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마법병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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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우리로 부대를 꾸리겠다, 그 말씀이오? ”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오르커스가 놀라 되물었다.
다른 다크엘프 무리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는지 사방에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기로는 시장바닥이 따로 없었다.
“ 예. 비공식적인 방어 목적 부대를 꾸리고 싶습니다. ”
“ 비공식…? 그건 또 무슨 소리요? ”
군대란 겉으로 드러나기에 상대에게 위협이 되고, 늘 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는 하다.
그저, 이번에는 겉으로 드러냈다 손해가 더 많을 것 같았기에 숨기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나는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가라앉히고, 좌중을 슥 훑어본 뒤 말했다.
“ 동의했다는 전제 하에, 여러분을 공식적인 군대로 만들면 몹시 시끄러울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성벽은 높고 튼튼할수록 좋은 법이니, 다크엘프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욕심입니다. ”
“ 음. 우리를 군대로 쓰고 싶다면 일단 나부터 충분히 따를 의향이 있소. 어차피 험하게 산 놈들도 많고, 터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으로 하면 그만이기도 하니까. ”
오르커스의 의견에 반론이 없는지, 다른 다크엘프 무리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다크엘프를 제법 대우해주는 곳이었으니 호의적일 만도 했다.
“ …그리고, 전쟁은 대비하는 것이지. 넋 놓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오. 대공께서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나 보군. ”
“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좋게는 무슨.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 이 땅은 우리 터전이오. 그러니 만일의 경우, 우리가 한 손 거드는 것도 당연하지. ”
어찌 보면 땅을 주고 고용한 셈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며, 오르커스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땅을 미끼로 레드후드 용병단을 낚았던 때가 떠올랐다.
시간으로 따지면 썩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도 아득한 옛날 같이 느껴졌다.
거의 한 달 같은 하루를 많이 보내며 생긴 부작용 같았다.
“ 그래도, 눈치 보면서 병력을 늘리겠다는 건 참 피곤한 발상이로군. ”
“ 재수 없게 들리실 지도 모르지만, 가진 게 많을수록 발을 떼기가 참 망설여집니다. 개중에는 눈치 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대범한 분들도 있기는 하나, 제 간이 그 정도로 크지 않은 게 유감이네요. ”
“ 뭘. 다 이해하오. 피 묻힐 일을 되도록 피하고 싶다는 거겠지. 지도자로서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고. ”
오르커스는 내 속내를 읽은 것 마냥 확신에 찬 투로 말했다.
실제로도 두말할 것 없는 완벽한 정답이었기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안다는 것일까.
“ 감사합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
나는 오르커스를 비롯한 무리의 동의에 감사를 표한 뒤, 머릿속에 그린 편제를 간단히 설명했다.
일곱에서 여덟 정도를 한 분대로 하는 것으로, 분대 셋을 소대로 한다.
소대 셋이 모이면 한 중대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등등을 뽑아야 했으나, 그 일은 오르커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이럴 때 일하라고 있는 것이 부촌장이라고 생각했기에.
간단하군.
오르커스는 내 이야기를 금방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중요한 질문을 입에 담았다.
“ 그렇다면 대장은 누구요? 부대가 있으면 대장도 있어야 하지 않겠소. ”
“ 그렇죠. 대장은 여기 있는 이브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
“ …네? ”
나는 옆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입을 다물고 있던 이브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로 인해 이브의 표정에 균열이 갔고, 지켜보고 있던 다크엘프 무리 또한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 제가… 요? ”
“ 네. 엘프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다, 이브는 본래 마법사입니다. 마법은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니, 대장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
“ 아. 저기, 그게……. ”
이브는 내키지 않는 듯, 혹은 혼란스러운 듯 말꼬리를 흐리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군대의 대장은 필요에 따라 사람을 죽여야 할 테니, 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이브가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브가 얼마나 잔인하게 돌변할 수 있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가족, 정확히는 그녀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쓰러져 돌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나는 이브의 어깨를 잡아 시선을 고정시킨 뒤 말했다.
“ 이브. 앞일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군대는 그 알 수 없는 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책입니다. 그건 이해하시죠? ”
“ 네, 네에. 그렇긴 한데……. ”
“ 물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절대 좋은 일도 아니고, 쉽사리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아시겠죠. 저도 이브에게 꼭 사람을 죽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
만에 하나 영지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누군가 죽을 수도 있고, 그에 따라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 와중에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죽는다면, 그 충격이 몹시 클 것 또한 당연하다.
이를 면죄부 삼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만에 하나의 그런 상황이 닥칠 경우,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었다.
칼을 부딪쳐야 할 경우가 오면 오로지 힘만이 상황을 결정짓기 때문이었다.
“ 물론 우리 영지에도 군사는 있습니다. 헬레나가 가르치는 정예병들이죠. 하지만 이브가 이 부대의 대장을 맡아준다면 영지는 한층 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단순히 다크엘프를 못 믿어서 이브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브가 대장이 되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간곡히 부탁했다.
이브 입장에서는 내가 부탁을 하니 죽을 맛이겠지만, 꼭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전부… 잃지 않기 위해서요? ”
“ 네. ”
놀라워하던 다크엘프 무리도 차분하게 이브의 표정을 살피고, 이브 또한 호흡을 가라앉히며 점점 침착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크엘프와 가장 많이 교류했기에 반감을 가지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
애초에 누가 대장을 하든 수용할 법 했지만, 이브라서 더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차분하게 침묵을 고수하길 잠시.
이브가 곧 결심을 굳힌 듯, 천천히 입술을 뗐다.
“ 할… 게요. 하겠습니다. ”
천만 다행이도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한 시름 놓을 수 있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엘렌이 어딘가 뚱한 기색을 보였지만, 아무튼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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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병단이요? ”
“ 네. 일단 임시로 정한 부대 이릉인데, 나중에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면 바꿔도 괜찮아요. ”
이브를 대장에 임명한 다음날.
나는 이브를 응접실에 불러 부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편제만 정해졌을 뿐 어떤 전술을 쓸지, 그를 위해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비공식적이며, 방어를 위한 부대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훈련을 필요했다.
그 점은 어제 다른 다크엘프 무리에게도 설명했고, 그들 또한 납득했기에 잡음이 새어나오지는 않을 듯싶었다.
“ 괜찮은 것 같아요. 저는 군사 쪽에 눈이 어두우니까……. ”
이브와 나, 둘만 있어 그런지 작은 목소리임에도 무척 잘 들렸다.
오히려 말소리를 놓치지 않을까 싶어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었다.
헬레나나 엘렌이 있었다면 정신이 어수선 했을 텐데, 새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알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구체적인 훈련 방향을 잡아 보죠. ”
“ 아… 근력 운동을 하거나, 그런 것 말인가요? ”
“ 그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호흡과 연계에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 같은 다크엘프라 하더라도, 막상 영지에 모이기 전 까진 얼굴도 모르던 남이었으니까요. 더구나, 체력 등 전투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은 이미 갖추고 있기도 하고요. ”
“ …옳으신 말씀이에요. ”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동의했다.
다크엘프가 사용하는 정령마법이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인지 잘 알기 때문이리라.
노예로 잡혀 온 엘프들도 그러하지만, 다크엘프가 다루는 정령은 어딘가 호전적인 느낌이 더 강했으니.
“ 흔히 물, 불, 바람, 흙 등의… 사대 원소라고 하던가요? 엘프들의 정령마법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요? ”
“ 네. 정확히는 자연 현상의 일부를 재현하는 것이 정령이고, 사대 원소는 그 대표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 대표 이외의 현상을 일으키는 정령을 다루기도 해요. 물론, 그 수가 극히 드물지만요. ”
기본적인 원소 외에도 다룰 수 있는 폭이 있다.
나는 그 지식을 잊지 않도록 되뇌며, 갑자기 떠오른 의문을 풀기 위해 입을 열었다.
“ 혹시 이주한 다크엘프 중에서 그런 특이한 원소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이 있나요? ”
“ 아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이 원소를 다루는 이는 정말로 드무니까요. 다만 원소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마법사들이라면 조합식을 통해 여러 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
“ 그런 현상 자체가 드물지는 않다는 뜻이로군요. ”
나는 이브의 말을 이으며 새삼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당장 야영에 쓰는 온풍기와 비슷한 매직 아이템도 공기를 데우며, 창고에 쓰기 시작한 냉동마법 또한 사대원소 자체가 아니었다.
그런 현상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이브가 말한 조합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조합식은 계산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니만큼… 본능과 감으로 사용하는 정령마법과는 거리가 있었다.
“ 혹시, 이브와 같은 마법사들 같은 마법을 엘프에게 가르칠 수는 없나요? ”
“ 예전부터 가끔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는데, 다들 머리가 아프다며 거절했어요. ”
마법 이론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머리가 굴러가야 한다.
더구나 이브가 입에 담는 이론은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니 마법을 쓸 수 있는 다크엘프라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 조금 어려운 말로… 오성이라고 하던가요? 그것도 필요하고, 없다면 하다못해 흥미라도 느껴야 할 테지만……. ”
“ 둘 다 없다는 뜻이군요. ”
“ 네. 하지만 다크엘프 분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마법을 쓰기 위한 지능과는 결이 달라 그런 것일 뿐이에요. ”
예를 들면 잔머리가 잘 굴러가고, 기발한 발상을 잘 하는 인간이 수학에는 젬병인 것과 같은 뜻이겠지.
덕분에 엘프에게 마법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아주 깔끔히 포기할 수 있었다.
“ 그렇지요. 머리가 나빴다면 여태껏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테니까요. 아무튼, 가능한 선에서 메뉴얼을 짜야겠네요. ”
“ 메뉴얼… 이요? ”
“ 아. 기초 전술을 말하는 겁니다. ”
나도 모르게 매뉴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지만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실수로 튀어나오긴 했어도 지금 당장 해명해야 할 만큼 중요한 단어도 아니었으니까.
이브도 그리 생각하는지, 적당히 납득하고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 기초적인 전술이라 말씀하신다면… 일단 4대 원소가 전부 갖춰져 있으니, 그를 잘 이용 할 필요가 있겠네요. ”
“ 이브가 말한 대로 있는 패를 잘 활용해야겠지요. 우선 제가 생각한 기초 조합은……. ”
흙의 정령을 통해 방어를 하고, 주로 바람과 불로 공격한다.
불이 거센 바람을 타면 훨씬 덩치를 부풀리기 쉽고, 그로 인해 적에게 효과적인 피해를 안겨줄 수도 있었다.
단순히 생각해도 그냥 화살보다 불화살이 훨씬 위협적인 것처럼.
“ 이 정도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생각이겠죠. 그 외에는 물과 흙을 이용한 진흙탕을 만들어 방어에 쓰거나, 물과 바람을 섞어 얼음 지대를 만들어 발을 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 물을 바람으로 식히고, 더욱 차게 만들어 얼음을 만드는 건 가능해요. ”
엘렌이 그와 같은 짓으로 얼음을 만들 수 있었으니재료만 있으면 가능하다 생각했다.
더해, 이브 또한 내가 맞았다고 보증했으니 단순한 헛소리가 아닌 셈이었다.
“ 하지만, 다른 마법을 쓰는 사람끼리 그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려면 호흡이 필요해요. 대공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
“ 맞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훈련이죠. ”
익숙지 않은 작업을 익숙하게 하기 위한 과정. 그것이 바로 훈련이다.
나나 이브,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저택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 그렇다면, 구체적인 훈련 계획을 잡아 봐야겠지요. 이브의 마법 지식을 바탕으로 할 테니, 좀 도와주시겠어요? 말을 많이 해야 해서 피곤할 수도 있을 테지만……. ”
“ 저, 저는 괜찮습니다! 영지에 온 이후로 노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 이럴 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브는 이미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단순히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뿐 아니라, 어쨌든 마법에 관한 이야기라 큰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그래도 대화만 잘 통하면 그만이지.
나는 일만 잘 풀린다면 아무래도 좋다 생각하며, 이브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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