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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8화 (19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8화 계획 수립 (2)

남궁천 일행은 정주에 도달하기 전, 맹진에서 내리며 자연스레 헤어졌다.

시후는 정주에 내리자마자 곧장 약재상을 찾았다.

약재상 근처에 다다르자 으레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한약 냄새······.”

코를 킁킁거리며 들어간 내부는 한적하다는 말을 넘어 아무도 없었다.

안쪽에서 약초 정리를 하고 있었는지 곧 사람이 튀어 나왔다.

“살 거요, 아니면 팔 거요?”

다짜고짜 물어보는 그의 질문에 시후는 손에 들린 상급 약초 꾸러미를 흔들었다.

그에 주인의 표정이 귀찮다는 듯 변했고, 시후는 그의 앞에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대충 둘러보면 보면 알겠지만, 우리 약재상은 은 댓 냥 이상의 이윤이 남을 만한 물건이 아니면 거래를 안 하오.”

그 말과 함께 꾸러미를 다시 시후에게 돌려줬다.

돈 안 되면 꺼지라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다시 꾸러미를 그에게 건네줬다.

그 자신만만한 표정에도 주인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젠장, 약재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이나 이렇게 보자기에 둘둘 감싸서 물건을 넣고 다니지. 약재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이렇게 보관하지 않아.”

툴툴거리는 약재상 주인은 이 약초 꾸러미를 건네준 사람이 누군지 알기나 할까.

약재상 주인이 꾸러미의 매듭을 풀자, 안에서 다시금 세 개의 조그마한 보자기가 등장했다.

각기 색이 다른 적, 청, 흑색의 보자기를 바라보던 주인은 가장 먼저 적색 보자기를 풀어헤쳤다.

보자기 안에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붉은색의 이끼가 들어있었다.

“적태(赤苔)?”

잔뜩 찌푸려있던 주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적태와 시후를 번갈아 보던 주인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새파란 보자기로 눈을 돌렸다.

대충 풀어헤치던 이전과 달리 그의 손길은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풀어헤친 보자기 안에는 마치 연꽃처럼 생긴 푸른색 버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청균(蓮靑菌).”

약재상 주인의 손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연청균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는 마지막 남은 흑색 보자기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선 시후가 냉큼 흑색 보자기를 낚아챘다.

“얼마 쳐 줄 건가요?”

“그, 그 물건까지 보고 말해 주겠네.”

약재상 주인의 대답을 들은 시후는 성큼 앞으로 다가가 적태와 연청균을 다시 감싸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주인의 몸이 달아올랐다.

“왜, 왜 이러나? 사겠네. 저거까지 열어보고······.”

“적태와 연청균, 얼마까지 주실 거죠?”

시후의 말에 눈치를 슬쩍 보던 그는 검은색 보자기를 힐끔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금 스무 냥.”

“다른 데 갈게요.”

멈춰 있던 시후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음이 급해진 약재상 주인은 온몸으로 시후를 저지했다.

“어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적태, 적태가 스무 냥이라는 걸세!”

“연청균은요?”

“흑색 보자기도 나에게 판다는 조건을 달아 준다면, 금 서른다섯 냥 주겠네.”

“흠······.”

“정말 단 한 푼도 남지 않는 금액인 걸 모르진 않겠지? 그러니 그 손에 들린 그것 좀 보세. 부탁허이.”

그의 표정은 매우 간절해 보였고, 이미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확보한 시후는 인심 쓴다는 듯 보자기를 건네주었다.

붉은색 보자기에 적태가 있었고, 푸른색 보자기에 연청균이 있었다면, 검은색 보자기도 그 규칙을 따를 것이 분명했다.

그 안에 무슨 물건이 있을지 시후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약재상도 마찬가지겠지.

수전증이 의심될 정도로 발발 떨리던 약재상 주인의 손은 내용물을 확인하자 단번에 멈추었다.

“흑, 흑······.”

대신, 손의 떨림이 그의 입술로 옮겨 간 모양이다.

파르르 떨리던 그의 입술은 말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한 단어만을 토해내었다.

“흑과(黑果).”

“그, 그래. 흐, 흑과가 분명하네. 맙소사,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흑과야.”

홀린 듯한 눈빛으로 흑과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했다.

이걸 구매할 것인가, 구매한다면 얼마를 제시할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등장한 그의 손에는 금원보 여덟 개가 들려 있었다.

“흑과는 금 백 냥으로 쳐 주고, 금 다섯 냥은 앞으로 우리 가게와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는 성의일세.”

통 큰 그의 제안에 시후는 흑과를 내려놓고 금원보를 건네받았다.

앞으로 약재를 더 팔아 치울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고.

혹시라도 구한다면 이곳에 팔러오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뭐, 앞으로 구하는 약재는 이곳에서 판매하도록 하죠.”

“고맙네, 정말 고맙네. 우리 심가 약방은 중원 11개의 지부가 있으니, 언제라도 지부를 찾아서······.”

[‘심가 약방’과 전속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앞으로 심가 약방을 통해 약재를 판매할 시 이윤이 5푼 증가합니다.]

[다른 가게에 약재를 판매하면 전속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습니다.]

* * *

약재상을 빠져나왔음에도 아직 몸에 약의 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홍설을 찾으러 가 볼까.”

궁핍했던 주머니가 꽉꽉 채워지자, 시후는 곧장 하오문으로 향했다.

홍설을 찾기도 해야 했고, 겸사겸사 쌍괴에게 받은 은 패도 사용해야 했으니깐.

다만, 하오문은 약재상이나 대장간같이 지도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정주에서 가장 큰 객잔이······.”

각 성도의 가장 큰 객잔의 기둥 아래에는 물고기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물고기의 꼬리를 거슬러가다 보면 가끔 고래가 나타나는데, 고래가 머무르는 곳이 바로 하오문의 지부였다.

바로 이곳처럼.

“홍 씨네 포목점?”

시후는 간판에 적힌 이름을 중얼거리며 가게로 다가갔다.

입구에서부터 알록달록한 각종 포목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잠시 입구에서 안쪽을 살펴보자, 안에 있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아휴, 인물도 훤하고 키도 훤칠하신데, 옷이 영 못 받쳐 주네! 우리 포목점은 옷감도 팔지만, 옷도 팔아요. 어디 한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수다를 막을 겸 재빨리 은 패를 꺼내 들었다.

은 패를 본 아주머니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아, 특별한 옷감을 찾으시는구나? 그건 안쪽에 있죠. 자, 손님은 이쪽으로 따라오시고, 미영아~ 가게 좀 보고 있으렴.”

안쪽에서 쌓인 먼지를 털어 내던 점원이 밖으로 나오자, 아주머니는 시후에게 따라오라 손짓한 뒤 앞장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가게 안쪽에는 확실히 조금 더 고와 보이는 비단이 줄지어 널려 있었는데,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붉은 비단을 잡아당기자 한쪽 벽이 소리도 없이 돌아갔다.

[하오문의 정주 분타를 찾아냈습니다. 하오문과의 친분에 따라 임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벽 뒤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그 너머는 시꺼먼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시후도 어쩔 수 없이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아주머니는 화섭자를 꺼내, 벽에 걸린 홰에 불을 붙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통로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

그 복도의 끝에는 검은색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문은 상당히 묵직해 보였지만, 기름칠이 잘되어 있었는지 부드럽게 열렸다.

“저기 앉으시죠.”

안쪽에 의자를 가리키는 손짓에 시후는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문을 닫은 아주머니는 방을 한 바퀴 돌며, 걸려있는 홰에 모조리 불을 붙이고 나서야 자신의 앞에 앉았다.

“하오문 정주 분타의 지부장을 맡은 홍춘자라고 합니다. 조금 전 보여 주신 은 패를 사용하러 오신 겁니까?”

위에서 살갑게 말을 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단번에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가식이라는 탈을 벗어 던진 홍춘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상당했다.

“은 패를 사용하는 거랑 별개로, 사람 한 명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찾으려는 사람에 따라 그 금액이 달라지고, 대상에 관해 많은 정보를 줄수록 찾는 기간이 줄어듭니다. 그럼, 일단 은 패부터 사용하시겠습니까?”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에 쥐고 있는 은 패를 탁자의 정중앙에 올려놓았다.

시후가 내려놓은 은 패를 잠시 살펴보던 춘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 패를 사용하려면 기관을 발동시켜야 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말과 동시에 탁자가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내려간 탁자에는 기하학적인 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은 패를 중심으로 반구체의 막이 생겼다.

막 안에 자리 잡은 빛무리는 점차 짙어졌고, 빛을 가두던 막에는 검은색 실선이 그려졌다.

최초의 실선은 곧 사방으로 줄기를 뻗어 나갔고,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빛을 가둔 막 안에서 책 한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인해 보시죠.”

책의 겉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기에, 시후는 기관에서 나온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심법만 아니면 뭐라도 괜찮다.’

일원신공을 익히고 있는 이상, 그 어떤 심법이 나온다고 한들 무용지물이었다.

정말 빈말이 아니라, 심법만 아니면 무엇이 나와도 상관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십창(十槍)을 획득했습니다.]

두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지만, 글자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마음에 드는 무공은 아닌 듯하군요. 처음 방문하신 호······ 아니, 손님에게 드리는 혜택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은 패를 구매하신다면 금액이 1할 경감됩니다.”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구매를 권하는 춘자의 말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계속 쥐고 있다간 일원신공처럼 배워질지도 몰랐기에, 서둘러 품에 욱여넣었다.

“사람 이야기나 하죠.”

“찾으시는 분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역은 정주 한정에 이름은 홍설, 직업은 기녀, 나이는 스물넷에 비파 연주가 일품이고, 왼쪽 눈 옆에는 눈물 모양의 점이 하나 있으며, 웃을 때는 양쪽 뺨에 보조개가 쏙 들어감. 그리고······.”

정보가 많을수록 빨리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설정집에 쓰여 있던 내용을 모조리 읊었다.

다만, 시후가 기억하는 홍설의 설정집 내용은 대단히 방대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설명에 춘자는 손을 내저었다.

“그, 그만해도 괜찮습니다.”

“가격은?”

“흠흠, 대단히 상세히 알려 주셨으니, 금 한 냥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정보를 사고파는 하오문에서 질문이라.

달갑지 않았다.

시후의 얼굴에 그 감정이 여지없이 드러나자, 춘자는 예의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니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혹시, 이 홍설이라는 기녀를 만나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시후의 대답에 춘자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는 데로 사람을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가시는 길은 이쪽입니다.”

왜 물어보는지 물어볼까 싶었지만, 뭐 문제가 될 만한 질문도 아니었기에 말없이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통로를 빠져나간 곳은 포목점 근처의 객잔 부엌이었다.

시후는 안내에 따라 부엌 뒤편 쪽문을 향해 빠져나갔고, 주방에 남은 춘자는 재료 바구니에 놓인 사과를 손에 쥐었다.

“철두야.”

춘자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름과 함께 사과를 베어 물었고, 그녀의 뒤편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조건에 부합하는 기녀는 천화루 소속의 아이입니다.”

한 번 베어 문 사과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뒤편에 있는 철두에게 사과를 휙 던졌다.

“저 남자에겐 일 각 정도 지난 뒤에 정보를 전해 주고, 천화루에 있는 홍설이라는 아이에게도 연락해 줘.”

말을 끊은 춘자는 시후가 나간 쪽문을 응시하며 몸을 살짝 떨었다.

“웬 취향이 확고한 변태가 찾아갈 거라고.”

- 9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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