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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86화 (286/314)

286화.

“내가 위험하다는 것은 다른 분들도 위험하단 뜻이지. …나는 죄인이란다. 화산에 다 갚을 수 없는 크나큰 죄를 지은 죄인… 그렇기에 반드시 가야 한단다. 나를 막지 말거라.”

“…고모님…….”

화산을 떠나는 화옥령을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소군은 차마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녀 역시 사형제들과 함께 검을 들고 적과 싸우고 싶지, 이렇게 사문에 남아서 가슴 졸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차마 화옥령을 붙잡지 못한 것이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세요.”

* * *

“청해마왕께서 전사하셨다고? 암군, 그 애송이가 그 정도일 리가 없거늘!”

예상치 못한 비보에 아미산을 지척에 둔 흑천마옹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청해마왕이라면 자신보다 한수 위로 인정한 고수였다.

그런 그가 암군에게 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암군이 사천당가의 당대 가주라고 하지만 전대 가주인 독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청해마왕이라면 독종도 장담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 그가 암군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흑천마옹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벽력마군, 그자가 있었으니 성도는 함락했겠지?”

“그게 하필… 무림맹 백호당이 도착해서…….”

암군이 어떻게 청해마왕을 죽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역시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벽력마군이 충분히 암군을 죽이고, 성도를 함락했어야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때마침 호북성에서 이동한 무림맹 백호당과 멸사대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망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벽력마군께서 부상을 입고 후퇴를 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저희 쪽으로 합류하기 위해서 이동 중이라고 하니 며칠 안에 당도할 듯합니다.”

연배는 벽력마군이 한 배분 위였지만, 무위는 백호당주가 반수 위였다.

덕분에 벽력마군은 백호당주에게 부상을 입고 도주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머릿수가 몇 배나 많음에도 사해련 사천정벌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사해련 사천정벌군을 전멸시키는 것보다 성도의 안전이 먼저였기에 백호당주는 후퇴한 그들을 무리하게 추적하지는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인명 피해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벽력마군께서 당도할 때까지 기다릴까요?”

“아미산이 지척인데, 뭘 기다린단 말인가!”

흑천마옹은 짜증이 났다. 이제 아미파만 아니라 성도 함락까지 그의 몫이 되었다.

귀찮은 일이 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벽력마군, 그 머저리 때문에 귀찮게 됐어. 어쩔 수 없지, 아미파부터 빨리 무너트리고 성도로 갈 수밖에…….’

벽력마군을 떠올리자 흑천마옹은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 짜증을 아미파 비구니들에게 모두 풀 생각이었다.

“오늘, 아미파를 지운다! 모두 준비해라!”

“존명!”

그렇게 흑천마옹과 오천의 군세는 아미산을 향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낭패를 본 것은 벽력마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 * *

“큭! 사일검군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아미파는 사해련 고수들을 상대로 분전했으나 막대한 머릿수는 무시할 수 없는지 사해련에게 산문을 넘겨주는 치욕을 맛봤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해련 고수들은 무서운 속도로 아미파 본전까지 밀고 들어왔다.

아미파 고수들이 목숨을 걸고 옥쇄하고 있었으나 버티고 있는 것도 사실 한계였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 아미파를 버리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고수들이 사해련의 후방에서 기습을 했다.

그들의 존재를 몰랐던 사해련 고수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사해련 고수들을 후방에서 기습한 이들은 아미파의 고수들도, 사천당가나 청성파 등 사천무림의 고수들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사일검군이 이끈 운남무림의 고수들이었다.

그 수는 삼백에 불과했으나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다.

방심하던 사해련 고수들이 된통 당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챙!

“흑천마옹!”

“죽어라!”

음양색불이 아미파의 금정신니에게 발이 묶인 이상 점창의 사일검군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흑천마옹뿐이었다.

흑천마옹은 독문수법인 흑천마수를 펼쳐서 사일검군을 압박했다. 그를 사해련 사대봉공으로 만들어준 흑천마수는 결코 호락호락한 절학이 아니었다.

허나 점창의 비전인 사일검법은 결코 흑천마수의 아래가 아니었다. 점창이 수백 년 간 구파일방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사일검법 덕분이었다.

쾅! 콰쾅!

몇 번의 충돌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흑천마옹과 사일검군은 더욱 서로를 경계했다.

‘흑천마옹이 이 정도였던 말인가!’

‘칫! 점창의 전대 장문인답군!’

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호각지세.

그렇기에 쉽게 승패를 가르기 어렵다. 허나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너무도 허무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젠장,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자존심보다 승리가 더욱 중요하니까.’

자신이 사일검군에게 발이 묶인 상태로 시간이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무엇보다 금정신니를 상대하고 있는 음양색불이 우려되었다.

그 역시 사해련의 십대고수였지만, 금정신니를 꺾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실제로 음양색불은 금정신니를 상대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음양색불이 쓰러지기 전에… 끝낸다!’

같은 편이라고 음양색불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당장을 쓸모가 있으니 써먹을 뿐,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런 음양색불이니 그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지금 그가 쓰러지면 자신이 사일검군에 이어서 금정신니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천 가주! 사일검군을 기습하시오!

―제게 빚을 진 것이오. 마옹.

흑천마옹은 은밀하게 지원 중인 천씨세가의 천운성에게 사일검군을 기습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천운성은 빚을 운운했다.

사해련주이자 혈천의 부천주인 사망도제에게 천씨세가의 작전권을 위임받은 흑천마옹이었다.

빚을 운운하는 천운성이 못마땅했으나 혈천의 일개 호법인 그와 달리 천씨세가는 무려 혈천십삼세였다.

비록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상황이지만.

게다가 당장은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못마땅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으니, 빨리 도우시오!

―흐흐흐… 그럼.

흑천마옹에게 확답을 받은 천운성은 숙부인 천진호에게 사일검군을 기습하라고 부탁했다.

천진호는 천진룡 전(前) 대장군의 아우이자, 천씨세가의 둘뿐인 초절정고수 중 한 명이었다.

또 다른 초절정고수인 집사장은 혈천에서 천씨세가 혈족들을 보호하는 한편, 천운성의 부탁으로 천운현을 감시하고 있었다.

천씨세가가 혈천에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천운현이 쓸데없이 야욕을 부린다면 가문 자체가 휘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대 가주의 아들이자 현 가주의 아우인 천운현을 집사장 외에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천진호의 경우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조카였기에 천운현에게 약간 무른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에게 천운현의 감시를 맡길 순 없었다.

‘망할! 능력도 없는 놈이 가문만 믿고 까불어! 언제까지 까불 수 있나 보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흑천마옹을 보며 사일검군은 이상함을 느꼈으나 그뿐이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기습을 부탁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죽어라!”

“어리석은… 성급함이 독이… 헉!”

갑자기 흑천마옹의 공격이 거세졌다.

방어도 도외시한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당황해서 휘말린다면 위험하지만, 그것만 잘 넘긴다면 오히려 반격할 틈이 생긴다.

그걸 알기에 사일검군은 차분히 흑천마옹의 빈틈을 노렸다. 허나 그건 흑천마옹의 계산 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일검군은 흑천마옹을 향해 검을 찌른 직후 깨달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칼을.

쾅!

“누구냐!”

“망할!”

천진호는 사일검군을 베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허나 그건 사일검군이 막거나 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기습에 대처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비겁한 것들! 검군,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소, 신군 덕분에 살았소. 고맙소.”

사일검군을 도와준 사람은 놀랍게도 청성파의 대라신군이었다.

그가 끼어들 줄은 예상치 못한 흑천마옹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니, 애초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었다.

청성파는 눈앞의 대라신군의 선언으로 봉문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흑천마옹은 눈에 띄게 당황했고, 곧 흥분하고 말았다.

“이놈! 봉문한 놈이 어찌 외부의 일에 간섭을 하더냐!!”

“분명 본문은 봉문을 했소. 본군은 본문을 대표해서가 아닌 개인으로서 참가했을 뿐이오.”

결국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봉문한 문파는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제외하곤 외부활동을 금한다.

그렇기에 봉문을 한다면 문파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은원관계의 문파도 직접적으로 적대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림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대라신군은 그러한 묵계를 깨버린 셈이었다.

“망할! 마왕이 꺼려하더라도 청성을 먼저 멸문시켰어야 했는데!”

움찔!

대라신군은 청해마왕이 언급되자 움찔했다.

흑천마옹의 말대로라면 청해마왕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그에 반해 대라신군은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어긴 셈이었다.

비록 청성이 그대로 봉문상태라도.

하지만 원수인 사해련에 의해서 아미파가 몰살당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무림 원로로서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하면서까지 이곳에 왔다.

“이 일이 끝나는 대로 본군은 평생 청성산을 내려오지 않을 것이오.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염병할!”

흑천마옹은 분개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이로써 상황은 다시 원점이 되었다. 허나 분명한 것은 머릿수는 사해련이 몇 배 많다는 점이었다.

큰 피해는 감수해야겠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자신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 다른 변수만 없다면.

‘혈영, 흑살대를 모두 투입하더라도 무조건 이겨야 해!’

사해련 사천정벌군이라는 대군을 상대로 사천무림은 의외로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섬서무림은 거대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 *

“크윽!”

“커억!”

“사, 살려… 으으악!!”

아름답고 활기찬 서안은 더 이상 없었다.

파괴되고 불타며 피로 물든 도시만 남았다.

사천의 성도에서처럼 섬서의 서안 역시 성벽을 이용해서 사해련의 침공을 막으려고 했다.

서안의 관리 중에 화산 혹은 종남과 연을 맺은 자들이 여럿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안은 섬서의 성도였다.

그러한 서안의 성벽은 높고 단단하며 성문은 사람의 힘으로 열고 닫을 수 없기에 말들을 이용한다.

그럼에도 섬서무림은 성벽을 십분 활용할 수 없었다.

사천 성도를 공략하는 사천정벌군에는 없으나 섬서 서안을 공략하는 섬서정벌군에는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진뢰궁수단과 사망도제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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