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마법사 - 149회
카페는 상상을 초월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장사가 너무 잘되고 정신없이 바빠서 카페를 오픈한 지 일 년이 다 되었지만, 날짜 가는 줄도 몰랐다.
며칠 전 유연주가 알려준 이강수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때가 늦은 후였다.
자신의 카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의 한 가지는 핑크티티 초상화였다. 작년 핑크티티의 차트역주행과 함께 세인의 관심을 받은 핑크티티 초상화는 네티즌의 인증샷으로 널리 알려졌고, 또한 커피 맛이 좋다고 사람의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카페를 오픈하며 노민석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어떻게 하든 버틸 각오를 다졌었다. 한데 적자는커녕 오픈 첫 달부터 이익이 나서 얼마나 놀랐던가?
‘그게 다 강수 때문이란 말이지.’
강수가 추천한 원두로 인해 좋은 원두공급처를 찾았고, 핑크티티 초상화로 인해 네티즌의 관심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방송까지 타면서 일반 대중까지 카페를 찾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강수를 만나지 못했으면 빈이네 이야기는 그저 그런 커피숍의 한 곳일 뿐이었겠지. 더구나....’
노민석은 조금 전까지 바쁘게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있던 수석 바리스타 서유정을 떠올렸다. 서유정을 떠올린 그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이 행운의 카페가 아니었으면 유정이와 사귄다는 건 꿈 꿀 수 없었겠지.’
노민석은 몇 개월 전부터 서유정과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7살 나이 차이를 떠나서 서유정과 맺어질 수 있었던 고리는 자신이 서 있는 카페였다. 카페에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일하며 가까워졌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수를 만나서 내 인생이 180도 바뀌긴 했는데 저 초상화를 구매하지 못한 게 단 하나 실착이 될 줄은 몰랐군.’
유연주에게 이강수의 ‘졸업반 이이들’이 홍콩에서 7억에 낙찰됐다는 말을 듣고 핑크티티 초상화 다섯 점과 풍경화의 구매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림을 구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홍콩에서 낙찰된 그림 가격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카페 오픈할 때는 이천만 원조차 여력이 없어 초상화 사야한다는 생각을 못했고, 이제 여유가 조금 생기는가 싶었더니 어떻게 그림 한 점에 칠억이나 할 수가 있어?’
며칠 전, 이강수의 그림값이 왜 7억이나 하는지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밤새워 인터넷을 뒤져 이강수에 관한 기사란 기사는 전부 찾아 읽었다.
수십 개의 기사와 네티즌이 올린 글을 정독한 결과 두 번째 개인전까지는 신인화가의 그림값치고는 고가지만, 합당한 그림값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가 초상화를 구매할 적기였는데 정신없이 바빠서 강수 개인전에 신경조차 쓰지 못했으니.... 어휴, 내 무관심이 죄지.’
이강수 그림값에 변고가 생긴 것은 와이옥션 홍콩경매였다.
홍콩경매에서 이강수의 그림값은 상식을 벗어나 미친 듯이 치솟았다. 시작가 2천만 원짜리 ‘졸업반 아이들’이 7억에 낙찰되었기 때문에 거품 논란도 상당했다. 그리고 여론의 대세는 ‘졸업반 아이들’의 7억 낙찰가는 예외적인 낙찰가이며 향후 그림값 변동을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흘렀다.
‘산골마을의 만추가 적당한 가격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호당 삼백만 원이야. 초상화 가격을 호당 삼백으로 치면 20호인 초상화는 육천만 원. 어휴-’
여름까지만 해도 오백만 원 선에서 구매할 수 있었던 그림이 세 달 사이에 열 배 넘게 올랐으니 한숨이 절로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뭐, 어쨌든 오륙천만 원 선이면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구매하겠지만, 그림값을 졸업반 아이들 낙찰가에 맞추면....’
초상화 구매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일단 물어보기라도 해야겠지? 지금 아니면 살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테니까.’
상념을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노민석은 주문대 옆을 지나며 바쁘게 움직이는 서유정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서유정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깊은 사랑의 빛이 듬뿍 차 있었다.
노민석은 강수와 통화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
강수는 뉴욕경매에 출품할 세 번째 작품의 아이디어를 짜고 있었다. 세 번째 작품도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다. 몇 개의 러프 스케치를 했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음,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를 그리면 솔직하고, 직선적인 표현이라 의미 전달은 강렬할지 몰라도 예술성이 훼손되지. 직선적이면서 목적의식은 드러나지 않게 서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강수는 코코아 농장을 검색해 기사를 훑어보았다.
카카오나무는 아프리카 국가, 특히 1년 내내 강우량과 습도가 일정한 코트디부아르가 재배하기 최적의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코트디부아르와 이웃 나라 가나에서 생산되는 카카오는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담당한다. 카카오 농장의 농부들 일당은 2달러에 불과하며 한 명이라도 더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탓에 농장으로 아이들이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강수는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캐나다 월드비전의 아동노예반대 캠페인 ‘No Child For Sale’을 담당하는 셰릴 호치키스는 아동노동 실태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카카오 재배와 수확을 위해 아이들은 비위생적이고 위험할 뿐 아니라 온갖 해로운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카카오 열매를 따기 위해 크고 날카로운 마체테 칼을 휘두르다 다치는 경우도 많다. 카카오 열매에 뿌리는 농약에 중독돼 병에 걸리기도 한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하지만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보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카카오 농장의 아이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과 떨어져 살며 농장주인의 학대에 시달리기도 한다.”>
‘끔찍하군. 이건 문제가 심각하구나.’
강수는 마체테 칼로 카카오 열매를 따는 아이, 무거운 카카오 열매 나르는 흑인 아이들 사진을 보며 스크롤을 내렸다.
<코코아 농장 내 아동착취를 주제로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소년은 ‘세계 다른 곳에서 초콜릿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고통받으며 만든 것을 그들이 즐기고 있다. 그들은 나의 살을 먹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수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과 고통을 초콜릿을 즐기는 이 가운데 누가 알겠는가?
지난 2015년 7월 툴레인대학교의 ‘페이슨 국제개발센터(Payson Center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카카오 농장 조사 발표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 수는 과거보다 증가했다. 지난 2009년 아동 노동자는 175만 명으로 추산됐지만, 2014년에는 220만여 명에 달했다. 20여 년 전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 상황이 알려지며, 비판 여론과 함께 대안이 제시됐지만, 현실은 오히려 더욱 악화했다.
결국 초콜릿 시장을 이끄는 다국적기업의 공정무역 참여가 아동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밖에 없다. 카카오 농업에 아동이 동원된다는 사실이 이슈화돼 ‘Hermeys'의 경우 2020년까지 아동노예노동을 금지하는 공정무역 초콜릿으로 100% 바꾸겠다고 밝혔다.>
강수는 초콜릿에 관한 기사를 읽으며 거대 다국적기업과 유통업자, 농장주의 이윤 추구에 의해 제 3세계 국가 노동자 노동력 착취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농장에 동원되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일한 만큼 임금이라도 받으면 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니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어. 과학기술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21세기인데 가난한 국가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거기에 아동 노동력 착취라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는가?
강수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고도의 지성적 존재이면서 잔혹한 악마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양면성의 존재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존재가 되려면 전 지구적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까?’
언제라고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국가와 민족, 종족, 계층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단어로 인류가 존속하는 그런 날이 도래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구나. 그런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희망나무 같은 자원봉사단체나 사회복지 단체가 열심히 활동해야겠지.’
잠시 허공의 한 점에 시선을 두고 생각에 잠긴 강수가 연필을 들고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쓱쓱! 쓱쓱!
강수의 손이 강수의 착잡한 마음을 대변하듯 거칠게 스케치북 위에서 움직였다. 연필 끝에서 검은색 선이 나타나고, 검은색 선은 구체적인 형상을 갖춰갔다.
강수는 몇 분 만에 러프 스케치를 완성했다.
우웅!
강수가 스케치를 끝내고 구도와 시점을 검토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