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20. 발견
자신의 친구인 밀러였다.
몸은 파묻혀 있었지만 그리고 얼굴에 흙탕물로 지저분해져 있었지만 밀러가 분명했다.
아직 살아있다는 반가움과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연이어서 강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밀러.”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남은 희망조차도 놓아 버린 것인지 밀러는 강철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축 쳐내고 있었다.
강준은 밀러의 몸을 파내어서 밀러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밀러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탕!
하지만 곧이어 들린 총소리에 강준은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를 돌려 총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남자들이 권총을 들고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과르르릉!
그 때 번개가 치고 강준은 그토록 죽이고 싶어하던 대상인 팔루와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인 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칫!”
강준은 자신을 향해 있는 총구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무리였다.
‘밀러 조금만 더 기다려라.’
강준은 밀러를 향해 조금만 더 버텨내라고 하고서는 높다란 울타리를 향해 뛰었다.
“잡아!”
뒤쪽에서 자신을 잡으려고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강준의 움직임은 결코 멈추어지지 않았다.
탁!
강준은 전력을 다해 뛰다가 울타리의 중간 지점을 발로 밟고서는 훌쩍 뛰어 올라 울타리의 끝을 손으로 붙잡았다.
힐끔!
그리고서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이들을 분노가 가득 깃든 눈으로 한번 바라보고서는 울타리를 넘어가 버렸다.
“뭐야! 저게 인간이야?”
족히 삼 미터에 육박하는 울타리의 높이였지만 너무나도 쉽게 훌쩍 뛰어넘어가는 강준의 모습에 벤의 일원들은 기가 막혀 했다.
결코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것이 눈 앞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자신들이 힘겹게 만들어 놓은 안전망이 너무나도 허술했다는 것을 알자 지금까지의 안전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강준은 그렇게 훌쩍 울타리를 넘어간 뒤에 달리기 시작을 했다.
‘어차피 오늘은 힘들다.’
이렇게 한 번 당했으니 오늘 밤에는 다시 와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일 밖에는 시간이 없다는 거야.’
내일이 지나면 두 번째 데드 임팩트가 일어나게 된다.
강준이 보았을 때 저렇게 인질로 붙잡혀 있는 것은 최대한 시간을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오늘 사냥을 하고 다음 날 사냥을 해 보아야 하루 정도의 시간 밖에는 늘리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일주일이 다 되어 갈 때 쯤에 붙잡아 놓은 사냥감을 사냥하면 온전히 일주일 간의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사냥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 사냥을 하면 할수록 위험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사냥감은 사냥감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었고 자신 또한 언제든지 사냥감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사냥감만을 잡아서 보관(?)을 하는 것이었다.
강준에게야 그럴 여유나 인원이 부족했지만 규모가 큰 파티는 이런 식으로 생존을 위한 비정한 짓을 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엘리의 파티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여튼 강준은 지금 당장은 밀러를 구출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에 이를 악물면서 달려야만 했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강준은 그냥 그렇게 달렸다.
작은 나뭇가지들에 생채기가 나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돌과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도 하였지만 용케도 넘어지지 않은 채로 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강준의 입에서 터져 버릴 듯이 고함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도무지 그렇게라도 고함을 내지르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쏴아아아아아!
다행이 그런 강준의 비명소리는 폭우에 휩쓸려서 멀리까지는 퍼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하! 하하하하!”
강준은 마침내 달리기를 멈추고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간만에 기분 좋은 웃음이엇다.
‘살아있어!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구해 줄 테니까.’
비록 상황은 좋지 못하지만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강준이었다.
물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절망적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원스럽게 응어리진 가슴 속이 뻥 뚫어지도록 고함도 지르고 웃음도 터트린 강준은 천천히 미셸이 두려움에 떤 채로 자신을 기다리는 곳으로 뛰기 시작을 했다.
생각보다 몸도 가벼웠고 지금까지 계속되던 두통도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서 미셸이 숨어 있던 구덩이로 돌아오자 강철은 잠도 자지 않은 채로 두 눈이 발개져 있는 미셸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안자고 뭐했어?”
“오빠!”
미셸은 울먹이면서도 안심이 된다는 듯이 강철을 껴안았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어서 옷이 다 젖어갔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세차게 뛰고 있는 강준의 심장 박동을 들으며 강준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강준은 그런 미셸을 정말 자신의 친동생으로 느껴져서인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강준의 미소와 조금은 달라진 기세를 미셸이 느낀 것인지 미셸은 강준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어? 어떻게 알았지?”
강준은 놀랍다는 듯이 미셸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냐고 물었다. 혹시나 미셸에게 신기가 있는가 하는 웃지 못할 생각도 하면서 말이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거 보니까 애인이라도 찾았어요?”
토라진 듯이 말을 하는 미셸에 웃음이 나왔지만 미셸은 설마 강준에게 애인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나름 아직 자신이 어리기는 하지만 크면 강준과 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미셸이었다.
“애인은 무슨 애인. 없어!”
“정말이에요? 정말로 애인 없어요?”
강준은 갑자기 활발해져서는 자신에게 애인을 물어오는 미셸에 당황을 하며 대답을 했다.
“그…그래. 애인 없어.”
“하긴! 우리 오빠한테 반할 애인이 있을 리가 없지! 음! 뭐 제가 크면 오빠가 불쌍하니까 구제는 해 줄게요.”
“뭐?”
강철은 자신을 구제해준다는 미셸의 말에 황당해 하다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셸이 진지해 보였고 나름 여동생이 있어서 지금 미셸이 어떤 마음인지 대충 짐작을 한 것이었다.
‘미셸 이 것이 오빠한테 반했구나.’
치기어린 여자아이들 때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꽤나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보다 더 멋진 남자에게 눈길이 돌아가 자신은 종국에는 잊어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뭐 귀여운 미셸의 첫사랑이 되는 거라면 나쁘지는 않겠지.’
어린 여자아이의 순정을 무너트릴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강준은 미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대답을 했다.
“이거 영광인데. 이거 우리 미셸같이 예쁜 아가씨가 애인이 되어 준다면 애인을 만들면 안되겠네.”
강준의 그런 농담에 미셸은 당황을 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외쳤다.
“흠! 벌써부터 기대는 하지 말아요. 내가 생각은 해 본다는 거지 진짜로 오빠의 애인이 되어 준다는 것은 아니니까.”
미셸은 그 말은 하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자신을 타박했다.
그러면서 강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는데 정말이지 얼굴이 붉어져 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으! 너무 좋아!’
미셸은 더는 강준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강준은 더는 놀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셸에게 말을 했다.
“오빠가 지금 친구를 찾았어.”
“예? 친구요?”
갑자기 친구라는 말에 미셸은 강준이 기분이 좋아 보이는 이유가 이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 독일인 친구인데 밀러라고 해서 꽤나 좋은 놈이야. 우리 미셸과도 잘 놀아 주고 어울릴만한 친구이거든.”
강준은 밀러를 구출 할 때 미셸이 있어서는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일 자신이 하루 종일 없더라도 미셸이 안심을 하고 기다리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미셸에서 내일 그 친구를 구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
미셸은 불안한 듯이 강준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강준이 너무나도 즐거운 듯이 그리고 기쁜 듯이 웃고 있는 모습에 자신이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조…조심해서 갔다 와야 해요.”
미셸의 말에 강철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게.”
강준으로부터 한국의 약속의 의식에 대해서 배웠던 미셸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들어서는 강준의 손가락에 끼웠다.
하지만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는지 미셸의 손에서의 떨림은 그대로 강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걱정 하지 마. 미셸! 꼭 돌아올 테니까.”
강준은 그 말을 하고서는 미셸을 안심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강준의 눈길이 미셸의 손목에서 숫자를 줄여가는 타이머를 향하자 강준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미셸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서는 손을 붙잡은 채로 미셸이 잠이 들 때까지 구덩이의 입구에서 기다려주는 강준이었다.
뚝! 뚝!
조금씩 비는 그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강준의 몸에는 물방울들이 연달아 떨어지고 있었다.
추위를 느낄 만도 했고 피로를 느낄 만도 했지만 강준은 조금도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듯이 두 눈을 뜬 채로 앉아 있었다.
새근! 새근!
그렇게 미셸이 완전히 잠이 들고 나자 강준은 천천히 미셸의 손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풀고서는 미셸의 손을 구덩이 내부로 넣어주고서 입구를 보이지 않도록 풀들로 위장을 해 놓았다.
“미셸.”
그렇게 한 번 미셸의 이름을 불러 주고서는 강준은 조금씩 밝아져 오는 해를 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가 볼까.”
그렇게 강준이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때며 정글 속으로 사라지자 미셸의 몸은 애벌레처럼 말리면서 부르르 떨렸다.
“흐윽! 흑! 강준! 흑! 으윽!”
왠지 모를 불안함이 미셸의 온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불안함은 그녀를 도무지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