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04화 (104/197)

# 104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04회

<예고편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몬스터를 막아라’(감독 윤상일)가 언론 배급 시사회를 성황리에 개최해 눈길을 끈다.

7일 강남 유맥스 영화관에서 열린 ‘몬스터를 막아라’ 언론 배급 시사회는 예외적으로 관람객의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는 윤상일 감독과 신인배우 조한석, 문설희, 박나래, 심준우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 중국, 홍콩 등 해외 유력 매체를 비롯해 국내 언론 매체들이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여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와 관심을 보였다.

기자간담회에서 윤상일 감독은 “한국에서는 드문 괴수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굉장히 떨린다. 괴수 영화인만큼 오락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싶다. 욕심을 낸다면 연출과 작품적인 완성도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영화를 언론에 처음 공개한 소감을 밝혔다. 이어 배우들 간의 호흡을 묻는 질문에 조한석은 “혼자 신인이 아니라 출연한 배우 대부분이 신인이라 서로 의지할 곳이 있어 마음이 편했고 부담이 덜했다. 배우들끼리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아 현장에서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라고 훈훈했던 촬영 분위기를 전했다.

민설희는 “매 순간, 촬영마다 액션이 너무 힘들었고, 과연 내가 제대로 연기해 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감독님께서 격려해 주셔서 힘들었던 촬영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동료 배우와 호흡을 맞춰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동료 배우들이 많은 도움을 주어 너무 감사하다”라고 첫 영화 출연에 대해 감독과 동료 배우에게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했다.......

언론시사회 이후 ‘몬스터를 막아라’에 대해 주요 매체들은 윤상일 감독이 선보인 새로운 액션의 세계에 대해 호평 기사를 줄줄이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신인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에 대한 찬사를 보내 이목이 쏠린다.

‘몬스터를 막아라’는 모종의 프로젝트를 개발 중인 비밀 실험실에서 변종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여성 연구원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몬스터로 변한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하게 여성체 몬스터를 전면에 내세운 액션 괴수 영화다. 오는 15일 개봉.

-이수림 기자 [email protected]>

몇 개의 기사를 더 읽어본 강수는 ‘몬스터를 막아라’가 흥미롭고, 완성도 높은 영화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읽어본 몇 개의 기사가 눈부신 액션 연출과 짜임새 있는 줄거리,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를 칭찬했다.

개봉일에 몬스터를 막아라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일단 사진이나 장 선배에게 보내자.’

강수는 ‘군마’ 네 작품을 장영봉의 이메일로 전송하고, 사진 파일을 보냈다는 문자를 했다.

*

장영봉은 1층 전시장에서 뿌듯한 기분으로 빨간 스티커가 하나도 빠짐없이 붙어 있는 이강수의 작품을 한 점 한 점 살펴보고 있었다. 이강수의 그림은 몇 번을 봐도 희한하게 질리지 않았다.

띠링!

문자 왔다는 신호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군마 사진 파일을 보냈다는 이강수의 문자였다.

‘군마는 어떤 그림일까?’

실크스크린 인쇄로 복사해서 앤디 워홀의 스타일을 모방해 작업한 군마는 앤디 워홀의 작품과 어떻게 다를지 심히 궁금했다. 장영봉은 바로 3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컴퓨터의 절전 상태를 해제하고 메일을 열었다.

작품은 100호 내외의 사이즈라고 했다. 절대 작은 그림이 아니었다. 파일 4개를 다운받고 그 가운데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그림을 모니터에 뿌려주었다.

‘유니콘!’

군마는 캔버스 오른족 위의 천상에서 캔버스 좌측을 지나 중앙지점인 지상으로 곡선을 그리며 달려 내려오는 거대한 유니콘 무리를 그렸다. 바탕색이 붉었는데 뭔가 대항할 수 없는 상대를 향해 질주하는 듯한 비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비장함 속에는 고귀한 희생을 내포하고 있었다.

“음.”

짤막한 신음이 장영봉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인간은 과거부터 자유를 위해 고귀한 피를 흘렸지. 그 희생을 의미한 걸까?’

그림이 내포한 의미를 생각해 본 장영봉이 다른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이건!’

황금색 바탕의 군마다.

실크스크린 인쇄를 했으니 똑같은 그림이 당연했지만, 황금색 바탕의 군마가 풍기는 분위기는 붉은색 바탕의 군마와 완전히 달랐다. 황금색 바탕의 군마는 신성한 존재가 천하를 아우르는 장엄한 포용력이 느껴졌다.

나머지 두 개의 작품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은색 바탕 군마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간직한 오묘한 느낌의 보라색 바탕 군마였다.

‘굉장하군! 같은 그림을 채색으로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탄생시켰어. 이건 그림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회화 작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장영봉은 앤디 워홀의 60개의 최후의 만찬이 떠올랐다. 60개의 최후의 만찬은 6단 10열, 60개의 최후의 만찬을 하나로 만든 작품이다.

‘앤디 워홀의 60개의 최후의 만찬처럼 15개의 군마를 3단 5열, 한 작품으로 전시해 놓으면 어떨까?’

15개의 군마를 한데 모아서 전시하면 길이 약 8m, 높이 3m 60cm의 거대한 작품이 된다. 15점의 원화를 모아 전시해 놓은 장면을 상상만 해도 심장이 쫄깃했다.

한데 어제 두 번째 전시회에 관해 얘기했을 때 이강수는 75점이라고 했다. 15개를 모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할 생각이 아닌 것이다.

‘음, 개별적으로 전시하면 실크스크린 인쇄 특성상 작품 하나 당 2천만 원 정도 예상하면 군마 15점이 3억이지만, 15점을 모아서 한 작품으로 만들면 가치가 더 상승하지 않을까?’

장영봉은 군마를 개별 작품으로 디스플레이할지 15점을 모아서 한 작품으로 디스플레이할지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판단을 내렸다.

‘구월까지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까 15점이 전부 완성되면 디스플레이해 봐서 무엇이 좋은지 검토하면 되겠지.’

장영봉은 강수에게 작품 잘 보았으며 군마를 완성하는 대로 메일로 보내라고 답장을 보냈다.

*

주하는 헬스장에서 임해영의 지도하에 지방과 군살을 빼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

“열아홉, 스물. 됐어요. 30초 휴식 후 스쿼트 하죠.”

“후우, 후우.”

복근 운동 크런치를 끝낸 주하는 매트에서 일어나 숨을 골랐다.

이때, 경쾌한 멜로디의 음악이 소파에서 울려나왔다.

“앗! 강수오빠다. 해영언니 잠깐만요.”

주하가 소파로 달려가 통화를 연결했다.

[주하니?]

“네, 강수오빠! 어디예요?”

[작업실인데.]

“어? 전시장에 안 가 봐도 돼요?”

[응. 낮에 관람객이 얼마나 오겠어? 전시장은 선암갤러리에서 봐줄 거야. 나는 이따 저녁에나 가보지 뭐.]

“갈 때 전화해요. 나도 가게요.”

[알았어. 그리고 주하야. 부탁할게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

“그럼요. 나야 남아도는 게 시간인걸요. 무슨 일이에요?”

[서울 인근에 500평정도 되는 땅을 알아봐 줄래. 기왕이면 경치 좋은 게 더 낫겠지?]

“500평 되는 땅이요? 무슨 용도로 사용할 건데요?”

[용도가 뭐냐면... 나중에 그 땅에 내 작업실도 짓고, 부모님이 살 집도 지으려고. 자식은 나 하나인데 같이 살아야 할 것 같거든.]

“네에. 근데 작업실도 지어요? 지금 작업실이 마음에 안 드나 봐요?”

[아니. 여긴 한 가지만 빼면 다 좋지. 이번에 무언의 약속 작업하면서 느낀 건데 200호 이상 대형작업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더라. 실크스크린 인쇄하려고 제판기를 들여놓고 싶어도 제판기가 워낙 커서 여기에 들어오지도 않아. 규모 있는 작업을 하려면 공장처럼 넓은 작업실이 필요하더라고.]

“아, 그렇구나. 알았어요. 땅은 제가 찾아볼게요.”

[그래. 고마워. 전시장 갈 때 연락할게.]

“네. 이따 봐요.”

전화를 끊은 주하는 잠시 기억을 되살리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가만, 할아버지가 땅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어디였지? 별내였나?’

주하가 옆으로 다가온 임해영에게 말했다.

“헤헤. 해영언니. 오늘 운동은 여기까지만 하면 안 돼요? 할아버지 좀 만나야하는데요.”

“아니요. 운동했으면 마무리 지어야죠. 기다릴 테니까 어르신한테 갔다 와요.”

“아유, 알았어요.”

땀으로 젖은 트레이닝복 위에 츄리닝과 겉옷을 걸치고 헬스장에서 나온 주하는 본채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청소하고 있는 홍씨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줌마, 아줌마.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서재에 있나요?”

“예, 아가씨. 서재에 계실 거예요.”

“알았어요.”

주하가 쿵쾅거리며 서재 앞으로 달려가 노크했다.

똑똑똑똑!

“할아버지, 저 주하예요.”

“들어오너라.”

김대풍이 읽던 책을 내려놓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주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집안에서 요란을 떠느냐?”

“제가 언제 요란을 떨어요? 그냥 빨리 걸었을 뿐이라고요. 그것보다 할아버지. 별내에 땅 있지 않아요?”

“별내? 국사봉 아래 좀 있지. 그건 왜 물어?”

“아, 잘됐다. 그 땅, 제가 좀 필요해서요. 그 땅 몇 평이에요?”

“700평쯤 되지.”

“와, 딱이다. 할아버지, 그 땅 저한테 주시면 안 돼요?”

“네가 별내 땅이 왜 필요해? 어디에 쓰겠다고?”

“헤헤. 그럴 일이 좀 있어요.”

“어디다 쓸 건지 얘기하면 생각해보마.”

“아휴, 할아버지도 참 별걸 다 궁금해 하시네. 실은 강수오빠가 쓸 땅이에요. 저한테 서울 근교 땅 좀 알아봐 달라고 했거든요.”

김대풍이 미간을 좁혔다.

“그 녀석이? 별내 땅에서 뭘 한다든?”

“크게 작업실도 짓고, 나중에 부모님하고 같이 살 집도 짓겠대요.”

“부모하고 같이 살아? 그 녀석이 장남이더냐?”

“그건 아닌데 큰형이 사고로 어려서 죽었거든요. 그래서 강수오빠가 외동아들이에요.”

“쯧쯧, 안됐군.”

혀를 찬 김대풍이 턱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부모를 모시고 살겠다.... 요즘 부모를 모시고 살려는 자식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아주 드물 것이다.

김대풍이 물끄러미 손녀를 바라보다 툭 질문을 던졌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뭐가요?”

“결혼할 남자가 부모하고 살겠다고 하면 넌 시부모하고 살 수 있냔 말이다.”

강수와 결혼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생각을 상상한 주하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히히. 전 좋아요. 두 분 모두 정말 좋은 분이세요. 강수오빠 어머니는 아직 젊고 미인이고요. 마음은 또 얼마나 자상하고 고운데요.”

김대풍이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강수 부모를 만나본 게냐?”

“아, 예. 어제 전시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어요.”

“흠, 그래? 강수 부모라는 사람은 어떻든. 서로 사이가 좋아 보이더냐?”

“호호. 그럼요. 두 분이 커플룩 하고 올 정도로 금슬이 좋은 걸요. 두 분이랑 같이 전시장 구경하고 식사도 하면서 봤는데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게 절로 느껴졌어요.”

“서로 사랑한다고?”

문득 자리에서 일어난 김대풍이 뒷짐을 하고 뒤돌아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원 화단에는 겨울을 지낸 나무와 화초와 야생화가 새로운 생명을 받아 왕성하게 초록의 싹을 내고, 이름 모를 꽃을 피우고 있었다.

식물은 봄이 오면 갈무리 해놓은 생명을 화려하게 피워내건만 자기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잔불이나 다름없었다.

지난날이 그의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일당백의 장수처럼 두려울 것 없었고, 광풍노도처럼 혈기 넘쳤던 짊은 시절.

온갖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수많은 꽃을 탐하며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중장년 시절.

그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자기 인생은 회색으로 물든 종장만 남았다.

지난 삶을 후회하지 않지만 자식과 가족에 대해 아쉬움은 남았다. 자기의 선택이 부른 결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강수....’

비록 내세울 것 하나 없고, 가진 것 없는 집안의 자식이지만 이강수는 자기에게 없는 보물을 하나 가졌다.

‘사랑 넘치는 화목한 가족. 내가 가질 수 없는 유일한 것이지.’

주하는 말없이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쓸쓸함을 느꼈다.

언제나 거목 같았던 할아버지였다.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에 괜히 마음이 울적해지고 안타까웠다.

김대풍이 온화한 목소리로 주하를 불렀다.

“주하야.”

주하는 속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힘차게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강수에게 내가 잠시 보잔다고 전해주거라.”

“아, 언제가 좋을까요?”

“어제 개인전 오픈했다고 했지? 지금은 바쁠 테니 시간 날 때 오면 되겠지.”

“할아버지가 보자고 하는데 바쁜 게 대순가요? 아마 부리나케 달려올 거예요.”

김대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지. 참, 어제 전시회에서 작품은 몇 점이나 팔렸든?”

이강수의 그림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개인전을 오픈 했으니 전시장 가서 마음에 드는 작품 한두 점 구매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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