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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7화 (190/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화 계획 수립 (1)

산에서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긴 시후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간신히 걸을 정도의 체력을 회복한 시후는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오, 축지부(縮地符)만 있으면 이런 개고생을 안 해도 되잖아.”

하지만, 신의가 아직 기초 금창약을 만들지 못한 것처럼, 모산파도 축지부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힌트를 주면 만들 수 있는 신의의 경우와 달리, 아무리 빨라도 2년은 걸릴 테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투덜거리며 걷는 사이 화음현(華陰縣)이 성큼 다가왔다.

화음은 화산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자, 위수강(渭水江)과 황하강(黃河江)이 만나는 분기점이었다.

화산과 가장 가깝다는 이점과 두 강이 만나는 부근에 자리 잡은 만큼, 마을 크기와 비교하면 나루터의 규모가 상당했다.

“예성까지 은 한 냥! 등짐 하나 매고 있소!”

“반 각 뒤 출발할 테니 이쪽으로 오시오.”

“어허, 심가야. 네놈이야 물에 빠져도 상관없다만, 저 손님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물귀신이 돼야겠냐? 저기 심가 놈 배는 받은 손님이 가득 차서 가라앉을 수도 있으니 이리로 오시오.”

나루터에서 배를 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는 곳과 가진 물건의 무게를 외치면 그만이었다.

주변 분위기를 살피던 시후는 돈을 아낄 방법을 떠올렸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곧 은 한 냥을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예성까지. 짐 없음. 은 한 냥에서 가장 돈을 많이 거슬러 주는 쪽으로!”

시후의 외침에 사공들이 슬슬 눈치를 살폈다.

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은 한 냥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 시선을 모으기엔 충분했다.

눈치를 살피던 사공 중 한 명이 슬쩍 손을 들었다.

“철전(鐵錢) 한 냥 거슬러 주지.”

“이 도둑놈 같으니! 난 철전 다섯 냥!”

“열 냥.”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자, 마른 장작을 쏟아부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철전 쉰 냥!”

“그쪽으로 가죠.”

시후는 희희낙락하며 철전 쉰 냥을 부른 사공에게 다가갔고, 사공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정가보다도 싸게 태워야 했기에 사공의 표정은 잔뜩 구겨졌지만, 그렇게 목청 높여 경쟁해 놓고 태우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저기 타쇼.”

사공은 턱 끝으로 쪽배 하나를 가리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시후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으로 허리춤에 병장기를 찬 이남 일녀의 무림인들이 자리에 앉았다.

“아까 재치있는 행동 잘 봤소.”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는 남자의 얼굴은 외견 수정으로 이곳저곳을 손댄 시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준수했다.

“아, 사공들끼리 경쟁이 심한 거 같아서요.”

“그걸 한눈에 파악하다니 눈썰미가 보통은 아닌 것 같소.”

“별말씀을.”

시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화를 끊자, 이어나갈 말이 끊겨 버린 남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다만, 쉽사리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기억 속을 뒤지려던 시후의 귓가에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굳이 호남까지 내려가야 해요?”

뾰쪽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방금 대화를 나눈 남자와 묘하게 닮은 묘령의 여인이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인도 미녀라고 부르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띠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면 여인은 날을 세우고 있었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뾰로통한 표정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뾰로통한 표정에도 여인의 미모가 다 가려지진 않았다.

“하하, 이왕 집에서 나온 김에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게 미아 너도 좋지 않으냐. 삼대 누각 중 하나인 악양루를 둘러보지 않고서야 어찌 중원을 둘러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흥, 철우가 말해 줬는걸요. 초설이라는 기녀 때문이죠?”

“크흠! 철우가 무슨 헛소리를 한 것인지 몰라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니, 기억 속 저편에서 잠들어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아마도 입사한 지 한 달쯤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 * *

시후는 NPC들의 설정집을 뒤적이다가 한 NPC의 무공 분류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찰나 자신의 사수이자,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떠올랐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다. 하지만, 모르는 상태로 업무를 진행하는 건 죄다.’

그 말을 떠올린 시후는 주저 없이 질문을 던졌다.

“대리님. 여기 무공 분류란에 음공(音功)이라고 돼 있는데, 이게 뭐죠?”

시후의 질문에 그와 마찬가지로 설정집을 뒤적거리던 주명우 대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 밑에 자리 잡은 짙은 다크서클은 조금 더 내려오면 광대까지 잠식할 듯했다.

면도를 며칠째 하지 못했는지, 고슴도치 부럽지 않은 턱수염을 긁적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 게임에서 보면 버퍼 개념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미묘하게 다르단 말이지.”

“뭐가 다른데요?”

“음······ 아! 이런 말이 있지.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공방일체?”

“어, 그거랑 비슷하긴 한데 조금 달라. 아군에겐 버퍼를 주는데 상대에겐 그게 상대에겐 데미지로 들어가.”

그의 말에 시후는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하, 그럼 버프 겸 디버프네요?”

“그런데 이게 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이지. 막 소리를 검기처럼 슉슉 날리는 게 가능해.”

“사기 아니에요?”

시후의 말에 주명우 대리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익히기가 겁나 어려워. 강해지는 건 그것보다 몇 배는 어렵고.”

“에이, 우리나라 게임 실력을 생각한다면······.”

“내가 알기론 유저가 익히라고 만든 수준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간단히 예를 들면, 외발자전거를 물구나무선 채로 타면서 발가락으로 이쑤시개를 잡은 뒤 그 위에서 접시를 돌리는 수준?”

그의 설명에 시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더럽게 디테일하네요······. 꼭 해 보신 것처럼.”

“야 인마, 익히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말하는 거잖아. 그보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거야?”

“여기, 이 NPC가 좀 특이한 거 같아서요.”

시후가 들고 있던 설정집을 본 주명우 대리가 팍 인상을 썼다.

나흘 동안 퇴근을 하지 못해도 짜증을 내지 않았던 그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시후는 자연스레 뒷짐을 질 수밖에 없었다.

“너, ‘천무’ 아직 다 안 읽었지?”

“어······ 그게, 5권까지는 읽었는데 말입니다.”

“5권? 너 이 프로젝트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어?”

“죄송합니다.”

정말 프로젝트 들어온 날짜가 궁금해서 물어봤겠는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고개를 팍 숙인 채 뒷짐 진 시후의 모습에 주명우 대리는 뭐라 입술을 달싹이려고 하다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내 신조가 뭔지는 알지?”

주명우 대리의 날이 선 목소리에 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직도 다 안 읽었다는 거 알면, 백창현 부장님이 잘도 가만히 두겠다? 이틀 준다. 이틀 뒤에 질문할 건데 대답 못 하면, 두고 봐.”

평소에 허허거리는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서운 법이고, 화를 내는 방법도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게 더 무서운 법이다.

목소리를 깔며 차갑게 바라보는 주명우 대리의 시선에 시후는 입술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건 잊으려야 잊을 수 없지.”

상념에서 빠져나온 시후는 기억을 떨쳐 버리기 위해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 이틀 동안, 정말 쪽잠조차 자지 않은 채 열다섯 권에 달하는 천무를 무려 두 번이나 읽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다시 정독하며 세계관이나 인물의 관계도 등을 파악했고, 그에 매료되었다.

그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홍설’은 저들이 이야기하는 ‘초설’의 언니였다.

“흠흠. 정녕 강남 삼대 누각을 둘러보기 위함이니,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꾸나.”

“맨날 불리할 때만 저런다니깐.”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운데 앉은 이가 남궁천일 테고, 그의 좌우로는 남궁미와 팽철우일 것이다.

팽철우는 제외하더라도 남궁 두 남매는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었다.

남궁천은 셋째에 불과해도 미래의 남궁세가의 가주로 오를 만큼 엄청난 입지를 쌓은 인물이고, 남궁미는······.

“어?”

맞은편의 남궁미를 바라보던 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남궁미는 구주신협에게 차이고 난 뒤, 뒤에서 그를 괴롭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문제는 지금 구주신협과 남궁미가 만나서 인연을 쌓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남궁미는 다소 붕 뜰 가능성이 농후했다.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쌍괴야 필요 때문에 관계를 맺었다만, 남궁미와 관계가 이어질 필요가 있는가.

결과는 바로 나왔다.

아니다.

구주신협과 달리, 자신은 남궁미의 계략을 헤쳐나오며 성장이 필요하지 않으니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화음에서 그다지 머지않은 예성 나루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을 규모는 화음과 비슷했지만, 황하강 정기 운행선이 정박하는 만큼 나루터는 더욱 거대했다.

시후는 쪽배에서 내린 뒤, 먼저 내린 남궁천 일행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들과 시후가 향한 곳은 조금 전 내린 쪽배와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커다란 평저선이었다.

“아, 더럽게 비싸네.”

다만, 크기에 걸맞게 뱃삯은 만만찮았다.

정기 운행선의 뱃삯을 내고 나자, 시후의 주머니에 남은 돈은 고작 철전 오십 냥이 전부였다.

배 위에서 먹을 식량을 사려면 턱없이 부족했다.

시후는 품에 있는 상급 약초 꾸러미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서 팔까? 아냐, 돈 벌러 다닐 시간 없으니 성도급 도시에서 팔아야 하는데······.”

천천히 돈도 모으고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돈을 무작정 사용할 수는 없다.

고를 수 있는 몇 없는 선택지를 지우자,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딱 하나 남게 되었다.

시장에 들러 인간 사료라 불리는 쌀가루를 사는 수밖에.

“쌀가루, 철전 오십 냥 치.”

철전 한 푼 남기지 않고 모조리 쌀가루를 사는데 쏟아부었다.

[소지하신 돈을 모두 소진하여 업적, ‘탕진의 맛’을 달성하였습니다.]

“썅. 이건 또 무슨 업적이야?”

자신도 모르게 달성한 업적에 시후는 욕을 내뱉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누가 이딴 업적을 만들었을까.

곧 한숨을 내쉬곤, 걸음을 옮겨 정기 운행선에 올라탔다.

‘정주(鄭州)’라고 적힌 탑승 패를 보여 주고 올라탄 정기 운행선에는 이미 올라탄 인원만 족히 백은 넘길 것 같았다.

게다가 아직 짐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금일 마지막 정기 운행선이 반 각 뒤에 출발합니다!”

배의 난간에 기대어 입안으로 쌀가루를 털어 넣으며 구경하는 사이, 아래편에서 곧 출발이라는 선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적당히 배를 채운 시후는 입가에 묻은 쌀가루를 쓱 문질러 닦았다.

그로부터 반 각 뒤, 배는 간이 계단을 치우곤, 예성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난간에 기댄 채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후의 눈에 알람 창이 떠올랐다.

[사용자가 지정한 알람입니다.]

[경과 시간 1주일.]

[아직도 뭉그적거리고 있다면, 조금 더 속도를 높여야 할 거야.]

처음에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 형식의 알람이었다.

저 알람을 보니 마음 한편이 묵직해졌다.

시간을 죽인다는 느낌으로 강을 바라보던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충분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은 시후는 1주일 단위로 세세하게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기존과 달리 홍설은······ 초설 전에······ 소림도······ 녹림과······.”

한참을 중얼거린 시후는 계획이 정리되자, 다시금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 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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