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1화 (194/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1화 초석 (2)

시후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목표는 붉은색 미간주.

불상이 움직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황동으로 이뤄진 불상을 시후가 무슨 수로 때려잡겠는가.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다만, 이건 어떤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선택지에 불과하였다.

움직이지 않는 목표에 단검을 꽂아 넣는 건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터.

불상 미간주에 시후의 단검이 틀어박혔다.

곧 미간주를 중심으로 실금이 쩍쩍 생기더니,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1인 미궁 ‘깨어난 부처’를 성공적으로 돌파하셨습니다.]

[‘깨어난 부처’가 완료되어, 강제적으로 숨겨진 임무 ‘깨어진 불상’이 발동합니다.]

알람이 떠오름과 동시에 다시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미궁에 들어가기 이전과 같았다.

몸에 잔뜩 금이 간 채로 앉아 있는 불상만 제외한다면.

시후는 단검 끝으로 불상의 미간주를 살짝 건드렸다.

그와 동시에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불상은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깡, 까강, 깡깡!

바닥에 떨어지는 쇳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팔은 양쪽으로 떨어졌고, 머리는 반으로 조각난 채 입구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후의 귓가에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 위로, 다급한 걸음 소리가 겹쳐 들렸다.

곧 불당 문이 벌컥 열리며 주지 스님과 눈이 마주쳤다.

곧 스님은 바닥에 떨어진 불상 조각과 시후를 바라봤지만,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을 잃은 것이다.

넋이 나간 채로 한참을 둘러보던 스님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무슨······.”

참담한 표정을 짓던 주지 스님이 신발을 신은 채로 안으로 들어섰다.

곧 입구 근처에 떨어진 머리를 주워들자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인지 쩍하고 갈라졌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떨어진 부분을 맞대던 주지 스님의 손이 멈추었다.

양손에 들린 조각난 불상 머리를 바라보던 스님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시후를 바라보았다.

“왜······. 왜 불상을 부쉈습니까?”

됐다.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로 절반은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 불심 가득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매우 주효했다.

시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처를 보았습니다.”

“······ 뭐라고 하셨소?”

“불상에서 부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님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부처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그럼 시주께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후는 자신의 말에 천천히 눈을 감는 주지 스님의 모습을 보며 기도했다.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이 말을 계기로 스님이 평정사를 버리고 소림으로 갈지, 아니면 목탁 대신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스님이 눈을 감고 부엉이가 세 번째 울음을 토했을 때, 그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시주.”

“네, 스님.”

“허상에 취해 눈뜬장님으로 세월을 헛되이 보낼 뻔했는데, 오늘 시주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말을 내뱉은 스님은 양손에 들려있던 불상의 머리를 빤히 내려다보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깡! 까강!

어찌나 강하게 내던졌는지 나무 바닥에 깊은 흠집이 남을 정도였다.

데굴데굴 굴러간 머리 조각은 벽에 다다르고 나서야 멈췄다.

“세상의 본질을 보리라.”

스님은 자신을 향해 짧게 합장하곤, 곧장 안채에서 간단히 짐을 챙겨 산에서 내려갔다.

아무리 밤하늘에 보름달이 있다고 한들 적잖이 어두웠는데도 불구하고 스님의 걸음은 거침없었다.

“이걸로 소림사 전력은 강화될 테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악양으로 가는 길에 쓸데없이 이곳에 들린 이유는 하나였다.

시후 자신이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교주 처치에 힘을 실어줄 세력들이 강해진다면?

훨씬 더 빨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평정사의 주지 스님은 소림사 스님들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다.

스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후는 불상이 있던 자리를 뒤적거렸다.

“이건 또 덤이지.”

거기에는 옻칠까지 한 조그마한 목함이 있었는데, 틈 사이를 촛농으로 메꿔서 완벽히 밀봉해 놓았다.

미간주를 찔렀던 단도로 촛농을 파내어 상자를 열자 안에는 무명으로 꽁꽁 싸맨 물건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소환단 세 개를 얻었습니다.]

아끼면 똥 된다.

어차피 남에게 줄 필요도 없으니 시후는 곧장 소환단을 단박에 털어 넣었다.

[이급 영약 ‘소환단’을 다수 복용하였습니다.]

[익힌 심법의 영향으로 약력을 온전히 흡수하였습니다.]

[동일한 종류의 영약을 복용하여 내공 상승치가 감소합니다.]

[앞으로 소환단 복용 시 내공이 오르지 않습니다.]

[내공이 27 상승하였습니다.]

[불균형적으로 내공이 높습니다.]

시후는 마지막 알람으로 인해, 문득 품에 넣어 둔 채 잊고 있었던 비급이 떠올랐다.

하오문에서 받았지만, 기가 막힌 작명 센스로 애써 머릿속이 지워 버렸던 비급이.

호북을 지나면서 산적을 안 만날 수는 없으니 최소한의 무공은 배워야 했다.

게다가 그게 창이라면 더욱 좋다.

창은 장병기에다가 다수와의 전투에도 좋은 무기이니깐.

다만, 이름은 여전히 꼴 보기 싫었다.

잠시 주저하던 시후는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냥 비급을 꺼내 든 채로 잠시 서 있었다.

[십창을 익혔습니다.]

“무공창.”

[등급: 일류]

[무공: 십창]

[종류: 창술]

[0성]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는 말은 창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결코 검 나부랭이를 칭송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오해를 풀고자 만들어진 본 무공은 거기서 더욱 발전되었다.

단 십 일 만에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최적의 무공으로, 모든 공격에 대응이 가능한 게 본 창술이다.」

설명은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인 설명을 볼 때, 공격보다는 다소 수비에 치중된 듯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초식을 확인하던 시후의 표정은 한 것 구겨졌다.

“일섬(一閃), 이격(二擊)······. 다 괜찮은데, 이건 뭐야?”

십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식은 열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류 등급 무공이니 단순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최후 초식이 문제였다.

「막창(幕窓) - 이 초식을 펼치는 동안은 시전자에게 그 어떠한 공격조차 무의미하다.」

설명을 다 읽은 시후는 깊은 한숨과 함께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썅.”

* * *

그 길로 곧장 평정사를 내려온 시후는 무강 유일의 객잔에서 잠을 청했다.

무강은 마을 이름을 들었다면, 하다못해 마을을 들렸다면 마을의 이름이 지어진 연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색 있는 마을이었다.

수탉이 첫울음을 터트리기 전부터, 새벽부터 올라오는 연기와 쇠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원의 그 어디보다 좋은 무기를 만드는 곳이 바로 이 무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규모는 정말 작았다.

주(州), 부(府), 군(郡), 현(縣) 중 가장 작은 현이었으니깐.

새벽부터 쇠 두들기는 소리는 마을 전체를 휘감았고, 덕분에 시후는 강제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 시후를 반겨준 건 객잔 아래서 아침을 준비하던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아휴, 잘생긴 총각 얼굴에 잠이 덕지덕지 묻었네.”

“한참 나이에 두 시진이면 충분하지! 그보다 아침이라도 좀 먹겠나?”

식탁은 단 하나.

하남을 뛰어넘어 중원 전체에서도 이보다 작은 객잔은 없을 것이다.

객잔이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으함······. 주세요.”

“저쪽에 앉아 있으면 곧 차려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봐요.”

아주머니의 말에 시후는 잠도 깰 겸, 청개구리처럼 잠시 밖에 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안개다.

배산임수 지형의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는 무강은 아침부터 짙은 물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주변 대장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안개가 뒤섞여 마치 구름을 뽑아내는 듯했다.

곧 시후의 뒤를 이어 아저씨가 곰방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담뱃잎을 차곡차곡 채워 넣더니 곰방대를 들이밀었다.

“안에 대가 더 있긴 한데, 한 대 피우겠소?”

“아뇨.”

시후의 거부에 자박자박 쌓인 곰방대 끝에 불이 붙었다.

곧 구름을 뽑아내는 대장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인지, 아저씨도 입에서 뭉게구름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을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았다.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안개를 쫓아내는 듯 점차 안개는 옅어지기 시작했고 서서히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나란히 서서 바라보던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한쪽으로 사라졌다.

잠은 깰 만큼 깼기에 돋아난 닭살을 문지르며 안으로 들어섰다.

“총각, 이 양반은?”

“잠시 호수를 바라보다 저쪽으로 가셨어요.”

“또 곰방대 물고?”

마치 눈앞에서 본 듯한 말에 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자리에 앉은 식탁은 일반 객잔과는 전혀 달랐다.

객잔에서는 달랑 시키는 메뉴만 나오는 것과 달리, 일반 가정식처럼 여러 가지 반찬이 즐비한 게 꼭 한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제법 기름진 것만 제외한다면.

“그런데 총각은 저 타지도 못할 말을 가지고 어디를 가는 거야?”

“악양이요.”

“호남성 악양? 거기까지 혼자 가려고?”

“혼자가 아니라, 밖에 있는 타지도 못할 말과 함께 가죠.”

시후의 말에 아주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휴, 요즘 산적들이 보통 흉흉한 게 아니라고 하는데, 맨몸으로 가다가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안 그래도 창이나 한 자루 사려고요.”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약하지만, 화색이 돌았다.

“옳지! 그럼 우리 창고에 걸려있는 작대기 들고 가면 되겠네. 우리 양반이 심심하면 뭔가를 하나씩 만들어 온 게 제법 있는데, 총각이 쓰면 딱 맞겠어.”

“그냥 받을 순 없는데······.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어차피 창고에서 썩을 물건, 누가 써 준다면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겠지.”

“그래도 아저씨의 정성이 들어간 건데 공짜로 받을 순 없죠.”

“그럼······. 은 댓 냥만 주면 되지 않을까?”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객잔 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후다닥 들어왔다.

양손으로 팔을 비비는 모습이 과장되기 짝이 없었다.

“어허! 오늘 날씨가 영 싸늘한 게 겨울이 부쩍 다가오려나?”

말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 아주머니의 눈썹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럴 때는 조용히 기다리는 게 답이다.

잠잠해질 때까지 시후는 고개를 처박고 음식을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어휴! 밥 다 식었네. 도대체 아침부터 어딜 그리 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거예요?”

“아, 쇠 두들기는 소리가 이상해서 가봤더니, 아 글쎄 최가 놈이 몸이 나서 아들이 자루를 잡았나 봐. 거, 그래서 말인데 오늘······.”

“또! 또 연철장이 있는 곳에 들리려고요?”

“크흠.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럼, 우리도 저 총각을 좀 돕고 살아야겠네요. 창고에 처박아 둔 작대기 하나, 저 총각한테 주기로 했으니깐 그리 알아요.”

“어······. 그럼 내가 같이 창고로 갔다 오지.”

“밥은요!”

“어차피 식은 거 조금 있다가 먹지 뭐.”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시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의 뒤를 따라 객잔 뒤편으로 나간 뒷마당에는 덩그러니 지어진 창고 하나가 있었다.

딱히 자물쇠도 없이 내 버려둔 거로 봐선 정말 단순한 창고 그 자체였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창고를 거의 빼곡히 채운 무기들은 병기고 수준이었다.

“아무거나 한 개 집어 들어.”

“하나씩 들어서 확인해도 괜찮아요?”

“당연하지. 무릇, 무기란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중요하니깐.”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후는 가장 가까이 있는 무기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백련정강(百鍊情鋼)으로 만든 청룡극(靑龍戟)]

「흑단목(黑檀木)으로 만들어 진기의 소모를 5푼 줄여 줍니다.

백련정강으로 만들어 공격력이 1할 증가합니다.」

- 1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