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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99화 (8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99화 난주행 (2)

“뭔가 바뀐 거 같은데······.”

제갈려는 말에 올라타기에 앞서 시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며칠간 바로 곁에 있었던 만큼 변화를 바로 눈치챈 것이다.

굳이 알려 줄 필요 없어, 시후는 바로 말에 올라탔다.

“대협.”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시비가 일행을 불러세웠다.

시후가 고개를 돌리자, 시비는 손에 쥔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막 담았으니 배에 오를 때까지 따스할 겁니다. 그래도 날이 추우니 최대한 빨리 드십시오.”

“아, 고마워.”

“그리고 한 가지 알려드릴 게 있는데, 남궁세가에서 대협을 찾고 있어서 행선지를 알려 줬습니다.”

“남궁세가에서? 천이 형님인가?”

“대협을 찾으시는 분은 모르겠지만, 남궁세가를 통해 ‘직접’ 들어온 요청이라 부득이하게 알려 드렸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그런 거로 따질 생각 없어.”

아마도 남궁천은 아니다.

남궁세가는 안휘는 물론이거니와, 절강과 강소까지 도맡아서 배교 잔당을 색출하고 있으니 사람 한 명이 아쉬울 것이다.

“보상이라도 주려는 건가? 그거 외에는?”

시비는 조용히 서찰 하나를 건넸다.

시후는 문득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느낌.

서찰을 건네받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전 호법 장로님의 서찰입니다.”

“이런 젠장, 어쩐지 받기 싫더라니.”

당장이라도 서찰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받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늦었었다.

서찰은 손안에서 잔뜩 구겨졌다.

시후는 그보다도 더 표정을 구기며 시비에게 전할 말이 또 있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 시선에 시비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시후는 말 옆구리를 걷어차며 선착장으로 향했다.

“넌 유난히 그 사람 싫어하더라.”

제갈려가 바로 곁으로 말을 붙이며 물었다.

그에 관해선 할 말이 많았다.

“자기가 오해해 놓고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는 데 좋아하면 변태 아냐? 그리고 미안하다고 준 게······.”

미안하다고 준 건 이제는 비활성화되어 있는 백후원보였다.

시후를 두 번이나 엿 먹인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그 후로도 한 번, 또 얻어맞은 전적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시후의 모습에 제갈려는 말 고삐를 살짝 잡아당겨 뒤로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물론, 불노괴가 건네준 백후원보 덕분에 비령과 어느 정도 박빙의 비무를 펼쳤고, 광마패도에게 바로 목이 달아나지 않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쪽이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되는 쪽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 * *

“어휴, 건조한 거 봐.”

제갈려는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에 두건을 둘렀다.

감숙성은 남북으로도 길쭉하고, 동서로는 그보다도 더욱 길게 늘어져 있기에 여러 가지 기후가 존재했다.

롱남 지역은 산이 드높고 깊은 계곡이 자리해 사시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산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롱남 지역의 특징이었다.

천수에 내려서 난주로 향하는 동안은 마른 먼지를 떼어내려야 떼어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난주에 흐르는 황하강 덕분에 다가갈수록 건조함은 조금씩 사라졌다.

난주가 눈앞에 아른거리자 제갈려는 옆으로 말을 붙였다.

“더 서쪽으로 갈 건 아니지?”

“그건 왜 물어?”

“난주보다 더 서쪽이면 사막이잖아?”

“가긴 하겠지만······. 지금은 아냐.”

“지금은 아니라면 언젠가는 가겠다는 거네? 언제? 뭐 때문에 가는 거야?”

“언젠가는 가겠지. 언젠가는 해남 쪽도 갈 테고.”

“싱겁긴.”

대충 둘러대자 제갈려는 피식 웃으며 넘어갔다.

시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면 서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좋게 흘러간다면 서장까지 갈 이유도 없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난주가 성큼 다가왔다.

시후는 감회에 젖었다.

처음 난주에 떨어졌을 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 신경 쓰지 않던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넉 달이 지났구나.”

자세히 파고들자면 넉 달하고도 보름가량이 지났다.

밖의 시간을 따지고 본다면 대략 20분.

더 생각하다간 허무할 것 같아 생각을 관뒀다.

“저게 황금각이야?”

시후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제갈려의 말대로, 저 멀리 황금각이 아주 조그맣게 눈에 들어왔다.

사건의 시작은 저기서부터였다.

고개를 끄덕여 준 뒤 말고삐를 옆으로 틀었다.

뒤통수에서 제갈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굳이 비싸기만 한 황금각에 갈 이유는 없다.

“가격은 열 배 넘게 비싼데, 맛은 정주의 일미각이나, 네가 데려갔던 미미객잔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

“그래도 황금각은 진귀한 그림이나 조각들이 곳곳에 있는데······.”

제갈려가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못 사 줄 것도 없다.

하지만, 비령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지출된 돈이 제법 많았다.

초오의 위치를 찾는데도 제법 돈이 들어갔지만, 장원을 빌리는데 들어간 돈은 그보다 곱절은 많았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는 처지인지라, 사치를 할 수는 없다.

정 아끼고자 한다면 적룡 금 패를 들고 관청을 찾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잘하면 돈도 받아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빈번히 행하면 북경으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지만.

“황금각이 아니면 어디로 가는 거야?”

“현장 법사가 천축으로 향할 때 난주에서 하루 묵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왜 난주에서 하루를 묵었는지는 다들 모르지.”

“갑자기 현장 법사 이야기는 왜 또 나와?”

“그야, 절에 갈 거니깐.”

제갈려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시후는 별다른 설명 없이 곧바로 가까운 객잔을 잡았다.

늦은 점심 식사를 간단히 마치곤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시.”

“어디 가?”

“절.”

비령은 별다른 반응 없이 일어났지만, 제갈려는 싫은 티를 팍팍 냈다.

그러나 싫은 티를 내면서도 졸졸 따라왔다.

다만, 구시렁거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뭐가 또 불만이야? 따라오기 싫으면 어디 둘러보고 있던가.”

“난주에 둘러볼 게 어딨어.”

“저······ 뭐, 없긴 하겠네.”

확실히 난주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구경거리가 없는 편이다.

황금각을 제외하면 지금 향하는 백탑사(百塔寺)가 가장 유명한 곳이니 오죽하랴.

“그래도 초오 대사님과 대화 나누는 거 보면 불교에 관심 많은 거 아니었어?”

“교리가 흥미로워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아본 수준이지, 딱히 불교에 심취한 건 아냐. 오히려 고리타분한 절은 싫다고······.”

제갈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착실히 따라왔다.

초오 대사가 있었던 평정산의 평정사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절은 자리 잡은 산과 이름을 같이했다.

이 백탑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곳은 산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면, 백탑산은 절을 따라 산 이름을 바꾸었다.

산 이름도 바꿀 정도로 유명한 백탑사에는 이름에 걸맞게 크고 작은 탑들이 즐비해 있었다.

“탑이 백 개라서 백탑사인가?”

“틀렸어. 아흔아홉 개야.”

“그럼 백탑사라는 이름이 틀려먹은 거 아냐?”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마음속에 탑을 세우라는 큰 뜻이지.”

“정말 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인다.”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정상에 오르자, 육각 정자가 반겨 주었다.

세 사람은 자연스레 정자에 올랐다.

삼 층짜리 정자에 오르자 난주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난주를 지나는 황하강이 발치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고작 이거 보려고 여길 오른 건 아니지?”

“당연하지. 내가 이유 없이 움직이는 거 봤어?”

시후의 자신 있는 태도에 제갈려의 얼굴엔 기대감이 어렸다.

곧 정자를 내려와 올랐던 길을 그대로 내려갔다.

중턱까지 거침없이 내려간 뒤, 시후는 대웅보전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대웅보전에 들어와 연신 좌우를 훑었다.

시후는 기대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천천히 절을 올렸다.

비령과 제갈려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절을 올리긴 했지만, 왜 갑작스레 절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시후는 108배를 마친 뒤 시주함에 은 몇 냥을 떨어트리곤 대웅보전을 빠져나왔다.

그 길로 백탑산 아래까지 쭉 내려왔다.

제갈려는 뭔가 더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눈앞에 짐을 풀었던 객잔이 나타나자 시후의 팔을 붙잡았다.

“설마 절하고 오는 게 목적은 아니었지?”

“아니, 그게 목적 맞아.”

제갈려는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붙잡았다.

그 모습에 시후는 씩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두들겼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으니 기다려 봐.”

* * *

백탑사의 저녁 예불은 항시 유시(17~19시)에 올렸다.

난주의 저녁은 그 타종 소리에 맞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붉은 등은 그 소리를 기점으로 걸리니 말이다.

타종 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서른세 번이 이어졌다.

그 종소리가 끝나자 대웅보전에서 청아한 종소리가 한 번 울려 퍼졌다.

“일체공경례상주삼보(一切恭敬禮常住三寶).”

한 스님의 목소리와 함께 저녁 예불이 시작되었다.

목탁 두들기는 소리에 맞춰 독경을 읊으며 소리를 덧씌워졌다.

그 사이, 해는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시후는 저녁 예불이 거의 끝나기 직전에야 나타났다.

대웅보전의 가장 뒤편에 자리 잡았으나, 무릎 꿇기가 무섭게 예불이 끝났다.

시후는 웃으며 다가오는 백탑사 주지 스님을 향해 합장을 취했다.

“오늘은 늦으셨습니다.”

“급히 달려오긴 했는데······.”

말마따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주지 스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대웅보전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서 스님들과 저녁 예불에 참석한 인원들이 줄지어 빠져나갔다.

예불에 참석한 인원들은 대부분 부녀자였지만, 상단의 행수로 보이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시후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천천히 108배를 올렸다.

절을 올리는 와중에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어코 108배를 마친 시후가 대웅보전을 나와 기둥에 기대놓은 자운유성창을 쥐자, 시선의 주인공이 어둑어둑한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이었다.

그는 시후의 앞으로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저는 강반고라고 합니다.”

“차시후입니다.”

“알고 계셨겠지만, 몰래 지켜본 점 사과드립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신지?”

“주지 스님께 물으니 그 창이 공자의 물건이라 말하여, 대화를 나누고자 기다렸습니다. 일단 내려가면서 말씀을 나누실까요?”

시후는 반고를 따라 백탑산을 내려갔다.

어둑어둑해진 산길이었지만, 반고는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거침없이 내려갔다.

“난주에는 딱히 이렇다 할 문파가 없다 보니, 제 나이 또래의 무림인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곤륜파는 남쪽에 치우쳐 있고 난주는 서역으로 향하는 비단길의 관문 도시이니, 주로 상단이 많이 오가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 식사라도 하면서 강호 이야기 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난주를 떠난 적이 없다 보니······.”

반고가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리자 시후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럼 막안 객잔으로 가시죠. 여기서도 머지않고, 무엇보다 제 일행이 다 그곳에 있어서요.”

“엇, 그래도 괜찮습니까? 그렇다면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시후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막안 객잔으로 앞장섰다.

목표의 절반 이상은 이뤘다.

이제 그와 친교만 다지면 된다.

그와 적당히 말을 주고받으며 막안 객잔에 다다랐다.

시후가 문에 손을 뻗으려는 찰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던 객잔 문이 벌컥 열렸다.

“시후 오라버니!!”

열린 문으로 남궁미가 튀어나와 안겼다.

시후가 당황한 사이 그 뒤를 이어 남궁천도 나타났다.

“이게 어찌 된······. 잠깐 좀 떨어져 봐.”

시후는 찰거머리처럼 붙어있는 남궁미를 억지로 떼어낸 뒤 남궁천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남궁천은 말없이 웃었다.

그 미소에서 시후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 10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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