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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42화 (42/192)

〈 42화 〉 결투 #4

* * *

“ 혹여 어디가 불편하거나 그러시지는 않나요? ”

헬레나를 설득한 이후 곧장 다크엘프가 머무는 별실에 들러 질문을 던졌다.

내가 끌어들인 손님이니만큼 내가 신경 쓰는 것이 맞았고, 내가 할 일이 없더라도 이러는 것이 맞았다.

초대한 장본인이 손님에게 얼굴을 내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 아니, 전혀 없어. 침대도 넉넉하고, 가구나 욕실도 좋고… 정말 천국이 따로 없어. ”

엘렌을 비롯한 다크엘프는 크라우저 저택이 무척 마음에 든 기색이었다.

아이처럼 열띤 얼굴이나 잔뜩 흥분한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래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여자들이 아니었으나, 제법 좋은 대접을 받은 덕에 날 선 신경을 조금 풀어낸 듯 했다.

그들은 특히 매직 아이템으로 가득한 욕실을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이었다.

야전이나 보통 가정과 다르게 사람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무엇보다, 편히 몸을 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이들 또한 몸이 깨끗한 것을 선호하는 편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아니라면 이렇게 깔끔한 모습이 아니었으리라.

“ 다행이네요. 참, 계약으로 받은 땅에는 언제 쯤 방문하실 생각입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려고 하는데……. ”

“ 용병이 속물적이기는 해도 아직 의뢰를 끝마친 상황이 아니잖아. 그러니 일이 다 끝나면 부탁할게. ”

엘렌은 용병으로서 높은 신용을 다진 여자답게 보상보다 의뢰 수행을 우선하는 기색을 보였다.

보상에 눈이 멀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접하는 사람에게 신롸감을 안겨주는 모습이었다.

타고난 성품인지, 아니면 여태껏 살아오며 몸에 익힌 기술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라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 네. 감사합니다. ”

◎◎◎

“ 왼쪽으로 파고들 때가 너무 약해. 허리를 틀어서 오른쪽 몸으로 막으려 하니까 틈이 많이 보여. ”

“ 허억…! 허억…! 그런… 가? ”

“ 내 기준에서는 그래. 평소에는 괜찮지만 급하다 싶을 때마다 자꾸 그러면 상대도 눈치 챌 거야. ”

결투까지 한 주를 남겨둔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헬레나와 한층 더 독한 수련에 몰두했다.

정확히는 나 스스로의 역량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구슬땀을 펑펑 쏟아내는 중이었다.

본래 더운 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한여름 못지 않은 더위를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헬레나의 이마에선 땀 한 방울 묻어나올 기색이 없었다.

호흡도 시종일관 정돈되어 있었고, 그녀가 쥔 목검의 끄트머리마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정말 같은 하늘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유롭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 남은 시간동안 얼마나 고쳐질지는 잘 몰라.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단 낫겠지. 안 그래? ”

“ 그야… 물론이지. ”

헬레나는 억지로 쌀쌀맞은 말투를 구사하며 목검 끝을 까딱였다.

굳건한 거목을 떠올리게 하는 몸짓과는 대조적인 눈빛이 불안한 감정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 흔들림이 너무 심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목검에 얻어맞은 옆구리가 욱신거렸지만 참을 만 했다.

아니, 참을 만 하지 않아도 참아내야 했다.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야 했다.

“ 자, 그러면 다시 시작하자. ”

그녀는 다그치듯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 뒤에, 말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목검의 날이 여전히 욱신거리는 왼쪽 옆구리를 가차 없이 노리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반응할 수 없을 공격은 아니었다.

애초에 헬레나가 봐주는 것 없이 검을 휘두르면 몇 초도 견디지 못해 멍으로 범벅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반응할 만한 상한선을 정확히 노린 공격이라는 뜻이다.

“ 윽?! ”

나는 맨손 격투를 주로 익혀 왔으나 무기를 든 사람과 대치하는 법도 익히고 있었다.

검을 던지는 기술만이 아니라 상대의 검을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막아낼지를 고민한 역사의 결과물이었다.

상대가 검이나 다른 무기를 휘두르며 덤벼들 경우, 나는 보통 그 검면을 후려쳐 궤도를 뒤트는 것을 선호했다.

특히 상대의 턱을 쳐올리듯 아래에서 위로 치는 것을 좋아했다.

개인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후려치는 것보다 편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은 나와 역량이 비슷하거나 낮은 사람에게나 통했다.

헬레나와 같은 고수는 검을 노리고 날아드는 주먹을 무시하고 더 빨리 휘두르거나, 은근슬쩍 검로를 바꾸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그 변화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빠른 것이 바로 검의 날을 바꾸는 행위였다.

날을 갈아 끼우는 것이 아니라 날의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다.

“ 잘못하면 손 다친다? ”

“ 알고 있어…! ”

헬레나는 가로로 휘두른 날을 세로로 세워 직각을 만들었다.

즉 검면을 후려치려던 내 주먹은 자연스레 상대의 날을 향해 뻗어가는 셈이다.

그것은 곧 내 주먹을 반으로 갈라달라는 말과 진배없는 행위였다.

헬레나의 친절한 충고와 더불어 손에 든 것이 목검이 아니었다면 손이 박살났을 가능성이 높다.

반응을 해서 피하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주먹을 못 쓰게 되었겠지.

“ 그래. 그렇게 막아야지! ”

헬레나는 검이 튕겨졌음에도 즐겁게 웃었다.

내가 억지로 몸을 비틀어 검면을 쳐낸 것이 몹시 기뻤나보다.

“ 그래도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돼! ”

기쁨은 흥을 오르게 하고, 흥이 오른 몸짓으로 휘두른 검은 조금 전보다 확연히 빨랐다.

검을 튕겨낸 힘에 저항하기 보다는 파도를 타듯 그 흐름에 순응했다.

그 탓에 한 바퀴 돌아 휘두른 검이 어느 새 지척까지 다가오고 말았다.

검은 내 어깨를 노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깨를 시작으로 팔을 사선으로 가르는 듯 했다.

몸을 비틀어 균형을 잃은 사람이 피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일격이었다.자세를 바로잡으려다 맞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직감했기에 흐트러진 자세를 더욱 심하게 흐트러뜨렸다.

어차피 균형을 맞을 것이라면 그 균형을 아예 무너뜨려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도 제법 효과가 있었다.

“ 어…? ”

내 몸은 눈 깜빡할 사이 땅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로 인해 헬레나의 목검은 허공에 선을 그렸고, 나는 그 틈을 타 있는 힘껏 다리를 휘둘렀다. 목표는 헬레나의 발목 뼈였다.

발차기는 단순했다. 마나를 실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결코 무시할 만한 공격은 아니었다. 제대로 맞는다면 발목뼈가 부러지거나 큰 타격을 줄 정도는 되었다.

그것은 근골이 보통 사람보다 강한 소드마스터라 해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고작 대련에서 드러내기엔 너무 흉흉한 것이 아닐까 생각할 법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에는 목숨을 걸고 붙어야 했다.

더해, 헬레나는 내가 건성건성 상대해도 될 만큼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봐라.

지금만 보아도 내가 휘두른 다리에 재빨리 반응하여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 지금 동작은 매끄러웠어. 쓸 만한 기습이야. ”

헬레나는 차분하기 짝이 없는 투로 나를 칭찬하며, 자신이 휘두른 목검을 그대로 땅 끝까지 휘둘러 땅바닥에 푹 찍었다.

그리고 목검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마치 물구나무를 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목표를 잃은 다리는 의미 없이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동작의 속도를 고려해보면 헬레나가 더 빠르다는 것이 명백했다.

내가 쓰러지는 동안에도 목도는 계속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힘을 실으면 더 빨리 바닥에 꽂히게 되니까.

하지만, 그 판단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 빨랐다. 아니, 정말로 생각하고 행동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내가 헬레나의 머리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 아니기에 확신 할 수는 없으나, 아마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라면 저런 움직임을 취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 망할! ”

나는 일초라도 빨리 목도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착같이 굴렀다.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바닥을 밀어 힘을 더하기까지 했다.

흙먼지가 옷과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꼴사나운 몰골이 된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것에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았다면, 어느새 자세를 바로 한 헬레나의 손에 얻어맞고 말았을 테니까.

“ 후우우…! ”

바닥을 구르는 힘과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킨 후, 나는 다시 한 번 가쁜 숨을 고르며 헬레나를 주시했다.

바닥에 반쯤 무릎을 꿇은 채였으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수도, 또는 땅을 박차며 뒤로 빠질 수도 있었다.

“ 일단 이쯤 할래? 아니면 계속 할래? ”

“ 계속… 해야지. ”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꼿꼿이 섰다.

헬레나와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적어도 한 방 정도는 먹이고 말겠다는 악에 받히고 있었다.

물론 이성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강철멘탈의 효과 덕분이었다.

덕분에 지금 내 신경은 그 날카로움이 최대한에 도달해 있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지만, 적어도 그 한도에 여유를 남겨 놓은 상태는 아닌 듯 했다.

한 대만, 한 대만 맞자…!

나는 가정폭력범도 아니거니와 약혼자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적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지 않으면 힘을 꽉 준 주먹이 느슨해질 것만 같았다.

“ 안 맞게 조심해! ”

나는 최대한 호기롭게 외치며 땅을 박차듯 달렸다. 맞지 않을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외쳤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허세일 뿐이겠지만, 아예 의미가 없어 보이진 않았다.

적어도 스스로를 고취시킬 수는 있었기에.

◎◎◎

그렇다고 진짜 한 대도 안 맞아주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속으로 푸념했다.

내 옆에 앉아 생글생글 웃고 있는 여자는 여전히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채 깔끔했고, 그런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 이거 영 글렀나. ”

“ 그렇지 않아. 오히려 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는걸. ”

헬레나는 무심코 중얼거린 내 혼잣말에 정색을 하고 답했다.

진지함으로 범벅이 된 눈빛을 띤 것을 보니 아예 없는 말을 지어낸 것 같지는 않았다.

“ 정말로? ”

“ 응. 여태까지 사무적으로 훈련하던 것과 다르게, 요즘은 의욕에 넘치고 적극적이잖아. 태도가 바뀌었으니 실력이 몸에 붙는 것도 다른 게 당연하지 않을까? ”

그래서 질문을 던졌더니 절로 수긍할 만한 답이 돌아왔다.

게다가 여태까지의 내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훈련에 소홀한 적이 없었는데, 헬레나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나보다.

“ 사무적인 걸… 알고 있었어? ”

“ 느낌으로 알았지. 그래도 훈련에 대충했다는 말은 아니다? 지온이 성실하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아는걸. 그저 오늘만큼 눈에 확 띄는 절실함은 안 보여서 그랬을 뿐이야. ”

“ 아… 알 것 같네. ”

절실함이라.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거친 바닥에 뒤통수가 쓸리는 느낌을 고스란히 얻을 수도 있었다.

하늘 참 좋네.

나와 헬레나는 서로 입을 닫은 채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헬레나는 연무장 너머의 숲을 보고 있었다. 정원 대신 조경용으로 만들어 둔 작은 숲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느껴질 법한 침묵에도 편안함을 느꼈다.

헬레나가 말했던 대로 절실함을 품고 움직여서 그런지 개운하기도 했다.

덕분에 복잡하게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는 듯도 했다.

“ 단순한 약혼자인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솜씨가 제법이로군. ”

그러나. 평화로운 때는 잠시 뿐이라는 것일까.

나는 학교 쉬는 시간이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을 품은 채, 평화로운 침묵을 깨는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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