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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106화 (106/192)

〈 106화 〉 마법병단 #2

* * *

“ 으음……. ”

마법병단 계획이라.

나는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적은 종이를 보며 한숨 쉬었다.

군사력을 지나치게 키우면 여러모로 견제를 받을 것 같고,병사로 이용하기 위해 다크엘프를 받아들이려 한 것이 아니니만큼 찝찝하기도 했다.

내 명령에 따라 곳곳에 흩어진 다크엘프 무리에게 소식을 전하고, 그에 솔깃하여 온 이들이 제법 된다.

수로 따지면 서른 전후이나, 충분히 수용하고도 남을 수다.

물론 나머지 다크엘프가 전부 온다고 해도 괜찮았다.

수가 몇 안 되는 데다 마을 부지도 넉넉했으니꺼릴 것이 없었다.

설령 부족하다 하더라도 부지를 늘이면 그만이엤고.

“ 비공식에, 부탁부터 해서……. ”

공식적인 부대로 삼기엔 무거우나, 비공식적이라면 괜찮을 지도 모른다.

더구나 정복이 아닌 방어를 위한 군대라면 그들 중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단, 그렇다 한들 방어를 명분 삼아 그들을 노예처럼 부려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그럴 생각도 없지만 품에 끌어안은 동맹이라 생각하고 선을 지키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서라도.

.

“ 믿기지 않는군. 미친놈이 분명해. ”

얼마 전, 크라우저 공작령에 발 들인 다크엘프 하나가 그렇게 말했었다.

대공을 욕하는 소리를 공작령의 누군가가 들었다면 당장 화를 냈을 테지만, 마침 듣는 귀가 올리비아 하나 뿐이었다.

올리비아는 이 다크엘프 여자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피식 웃으며 못들은 척 넘겼다.

엘렌의 용병단 또한 한 번쯤 거쳐 갔던 의문이자 의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외벽 안쪽에 마련된 다크엘프의 포도농장.

하얀 엘프를 부려 만들어낸,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반듯한 마을까지.

처음 마을에 발 들인 이주자들은 정령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노예로서 부려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올리비아의 말에 따르면 나름대로 대가를 받을 예정이라 했으니, 무력 말고는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랬던 것이… 농사나 짓고 세금이나 내면 된다니. ”

엘프 노예들과 분담하기에 많은 양의 작물을 재배하진 않는다.

애초에 밀과 보리 등의 곡식이 아니라 여러 약초, 소위 특수한 목적에 사용할 작물만을 기르게 되어 큰 부담도 없었다.

세금도 적고, 노동 강도도 몹시 낮다.

작지만 온전한 자신만의 집을 얻었다.

더해, 노예 신세로 살아가는 하얀 놈들의 콧대 꺾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다크엘프 무리로서는 참 재미있으면서도 편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소문이 퍼지고 또 퍼져,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른 정도의 다크엘프 무리가 북쪽 성문 밖에 살고 있었다.

또한 수가 적은 다크엘프이기에 다 모인다 한들 백을 채우지 못할 터.

덕분에 빈 집들은 언제든 새 주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와… 드디어 됐어요! ”

마을 한 구석에서 제법 순진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브로, 마침내 정령과 연을 맺어 정령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크게 기뻐하는 것이 당연했다.

“ 축하해요. ”

이브와 함께 하던 다크엘프 여자가 히죽 웃으며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처음에는 공작 직속 마법사라 하기에 적당한 예의와 선을 가려 대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마법에 관심이 많으며, 엉뚱하고 소탈할 뿐인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한 덕이다.

또한, 다크엘프를 더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도 컸다.

“ 네. 아직 하급이지만, 덕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됐어요! ”

“ 다음 단계라면… 정령을 가지고 마법을 만든다는? ”

“ 맞아요. 잘 될지는 장담 못하지만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

발동이 빠르고 간편한 정령마법을 기초로 전공이던 미세 원소마법에 이른다.

이브는 그를 실험해볼 생각에 몸에서 활기가 솟는 것을 느꼈다.

눈동자 또한 기대감에 반짝이고 있었다.

“ 그래요. 그것 참 다행……. ”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던 중, 여자는 낯선 기척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 오는 외부 사람이라 해 봐야 촌장 대역을 맡은 올리비아나 이브 뿐.

그러니 긴장하며 상대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다. 다른 다크엘프도 마찬가지였다.

다그닥.

말을 타고 온 낯선 기척의 주인, 지온은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에서 내렸다.

그는 무리와 처음 마주하는 것이기에 내심 어색함을 느꼈으나, 겉으로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요? 반갑습니다. 지온 크라우저라고 합니다. ”

.

통나무집과 향긋한 약초 냄새가 진동하는 마을.

거기다 주변의 나무가 빛을 내는 것처럼 보여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엘렌의 무리가 포도밭을 꾸릴 때엔 이런 기색이 없었는데, 참 신기했다.

아마 엘프의 수가 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 당신이… 이 영지의 대공이라고요? ”

한 다크엘프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서로가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도 있었다.

질문을 던지는 이가 여러모로 험하게 구른 다크엘프라면 더더욱.

“ 그렇습니다. 제 곁을 따르는 엘렌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요? ”

나는 조용히 뒤를 따르는 엘렌에게 슬쩍 곁눈질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

“ 그래……. 다크엘프를 호위로 쓰는 귀족이라고 했었지. 거기다 어리다고. ”

“ 네. 이 영지에서, 하물며 대륙 전체로 봐도 이런 인간은 드물지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

놈이 말한 대로 다크엘프를 호위로 쓰는 인간은 거의 없다.

용병으로 쓸 수는 있어도, 이렇게 밀착하여 움직이는 걸 꺼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아직까지는.

“ 지금, 대공님을 의심하는 건가요? ”

엘렌이 눈을 날카롭게 치뜨며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를 냈다.

아마, 내 답을 듣고도 여전히 미심쩍어 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럴 때 제법 극단적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것이 엘렌이나 헬레나의 단점이었지만,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질문을 던진 다크엘프를 포함한 무리들이 당황해하며 하나 둘 고개를 끄덕였기에.

“ 으, 으음. 무례를 사과드리오. ”

“ 괜찮습니다. 개의치 않으니까요. ”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구석에서 손을 흔드는 이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 영지에 오고 나서부터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처럼 제법 나이에 맞는 면모도 보이고 있었다.

“ 아. 그러고 보니 마법사가 당신네 소속이었지. 이걸 몰랐네……. ”

“ …그러게 말입니다. ”

다크엘프 무리와 안면을 트고 지낸 이브가 보증하면 단숨에 의심이 풀렸을 지도 모른다.

다크엘프 남자의 넋두리는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의견에 동의했기에 짤막한 공감의 뜻을 드러냈다.

“ 아무튼, 오해가 풀렸으니 그걸로 다행입니다. ”

“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본의 아니게 팔자에 없는 부촌장 노릇을 하게 된 오르커스요. ”

다크엘프 남자, 오르커스가 투박한 말투를 쓰며 손을 내밀었다.

대부분의 다크엘프가 용병 등과 같은 험한 생활을 하기에, 그 기색이 어투에 배어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제법 각 잡힌 말투를 쓰던 엘렌이 특이했을 뿐이지.

“ 다시 한 번 인사드리죠. 반갑습니다. 지온 크라우저입니다. ”

나는 망설임 없이 오르커스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남자 다크엘프는 드물었기에 무척 신기한 느낌일 듯 했지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굳은살이나 체온 등,보통 사람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아.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겼다는 점은 신기했다.

“ 거 참 신기한 귀족이로군. 소문은 익히 들었소만 배포가 넓은 건지, 아니면……. ”

“ 속이 없는 건지 의심스러우신가요? ”

내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자, 오르커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말꼬리를 흐리다 괜한 꼬투리가 잡혀 당황해하는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그와 비슷한 처지처럼 보였고.

“ 아, 아니, 그게……. ”

거친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더더욱 자기 보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힘을 가진 이에게 아첨하여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곳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내 험담을 하는 것이라 여긴 엘렌이 싸늘한 기색을 띠어, 반응하기가 참 곤란해 보였다.

“ 하하. 괜찮습니다. 저도 명색이 귀족인지라 사람 가려가면서 이러니까요. ”

“ 그… 렇구만. ”

다크엘프는 믿을 만 하다고 돌려 말한 것이 전해졌는지, 오르커스의 칙칙했던 낯빛이 한층 밝아졌다.

엘렌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풀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 한 고비 넘긴 셈이다.

“ 음. 농담은 여기까지 할까요. 오르커스. 부촌장으로서 마을에 있는 다크엘프를 전부 모을 수 있겠습니까? 이브도 포함해서. ”

“ 전부? 지금? ”

“ 예. 지금이요. ”

나 같은 사람이 너무 오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불편하다.

그러니 최대한 용건만 마무리 한 후 떠나는 것이 맞다 생각해 서두르기로 했다.

오르커스는 대뜸 마을에 사는 다크엘프 전부를 모으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곧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덤으로, 그가 가리키는 건물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제법 큰 건물 하나가 보였다.

모양새도 그렇고, 딱 시골 마을에서 볼 법한 회관 같은 통나무 건물이었다.

수십 명 정도는 너끈히 받아들일 수 있어 보였다.

“ 창고 같은 곳처럼 보이네요. ”

한 발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휑하다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엘렌이 말한 대로 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벽난로 정도는 마련되어 있었으나 다른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없었다.

“ 아마 용도가 단순해서 이렇게 놔둔게 아닐까 싶어. 그래도 청소는 자주 하는 모양이야. 깨끗해. ”

나는 먼지 수북할 줄 알았던 바닥이 매끈한 것에 놀라며, 그대로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그에 엘렌이 약간 놀라며 잠시 우물쭈물하다, 내 옆에 자리 잡았다.

“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었어? 우물쭈물하다 입을 다물고. ”

“ …아니요. 괜찮습니다. 지온 님이 원래 이런 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을 뿐이니까요. ”

“ 그럴 수 있지. ”

내가 보통 귀족과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듯 같지만, 그를 말하는 엘렌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아마,괜히 무게를 잡으며 행동하는 것보다 이런 모습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기왕 좋아진 분위기를 조금 더 길게 느낄 겸, 엘렌과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간 지루함이 이 분위기를 물들일 것만 같았던 탓이다.

“ 대공 나으리. 다 데리고 왔소. ”

잡담을 나누던 중, 오르커스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말한 대로 수십의 다크엘프 무리도 함께였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꼴이 상당히 장관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우선 아무데나 적당히 앉아주세요. 저만 앉아 있으면 쑥스러우니까. ”

“ 알겠소. 다들, 일단 들은 대로 행동해. ”

오르커스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다크엘프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여기저기 자리 잡았다.

얼핏 난잡해 보이는 모습이었음에도 묘한 질서가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적당한 구석에 앉아 있던 이브에게 손짓하여, 내 곁으로 다가오도록 했다.

그에 이브가 당황하여 허둥대다, 곧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오른쪽에 자리했다.

평소에는 헬레나가 채워주는 장소였다.

“ 다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쓸데없는 사족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선 인사부터 했다.

본론만 꺼내고 갈 생각이기는 해도 인사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인사를 했으니 더 이상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판단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제가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는, 다소 강압적일지도 모를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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