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위험한 공존
사람 하나 죽여도 눈 깜짝 할 것 같지 않은 헉스의 모습에도 남자는 조금의 흥미도 없다는 듯이 흐릿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강준이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모두 잃은 채 스스로를 닫아 버린 강준이었다.
생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강준이었기에 헉스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강준을 죽여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준이 살아있는 이유는 헉스가 그냥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 정말 죽고 싶냐.”
“…….”
지금까지 강준을 죽이고자 했지만 죽일 수가 없었다.
강준이 방심을 하든 하지 않든 헉스는 강준의 몸에 치명타는 커녕 제대로 공격도 해 보지 못했다.
물론 자신도 강준에게 별다른 타격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다시 붙는다고 해도 승부를 볼 수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분명 덩치나 파워 등 피지컬은 헉스 자신이 월등했지만 스피드나 전투 센스 및 기술은 강준이 더 뛰어났다.
‘한 번만 붙잡기만 해도….’
헉스는 자신의 힘이라면 강준의 허리가 부러지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강준의 몸을 붙잡았다가 자신의 눈알이 뽑힐 뻔 했던 것이 떠오른 것이었다.
강준은 철저하게 살인기술을 사용했다.
노리는 곳은 모두가 급소였고 그 때문에 힘을 쓰기도 전에 관절이 뽑힐 뻔 하거나 눈이나 성기 등 중요 부분을 공격받았다.
그러니 헉스도 강준과 섣불리 사생결단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도 못한 채로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길! 짜증나는군.”
헉스는 결국 강준과의 싸움은 별 이득이 없다는 것에 화를 삭여야만 했다.
강준도 헉스가 싸울 의지를 잃자 다시금 동굴 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저 녀석 그냥 인간 백정이 아니었던가?’
헉스는 처음 강준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헉스가 처음 강준을 보았을 때는 강준은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였다.
당연히 주변에는 온통 시체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강준과 눈이 마주쳤던 헉스는 정말이지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강준과 몇 번이고 싸우고 난 뒤에야 강준도 그리고 헉스도 암묵적으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강준이 살인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무슨 원수지간이기라도 한 것인지 기어코 목숨을 끊어버리고야 말았다.
헉스조차도 기가 질릴 정도로 살인에 무감각한 강준이었다.
거기에다가 실어증에라도 걸린 것인지 일체의 말을 하지 않던 강준이었으니 테일러를 살려주고 말까지 한 것에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헉스는 강준의 변화에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었다.
‘저 놈을 정말 왜 살려 준 거지? 그냥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놈인데 말이야.’
강준에게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헉스는 기절해서는 널브러져 있는 테일러에게 관심을 돌렸다.
평소 그런 호기심이 강한 성격도 아니었지만 이 정글에서는 사람 죽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너무나도 없었다.
물론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 것 저 것 할 것이 많았지만 인간은 호기심이 때로는 생존보다 클 때가 있었다.
이런 작은 호기심을 해결할 수 조차 없다면 정말 자신이 인간이 아닌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일반인들이 본다면 생존 게임을 하고 있는 생존자들이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동물로만 보일 터였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어느 덧 자신들만의 삶의 라이프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인간이기를 부정당한 존재들이었지만 결국에는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 군상들이 생존자들이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생존 속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짐승과는 다른 것을 찾아가는 거대한 실험실마냥 생존자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응? 또 사람 죽이러 가냐.”
헉스는 동굴 밖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강준의 모습을 보았다.
강준은 대답 없이 동굴을 나가 버렸고 헉스도 딱히 관심 없다는 듯이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외면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 또한 생존을 위해 인간 사냥을 하고 있었지만 살인이라는 것은 그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불쾌한 것이었다.
강준이 사라지고 난 뒤에 헉스는 기절해 있다가 이제는 편안히 잠에 빠져 있는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자식!”
또 건드렸다가 강준이 싫어할까 싶어서 깨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헉스는 강준이 없자 테일러에게 다가갔다.
찰싹! 찰싹!
“이 빌어먹을 놈아!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다!”
과격하게 뺨을 때리며 테일러를 깨우는 헉스였다.
“크윽! 윽!”
기절해 있는 상태도 아니고 잠이 들어 있던 상태였던 테일러는 얼굴이 얼얼해 질 정도로 맞자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멍청한 자식! 이제 일어났냐?”
“으윽!”
테일러는 자신의 머리보다 두 배는 큼직한 헉스의 손바닥에 암울할 지경이었다.
살짝 힘을 주어서 헉스를 밀어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헉스의 몸에 반항을 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너 정말 아까 그 녀석하고 아무 관계도 아닌 거냐?”
“후우! 모른다니까. 정말 저 녀석 모르는 인간이다.”
헉스는 테일러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는지 인상을 구기고서는 강준이 없는 사이에 테일러를 죽여 버릴까 잠시 생각을 했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칫! 그냥 그 놈의 변덕인가?”
헉스의 생각으로는 강준이 사람을 골라가며 죽이고 살리는 미치광이로는 안 보였기에 그냥 변덕으로만 여기고서는 테일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헉스마저도 테일러에 대한 관심을 끊자 테일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강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입 안에 고여가는 침을 삼켰다.
‘한 놈이면 도망 칠 수 있을 듯도 싶은데….’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일단 도망을 가자는 생각이 드는 테일러였다.
얼마 전까지 죽음을 받아들였던 테일러였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지금에 와서는 역시나 살고자 하는 본능이 강했다.
“도망칠 생각하지 마라. 니 놈이 도망쳐 버리면 그 놈이 오해를 할 수도 있으니까. 죽이지만 말라고 했으니 다리 두 짝 부셔버리는 건 문제 없을 테니까.”
“…….”
테일러가 도망을 갈 생각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헉스의 경고가 있었고 테일러는 아무런 말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강준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말 없이 있어야만 했다.
‘불편하군.’
헉스조차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둘만이 남겨져 있는 상태에서 아무 할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잠도 잘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온 몸이 근질근질 거렸다.
차라리 상대를 죽이는 싸움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정도였지만 그 것도 할 수 없었기에 두 사람 모두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결국 잔득 주늑이 들어 있는 테일러가 먼저 입을 열리는 없었기에 헉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헉스다. 아까 그 놈은 나도 이름을 모르는 놈이고 어디 놈인지도 모르니 나한테 묻지 마라.”
“아! 저…저는 테일러라고 합니다.”
헉스가 갑자기 자기소개를 하자 테일러도 얼떨결에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사실 두 사람은 사람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인 상태였다.
오직 사람을 죽일 때 혼잣말을 하거나 대화가 아닌 말만을 해 왔었다.
그러니 서로 간의 대화다운 대화에 상당히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헉스와 테일러는 일반인들처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록 두 사람의 나이나 국가, 관심사 모든 것이 달랐지만 두 사람은 꽤나 재미있다는 듯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정에 지독하게도 굶주려 있던 존재들처럼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
하지만 그 것도 한 존재의 등장으로 대화는 완전히 끝이 나 버렸다.
“뭐…뭐야? 언제 돌아온 거야?”
“…….”
두 사람은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강준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도 강준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의 등에 매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