, 끝내려면 오십 초도 더 전에 끝내실 수 있었잖습니까?”

“하하, 아무래도 내가 무공을 익힌 기간이 반 배는 많은데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네 나이 때의 내가 너와 붙는다면 필패일 것이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우리 팽가 무공의 특징 때문이겠죠.”

철우의 의기소침한 대답에 남궁천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또래들과 비교한다면, 철우의 성취는 절대 낮지 않았다.

용봉지회에 참가한 인원 중 순수히 무공만을 놓고 줄을 세운다면, 철우는 삼 할 안에 드는 수준이었다.

다만, 비교 대상인 남궁천은 삼 할이 아니라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뿐.

어설픈 위로는 독이었다.

그렇기에, 남궁천은 철우를 위로하는 대신 시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정리는 다 했는가?”

“네.”

시후는 연무장으로 들어서며 짧게 대답했다.

둘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남궁천은 십여 일간 방에 틀어박혔던 시후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눈으로 보고 싶어 했고, 시후 또한 6성에 다다른 일원신공에 적응해야 했으니깐.

철우 또한 그 사실을 알았기에 조용히 연무장 구석으로 물러났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낙양이 마지막이었죠?”

“낙양에서 중원 최남단으로 갔다가 저 머나먼 아라사까지 다녀왔으니······.”

“못해도 두 달도 더 전이네요.”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남궁천은 철우를 상대할 때와 달리 내공을 잔뜩 끌어올렸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푸르른 하늘보다 더 푸른 내공이 남궁천의 몸을 휘감았다.

시후도 그에 질세라 자운유성창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 123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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