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18화 (118/197)

# 118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18회

계단을 내려온 진하가 강수에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수오빠 맞죠?”

“응, 진하구나. 문자만 하다 처음 보네. 반갑다.”

진하의 초상화를 그렸던 강수는 후드 티를 입고 내려온 여자가 진하란 것을 즉각 알 수 있었다.

“정말 문자만 하고 처음 본다. 저도 너무 반가워요.”

“쉬어야 할 텐데 귀찮게 해서 미안.”

“헤헤. 난 하나도 안 귀찮은데. 근데 이걸 부탁한 고등학생은 누구예요? 사촌 동생?”

진하가 내민 쇼핑백을 받은 강수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사촌 동생은 맞는데 내 사촌이 아니라 여자친구 사촌 동생이야.”

‘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자친구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놀란 진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 여자친구 사촌이요?”

“응? 여자친구 고모 아들인데. 왜?”

당황한 진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아뇨.”

‘여자친구, 여자친구.... 여자친구가 있었잖아! 여자친구라면 아직 기회가 있는 거라고. 애인이 아니고 여자친구!’

진하는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는 고전적인 문구를 떠올렸다. 첫눈에 마음이 흔들린 남자인데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그렇다고 무슨 방법이 있는 것 두 아니고.... 아, 젠장, 젠장, 제-엔장.’

진하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진하야, 사인 고맙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김에 하나 더 부탁하자.”

“예?”

강수가 손에 들고 있는 시디 두 장을 내밀었다.

“이거 너희 1, 2집 앨범이야. 여기에도 너희 사인 좀 받으면 좋겠는데. 안 될까?”

“돼, 돼요. 사인하는 게 뭐 어렵다고. 이리 주세요.”

진하는 강수가 내민 시디를 낚아채서 터벅터벅 맥이 빠진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강수는 진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 녀석. 좀 전엔 생기가 넘쳤는데 갑자기 기운이 빠져서 어깨가 축 처졌지?’

처음 만난 진하가 자기에게 예전부터 호감을 느끼고 있은 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강수였다.

잠시 후 다시 내려온 진하에게 핑크티티 멤버가 사인한 시디를 받은 강수는 진하와 작별하고 한남동 주하 집으로 향했다.

주하를 놀래주려고 문자도 하지 않았다.

골목길에 주차하고 대문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앗, 강수오빠!”

강수의 예상대로 깜짝 놀란 주하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왔다.

기잉-

기계음을 내며 육중한 대문이 열렸다.

정원을 지나 본채로 다가가자 현관문이 벌컥 열리고 주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강수 품에 달려들었다.

“어어.”

생각지도 못한 기습적인 포옹이었다.

강수는 주하를 품에 꽈악 안았다.

“헤헤. 올만에 보는 거 같다.”

“풋, 토요일에 봤는데 올만은 무슨.”

“난 매일매일 보고 싶은뎅. 오빠, 들어가요.”

사실 강수도 애교 있고, 예쁜 주하를 매일 품에 안고 싶고, 뽀뽀도 하고, 한 이불 덮고 잠들고 싶었다.

한 손에 쇼핑백을 든 강수는 주하를 따라 거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

주하가 뒤돌아 강수를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요?”

“그럼. 내가 왜 빈말하겠어. 매일 뽀뽀하고 싶고, 매일 안고 싶고, 매일 보고 싶지,”

“히, 기분 최고다.”

주하가 까치발을 하고 강수의 입술에 살짝 키스했다.

쪽!

“북한산에 등산 갔다 일찍 쉰다고 하더니 어떻게 된 거예요?”

“응. 어제 날밤 새워서 오늘은 일찍 자려고 했는데 완수한테 핑크티티 사인받아준다는 약속이 떠올랐지 뭐야. 그래서 진하에게 부탁해서 핑크티티 사인받아온 거야. 이 쇼핑백 완수한테 전해줄래.”

강수가 쇼핑백을 주하에게 건네주었다.

“그랬구나. 알았어요.”

“해영 씨는 방에 있니?”

쇼핑백을 받아든 주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볼일 있다고 나갔어요. 히히. 아무래도 남자랑 사귀는 거 같아요.”

“사귀는 거 같아? 남자친구 없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었죠?”

“그래? 당연히 남자친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구나. 의외 인걸?”

“해영언니는 남자한테 관심 없어요. 그동안 해영언니 쫓아다녔던 남자가 수십 명은 될걸요. 그래도 남자가 싫다며 전부 개무시, 아니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근데 요즘 전화 통화하는 거나 일 끝나고 밖에 나갔다 오는 걸 보면 드디어 임자가 나타난 거 같아요.”

“해영 씨가 남자를 싫어한 거야?”

“네. 혐오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하진 않았어요. 체육학과 가고, 무술 연마하는 것도 생물학적으로 신체가 우월한 남자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했어요.”

“음, 그랬군.”

임해영이 남자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운동한 데는 모종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것까지 알 이유는 없지.’

“오빠, 뭐 좀 먹을래요?”

“뭘 먹기엔 늦었으니까 홍차 한잔하지 뭐. 설탕은 넣지 마.”

“오빠는 달달한 거 싫어하나 봐요? 커피도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만 마시잖아요.”

“맞아. 설탕 넣은 달달 음식은 입에 맛있을지 몰라도 몸에는 안 좋잖아. 기름에 튀겨서 설탕 발라놓은 도넛 같은 건 아예 손대지도 않아. 사람들이 설탕범벅인 도넛을 왜 먹는지 모르겠어.”

“후후. 오빠 말대로 설탕 범벅이라 입에서 살살 녹잖아요. 이층에 올라가 있어요. 홍차 금방 가져갈게요.”

“응.”

강수는 2층에 올라가 소파에 앉았다. 김대풍 어르신마저 없는 집은 너무 넓어 썰렁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해영 씨가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본채를 여자 둘이 쓰기엔 집이 너무 넓구나.’

임해영은 김대풍의 부탁으로 1층 손님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대풍은 자기가 해외로 나가면 주하 혼자 본채에서 생활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 실장은 1년 동안 장기 휴가를 주어서 주하가 용무가 있어 부르지 않으면 출근하지 않는다. 별채에 집안 일하는 부부가 살지만, 넓은 본채는 주하 혼자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주하가 새살림 차려서 사는 제 아빠 집에 얹혀살 수는 없었고, 손자 주익이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 리도 없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던 김대풍은 임해영에게 자기 집에 들어와 주하와 같이 지내기를 부탁해보았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자취하고 있던 임해영은 군소리 없이 김대풍의 부탁을 수락하고 어제 1층 손님방으로 이사했다.

잠시 후, 주하가 쟁반을 들고 올라와 강수 옆에 앉았다.

“여기요.”

강수는 주하가 내민 잔을 받아 특유의 홍차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떨떠름한 맛이라 마시기 편한 차는 아니지만 붉은 기가 도는 자주색의 홍차는 항암 성분을 비롯해 건강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어?’

주하가 강수의 팔을 두 팔로 안으며 몸을 슬쩍 밀착했다. 융기한 가슴이 은근히 팔을 압박했고, 유리처럼 매끄러운 살결의 촉감이 강수의 심볼에 신호를 주었다.

‘흡! 이거 좀 위험한데....’

“헤헤. 오빠랑 이렇게 단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강수의 아랫배에 찌르르하고 힘이 불끈 들어갔다.

강수가 고개를 돌려 깨물고 싶도록 사랑스러운 주하를 바라보았다. 주하가 촉촉한 눈으로 사랑해요라며 입술을 달싹였다.

한 마리 파랑새처럼 사랑스럽고 예쁜 주하가 해바라기처럼 자기만 바라보다니!

강수는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수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주하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 떨어졌다.

“아-”

주하의 벌어진 입에서 야릇한 교성이 흘러나왔다. 주하가 눈을 사르르 감으며 팔을 들어 강수의 목을 휘감았다. 강수의 몸이 자연스럽게 주하의 상체를 누르며 주하를 소파에 쓰러뜨렸다.

두 사람의 입술이 자석처럼 하나가 되었다.

둘은 정열적으로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짜릿한 감촉이 파도처럼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본능적으로 강수의 손이 주하의 가슴을 더듬었다.

뭉클!

말랑말랑한 가슴이 손에 잡혔다.

강수는 갈증을 느끼며 주하의 입을 벌려 안으로 혀를 넣었고, 뜨거워진 손은 보드라운 살결을 찾아 거칠게 상의를 헤집으며 옷 안으로 침범했다.

한 번도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가슴이었다. 강수의 손길을 느낀 주하의 몸이 움찔하며 순간적으로 경직하더니 서서히 연체동물처럼 풀어졌다.

강수는 한 손에 꽉 차는 유리처럼 매끄럽고 몽실몽실한 가슴을 주무르다 손가락에 작은 돌기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작은 돌기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살살 비볐다.

“하아악!”

강수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주하가 몸을 비틀이며 자지러질 듯이 신음을 토했다.

그 찰지고 쫀쫀한 촉감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짜릿하고 오묘한 촉감은 더 강력한 욕망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 촉감으로 만족하지 못한 강수는 색다른 감촉을 찾아 손을 아래로 움직였다.

강수의 오른손이 아랫배를 지나 팬티 안으로 침입하자 파들파들 떨던 주하의 몸이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펄쩍 뛰었다. 별안간 주하가 강수의 목을 온 힘으로 껴안으며 교성을 터트렸다.

“아아앙!”

까칠한 촉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흡!”

강수는 숨을 들이키며 팬티 안으로 손을 조금 더 넣었다. 무성한 수풀과 함께 촉촉하게 젖은 농밀한 속살의 느낌이 전해졌다.

“하아, 하아!”

강수의 귓가에 가쁜 숨결을 토해내던 주하는 숨이 멎을 듯이 전율했고, 속살에 접근하는 물체를 막기라도 하듯 본능적으로 다리를 강하게 오므렸다.

강수의 손가락이 좁혀진 오금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강수는 서둘지 않았다. 손으로 오므린 허벅지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리의 힘이 풀어지기를 기다렸다.

강수의 뜨겁고 부드러운 손길에 전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주하는 넋이 달아난 듯 몽롱한 얼굴로 신음을 토하며 강수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아아아!”

강수의 손이 까칠한 수풀을 끝없이 애무하자 오므린 다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매끈하고 촉촉한 속살의 느낌과 귀에 착 붙는 감칠맛 나는 교성은 감수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강수의 가슴은 거세게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꽃을 식혀줄 무언가가 간절했다. 더는 참지 못하고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진입하려는 찰라, 강수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찰칵!

주하의 교성 사이에서 이질적인 잡음을 들었다.

‘현관문 소리? 해영 씨!’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온 임해영은 현관에 있는 남자 신발을 발견했다.

‘손님? 이게 무슨 소리지?’

실내에서 이상야릇한 소리가 났다. 소리의 진원지는 2층이었다.

‘이 소리는?’

임해영은 여자가 성적으로 흥분할 때 내는 가느다란 신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상야릇한 신음은 가쁜 숨소리로 바뀌었다.

임해영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수 씨인가?’

이강수가 아니라면 김주하가 생활하는 2층에서 그런 소리가 날 리 없었다.

백 프로 확신할 수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해영은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하 아가씨, 나 왔어요.”

“.......”

임해영은 민망스런 대면은 피해야 할 것 같아 일단 계단 중간에 멈춰서 다시 김주하를 불렀다.

“주하 아가씨?”

“해, 해영언니 왔네. 나 거실에 있어요.”

주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데 들뜨고 숨이 찬 목소리는 평상시와 뭔가 달랐다.

“혹시 손님 왔나요? 현관에 남자 신발이 있어서요.”

“네에. 강수오빠 왔어요.”

‘역시 강수 씨가 왔구나. 그래도 얼굴을 봐야 안심하니까.’

“나 올라가도 돼요?”

“예? 아, 네. 올라오세요.”

임해영은 긴장을 풀지 않고 천천히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온 임해영은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주하와 이강수를 볼 수 있었다.

김주하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고, 옷매무새도 단정하지 않고 어딘가 흐트러져 있었다. 이강수는 엉덩이를 소파 깊이 넣고 뻘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확인하고 나서야 임해영은 긴장을 풀었다.

“안녕하세요? 강수 씨 오셨군요. 제가 두 분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강수가 과장되게 팔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차 한잔 고 가려고 한 걸요.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네요.”

임해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대풍 어르신이 밤 열두 시 이후에는 남자를 집안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전까지는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다 가도 됩니다. 전 내려가서 씻을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이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한 임해영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해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주하가 냉큼 강수 옆자리로 옮겨서 강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빠, 할아버지가 밤 열두 시까지 있어도 된다고 했대요.”

강수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글쎄 말이야. 어르신이 인심 썼네?”

“히히. 그러게요. 오빠, 내 방으로 가요.”

주하가 강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강수가 주하의 손길에 끌려 소파에서 일어서며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정신적으로 피곤한 날이다. 육체적인 피로는 회복마법으로 풀었지만 3일 동안 잠자지 않고 극도의 집중력으로 200여 개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다. 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조금 전 폭발할 것처럼 타오른 욕구는 임해영이 등장하는 바람에 꺼진 모닥불처럼 연기만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거사를 치르고자 한다면 못 할 것 없지만 온전한 정신과 몸, 마음으로 주하와 결합하고 싶었다.

임해영이 아래층에 기거하고 있는 것도 거사를 치르기엔 불편했다.

주하는 평생을 같이 살아갈 소중한 자신의 여인이었다.

강수는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으로 축복받는 최고의 첫날밤을 주하와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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