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위험한 공존
“으음!”
테일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점차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멍하니 자신이 어떤 처지인지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멍하니 있으면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테일러의 눈동자가 사방을 빠르게 훑어보았고 이내 이상함을 찾아내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음!”
테일러가 누워 있던 곳은 동굴이었고 그 동굴의 입구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동굴의 입구 반대편은 그대로 막혀 있었기에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저 놈. 내가 죽일 수 있을까?’
테일러는 동굴을 막고 있는 남자를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신체가 움직이지 않아야 살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테일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남자의 행동에서 눈길을 때지 않은 채로 주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주륵!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장의 시간이 지나갈 때 쯤 테일러는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응? 이 녀석은 또 뭐야? 뭘 주워 온 거야?”
“…….”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는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남자가 잔득 긴장을 하고 있던 테일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도 버거운 상황에서 상대가 두 명이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쩔 수가 없음을 아는 것이었다.
“하아! 제길! 니 노들 마음대로 해라.”
결국 테일러는 몸의 긴장도 풀어버리고서는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 앞의 정체 모를 두 명의 남자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양인인가? 그 것도 동북아 지역의 남자인 것 같군. 다른 남자는 슬라브 족? 아니 사모안인가? 제길 최악이군.’
덩치 큰 백인 남자였다.
인류 생태학도 상당히 연구를 했던 테일러였기에 어느 정도는 인종 구분을 할 줄 알았다.
일반인들에게야 인종구분이 어려운 문제겠지만 신체의 골격과 체형 및 두개골의 형태로 어느 정도의 구분은 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모안이라는 인종은 테일러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인 것이었다.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지만.’
사모안은 남태평양의 사모아 군도와 뉴질랜드 및 호주에 주로 살고 있는 폴라네시안 인종들이었다.
피부는 다갈색이고 두개골이 크며 무척이나 덩치가 큰 것이 특징이었다.
덩치가 큰 만큼 그 신체적인 근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전 세계의 모든 인종 중에 평균적으로 가장 힘이 강한 인종이었다.
그 때문에 격투기나 과격한 운동 등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메이저 스포츠 에이전트들의 스카웃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종이었다.
한마디로 맨손 격투로는 일반인들로서는 사모안에게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물론 절대란 있을 수 없는 법이었기에 상대가 사모안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한 것도 아니었지만 테일러는 자신의 신체의 두 배 가량은 되는 듯한 덩치의 남자에 정상적으로는 자신이 이기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약골은 왜 데리고 온 거야? 아직 타이머는 충분하잖아.”
사모안 헉스는 여전히 말이 없는 남자에 인상을 찡그리다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신경질적으로 테일러에게로 향했다.
“니가 말 안하면 내가 못 알아낼 줄 알고!”
남자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테일러를 통해 알아내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헉스의 커다란 손이 테일러을 향해 움직였다.
“윽!”
테일러는 헉스의 위압감에 반항을 하려고 몸을 휘저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니 놈이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도 꽤나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 없다. 니 놈! 왜 저 놈이랑 같이 있는 거냐?”
테일러로서는 오히려 자신이 더욱 더 궁금한 일을 물어오는 헉스에 급히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남자의 목소리에 얼굴이 창백해져야 했다.
“죽이진 마.”
“……?”
“……!”
그다지 길지 않은 짧은 말이었지만 남자의 말에 헉스와 테일러는 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뭐야? 너! 말을 할 줄 알잖아! 벙어리 아니었냐? 뭐 너랑은 조금 있다가 이야기 하도록 하고 너부터 나랑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자!”
“난! 아무 것도 몰라! 저 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단 말이야!”
테일러는 우악스러운 헉스의 손이 자신의 몸을 붙잡자 고함을 질렀지만 헉스의 행동은 멈추질 못했다.
“후후! 모른단 말이지. 그럼 알게 해주면 되지.”
헉스는 타고난 용력으로 한 손으로 테일러를 들어올렸다.
테일러가 꽤나 반항을 했지만 어른과 아이처럼 헉스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 곧 생각이 날 거다. 아! 걱정 마! 저 놈이 죽이지는 말라고 했으니까 죽일 생각은 없다.”
“크윽! 이 빌어먹을 새끼!”
테일러는 헉스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서는 움켜쥐자 팔의 근육이 터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만약 작정을 한다면 자신의 팔 다리 정도는 그냥 뽑아 버릴 것만 같은 힘이었다.
“자! 말 해! 말하란 말이다! 죽진 않아도 팔 다리 하나는 부러진다!”
“아악! 몰라! 모른단 말이야!”
본의 아니게 테일러가 헉스에게 고문을 당하게 되었지만 고문을 야기 시킨 남자는 그런 비명에도 표정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점점 밝아져 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테일러로서는 기가 막힐 뿐이었지만 눈 앞의 헉스가 대화가 통할 인간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살려면 저 자를 설득해야만 한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려면 동굴 입구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입을 열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야! 으윽! 뭘 원하는 거냐! 말을 하란 말이야!”
헉스에게 고문을 받으면서 테일러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제길! 어떤 놈이라도 와라! 와서 이 놈들을 죽여! 제발!’
테일러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다른 사냥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다가올 수 있도록 고함을 질렀지만 이내 헉스의 목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 니 놈이 그런다고 올 놈들이 있을 줄 아냐? 아 근처의 놈들은 전부 우리에게 죽었어. 살아 있는 놈들도 이 근처로는 얼씬도 안한단 말이다. 기운 빼지 말고 말해. 니 놈의 정체를 말이다. 저 놈. 저리 보여도 괴물이다. 나도 만만히 상대 할 수 없는 괴물 자식. 내가 저 놈을 죽이지 못하고 저 놈도 날 못 죽여서 이렇게 동거 아닌 동거를 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저 괴물 같은 놈이 널 죽이지 않았단 말이야. 분명 죽일 것이 분명했는데.”
헉스는 약해 빠진 테일러가 죽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정사정 봐주지 않던 인간이 갑자기 인정이 넘쳐서 살려주었다고는 절대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헉스는 테일러의 정체를 알고 싶은 것이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자식. 이 놈의 정체를 알면 저 놈의 정체도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말이야.’
헉스는 아직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테일러의 몸을 나뭇잎처럼 흔들어 대었다.
헉스로서는 언젠가 저 정체 모를 남자와 사생결단을 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에 남자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풀고자 했다.
그런 호기심을 푸는 유희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무료한 생활이었다.
“말 안한단 말이지! 그럼 그냥 죽어라.”
헉스의 눈에서 살기가 비쳤다.
어차피 호기심일 뿐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죽이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자신이 안 죽일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아악! 아파! 아프단 말이야!”
관절을 꺾어 버리려는 듯이 힘을 주는 헉스에 테일러는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봐주는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진심으로 고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고문의 끝은 분명 죽음일 터였다.
그런 죽음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을 때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던 남자의 입이 열렸다.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죽고 싶은 거냐.”
“…….”
남자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지만 그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짐을 헉스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헉스의 두 눈이 붉게 충혈이 되면서 실신 직전의 테일러의 몸을 놓아두고서는 몸을 돌렸다.
온 몸에서 투기를 뿜어내는 헉스에 남자의 무심한 눈길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