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위험한 공존
파닥! 파닥!
“응? 물고기인가? 어디서 이런 걸 잡아 온거냐? 윽! 이거 이빨 있잖아?”
헉스는 강준이 잡아온 피라니아에 호기심을 내보이다가 강준이 익숙하게 불을 피우고서는 손질되어 있던 피라니아를 굽는 것에 멍하니 강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준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테일러 또한 다른 생존자들에게 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것에 놀랐지만 두 사람은 조금씩 익어가는 피라니아의 냄새에 입 안에서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헉스와 테일러는 강준이 잡아온 피라니아를 꽤나 맛있게 먹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얼마만에 화식(火食)인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쩝쩝! 이거 간만 좀 맞으면 끝내 줄 텐데 말이야.”
“예! 그러게요. 그런데 이 물고기 닭고기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육식 물고기인 피라니아는 일반 생선들과는 조금 다른 담백한 맛을 낸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고소한 맛이 입 안을 휩싸고 돌자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 동안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서 있었고 허기짐까지 겹치면서 작은 일에도 신경질이 날 지경이었다.
특히나 테일러의 경우는 인간고기를 먹어왔기에 허기짐은 덜했어도 그 스트레스는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아무리 식인을 스스로 정당화 시켰다고는 하지만 심층 의식 속에 쌓여가는 죄책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점점 미쳐가던 테일러에게 식인이 아닌 다른 음식은 마치 구원을 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강준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거세가 된 것처럼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료들과 웃으면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모두가 사라져 버렸고 홀로 남겨졌다.
그 충격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닐 정도로 강준의 정신을 붕괴시켜 나갔다.
그런 강준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료 아닌 동료를 만든 것이었다.
“…….”
강준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잡아 온 물고기를 먹고 있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도 피라니아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이지? 이런 걸 우리한테 주는 이유가 말이야?”
“…….”
헉스의 질문에 허겁지겁 피라니아를 먹고 있던 테일러도 행동을 멈추고서는 강준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자신의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서는 계속 피라니아를 먹기 바빴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에 죽였어.’
불안함을 억지로 죽이며 지금 순간만의 행복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테일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오직 눈 앞의 먹을 것만을 먹고 있었고 헉스는 자신들과 같이 피라니아를 먹고 있는 강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준도 자신들과 같이 음식을 먹고 있었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불길함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후우!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인가?’
헉스는 환경이 이토록 자신을 바꿔 버렸다는 것에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이제는 잠도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죽음의 게임이 시작 된지 한 달도 넘지 않은 상태였다.
그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에 헉스는 평생 살아왔던 모든 가치관과 생각들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헉스 스스로도 꽤나 힘이 장사이기는 하지만 이유없이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한 달 사이에 헉스는 몇 명이나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본래대로였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으려는 동안 단 세 명만 죽였어도 됐을 상황이었지만 그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끊은 상태였다.
그 것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불필요한 살인을 해온 것이었다.
그렇게 되니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세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그렇게 노릇노릇 익어가는 피라니아를 전부 먹어치웠다.
“잘 먹었군. 그런데 어쩔 거지? 날파리들이 꽤나 몰려올 텐데 말이야.”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몸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한 헉스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강준을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좋은 놈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 것이 신뢰의 시작임을 보았을 때 이 섬에서 가장 끈끈한 믿음으로 이어지는 관계였다.
물론 그런 관계가 언제 어떻게 산산이 부서질지 모를 얼음조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 신뢰 관계는 뒤로하고 앞으로의 일이 걱정인 헉스였다.
비록 자신과 강준이라면 꽤나 강력한 사냥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들어나 버린다면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에 불과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중에 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은 제법 많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생존을 위해 불을 피우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생풀뿌리나 생고기 같은 먹거리를 먹고 싶을 리가 없었다.
단지 살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화르륵!
적도 인근의 정글이라고 할지라도 비가 오는 밤은 상당히 추웠다.
아무리 따뜻한 기온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체온보다 따뜻할 수는 없었고 특히나 물은 인간의 체온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그렇기에 다들 배고픔 뿐만 아니라 한기와도 싸워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강준이 피운 모닥불의 온기에 헉스와 테일러는 이 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따뜻한 온기에 여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지자 죽음의 공포마저 귀찮아지는 것이었다.
“여길 떠나야 하지 않겠냐고? 다른 놈들이 분명 올 것인데 말이야.”
헉스의 거듭된 말에 강준은 말 없이 동굴 밖을 바라보았다.
모닥불의 불빛에 비치는 강준의 옆모습은 꽤나 그럴 듯한 그림이 되고 있었다.
“오지 않을 거야. 다들.”
“뭐?”
마침내 다시금 말을 하는 강준의 대답에 헉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강준의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서는 강준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메리 크리스 마스.”
“……?”
“……!”
뜬금없는 강준의 말에 헉스와 테일러는 두 눈을 부릅뜨고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날짜의 개념이 사실상 사라져 버린 두 사람이었지만 자신들이 언제 크루즈 여객선을 탔는지 그리고 대충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를 힘겹게 떠올렸다.
“설마?”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이 쯤에 크리스마스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두 사람이었다.
“다들 마지막 만찬이 즐겁기를….”
강준은 그 말을 끝으로 동굴의 한 쪽 벽에 기대어서는 눈을 감았다.
오늘은 그 어떤 두려움에도 떨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비록 기독교 인이 아니었지만 그 날의 의미는 인간에게 삶의 희망과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화륵!
그런 강준의 바람처럼 섬의 곳곳에서는 작은 불꽃들이 하나 둘씩 피어올랐다.
산타 크로스가 준 선물마냥 자신들의 앞에서 파닥이는 피라니아의 모습과 멀리서 풍겨져 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들에 살기를 내려 둔 채로 고귀한 식사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배가 부르고 따뜻한 모닥불의 온기에 그들은 두려움을 잊은 채로 인간이 가진 마지막 믿음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본래 인간이란 결코 혼자 일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런 공동체의 믿음은 수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것이었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 깊게 각인된 그 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생존자들은 사냥꾼도 사냥감도 아닌 한 인간으로 돌아와 고요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비록 다음 날 아침 불교에서 말하는 사바세계가 다시금 열릴지라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자 했다.
“…….”
“…….”
강준의 행동에 헉스와 테일러는 허탈한 듯이 바라보다가 자신들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강준이 생존자들에게 준 평온의 시간에 더 이상 살인의 비명소리는 섬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개인의 의지는 그다지 강하지는 않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