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07화 태동 (2)
점례는 하오문 낙양 지부장이다.
평소 그는 무뚝뚝하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의 입꼬리는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기분이 좋은 걸까?
아니다.
가까이서 본다면 그의 웃음이 매우 어색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혹시, 불가능한가?”
그의 표정을 읽은 서괴가 다소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점례는 위아래로 움직이려는 머리를 간신히 가로저었다.
“그럼, 가능한가?”
서괴가 재차 물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못했다.
점례는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는 시간을 끌 요량으로 탁자로 손을 뻗었다.
여인네의 손에 쏙 들어갈 법한 조그마한 옥가락지 한 쌍을 집어 들었다.
그 어떠한 특징도 없었다.
아마 중원을 뒤지면 이와 똑같은 가락지는 수십만 개도 더 튀어나올 것이다.
점례는 가락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반지를 집었다.
손가락에 끼울 수도 없는 걸 반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완전히 깨진 반지를 아교로 조잡하게 이어 붙인 수준에 불과했다.
“가락지일 수도 있겠군요.”
“그럴 가능성도 농후하네.”
“정말 다른 단서는 없습니까?”
서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례는 한숨을 내쉬며 반지를 내려놨다.
평범한 옥가락지 한 쌍과 그와 꼭 닮은 한 짝.
이걸 단서로 중원을 뒤져야 한다.
“최선을 다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하오문만 믿겠네.”
서괴는 점례가 말을 바꾸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강하게 흔들곤 방을 나섰다.
점례는 방에 홀로 남아 손끝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소리는 불규칙적이었다.
슬슬 손끝이 아려오지 않을까 싶을 때쯤,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지부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점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어났다.
낙양 하오문 지부에 손님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보자기 위에 놓인 물건을 조심스럽게 챙기는 사이 문이 열렸다.
상대를 확인한 점례의 눈이 커졌다.
시후였다.
“여기엔 웬일로······.”
“서괴가 왔다 갔죠?”
점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아무리 시후가 하오문과 친밀한 관계라고 한들, 죄다 알려 줄 의무는 없었다.
“아, 그 양반이 부탁할 만한 곳이 여기밖에 더 있겠어요? 그 보자기 안에 반지 있죠?”
“커험,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만, 이건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지부장님 고아잖아요?”
“······ 말을 해도.”
점례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내려놨다.
곱게 접은 보자기를 펼치자, 흔해 빠진 가락지 한 쌍과 아교로 억지로 붙인 반지 하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법은 있어요?”
“차 소협은 하오문의 정보력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황제의······.”
속옷 색깔도 알 수 있다는 뒷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시후가 가진 적룡 금 패를 떠올린 것이다.
시후는 점례가 조금 더 말실수했다면, 원하는 바를 취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이 단서가 전부라면 찾는 건 요원한 일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이 정도면 차고 넘치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죠?”
“흥, 한 달 안에 알아내 주지.”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긴 했는데, 그럼 말해 줄 필요도 없겠네요.”
시후는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문과 시후의 좁은 간격 사이로 점례가 몸을 비집어 막았기 때문이었다.
“홍춘아! 차 한잔 내오거라! 용정! 최근에 샀던 용정차로! 자자, 차 소협. 자리에 앉으시죠.”
시후도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자연스레 몸을 돌렸다.
의자에 앉은 뒤 다리를 꼬았다.
시건방진 태도였지만, 나무라기엔 시후가 쥔 패는 점례에게 너무 간절했다.
“거, 차 소협도 잘 알겠지만,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야 물론이죠.”
“역시 말이 통할 줄 알았네. 그 정보에 대한 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 넘기는 게 어떤가?”
“값이라······.”
시후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 상태로 점례의 얼굴에 초조함이 떠오를 때까지 잠시 뜸을 들였다.
초조함을 못 이긴 점례가 뭐라 말을 꺼내려 했으나, 시후가 그보다 반 박자 빨랐다.
“그런데 하오문에선 어찌 되었든, 쌍괴에게 빚만 지우면 되는 거죠?”
시후의 말에 점례는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서괴가 돌아간 지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혹시라도 듣고 있지 않을까 싶은 눈치였다.
“빚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순수한 선의에서 그분들을 돕는 것뿐이라네.”
“그럼 제가 그냥 알려 드려도 상관이······.”
“단지, 그분들께서 우리와 함께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을 뿐이지.”
점례는 순식간에 태세를 변환하여 속내를 밝혔다.
그 솔직한 태도에 시후는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하오문에서 찾아 줬다고 말하면서 만나게 해 줘도 상관없죠?”
“어? 아니, 그러면······.”
“어차피 만나게 해 줄 거였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하오문이 어디 뒷골목 시정잡배도 아닌데, 그 정보를 미끼로 쌍괴를 흔들려고 하진 않을 텐데 말이죠.”
점례의 동공은 짧게나마 흔들렸었다.
아니란 듯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지만, 누가 봐도 그럴 생각이 다분했던 모양새였다.
시후는 모른 척하며 보자기 위에 놓인 누더기 반지를 주워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점례는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시후에게 기세를 빼앗긴 그는 어깨를 늘어트린 채 문 옆으로 비켜섰다.
[돌발 임무 ‘끊을 수 없는 것’이 발생합니다.]
“아, 잠시.”
시후가 문을 나서려는 찰나, 점례가 불러 세웠다.
제대로 임무도 생겼고,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돌아보니, 점례는 구석에 놓인 책상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더미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 뭉치 대다수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점례는 얇은 봉투 하나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엽비도라도 날리듯 비장한 표정으로 손목을 가볍게 털었다.
시후도 그에 맞춰 검지와 중지로 낚아챘다.
점례는 피식 웃으면서 이만 나가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시후는 문을 열고 나서며 봉투의 우측 하단을 확인했다.
누군가에 왔는지 적혀 있진 않았다.
곧 겉을 감싸고 있는 봉투를 북북 찢었다.
안에 들어 있는 서찰의 내용은 지극히 간단했다.
[보타문, 검후, 출(出).]
시후는 서찰을 곱게 접었다.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문제는 답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점례의 행동으로 봐선 알려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시후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비령에게 물어보기 위해 방으로 다가갔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몰랐으니 문을 두들겼다.
인기척이 없는데 대답할 리는 없었다.
그 옆에 있는 제갈려의 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후는 문을 두어 차례 더 두들기다가 포기하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저 끝에 있는 남궁미의 방문이 열렸다.
눈이 마주친 남궁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불안한 미소에 시후는 미리 골이 아파졌다.
“거기서 뭐 해요? 설마 또······.”
시후는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안 끝났구나.’
* * *
유시필유종(有始必有終)이라고 하지만, 소림의 산문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변하지 않을 법한 장엄한 기세를 뽐냈다.
시후는 그런 산문을 지나 지객당으로 향하며,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핏 들리는 불경 읊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고요함이 경내를 지배했다.
“조금 빨랐나?”
“무슨 말인가?”
“아뇨, 그냥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요.”
“낙양에서 엎어지면 코앞이니, 그럴 수밖에.”
백오십 리가량 되는 거리가 코앞이란다.
하긴, 규모를 생각한다면 반나절도 안 걸리는 거리는 코앞이라 표현해도 무방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객당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길 안내해 주는 동자승이 돌아갈 법도 했지만, 연신 뒤를 힐끔거리느라 정신이 팔려서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남궁천은 그 모습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발을 가볍게 굴렸다.
바닥을 통해 진동이 전해졌는지 동자승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스님,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동자승은 결례를 알아챘는지 얼굴을 붉힌 채로 합장하며 뒤로 물러났다.
시후는 멀어지는 동자승에게서 고개를 돌려 그 원흉을 힐끔 바라봤다.
비령은 뭘 보냐는 듯 노려봤다.
시비가 다분한 눈빛이었기에 고개를 피했다.
그 사이, 약간의 소란 덕분인지 몰라도 정각 대사가 밖으로 나왔다.
다들 짧게 합장했다.
“아미타불. 익숙한 얼굴도 있지만, 처음 뵈는 얼굴도 있군요.”
시후와 남궁천, 그리고 비령과 제갈려는 지객당에 며칠간 머물렀으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소림을 처음 찾았다.
남궁천이 시후를 바라봤지만, 시후는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
“이쪽은 제 동생 남궁미이며······.”
설련의 소개가 다소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시후가 뒤로 물러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결국, 당사자가 앞으로 나섰다.
“연설련이라고 하며, 제 아들인 강반고입니다.”
“소승은 지객당을 맡은 정각이라고 합니다. 한데······.”
정각 대사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눈썹이 모였다가 흩어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네 분께는 아미파 시주들이 사용하던 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정각 대사의 뒤를 따라 지객당을 들어섰다.
그는 안내하며 소림사 주의해야 할 점에 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했다.
특히, 설련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정도 고수의 기세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드러나는 법이다.
하물며 설련은 숨기지 않았으니 오죽하랴.
정각 대사가 불편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울 텐데,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아이들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그가 급히 자리를 피하자 다들 설련을 바라봤다.
현월문이라 밝혔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했다.
문주에게 다시 돌아왔노라 허락받기 전까지 본인은 현월문도가 아니라는데 어쩌겠는가.
시후는 방에 대충 짐을 내려놓곤 신의를 찾아갈 요량으로 밖을 나왔다.
남궁천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그에겐 짐 덩어리가 있었다.
“신의께 바로 찾아뵈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해 주게.”
남궁미와 반고는 남궁천의 안내를 받으며 소림사 구경에 나섰다.
혼자 가려니 어색한 마음에 제갈려를 찾았지만, 소림사를 돌아다니면 스님들이 밤잠 못 이룬다는 개소리를 해 대서 내버려 뒀다.
지객당을 나와 신의에게 가는 길목의 조그만 연무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월창세를 보니 아직 디딤이 얕던데, 무릇 망설임은······.”
현월문도가 아니라면서도, 무공은 또 곧잘 가르치고 있었다.
시후는 혀를 가볍게 차며 지나려 했지만, 뒤편에서 누군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다.
고개 돌려 확인했다.
시후가 소림에 도착했을 때 중얼거렸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조금 빨랐을 뿐이었다.
비령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스승님.”
- 10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