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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67화 (49/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67화 신의 (2)

“어느 날 셋째가 활짝 웃으며 날 끌고 갔었네. 녀석이 날 데려간 곳은 어느 목수의 집이었는데,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하반신을 전혀 쓸 수가 없는 상태였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그의 절규가 아직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네. 하지만, 그날 나는 기적을 보았지. 아니, 그 당시에는 기적이라고 믿었지.”

신의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그는 곧 백자 호리병을 탁자 위에 세웠다.

“이 주둥이가 사람의 허리라고 생각해 보게나. 사람이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는 허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그런데 그 남자의 허리는 부러지면서 신경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일어섰을까?”

말과 동시에 신의는 손을 휘둘렀다.

호리병 주둥이가 끊어졌다.

깨어진 것도 아니라, 극도로 얇은 수강에 사선으로 잘려나간 것이다.

백자가 땅으로 떨어지려고 하자, 신의는 그 몸통을 손으로 잡았다.

그러곤 끊어진 주둥이 위에 몸통을 올리기 위해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런다고 끊어진 사기 조각이 붙는 일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호리병 아랫부분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신의가 허공섭물(虛空攝物)로 붙잡은 것이다.

“이렇듯, 끊어진 신경을 대신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가능하겠지. 녀석은 그 무엇인가를······ 고(蠱)에서 찾았네. 하지만, 사람의 고라는 녀석은 아주 위험한 녀석이지.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더라도 숙주를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벌이는 아주 흉포한 놈이네. 그런 녀석을 영구적으로 사람의 몸에 박아넣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사달이 일어났네. 남자는 발작으로 죽었지. 하지만, 남자의 몸은 계속해서 움직였네. 마치 악몽처럼 말이지.”

“그 출발이 지금의······.”

“강시의 몸에 심어진 고는 그때와 같은 성질을 띠고 있네. 그보다 훨씬 발전했겠지만, 내가 알아보지 못하면 누가 알아보겠는가.”

그 말을 끝으로 신의는 말이 없었다.

일단 이야기를 하게 한 것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시후가 몸을 돌리자 그는 말없이 기막을 풀어 주었다.

시후는 밖으로 나온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시후는 잠시, ‘신의의 상처를 괜히 건드렸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신의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자조적으로 읊조리던 신의의 눈빛과 목소리가 시후의 신경을 긁었다.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떨쳐 내려 했지만,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입안이 씁쓸했다.

시후는 방으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지객당을 빠져나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경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멀찍이서 들려오는 익숙한 기합 소리에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발길을 잡아끈 건, 다름 아닌 남궁천이었다.

그는 연무장에서 한참 동안 검무를 펼치다가, 시후의 시선을 느꼈는지 뒤돌아보곤 황급히 달려왔다.

“차 아우!”

땀범벅이 된 남궁천이 시후를 껴안았다.

그 격렬한 포옹에 시후는 어색하게 웃었다.

상처를 건드린 신의와 달리, 남궁무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남궁천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자신의 의도한 것이었다.

그 사실이 다시금 시후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러기에 잘 지냈냐고 물어보기가 꺼려졌다.

남궁천은 우물쭈물하는 시후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그런 표정은 짓지 말게. 자네 덕분에 형님의 위패 앞에 놈의 머리를 놓을 수 있었으니 말일세.”

“아, 네······.”

남궁천의 말에도 시후는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시후의 반응을 본 남궁천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어허, 차 아우가 그러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이제는 정말 괜찮네. 그리고 언제까지 슬퍼할 수만은 없지. 아직도 그 배후들이 버젓이 눈뜨고 살아 있으니 말일세.”

화난 척 말을 이어가던 그의 눈이 한순간 붉게 번득였다.

남궁무의 죽음 뒤에 자리한 배교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상, 남궁세가의 검 끝은 배교를 향할 것이다.

남궁천 또한 마찬가지.

시후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미아는 안 왔죠?”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뿐더러, 이런 위험한 일에 미아가 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남궁천도 이곳에 오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시후의 시선을 알아차린 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네. 숙부님들도 한사코 말렸지만, 배교의 최후를 본다면 최소한 나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 죠.”

원래대로라면 남궁무의 사망을 양분 삼아 피의 복수를 위해 칼날을 갈아야 했을 남궁천이다.

하지만 시후가 남궁세가로 흑백선자의 머리를 보냈고, 남궁천의 미래가 틀어졌다.

사실, 남궁천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하진 않았다.

필시 그의 성격이라면 강직하게 밀어붙여 오리라 생각했다.

시후에겐 자신의 선택이 약으로 쓰일지 독으로 쓰일지의 확신은 없었다.

다만, 폐관 수련보다는 실전이 남궁천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피와 바닷물은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는 법이니깐.

* * *

이튿날, 햇빛이 서쪽에서 비추기 시작한 정론각 내부에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각 문파의 중진들만 모았음에도 모인 문파의 수가 적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부에 놓여 있던 탁자들은 하나를 제외하곤 죄다 밖으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남은 탁자 위에는 일전에 신의가 관찰했던 강시가 놓여 있었다.

신의는 강시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신의의 몸에서 흘러나온 내공이 짙은 운무(雲霧)처럼 서서히 강시를 감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강시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기 때문에 떨리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기에, 다들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병장기에 손을 올렸다.

사실 별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신의보다 무공이 높은 자는 끽해야 검후가 전부였으니깐.

벼락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던 강시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다들 손에 힘을 꽉 주어 병장기를 움켜잡았다.

그 순간, 눈꺼풀이 미약하게 벌어졌다.

“저, 저게 뭐야!”

강시의 눈을 파헤치며 실 같은 물체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독이었다.

최초의 머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나온 뒤로 녀석은 끝없이 기어 나왔다.

사람 키의 두 배는 훌쩍 넘을 법한 길이가 나오고서야 눈꺼풀이 닫혔다.

고독은 강시 몸 밖으로 나오자 주변을 염탐하듯 끊임없이 움직였다.

신의는 곧 반대편 손으로 고독을 붙잡았다.

고독이 급격히 반항하며 신의의 팔을 감싸려고 했지만, 신의에게 둘린 짙은 운무와 같은 내공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고독은 곧 축 늘어지더니 녀석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 그게 뭡니까?”

“경맥절고(經脈竊蠱)라고 하네. 본래는 이보다 한참이나 큰데, 밖으로 나오면서 다 잘라먹고 나온 모양이군.”

말을 하는 도중에도 녀석의 몸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녀석은 어느새 새끼손톱 길이만큼 작아진 다음에야 줄어드는 걸 멈췄다.

신의는 경맥절고를 다시금 주워들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녀석의 반항은 없었다.

얼핏 보면 애벌레 같기도 했다.

“저 멀리 신강 호도벽(呼圖壁)에서 북으로 구백여 리쯤 더 올라가면 오륜고호(烏倫古湖)라는 곳이 나타나네. 이 녀석은 그곳에 서식하는 녀석이지.”

신의의 말에 다들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역시 신의’라며 추켜세우는 자들이었지만, 갑자기 신강이란 지명이 등장하자 어리둥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떻게 하루 만에 알아차렸는지 의문을 품는 자들도 있었다.

“신의께서 중원 각지를 안 다녀본 곳이 없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신강의 이름도 생소한 호수에 사는 기생충을 알고 있다니! 여러분, 놀라운 식견이지 않습니까?”

다소 날 선 말투의 주인공은 청성의 주목 장로였다.

화산으로 돌아간 교초혼을 대신하기로 했는지, 그는 매사에 삐딱하게 있었다.

이번에 그의 주둥이는 신의를 향해 있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욕을 먹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렇기에 그의 화법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음에도, 신의를 향한 불신이 조금이나마 생겼다.

신의는 의구심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손바닥 위에 놓인 경맥절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신의가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렸다.

“응? 오륜고호도 안 가 보셨어요? ‘사막의 바다’라고 불리는 그 호수를 모르시나 보네요? 신강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한데 말이죠.”

그 모습을 본 시후가 몰래 지도에 나온 간략한 설명을 읽으며 신의를 두둔하고 나섰다.

주목은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선다는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봤지만, 오륜고호를 아는 사람은 더 있었다.

“나도 사제들과 함께 그곳에서 겨울에 낚시해 본 적이 있지. 얼음에 구멍을 파서 물고기를 낚는 재미가 쏠쏠했다네. 물론, 저런 흉측한 녀석이 있다는 건 몰랐지만 말일세.”

뒤이어 곤륜에서 시후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다소 의심스러울 수도 있었던 신의의 반응은 덕분에 아무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이번에 두 번째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것부터 알려 주겠네.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신의의 말에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그가 말한 건 아주 간단했다.

익힌 음식을 먹을 것.

그의 짧은 설명에 다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당패철도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숙조부를 바라봤다.

“그럼 모용세가에서는 전부 날것을 먹다가 이런 화를 당한 것이란 말입니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무공을 익히다 보면 누구나 가지는 공통적인 생각이 있지. 그래, 패철이 네가 한번 말해 보아라. 운을 제외하고 경지, 내공, 사용하는 무공 등이 죄다 같은 수준이라면, 그 승패를 가늠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이더냐?”

“음······. 체력이나 정신력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대답에 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경맥절고를 가리켰다.

“아주 지독하게 오래 싸운다면 그 두 개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공격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느냐의 문제이지. 게다가 경지가 올라갈수록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결정 나는 법.”

“그 말씀은?”

“이 녀석은 사람의 신경을 갉아먹고 그 자리를 메워 그걸 가능케 한단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용세가에서는 스스로 이 녀석을 먹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당패철의 말에 신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둘의 대화를 듣던 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모용세가는 단순히 이 녀석을 먹으면 몸의 반응이 빨라진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를 부추긴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일단, 부작용을 우려해서 안 먹은 자들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리 오래 기다리긴 힘들었을 게다. 이 찰나라는 시간을 수백 단위로 쪼갤 수 있을 반응 속도를 얻는다는 건 무림인들에게 얼마나 큰 유혹이었겠느냐.”

그는 말을 끊고 탁자 위에 놓인 강시. 아니, 시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먹어 치웠지만, 이렇게 먹혀 버렸겠지.”

- 6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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