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2화 거지와 녹림 (1)
탈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무기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긍정적인 설명이 많을 것.
쉽지 않은가?
조금 더 좋은 물건을 찾고 싶다면, 사용한 재료를 비교하여 좀 더 나은 물건을 찾을 수 있다.
흑단목이라면 충분히 상급이고, 백련정강이라면 일반 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이었다.
다만, 시후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음······. 이것도 별로 손에 안 감기네요. 이건 너무 무겁고······.”
창고는 작았지만, 벽면에 빽빽하게 걸려있는 무기의 수는 절대 적지 않았다.
시후는 무기를 모조리 확인하겠다는 듯 죄다 건드려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혀를 내둘렀다.
“······ 도대체 자네 손에 맞는 무기란 게 있긴 한 건가?”
“조금 더 둘러보면 나오겠죠.”
이미 쥐었다 놓은 무기만 스무 개에 달했고, 기다리다 지친 아저씨는 아예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미 확인한 무기들도 고작 은 다섯 냥에 사기엔 터무니없이 좋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시후는 손에서 방천화극을 내려놓았다.
방천화극을 비롯해 공방 일체의 균형이 훌륭한 산, 파, 낭선 등의 무기도 끌렸지만, 그런 독특한 무기는 특색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아쉽게도 시후가 익힌 ‘십창’으로는 사용하지 못하는 무기들이었다.
손에 들린 낭선을 내려놓던 시후는 곧 장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운철(隕鐵)을 소량 섞은 장창(長槍)]
「천년목(千年木)을 사용하여 진기의 수발 속도가 1할 상승합니다.
운철의 영향으로 야간에 공격력이 2할 증가합니다.」
상당히 좋았다.
순간적으로 이걸로 하겠노라 말할 정도로.
뒤를 슬쩍 돌아보자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도 좋지. 제법 공이 들어간 녀석이야.”
다만, 제법 공이 들어갔다는 말에 곧바로 내려놓았다.
분명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다.
최소한 시후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밥상 치우면 책임질 거냐고 투정 부리는 아저씨를 뒤로한 채 그로부터 다섯 번의 무기를 들었다 놓은 뒤에야 시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흑철(黑鐵)을 정련하여 만든 사모(蛇矛)]
「벼락 맞은 복숭아나무로 만들어 진기의 소모를 2할 줄여 줍니다.
영롱한 기운이 맴돌아 사특한 무공을 상대할 때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흑철을 정련하여 공격력과 진기 소모가 1할 증가합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저항력이 상승한다는 건 정말 중요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에 마교 혹은 마교의 하위 세력과 싸우게 될 때는 저항력이 필요했다.
시후는 사모를 몇 번 휘둘러 보는 시늉을 하곤,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주인아저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손에 착착 감기네요.”
“도둑놈도 보통 도둑놈이 아니구나······.”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시후는 능청 떨며 말을 받아넘겼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은 재료를 사는 데 들였던 값만 해도 족히 금원보 세 개 수준은 되었다.
게다가 흑철은 귀하기도 귀하지만, 다룰 수 있는 자가 극히 드문 광물 중 하나였으니, 만약 제값을 치른다면 시후가 가진 돈으로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놈, 다시는 오지 말거라.”
“에이, 다음에 올 땐 좋은 선물 하나 가지고 올 건데요?”
“좋은 선물이라고 해 봤자, 거기서 거기지.”
“다음에 놀라지나 마세요.”
시후의 호언장담에 주인아저씨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더는 툴툴대지 않았다.
다만, 무기를 고르는데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일까, 객잔 안에는 냉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 양반아! 밥이 식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거 안 보여? 총각한테 이건 어떻냐, 저건 어떻냐 그랬지? 안 봐도 뻔하지!”
“내,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무슨 변명을 하려고 그래요! 그리고 총각은 가만히 있어! 이 양반 수법이 맨날 그래, 어딜 다른 사람을 팔아넘기려고?”
아저씨는 억울하다는 시선으로 시후를 바라보았지만, 남의 가정사에 참견하는 건 아니라고 배운 시후였다.
도움을 청하는 주인아저씨의 시선을 외면한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시후가 객잔을 빠져나오자 안은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 * *
하남에서 호북을 가로지를 때 가장 좋은 길은 분명, 남양(南陽)에서 양양(襄陽)을 가로질러 형주(荊州)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이 가장 평탄하다면 평탄했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그쪽으로 돌아가겠지만, 아쉽게도 시후는 한가로이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결국, 선택한 길은 신양을 통해 대벌산맥을 넘는 것이었다.
문제는 예로부터 대벌산맥은 산세가 험하여 산적이 자리 잡기 좋았다.
다만, 시우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는 위험하다고 판단되지 않았다.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산적들은 손쉽게 물리칠 수 있으니깐.
“요 녀석이 먹는 게 부쩍 늘었단 말이야.”
흑마를 지켜보며 창현은 낮게 중얼거렸다.
불과 며칠 사이, 가죽 위로 슬금슬금 보이던 갈비뼈가 살 아래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쭉쭉 찐다면 악양에 도착할 때쯤에는 타고 다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짚단을 조금 더 꺼내준 시후는 말을 잘 묶은 뒤, 자신의 배도 채우기 위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옵쇼! 아, 한 분입니까? 편안히 드실 수 있는 2층이 어떻습니까?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고개만 끄덕여도 대화가 된다는 건 대단히 편리했다.
시후가 자리에 앉자마자, 점소이는 이 객잔의 모든 음식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저희 홍매 객잔으로 말할 거 같으면, 신양 최고의 객잔으로써 200년 전통의 육수를 기본으로 계사면(鷄絲麵)이 유명하고, 그와 함께 구운 오리를 먹으면 홍매주(紅梅酒) 생각이 간절하지요. 또한 증교자(蒸餃子)와 남전환자(南煎丸子)가 일품······.”
“앞에 두 개.”
“계사면 한 그릇과 구운 오리 한 마리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전부 해서 은 네 냥이고, 나가실 때 계산하시면 됩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바로 내오겠습니다!”
뜨끈뜨끈한 국물이 일품인 계사면을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호북성과 가장 가까이 자리한 마지막 관문 도시인 신양은 보부상들이 많이 오갔는데, 그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필시 저런 부류는 정보를 마구 내뱉기 마련이다.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녹림 총채주가 본보기로 표국 몇 개를 박살 낼 거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이 사람아, 표국 몇 개만 박살 나면 다행이게? 이번에 바뀐 수로 총채주와 다르게 녹림 총채주는 성격이 아주 포악해서, 취임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몇몇의 목을 베어 버렸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가?”
“흉악하기가 야차보다 더한 놈일세. 취임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기 사람을 죽이다니······.”
“그래서 지금 호북으로 넘어가려면 가진 걸 다 토해내거나, 목숨을 걸어야 할 걸세. 자기 목이 달아나게 생겼는데 우리 주머니 사정을 봐주겠는가?”
“아이고, 남양으로 돌아가려면 이거 손해가 보통이 아닌데······ 큰일이구나.”
객잔에 앉은 보부상들은 밥을 먹긴커녕, 이번에 바뀐 신임 녹림 총채주에 관해 떠들기 바빴다.
시후는 순간, 짧은 탄식을 토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만 떠올리느라, 저쪽 진영에서 벌리는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놈들이랑 엮이는 NPC가 있었는데······.”
구주신협이 주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NPC들의 이야기가 합쳐지며 ‘천무’가 완성되기 때문에 이쪽도 신경을 써야 했다.
자신의 실수를 곱씹으며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헤집다 보니,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그릇을 들어 올렸다.
점소이가 들고 온 계사면과 구운 오리는 과연 가장 먼저 입에 올릴 만한 음식이었다.
뜨끈뜨끈한 국물은 피곤한 몸을 노곤히 녹여 주었고, 그윽한 향은 콧속을 유려하게 헤엄쳐 다녔다.
“와······. 이 정도 맛을 구현했다고?”
얇게 찢은 닭고기와 소면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같이 시킨 구운 오리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더욱 끝내주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와중에, 간편하게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규화계(叫花鷄)가 있다는 소리에 얼른 두 마리를 구매했다.
객잔을 나오자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지금 출발하자니 시간이 애매했다.
그렇다고 한들, 굳이 이곳에서 하루를 허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거, 더럽게 인간미 넘치는 병사들이네.”
보통 때라면 나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겠지만, 지금 호북에 자리 잡은 산적들의 기세가 보통 사나운 게 아닌지, 시후는 병사들에게 붙들려 조언 아닌 조언을 들어야 했다.
병사들의 만류를 뿌리치긴 했지만, 그들 때문에 시간이 제법 많이 지체되었다.
결국, 해가 저물고도 적지 않은 시간을 걸어서야 간신히 대벌산맥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 * *
대벌산맥은 세 개의 성(省)의 경계를 나누는 화중(華中)의 산맥으로 이름이 높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해발고도가 상승했는데, 통행이 어려운 동쪽에는 산채가 두 곳 있었지만, 그나마 길이 평탄한 서쪽에는 단 한 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동쪽의 산들과 비교하면 그 높이가 절반도 되지 않았기에 누구나 쉬이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다니기 쉬운 곳을 산채 한 곳이 담당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동쪽에 자리 잡은 심악채와 호풍채는 그저 그런 산채였지만, 서쪽에 자리 잡은 악귀채는 녹림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산채였으니깐.
“어차피 내일 안 만나면 만날 일도 없겠지만.”
시후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굽고 있는 규화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연잎까지 잘 감싸놓은 규화계는 진흙만 발라서 구우면 끝난다는 말에 구매했지만, 무려 세 시간 동안 구워야 했다. 그 때문에, 몇 번이나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넣어야 했다.
불길을 보아하니 조금 더 나뭇가지를 주워야 할 것 같았다.
“아, 젠장······. 다음부터는 장작도 가지고 다녀야지, 원.”
꽂아 놓은 나무 작대기를 슬쩍 돌려놓고, 나뭇가지를 찾아 산을 헤매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바닥에는 장작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연신 허리를 굽혔다 펴며, 나뭇가지를 한 아름 확보한 시후는 불이 사그라들기 전에 서둘러 내려갔다.
“어?”
문제는 모닥불에 누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완벽히 잘못된 형태로.
“나눠주랴?”
그는 태연스럽게 닭 다리를 찢어서 자신에게 건네주려 했다.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어둠에 잠식되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자신이 준비했던 야영지가 맞았다.
게다가 자신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흑마가 확신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그렇다는 건, 저 거지의 손에 들린 건 자신의 규화계가 맞지 않을까?
아니, 맞을 거다.
“그거 제 음식 같은데요?”
“흠, 난 또······ 주인 없는 음식인 줄 알았지.”
거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에 든 닭을 태연하게 씹어 먹었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시후는 당겨오는 뒷골에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내려놓았다.
“상식적으로, 이 산중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닭을 굽는데 주인이 없는 음식이라고 알았다? 게다가 말까지 묶여 있는 상황에서?”
“꺼억, 그거 정말 미안하게 됐군.”
거지는 트림까지 하고 난 뒤, 다 먹은 닭 뼈를 불 속으로 휙 던졌다.
이제 남아있는 거라곤 날갯죽지 하나와 퍽퍽한 가슴살, 그리고 목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때가 거뭇거뭇하게 묻은 모양새를 보니 식욕이 싹 달아났다.
“하······. 빌어먹을.”
“그럼 거지가 빌어먹지 벌어먹겠느냐? 껄껄, 이왕 이렇게 된 거 적선했다고 생각하고 그만 잊는 게 어떠냐?”
거지의 대답에 시후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토했다.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거지의 얼굴을 노려보던 시후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세히 바라보니, 자신을 놀리는 거지의 한쪽 눈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거지에 독안(獨眼).
당장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독안비객(獨眼飛客) 추나행?”
- 1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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