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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66화 (48/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66화 신의 (1)

소림사의 산문은 여느 때와 달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의의 성격은 사람을 사귀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생명의 은인’이라는 건 어느 정도 성격이 모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얼마 만인가! 난 자네가 어디서 죽은 줄 알았었네.”

“그러길 바란 건 아니고?”

“어허, 이 사람도.”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퉁명스레 말해도 허허 웃으며 그러려니 했다.

연신 툴툴대는 그를 향해 다가서는 이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다.

“어르신, 이 아이를 알아보시겠습니까? 21년 전 태청수음맥을 치료해 주었던 아이입니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잘 성장하였지요.”

“그 고얀 놈이로군?”

“맞습니다. 태청수음맥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 눈을 맞혔다고 크게 호통치셨지요. 이후로 눈 구경도 못 하게 막았습니다.”

신의에게 구명의 은혜를 입은 자를 줄지어 세운다면, 소림사가 아니라 자금성을 둘러도 모자랄 것이다.

인사가 터무니없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지객당주 정각이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신의께서 멀리 있는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이곳에서 계속 붙들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닙니다. 지객당으로 모셔서 여독을 푸신 다음에······.”

“아니, 바로 강시를 봤으면 하네.”

그의 말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어색하게 바뀌었다.

다들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를 부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함이지 않던가.

다들 어색하게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터주었다.

신의는 정각의 뒤를 따라 소림의 심처(深處)로 쭉쭉 들어섰다.

정각은 곳곳에 불상처럼 서 있는 나한승들을 지나, 방장실 뒤편의 조그마한 전각으로 안내했다.

지객당주야 항상 지내던 곳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신의는 익숙하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걷고 있었다.

“누가 지키고 있더냐.”

“차기 사대 금강으로 뽑힌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중압감이 상당할 텐데?”

“그 정도를 못 버틸 것 같았으면, 차기 사대 금강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도 없을 겁니다.”

정각의 말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소림이란 그런 것이니깐.

신의는 대꾸 없이 그 뒤를 따라 전각으로 들어선 뒤, 불상 뒤편에 숨겨진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전각의 아래는 매우 서늘했다.

한기에 발끝이 절로 움츠러들 만큼.

아래로 내려갈수록 싸늘한 한기는 그 기세를 더해갔다.

“썩진 않겠군.”

신의의 중얼거림에 정각은 말이 없었다.

긴 계단과 좁은 통로를 지나 다다른 철문 양쪽으로는 철봉을 손에 쥔 두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안에 계시는가?”

정각의 질문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라는 정각의 눈짓에 좌측에 있던 자가 철봉으로 땅을 가볍게 내리찍으며 문을 열었다.

좁은 통로에 비해 안은 터무니 없이 넓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중앙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다섯 개의 관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늘어선 수많은 거대 나찰들이 당장이라도 도검을 휘두를 듯 생동감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섰던 사대 금강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앞서 걸었다.

“오호라.”

신의는 그 모습을 보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심력이 약한 자라면 들어서자마자 땅에 주저앉을 것이다.

이 나찰상으로 만든 필사멸진진(必死滅盡陣)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니깐.

강시를 이곳에 보관한 데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찰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음기로 인해 강시를 보관하기에 가장 알맞았을 뿐.

“산문으로 직접 나가지 못한 점 송구합니다.”

정진이 그를 맞이해 주었다.

아무리 신의가 강호에 이름 높고, 배분이 정진보다 한 단계 높다고 한들, 소림 방장이 산문까지 나가서 맞이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신의도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직도 여기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나?”

“이제는 견(見) 자 배 아이들이 사용하지요.”

“그 숫자가 열은 되는가?”

“스물엔 못 미칩니다.”

그 대답에 신의는 감탄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건 절정 초입 정도론 부족했다.

아니, 들어오기만 할 거라면 절정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수행을 목적으로 들어오려면 절정에서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야 할 텐데, 소림에서는 그런 견 자 배 아이들이 스물에 육박한다고 말한 것이다.

“드러난 것보다 숨긴 게 많다더니······. 가장 상태가 나쁜 건 어느 건가?”

“죄다 대동소이합니다.”

정진의 말에 신의는 가장 좌측에 있는 관으로 다가갔다.

눈치를 살피던 정각이 나가자, 안에는 차기 사대 금강 한 명을 포함한 세 사람만이 있었다.

그는 시신에 손을 올린 채 눈을 감더니, 한참 동안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일각에 달하는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여독을 풀고 난 뒤,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군. 피곤해서 그런지 영······.”

“아, 물론입니다. 밖에서 정각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를 따라가시지요.”

“크흠, 내가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닐세.”

신의의 말에 정진은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다섯 강시와 그 입구를 지키는 사대 금강을 뒤로한 채 전각 밖으로 나왔다.

정각은 자기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나온 두 사람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각, 신의께서 피곤하시다고 하시니 객당으로 안내해 드리게.”

“아, 어쩐지 여독이 풀리지 않은 듯 보이셨는데······. 따라오십시오.”

정각은 피곤한 신의를 배려해선지 서둘러 걸었다.

“바로 주무시겠습니까? 아니면 따뜻한 물이라도 준비해 드려서······.”

“지금은 잠이 보약일 거 같군.”

“알겠습니다.”

지객당에 다다르자, 신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다가오는 숫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각은 단호한 표정으로 그들을 물렸다.

곧 신의를 지객당 가장 안쪽의 비워 둔 방으로 안내했다.

“최소한 오늘만이라도 접근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놓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그의 세심한 배려에 신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각이 문을 닫고 나가자, 신의는 침대로 다가가 살며시 앉았다.

석실 안에선 피곤하다고 했지만, 그의 눈은 졸린 기색은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다.

앉은 채로 사색에 잠겨 있던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신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지금 누구와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기에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무시했다.

똑똑.

하지만, 문 너머의 인물이 다시금 문을 두들겼다.

신의는 한 번 더 참아 냈다.

두 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서 반응이 없다면, 자고 있거나 안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깐.

하지만, 상대는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똑똑.

면상을 보고 욕을 하리.

신의는 곧바로 일어나 문을 벌컥 열었다.

“어떤······.”

신의가 평생 살아오며 배웠던 걸쭉한 욕설을 내뱉으려던 찰나,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기초 금창약은 아직이죠?”

“아, 그에 관해선 아직 필요한 약재를 다 모으지 못했네. 그보다······ 천년 묵은 이무기의 내단(內團)이라도 먹었는가?”

“그냥 뭐, 이것저것 많이 먹었죠.”

“허! 끽해야 일류와 이류의 경계에 있던 놈이 두 달 새에 이리도 변하다니······. 그보다 무슨 일인가? 막 자려고 누운 참이건만.”

신의의 물음에 시후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신의가 뭐라 한마디 말하려 했지만, 시후가 조금 더 빨랐다.

“강시를 보고 오셨죠?”

“으흠······.”

질문에 대답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사실 시후가 기초 금창약과 관련이 없었다면, 그냥 방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경계선이었다.

그의 태도에 시후는 경계선을 끌어올리기로 맘먹었다.

“제자의 성과? 만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의께선······.”

[기막이 펼쳐졌습니다.]

말을 끝까지 내뱉기도 전에 신의가 반응했다.

신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방 중앙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후도 섣불리 말을 걸지 않고 신의를 바라보았다.

곧 탁자 위에 올려놓은 봇짐을 뒤지더니, 백자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한잔하겠나?”

호리병을 건네는 그의 눈빛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신의는 딱히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는지, 곧장 마개를 열어 나발을 불었다.

그에게서 지독한 주향이 흘러나왔다.

말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벌컥벌컥 마시던 그가 병을 내려놨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신의의 눈빛에 붉은빛이 맴돌았다.

눈동자에는 그리움과 연민, 분노와 회한 등 수많은 감정이 어려 있었다.

시후는 말없이 신의의 눈을 바라봤다.

“아니,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우습군. 다 알고 있으니 이렇게, 혼자 있을 때 찾아왔겠지.”

다시 술병으로 향하던 신의의 손이 멈칫거렸다.

몇 번을 뻗었다가 거두길 반복하더니, 이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공허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후는 재촉하지 않고 느긋이 기다렸다.

취기가 오르는 것인지 그의 뺨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사십 년 전······. 부족했지만, 주변에선 다들 신의라고 불러주며 나를 치켜세웠지. 위상은 하루가 달리 높아지고, 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후인을 양성하자 마음먹었었네. 치료하는 도중 일부러 말을 흘렸고, 생각대로 입소문을 타고 금방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들었지. 그러나, 수백에 달하는 인원을 모두 가르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난, 기다렸다네.”

신의의 눈동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하게 변했다.

“가르침 대신 인내케 했지. 그러자 절반이 떨어져 나갔네. 가르침은 환자 한 명을 볼 때 하나씩만 전해 줬네. 하지만, 제법 침 좀 놓았거나 약초 뿌리 좀 만졌다면 별것도 아니었을 게야. 거기서도 절반이 떨어져 나갔네. 부유한 자들도 내보냈지. 비단옷을 두르는 자들, 금이며 옥이며 화려한 장신구를 두른 자들까지 모두.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수는 줄어들었지만, 허드렛일을 시키더라도 세 사람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기에 그 아이들을 가르쳤네.”

그가 고개를 북동쪽으로 돌렸다.

“첫째는 지금 황실에 있네. 가난한 자들을 돌보겠다고 말했지만, 돈이 없으면 가난한 자들도 돌볼 수 없는 법. 현 황제의 주치의로 발탁되어 그 돈을 죄다 후학을 양성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가르치고 있네. 서찰 한 통 보낼 돈도 아끼느라, 일 년에 한두 번 받기도 힘들 정도로 청렴하게 살고 있지.”

이어 서쪽을 바라봤다.

“둘째는 저 멀리 서역으로 간다고 했네. 남들보다 배움을 향한 열망이 컸던 녀석이니, 말이 통하지 않는 저 낯선 땅에서도 문제없을 테지. 녀석이 그토록 말하던 동서양의 의학의 융합이란 걸 봤으면 좋겠지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겠군.”

두 제자를 말하는 그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하지만, 신의는 곧 고개를 푹 숙였다.

곧 벌벌 떨리는 손으로 호리병을 부여잡았다.

“셋째는······ 독으로 사람을 치료하고자 했네.”

그는 잠시 목을 축였다.

‘축인다’라는 표현보다는 ‘들이킨다’라는 표현이 맞을 테지만, 신의에겐 그마저도 부족할 것이다.

“독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건 당가에서도 이뤄졌었네. 그 누구보다 해박하다곤 못하지만, 나도 당가의 일원인 만큼 어느 정도 본질은 꿰뚫고 있었지. 그러나, 그래선 안 됐어. 가르치지 말았어야 했거늘······.”

신의는 남은 술을 모조리 들이켰다.

목이 간지러운지 몇 번이나 목을 쓰다듬던 신의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나이가 가장 어려서 그런 것일까. 녀석은 배우는 게 가장 빨랐네. 나이순으로 첫째, 둘째, 셋째로 부르지 않았다면, 재능으로는 녀석이 첫째였을 테니깐 말이야.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내 지식을 빨아들였지. 뒤늦게 제자를 들인 탓일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그렇게나 재밌을 줄 몰랐어. 오늘 가르치면 내일은 뭘 가르칠까? 또 다음날은 무엇을 알려 줘야 할까?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사고를 쳤네.”

- 67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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