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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09화 (9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09화 맺음 (1)

정론각 내부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로 가득했다.

배교를 쫓느라 다들 흩어져 있었기에 서로 인사를 주고받느라 바빴다.

시후도 목일자를 비롯해 몇몇 사람과 그간의 안부를 묻는 동안, 정론각 문이 열리며 정진 대사가 들어왔다.

정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빈도가 처리할 게 있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다들 자리에 앉았다.

모두 착석하자 정진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다들 아시겠지만, 계양에서 이뤄진 전투로 배교 놈들의 뿌리를 뽑았습니다. 마지막 혜주 전투에서 도망쳤던 부교주를 사로잡진 못했으나, 수뇌부를 완벽히 일망타진하여 추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정파 특유의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시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다른 곳으로 탈출시켰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끝난 뒤, 문파별 피해와 배교 총타와 분타를 처리하며 나온 부수입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시후의 귀가 쫑긋거렸다.

“가장 먼저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초들을······ 까지 포함해서 지급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 계십니까?”

당장에라도 손을 들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기색이 있었다면 손을 들었겠지만, 그 누구도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후는 분위기에 편승했다.

다들 그렇게 넘어가는 듯했지만, 목일자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거대 방파의 경우는 여기저기서 돈 나올 구석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참여한 협객들은 쌈짓돈을 털어 가면서 도왔을 겁니다. 아무리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한들, 배를 곪으면서까지 나서긴 힘든 법이지 않겠습니까?”

목일자는 친분이 있는 자들에게 눈빛을 보내며 동조를 구했다.

운허와 추나행을 비롯해 절반가량의 문파에서 목일자의 말을 지지했다.

시후가 목일자와의 친분이 두텁다고 한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서 줄 정도로 대단하진 않았다.

아마도 준혁을 위해서 나섰을 것이다.

방금 쌈짓돈을 털었으니, 배를 곪느니 했던 건 다 준혁의 이야기였을 테니깐.

“그럼, 이에 관해선 하오문에서 정리하는 대로 개개인에게 전달토록 하는 쪽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귀찮은 일을 떠넘겼다고 생각지 마시길.”

“믿고 맡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진의 말에 부나옥이 싱글싱글 웃었다.

언뜻 생각하면 귀찮은 뒤처리를 맡긴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실질적인 정의맹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믿고 맡긴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으니깐.

정진은 부나옥에게서 시선을 돌려 추나행을 바라봤다.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교 놈들은 모조리 처단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오.”

“추나행 장로, 그게 무슨 말인가?”

“배교 놈들이 호북에서 저 광동성 남쪽까지 왜 갔겠소?”

“도망치다 보니······.”

“아니오.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대벌산맥을 타고 서장으로 가는 게 옳소.”

“아직 배교 놈들을 마무리 지은 게 아니란 말이오?”

추나행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듯 주위를 둘러보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들 알고 있지 않소? 동정호에서 달아난 놈들 말이오.”

“수적 놈들!”

“맞소. 근래 향항으로 들어오기로 되어있는 배들 가운데, 갑작스럽게 실종된 상선이 세 척이오.”

“왜구 놈들의 소행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궁천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지만, 추나행은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욕심이 많아서 저 멀리 서역을 오가는 상선이라면 모를까, 고작 한 척씩 움직이는 조그만 상선을 털자고 수천 리 바닷길을 오진 않는다. 게다가 왜구 놈들은 해남파에서 쫓아올까 두려워, 최대한 빠르게 약탈하고 도망치는 방식을 취하지.”

추나행은 말을 끊으며 허리를 숙여, 바닥에 내려놓았던 뭔가를 주워들었다.

둘둘 말려진 종이였다.

그는 탁상 위에 쭉 피면서 귀퉁이마다 철전을 놓았다.

제법 정밀하게 그려진 화남(華南) 지역의 지도였다.

추나행이 손끝으로 가장 우측, 광동성 끝자락을 가리켰다.

그곳엔 어설프게나마 복건성 근방도 그려져 있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실종된 상선들은 금문도(金門島)까지도 목격되었소. 고로 놈들은 복건과 광동의 경계선 즈음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이를 토대로 주변 어민들을 상대로 수소문한 결과······.”

손이 멈춘 곳은 바다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점 하나가 찍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름도 적혀있지 않을 정도로 조그마한 외딴 섬.

“이 근방 어민들이 무조도(無鳥島)라고 부르는 섬인데, 최근 새가 몇 마리 날아들길래 어부 중 하나가 호기심에 접근했다가 섬 뒤편에 모여 있는 배들을 봤다 하오.”

“꽤 멀구려.”

“조그만 배로는 가기 힘들 테니······.”

다들 시후를 바라봤다.

적룡 금 패라면 전선을 빌릴 수 있을 테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간만에 적룡 금 패가 힘을 쓸 때가 되었다.

시후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품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 닿은 묵직한 적룡 금 패가 느껴졌다.

“그럼, 제가······.”

“아, 서문세가에서 배를 대 주겠노라 나섰으니, 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괜찮네.”

적룡 금 패를 꺼내려던 손이 멈췄다.

시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다들 시후의 반응엔 관심이 없었다.

다들 서문세가의 이야기를 떠들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한세기전만 하더라도, 서문세가는 신창양가와 더불어 남궁세가의 아성을 위협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신창양가가 역모에 연루되어 풍비박산이 나고, 그와 겹사돈을 맺었던 서문세가 또한 초토화되었다.

가문을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멸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십여 년 전, 천룡 상단과 사돈을 맺더니 급작스럽게 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은 몸집을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서문세가가 드디어 길었던 방황을 끝내고 돌아왔다.

* * *

수로채가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빙검이 폭렬기공을 운용하면서 배를 박살 냈기 때문이었다.

어설픈 포위 작전은 통하지 않았다.

“검후의 부재가 아쉽군.”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해서 뭐하겠는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추나행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검후는 떠났다.

정확히 말하면 구천종주를 위해 떠난 비령을 따라갔다.

비령은 이제 검후가 안배해 놓은 현월문의 후반 초식을 익히면서, 검후의 이름을 계승하기 위해 발돋움할 것이다.

보통 구천종주를 통해 초절정에 오르지만, 비령은 이미 초절정에 발을 디뎠었다.

이는 후반부 초식을 익히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그보다 광주가 코앞인데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다니.”

“바쁠 테지.”

“잠시 산책 나온다고 생각하면 될 일인데,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시후는 추나행의 짧은 투덜거림을 흘려들으며 앞을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코앞은 아니지만, 저 멀리 광주가 어렴풋이 보이긴 했다.

광주는 주강이 바다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지나치는 도시이자, 하류에 발달한 삼각주의 질 좋은 토질은 농업을 발달케 했다.

그 질 좋은 곡식과 가까운 연안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는 광동 요리를 중화 사대 요리로 발돋움하게 한몫했다.

시후는 고개 돌려 남궁천을 바라봤다.

“그래서, 추천하는 요리가 뭐라고요?”

“동과충(冬瓜沖)을 가장 권하고 싶지만, 지금 이 시기라면 저육죽(猪肉粥)이 으뜸이지.”

“죽이라.”

“아주 입천장이 홀라당 헐어 버릴 정도로 허겁지겁 먹게 될 걸세.”

남궁천이 눈빛을 반짝였다.

도무지 긴장감이라곤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전에 수로채와 녹림채를 잡을 때 모였던 사신대가 거의 그대로 모였었다.

너무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지려 해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저 앞에 사람이 오는 거 같소.”

준혁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시후는 내공을 눈에 집중해 안력을 높였지만, 사람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준혁은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세 사람이오. 뒤의 두 사람은 불혹이 채 안 된 것 같고, 가장 앞에 선 자는 이립을 갓 넘긴 것 같소.”

“이 거리에서 그게 보이오?”

“얼굴이라도 그려 주면 믿겠소?”

준혁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추나행이 살짝 당황했다.

그에 목일자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친구가 서장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시력이 어마어마하오.”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세 사람과의 거리는 아무리 못해도 십 리는 되어 보였다.

십 리 밖의 사람이 얼굴이 보인다는 말은 허언증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목일자는 빙긋 웃었다.

“추 장로는 창산 주창봉에서 삼탑사가 보이는 건 알고 있소?”

“일전에 한 번 봤으니 기억하오만.”

“본파의 삼대 제자들이 체력 단련을 할 때, 주로 삼탑사의 세 탑을 손바닥으로 짚고 오도록 하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주창봉에 다녀오더니 그러더이다. 코밑에 좁쌀만 한 점이 있는 녀석이 탑 하나만 찍고 돌아오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추나행이 불신 어린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목일자의 말을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명지에게 왜 탑 하나만 찍고 돌아왔냐고 물어봤다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하나만 짚고 왔노라 실토했소. 이는 사문의 명예를 걸고 한점의 거짓도 없음을 밝히오.”

“······ 미안하오.”

목일자가 사문의 명예까지 들먹이자 추나행은 즉시 준혁에게 사과했다.

사문을 들먹인 이상 그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정도 거리는 별것도 아니었다.

주창봉에서 삼탑사까지는 못해도 이 거리의 두 배에 달하니 말이다.

준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추나행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그 순간에도 말을 탄 세 사람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준혁의 말을 틀리지 않았다.

힘차게 달려오던 말들은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대열 바로 코앞에서 멈춰 세웠다.

가장 앞에 있던 남자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시원하게 뻗은 눈썹과 높다란 콧대가 인상적이었다.

“반갑습니다. 서문주옥이라고 합니다.”

그는 서문세가의 가주였다.

일반적으로 가주 위를 물려받는 시기는 불혹을 넘겼을 때다.

하지만, 전대 서문가주가 요절하면서 주옥이 젊은 나이에 가주에 올랐다.

그에 다들 운허를 바라봤다.

소가주라면 누구나 인사받아도 상관없으나, 가주라면 다르다.

이들 중 가장 명성이 높은 그가 나서는 게 옳았다.

운허가 말에서 내렸다.

“무당의 운허라고 하오.”

“무당제일검을 뵙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여독이 많이 쌓이셨을 텐데, 광주까지만 가면 푹 쉬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놨습니다.”

“서문세가의 호의에 감사드리오.”

“별말씀을.”

길거리에서 길게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은 눈짓을 주고받곤 동시에 말에 올랐다.

그 상태로 대화를 나눴지만, 시후와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나누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시후는 주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많을 테니깐.”

시후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광주가 성큼 다가왔다.

- 11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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